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열 웨딩 (96)화 (95/122)

96.

“뭐?”

이를 질근 물고 구토감을 참아 내던 페란스가 소리쳤다.

“무슨 소리야. 거래를 하자고 하던 건 너잖아! 거기에 억제제가 포함된다고 말한 걸 잊었어?”

“지금 억제제를 쓰는 건 전하의 죽음을 방관하겠다는 겁니다.”

“그럼 어쩌라는 말인데! 발정기를 그냥 보내는 것도 죽으라는 말과 같아!”

“죽고 싶으십니까?”

로젠게인이 가슴을 누르는 손에 힘을 주며 물었다.

“……아직은, 아니야. ……흣, 그만 비……켜.”

페란스가 몸을 비틀며 불편함을 내뱉었다. 슬슬 한계가 느껴지는 중이었다.

각인 반응은 정말이지 오랜만이었다. 메스꺼워지는 속이 머릿속도 울렁거리게 만들었다.

그때는 대체 이런 걸 어떻게 참았던 거지.

이런 걸 참겠다며 빨리 각인을 풀자고 했다. 그 시절의 자신은 지금보다 훨씬 팔팔하고 무모했다.

그리고 눈이 멀어 있었지. 네게.

대체 왜 그랬을까. 나는 왜 그렇게까지 너를 사랑했던 걸까.

“안 들려? 비키라잖아!”

“토하고 싶으면 토하십시오.”

로젠게인이 재킷을 벗으며 헛소리를 했다.

“……뭐? 뭘 어쩌려고?”

“발정기가 기회일지도 모릅니다. 각인 반응도 빠르게 일어나고 최음제도 필요 없을 테니.”

“무슨…… 개소리야. 지금…… 섹스를 하자고? 너와? 이렇게? 아무런 준비도 없이?”

“어차피 겪을 일입니다. 전하의 몸 상태를 보니 한시가 급한 일 같습니다.”

“나는 아직 너와 거래하겠다고 하지 않았어!”

“이미 늦었습니다.”

로젠게인이 단호한 손길로 페란스의 턱을 붙들었다. 무슨 짓을 하는 건지 깨닫기 전에 페로몬이 번져 왔다.

“……흡!”

본능이 숨을 막았다.

다물리는 입술 위로 로젠게인이 입술을 겹쳤다.

“흡, 하지, 마!”

두 손이 다정하게 머리를 감쌌다. 머리칼이 손가락에 감기며 바스락 소리를 냈다. 입술이 다물려 있자 그가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기 시작했다. 결국 입이 벌어지고, 그 사이로 혀가 들어왔다. 입천장을 훑던 혀가 혀를 감았다.

안타까울 정도로 느린 키스였다. 얼굴을 감싸 쥔 손은 따듯했고, 하는 짓에 비해 어이가 없을 정도로 정중했다.

키스를…… 원래 이렇게 했나? 마르스티엘이?

하지만 느리다는 생각은 곧 사라졌다. 페란스가 무슨 이유에서든 저항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자 갑자기 혀를 얽는 힘이 강해졌다. 입을 크게 벌린 로젠게인이 전부 삼킬 것처럼 거칠게 혀를 빨아 올렸다.

“흐, 으…… 흣!”

퍽!

페란스가 필사적인 발짓으로 로젠게인의 허벅지를 때렸다.

“으욱! 컥!”

가까스로 키스하는 도중에 토하는 건 피할 수 있었다. 고개를 돌릴 새도 없이 그대로 시트 위에 토사물을 쏟아 낸 페란스의 목덜미가 벌게졌다.

“그만하라고 했잖아……. 빌어먹을, 이게 무슨 꼴이야.”

더러워진 입가를 한 채 페란스가 로젠게인을 노려보았다.

마르스티엘이야 여러 번 겪은 일이었지만 로젠게인은 처음일 것이다. 그나마 연회장에서 먹은 게 포도주 한 잔이 고작이라는 점은 다행이었다. 냄새가 시큼할 뿐 보는 게 많이 역하지는 않았다.

침대에 묶인 손이 덜덜 떨려 왔다.

각인 반응이 느껴지는 동시에 밑도 끝도 없는 성욕이 치솟았다. 정말이지 지랄 맞았다.

“그냥 약을 가져와. 어차피 불가능해.”

그렇게 온갖 약을 먹고 향을 피워 대도 각인 반응은 끔찍했다. 발정기가 왔을 때 마르스티엘과 몸을 섞은 적이 있었지만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지금도 알 수가 없었다.

어쨌거나 로젠게인은 마르스티엘과는 다를 것이다. 무엇보다 그에게는 각인한 과거가 없었다. 비틀린 페로몬을 기억으로 덧칠해 첫 페로몬의 변주라 했던 마르스티엘과는 달리 로젠게인은 그 역함을 생생하게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건 전하의 생각이고.”

로젠게인이 페란스의 셔츠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저는 가능할 것 같습니다.”

“헛소리. 너는 각인 반응이 어떤 건지 몰라.”

“알 만큼 압니다.”

“뭐라고? 어떻게 안다는 건데?”

“전하께서는 제가 십이 년간 뭘 했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뜻밖의 말에 페란스의 눈이 벌어졌다.

“뭐라는 거야. ……아니, 잠깐. 그럼 네가 각인을 푸는 법을 안다고 했던 게……,”

“네. 그걸 알아내기 위해 오랜 시간을 떠돌았습니다.”

툭, 투둑.

셔츠 단추를 끝까지 푼 로젠게인이 셔츠를 양쪽으로 활짝 벌렸다.

목에 건 사슬에 열쇠가 매달려 있는 것을 발견한 그가 검지 끝으로 열쇠를 툭 눌렀다.

“이건 뭡니까?”

“……묻지 마.”

“중요한 비밀인 모양이군요.”

그렇게 말한 로젠게인이 사슬을 훌쩍 벗겨 냈다.

철컹!

열쇠가 바닥에 부딪쳐 내는 소리에 페란스가 이를 질근 물었다.

“잃어버리면 안 돼. 남의 손을 타면 안 되는 물건이다.”

“아직 여유가 있으시군요. 좋습니다.”

로젠게인이 고개를 내려 페란스의 목덜미에 입술을 댔다.

각인 반응과 발정기의 성욕이 겹쳐지면 각인 상대가 아닌 다른 알파를 향한 반감도 짙어졌다. 페란스가 몸을 비틀며 그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애를 썼다.

“너는…… 내 페로몬이 역겹지도 않나? 토하는 꼴을 보고 나서도 생각이 달라지지 않았어?”

“마음이 조금 약해질 뻔했습니다만 우려했던 것보다 전하께서 튼튼해 보이셔서 안심했습니다.”

“각인 반응은 이제 시작이야. 더한 꼴을 보게 될 거라고. 최음제를 발라서 세운 물건도 시들 판에 뭘 어쩌겠다는 건데.”

“이 상황에서 제 물건까지 걱정해 주시다니. 그래서 튼튼하시다는 겁니다.”

“빌어먹을. 나는 농담을 하는 게 아니, 흡!”

셔츠를 벌려 놓은 로젠게인이 입술로 젖꼭지를 물었다. 페란스가 기를 쓰며 그를 떠밀었지만, 양손이 묶인 지금에서는 더 빨아 달라며 가슴을 내미는 행동과 구분이 가지 않았다.

“그때도 여기가 아주 예쁠 것 같다는 생각은 했습니다.”

길고 반듯한 손가락이 타액으로 적셔 놓은 젖꼭지를 간질였다. 성욕은 고조되는데 알파의 손길은 끔찍했다.

“흣, 하지…… 마. 말도 안 되는…… 짓이야.”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각인을 풀려는 자들은 그간 충분히 봤습니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군요.”

한 손으로 젖꼭지를 잡아 간질이듯 비틀면서 그가 바지를 끌어 내렸다.

“토할 것 같아.”

페란스가 복부를 꿀렁대며 말했다.

“그냥 하십시오.”

“제기랄. 말이 쉽지. 너 같으면 남이 보고 있는 앞에서 태연하게 토할 수 있을 것 같아?”

미련인지 자존심인지 그런 꼴은 보이고 싶지 않았다.

“제 앞이니 괜찮습니다.”

“너라서 싫은 거야.”

“…….”

바지를 무릎 아래로 끌어 내리던 손이 잠시 멎었다. 로젠게인이 고개를 한번 갸웃거렸다.

“이상한데. 왜 그 말이 귀엽게 들리지.”

“뭐라는 거야.”

“말씀을 가려 하시거나 아예 하지 않으시는 게 낫겠습니다. 너무 오랜만에 뵌 탓에 제 머리가 좀 이상해진 것 같으니까.”

“대체 뭐라는 건데!”

“전하가 무슨 말을 하든 제 머릿속에서는 저 좋을 대로 의미가 달라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그게 무슨 뜻이냐고, 젠장! 그리고 제발이지 그만둬.”

로젠게인이 하는 짓이 머릿속에서 다른 의미가 되는 것은 페란스도 마찬가지였다.

왜 아니라는 건데. 그럼 대체 뭐라는 거야.

왕관을 탐내는 게 아니라고 했다. 아이를 갖게 하려는 것도 아니라고 했다.

그럼 뭐냐고. 나한테 왜 이러는 건데.

“아직 제정신을 차리고 계신 게 놀랍습니다.”

로젠게인이 속옷을 벌리고 드러나는 엉덩이 골을 훑었다. 눈앞으로 보란 듯 들이대는 손가락에는 발정기의 흔적이 질척하게 묻어 있었다.

“이지를 잃고 알파를 구할 시점 같은데.”

페란스가 팔을 흔들자 손목을 묶은 끈이 끊어질 것처럼 팽팽해졌다.

“그래도 너는 안 돼. 아무리 젖은 것 같아도 네가 페로몬이라도 흘리기 시작하면 금방,”

“모르셨습니까? 방금 전부터 그렇게 하고 있었습니다.”

“무슨,”

정말이었다.

키스를 할 때부터 로젠게인은 제 페로몬을 흘려 보내고 있었다. 묵직한 습지 같은 냄새는 마르스티엘의 것이었고, 그래서 숨이 막히기보다는 그리웠다.

“잘 버티고 계십니다. 이제껏 각인을 깨려고 하는 자들을 많이 보았지만 전하처럼 다른 페로몬을 잘 견디고 있는 경우는 처음입니다. 생각만큼 어렵지 않을 것 같습니다.”

훌쩍 고개를 숙인 로젠게인이 양손으로 엉덩이를 벌리며 반쯤 일어선 성기를 삼켰다.

“흐읏!”

페란스가 진저리를 쳤다. 허리가 저절로 비틀리고 온몸의 내장이 쥐어짜이는 기분이었다.

주르륵, 벌어진 엉덩이에서 오메가 애액이 질척하게 흘러내렸다.

이상할 정도로 각인 반응이 둔했다. 구토를 하고, 두통이 시작되고, 속이 메스꺼웠지만 온 신경이 갈기갈기 찢기는 그런 느낌은 아니었다.

뭐지.

페란스가 숨을 헐떡였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뭉클대는 진흙처럼 로젠게인의 페로몬이 제 몸 속에 들어왔다.

역하고 괴로웠지만 익숙했다. 수선화 향이 나는 아만다리스의 페로몬에 비하면 이 습지의 비린내는 천국이었다.

이상해…….

마치 몸이 그 시간을…… 네 향을 기억하고 있는 것 같아.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