97.
죽을 만큼 괴로웠지만 분명한 쾌감도 있었다. 페로몬에 강제로 유도되는 게 아니었던 쾌감은 낙인처럼 생생했다.
“하으, 읏.”
고통과 쾌락이 마구잡이로 뒤섞인 감각이 성기에 몰아쳤다. 속눈썹부터 손톱 모양까지 제 취향인 알파의 입 속은 뜨겁고 질척했다. 제 성기는 그 안에서 녹는 것 같기도 했고 불타는 것 같기도 했다.
“흐, 나, 이건…… 너무, 흣, 네가…….”
뭘 어떻게 하고 싶은 건지 자신도 몰랐다.
공들여 제 성기를 빨아 대는 알파를 걷어차고 싶다가도, 머리칼을 움켜쥐고 고개를 더 누르고도 싶었다. 제 머리가 미쳐서인지 물컹한 습지 냄새가 원래의 청량한 숲 향처럼 맡아졌다.
“하읏, 흐윽! 거긴 안……! 흣!”
성기를 강하게 빨아들이던 로젠게인이 벌어진 엉덩이 사이로 손가락을 미끄러트렸다. 애액에 질척하게 젖은 손가락이 입구를 파고들었다.
아래쪽이 순식간에 경직되는 게 느껴졌다. 손가락이 안으로 들어올수록 입구는 닫혀 갔다.
“아흣, 아, 아파! 아프,”
푹! 찌걱!
손가락 두 개가 입구를 짓찧듯이 벌리며 들어섰다. 멀쩡한 생살이 강제로 뚫리는 것 같은 통증 속에서 내내 조여지던 성기가 울컥 절정을 내뱉었다.
“흐으……. ……커억!”
페란스가 뒤틀리는 위를 참지 못하고 신물을 토해 냈다. 눈앞이 하얬다. 몸이 전부 쥐어짜인 듯 기운이 하나도 없는데 정신을 잃진 않았다.
“……퉤.”
제 다리 사이에서 뭔가를 뱉어 내는 소리가 작게 번졌다.
눈꺼풀을 들어 쳐다보니 그가 손바닥에 뭔가를 뱉고 있었다.
하얗고 탁한 것을 보니 정액이었다. 역겨워서 뱉어 낸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로젠게인은 만족스럽게 웃었다.
“……? 뭐 하는…… 거야?”
“확인했습니다.”
“뭘?”
“피가 섞여 있는지.”
“?”
“성기에서 출혈이 있었다면 그만큼 사정하는 데 저항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야 당연히 각인 반응이……,”
“피가 섞이지 않았습니다.”
로젠게인이 벗어 둔 겉옷에 정액을 닦아 냈다. 페란스가 혼란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는 동안, 그가 고개를 가져와 부드럽게 입술을 눌렀다.
처음에는 윗입술만, 이어서 입술 전체를 빨아들인 그가 혀가 얽히기 전 입술을 놓아주었다.
내내 웃는 표정이라 이상했다.
그는 진심으로 뭔가를 기뻐하는 사람 같았다.
“각인을 푸는 일이 기대보다 빠를 것 같습니다.”
“그, 게…….”
초옥, 타액으로 젖은 입술이 다시 빨렸다. 그 부드러운 키스는 사랑스럽다는 말과 비슷하게 들려왔다. 귀가 이상해진 건 로젠게인만이 아니었다.
“제 짐작이긴 하지만 그간 각인 상대의 페로몬에 노출되는 일이 없었던 게 도움이 됐을 겁니다.”
“그게…… 그럼…….”
“혹은 전하께서 제 페로몬에 저항이 적은 것일 수도 있고.”
“…….”
그렇다면 말이 될 것이다. 아만다리스의 페로몬만큼이나 익숙해진 페로몬이니까.
처음 제 의지로 맡아 본 페로몬이었다. 그 향이 가져다준 충격은 지금도 선명했다.
초옥, 다시 입술이 비벼졌다.
“어느 쪽이든 사랑스럽습니다.”
“…….”
그는 여전히 같은 말을 했다.
사랑한다는 말은 아니었지만 사랑스럽다고 했다. 그 두 개가 얼마나 어떻게 다른지 페란스는 생을 반복하는 지금에도 알지 못했다.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각인을 깨면,”
페란스가 들러붙은 것 같은 입술을 억지로 떼어 냈다.
“네.”
어김없이 다시 입술이 들러붙었다. 로젠게인은 그를 아이처럼 양팔로 안고 계속 여기저기에 키스하는 중이었다. 표정을 보면 십이 년의 공백이 거짓말 같았다. 낯선 붉은색 머리칼이 아니었다면 그가 내내 제 곁에 있었다고 믿을 것만 같았다.
“그럼 말할 건가? 네가 떠난 이유. 그리고 네가 다시 돌아온 이유.”
“아니요.”
이번 키스도 사랑스러웠다.
“각인을 깨면 말씀드리겠다고 하진 않았습니다.”
“그럼?”
“전하께서 이 약혼을 진짜로 만드시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진짜 약혼이라는 게…… 정확히 뭘 말하는 거야. 혼인을 말하는 건가?”
비로소 키스가 멎었다.
로젠게인은 페란스의 얼굴을 양손으로 쥐고 시선을 똑바로 부딪치며 말했다.
“기억해 내십시오. 그때 전하께서 어떤 의미로 진짜 약혼을 약속하셨는지.”
“기억…… 하고 있어. 하지만 그건…… 네가 떠나기 전의 일이었다. 지금도 그게 같은 의미일 수는 없어.”
“같은 의미로 만드십시오. 그게 거래 조건입니다.”
로젠게인이 페란스가 내뱉은 포도주로 얼룩진 시트를 걷어 바닥에 떨어트렸다.
그리고 제 셔츠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손가락이 한 번 움직일 때마다 맨몸이 드러났다.
“…….”
페란스가 침을 삼켰다. 한 번 사정 후 미지근하게 가라앉았던 성욕이 다시 피어올랐다.
셔츠를 벗어 던진 로젠게인이 페란스의 허리를 안고 목덜미에 입술을 묻으며 속삭였다.
“이제부터 진짜 섹스를 할 겁니다.”
“……후, 말처럼 쉬운 게 아니,”
“미리 말씀드리지만 페로몬을 참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스읍, 목덜미를 스쳐 가는 코가 숨을 한껏 들이쉬었다.
“전하의 페로몬이 제게 역할 일은 없으니.”
“…….”
마치 그 말을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온몸에 열감이 번졌다.
투둑.
다물렸던 아래에서 다시 오메가 액이 흐르며 페로몬이 퍼져 나갔다.
* * *
“……미쳤군.”
눈을 뜬 페란스가 중얼거렸다.
눈꺼풀이 무거웠다. 눈을 떠도 시야가 반으로 줄어든 걸 보면 퉁퉁 부은 게 아닐까 싶었다.
온몸이 부서질 것 같은 기분은 말할 것도 없었다. 처음 눈을 떴을 때는 초점이 잡히지 않고 시야가 온통 하얘서 자신이 죽은 줄 알았다.
“일어나셨습니까.”
하얗게 바랜 시야에 무언가가 희끗 끼어들었다. 눈에 힘을 주자 붉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로젠게인이었다.
긴장이 풀리는 동시에 묘한 안정감이 들었다. 몸이 걸레짝처럼 느껴지도록 혹독한 시간을 보냈지만, 그건 결국 로젠게인과 섹스를 했다는 증거였다.
“그 머리, 어떻게 좀 해. 안 어울려.”
“붉은색을 좋아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목이 좀 잠겼지만 말투는 반듯하시군요. 다행입니다. 튼튼하셔서.”
다행은 개뿔, 아직도 눈에 뵈는 게 없다는 말을 하려다가 기회를 놓쳤다. 초옥, 그새 관자놀이에 입술이 들러붙었다.
“내가 붉은색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네게는 붉은색도 잘 어울린다는 뜻이었어.”
맹세코 말하지만 머리색이 아니라 루비로 만든 카벨리카의 백합 펜던트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그래도 너는 검은 머리가 나아. 그리고 키슬크는? 내가 이 꼴이 됐으면 난리를 쳤을 텐데.”
“발정기가 왔다고 일러두었습니다.”
“그 말에 지금껏 얌전히 있는다고?”
“뺨을 한 대 맞긴 했습니다.”
“뭐……?”
순간 뿌옇던 시야에 초점이 돌아왔다. 페란스가 고개를 돌려 침대 옆에서 자신을 보고 있는 로젠게인을 찾았다.
“어디 봐 봐.”
턱을 쥐고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아직 침침한 눈에도 오른쪽 광대 근처에 자리를 잡은 붉은 얼룩이 보였다.
“멍이 지겠는데. 키슬크가 이렇게 만들었다고?”
“네.”
“그럴 리가. 키슬크는 네 가슴팍에 이마나 겨우 닿을 텐데.”
“지금처럼 있었습니다.”
“지금이 어떤……. ……아,”
침대에 누워 있는 자신과 시선이 얼추 맞는 이유가 있었다. 로젠게인은 침대 옆, 바닥에 무릎을 댄 채 앉아 있었다.
“왜 그러고 있는데? 의자가 없었어?”
“이게 편했습니다.”
“무슨 소리야, 그게.”
페란스가 인상을 썼다.
“의자를 가져와. 괜히 내 무릎이 눌리는 것 같으니까.”
“이게 더 좋습니다.”
“무릎이 아픈 게 더 좋다고?”
“의자에 앉으면 멀어져서.”
“……? 뭐가?”
“전하께서.”
“……?”
그 말에 페란스는 새삼스럽게 로젠게인이 앉은 자세와 자신이 누워 있는 자리를 눈으로 쟀다.
자신은 침대 가운데 반듯하게 누워 있었다. 매일 잠이 드는 자세와 비슷했다. 만일 로젠게인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면 아무리 거리를 좁혀도 손이 닿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건 자신이 잠들어 있는 동안 그가 침대 옆에 앉아 내내 제 어딘가를 어루만지고 있었을 거라는 말로 들렸다.
……왜 그런 짓을.
“키슬크가 뭐라면서 뺨을 쳤나?”
“십이 년간 전하의 곁을 떠나 있던 대가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
“너는 뭐라고 했는데?”
“손수건을 건넸습니다.”
“아……. 키슬크가 울었어? 자기가 쳐 놓고?”
아직도 눈이 침침한 걸까.
로젠게인의 표정이 파도 없는 바다처럼 부드러워 보였다.
“제가 아니라 전하 때문에 울었습니다.”
“나 때문에?”
“네.”
“……뭐, 키슬크라면.”
걱정을 사서 하는 성격이었고, 특히나 제 일이라면 몇 배나 더 유난을 떨어 댔으니 로젠게인 앞에서 울어 댈 만도 했다.
“키슬크도 너를 알아봤나?”
“아니요. 블루와렌의 새로운 수호자라고만 알고 있었습니다.”
“이름을 말하는 순간 놀라 자빠졌겠군.”
“그 비슷하긴 했습니다. 그런데,”
로젠게인이 불쑥 턱을 붙들었다.
갑작스러운 동작은 페란스를 놀라게 했다. 동작이 문제가 아니라, 마르스티엘이 하던 짓과 똑같아서였다.
같은 사람이었다. 같은 얼굴을 했고, 같은 이름을 지니고 있었다. 자신처럼 생을 반복하지 않았을 뿐 같은 사람이었다.
“다른 걸 느끼지 못하십니까?”
“뭘……. ……아,”
페로몬이 느껴졌다.
로젠게인의 페로몬은 더 이상 질척한 습지가 아니었다. 청량하고 신선한 숲속의 들꽃과 바람 냄새였다.
“아…….”
페란스가 무의식중에 콧방울을 벌름거렸다. 로젠게인의 향은 미친 것처럼 좋았다. 동시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두근거리면서 지끈댔다.
그때…… 같아.
발정기를 함께 보낸 다음 날, 처음으로 마르스티엘의 페로몬을 맡았을 때.
그를 알파로 의식하게 된 순간 제 몸에 남은 것은 심장 하나뿐이라는 듯, 온통 심장 뛰는 소리가 울려 왔다.
숨이 가쁘고 공연히 울고 싶었다. 시선이 묶이기라도 한 듯 그를 뒤쫓았다. 이제껏 살던 세상이 뒤엎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사랑에 빠졌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알파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