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전하. 페로몬을.”
그 목소리는 주문 같았다.
“하, 하아……. 하읏…….”
페란스는 각인으로 비틀린 페로몬을 풀면서 제 몸도 비틀었다. 이 더럽고 끔찍한 자해는 사랑이라는 말이 아니면 이해되지 않았다.
사랑이었다. 그를 사랑했다.
“얼굴…… 얼굴 보면서…… 해 줘.”
“원하신다면.”
마르스티엘은 성기를 꽂은 상태로 페란스의 엉덩이를 제 몸에 단단히 붙이고는 그대로 반 바퀴 뒤집었다.
“흐윽!”
아래가 찢겨 나가는 것 같았다.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내렸다. 페란스는 울며 마르스티엘의 어깨에 매달렸다.
“계속…… 해. 계속…… 안에 해…….”
마르스티엘이 아주 다정하게, 손가락에 꿀이라도 바른 것처럼 달콤하게 엉망이 된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사랑스러워.”
퍽!
강렬한 감각이 아래를 전부 부술 것처럼 밀려들었다. 페란스는 고통에 신음하는 대신 더 넓게 다리를 벌렸다.
이대로 부서져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 * *
뭔가가 이상하다는 감각이 흐려지던 정신을 뒤흔들었다.
“……? 아, 무슨…… 헉!”
부서질 것 같다고 느꼈던 아래가 실제로 부서지고 있었다.
엉망으로 짓이겨진 것 같은 저 안쪽 어딘가가 벌어지고 있었다. 아니, 찢어지고 있었다.
“허억! 그, 그만……! 그만해! 그만둬! 하지 마! 하지 마……!”
페란스가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
“지금은…… 저도 멈출 수가 없습니다.”
마르스티엘의 검은 머리가 온통 젖어 있었다. 머리칼 끝에 고인 땀방울이 후드득 비처럼 떨어졌다.
“으, 흐…… 크흣!”
이제껏 제 머리로는 상상해 본 적도 없던 고통이 시작되었다. 마르스티엘의 성기가 제 안을 잡아 찢고 있었다.
“하지 마! 하지 마! 안 돼…… 흐으, 컥! 안 돼!”
“전하. 움직이지 마십시오. 그게 더 괴롭습니다.”
마르스티엘은 침대에 누운 자세로 있던 페란스를 들어 올려 제 몸에 꽉 눌렀다.
통증에 정신이 나간 페란스는 입에 닿는 마르스티엘의 살갗을 물어뜯었다.
“노팅이 될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전하. ……전하.”
찢은 곳을 파고드는 성기가 더 거대하게 부풀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퍽 하고 터지는 느낌이 들었다. 정신이 나간 페란스는 눈을 뒤집고 흐느꼈다.
“조금만……. 조금만 더.”
마르스티엘은 페란스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꽉 끌어안고 귓가에 입술을 묻었다. 페란스는 발작이 온 것처럼 몸을 덜덜 떨면서 계속 안 된다고 소리를 질러 댔다.
“조금만.”
“하지…… 하지 마…… 죽을…… 죽을 거야. 하지…… 마…….”
“조금만 더.”
온몸이 너무 뜨거웠다. 심장만 끓이는 게 아니라 온몸을 불 위에 올려놓은 것 같았다.
페란스는 몇 번이고 눈을 뒤집으며 경련하다, 마침내 의식을 잃었다.
* * *
그 뒤로 아주 오래도록 잠을 잔 것 같았다.
햇살이 눈꺼풀을 깨물어 대는 감각 속에서 눈을 뜬 페란스는 그대로 한동안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가…… 어디지?
침실이 아니었다.
내가 어디 와 있는 거야…….
“전하……? 정신이 드십니까?”
“전하!”
익숙한 목소리들이 들리는 걸 보면 궁 안은 맞았다. 시종장과 궁인들이었다.
키슬크가 옹졸한 어깨를 기를 쓰고 늘이며 자신과 눈을 마주치려 애를 쓰는 중이었다.
“……마르스티엘은?”
제 기억 안에 존재하는 건 마르스티엘이었다.
그가 새로운 왕실 길드장을 데려왔고, 임명장에 이름을 써 넣었다. 그리고 반가워서 키스를 했고……
……죽을 만큼 고통스러웠다.
“마티바 탑에 있습니다. 섭정께서 가두셨습니다.”
“뭐라고?”
말 같지도 않은 소리에 페란스가 홱 몸을 일으켰다. 그러다 눈물이 핑 돌았다. 허리가 부서진 것 같았다.
“아이고, 전하! 갑자기 움직이시면 아니 되옵니다! 절대, 절대 요양을 하셔야 하옵니다!”
“내가 왜 이러고 있는데? 나도 모르는 새 죽을병이라도 앓았나?”
“그것은 저희도 모르옵니다!”
“뭐?”
“그렇기에 마르스티엘 그자를 가둔 것이옵니다. 전하께서 각혈까지 하시며 혼절하셨고, 그자의 말을 믿을 수가 없기에……,”
“마르스티엘이 뭐라고 했는데?”
“그게…… 노팅을 했다 하였사옵니다.”
노팅……. ……빌어먹을. 그랬지.
대부분의 기억은 흐릿했지만 그 미친 것 같은 통증과 마르스티엘이 자신을 아주 세게 안았던 것은 기억했다.
노팅이라고 했다. 노팅이 될 줄은 몰랐다고.
곤죽이 된 머리로도 그게 무슨 소리냐고 되묻고 싶었다. 각인이 된 상태에서 다른 알파로 인해 노팅이 가능하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어쩌면 이제껏 그런 예가 없었던 건지도 몰랐다. 각인한 오메가와 끝까지 섹스를 할 알파 자체가 없었을 테니까.
“가서 마르스티엘을 꺼내 와. 섭정이 궁에 있나?”
“예, 그것이……. 출입 금지령이 내린 건 전부 다 알고 있었사오나 전하께서 의식을 잃으신 다음에는 마땅히 섭정의 권한이 우선되는 터라,”
주절주절 이어지는 키슬크의 변명을 페란스가 뚝 잘랐다.
“섭정을 내보내. 당장.”
“전하, 그것은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옵,”
“그럼 근위대장에게 전해! 섭정을 내보내라고!”
“……며, 명을 따릅니다. 전하.”
키슬크가 허둥지둥 궁인들을 이끌고 침실을 나섰다.
그때야 페란스는 이 침실이 자신이 쓰는 곳이 아니라 그 옆 왕자비의 침실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어떻게 된 일인지 대충 짐작이 갔다. 제 침대가 엉망으로 더러워졌을 테니 마르스티엘이 이곳으로 데려다 놓았을 것이다.
마음이 급해졌다.
자신이 정신을 잃은 사이 궁 내부에서 벌어졌을 일들이 머릿속에서 덩치를 부풀렸다. 감옥에 갇힌 마르스티엘이 무사하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자신이 쓰러진 일로 그에게 책임을 물었다면 그 어떤 죄라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페란스는 이불을 걷고 걸레짝이 된 것 같은 몸을 일으켰다.
“……하, 제길.”
욕이 튀어나왔다.
페란스는 매듭이 덜 묶여 어깨를 흘러내리는 잠옷 차림으로 비틀비틀 걸어 침실을 나섰다.
몇 걸음 걷지도 않았는데 식은땀이 쏟아졌다.
“전하.”
그가 침실을 나서자 문을 지키던 근위대가 자세를 갖추었다.
“혹시 너희 중 알파가 있나?”
페란스의 차림새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지던 근위대가 고개를 저었다.
“둘 다 아닙니다.”
“잘됐군. 너는 나를 부축하고, 너는 길 안내를 해.”
“어디를 가십니까?”
“마티바 탑.”
“……예?”
아무래도 그 눈들은 옷을 갈아입으러 가셔야 하지 않느냐는 말을 하는 듯했다.
“뭐 하고 있나. 부축하라니까.”
“며, 명을 따릅니다. 전하”
페란스는 근위대의 어깨에 매달리듯 몸을 기댄 채 자리를 옮겼다.
* * *
“저, 전하!”
탑의 경비들은 페란스를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죽다가 살아난 것 같은 몰골을 한 왕자가 눈만 새파랗게 치켜뜨고 있는 광경은 자칫 일이 심각해지리라는 예감을 불러오고도 남았다.
“문 열어.”
“네, 네!”
경비가 허둥지둥 정문을 열었다.
본성을 지나 후원의 호수를 가로질러 가면 나오는 마티바 탑은 건물 전체가 감옥이었다. 지하에는 고문실이 있었고 1층은 텅 비어 방문자들의 몸수색을 하게 되어 있었다. 2층부터 6층까지 한 층에 네 개의 감옥이 있었다.
마르스티엘은 그중 꼭대기 방에 있다고 했다.
“……빌어먹을, 진짜.”
페란스는 땀을 비 오듯 흘리며 돌계단을 올라갔다.
망할 감옥 탑은 계단도 욕이 나오게 좁고 가팔랐다. 슬리퍼가 몇 번이나 미끄러질 뻔했다. 그럴 때마다 근위대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사실 자신이 굳이 이 탑을 다 올라가야 하는 이유를 페란스도 몰랐다.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다. 어서 마르스티엘을 무사히 이곳에서 꺼내야 한다는 생각만이 예외였다.
“헉헉…… 지금 몇…… 층이야?”
“5층을 지났습니다, 전하. 저 계단이 마지막입니다.”
“헉…… 제길.”
남은 힘을 쥐어짜 계단을 마저 올랐다. 나중에는 시야가 흐려지다 못해 노란빛을 띠었다.
“문…… 문을 열…… 열어.”
페란스가 닫혀 있는 감옥 문을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예, 전하.”
탑의 경비가 부리나케 허리춤의 열쇠 묶음을 꺼내 들었다.
그 또한 손을 덜덜 떠느라 자물쇠를 여는 시간은 터무니없이 오래 걸렸다.
6층에 갇힌 죄수가 소문이 자자한 그 알파라는 사실을 간수는 너무 늦게 알았다. 일단 밤이라 정신이 없기도 했고, 그를 사슬에 묶어 끌고 온 섭정 아만다리스 공이 서슬 퍼렇기도 했다. 저는 모르는 무슨 엄청난 죄를 지은 흉악한 인간이라고 착각하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그 죄수가 페란스 왕자의 약혼자였고, 지금 페란스 왕자가 그를 꺼내기 위해 잠옷 바람으로 마티바까지 걸음했다.
“대체 뭐 하는 거야!”
기다리다 못한 페란스가 버럭 목소리를 높였다.
“소, 송구합니다, 전하. 그, 금방…….”
찰캉!
그 와중에 열쇠를 떨어트리기도 했다. 환장할 노릇이었다.
경비가 허둥지둥 바닥을 더듬어 열쇠를 집어 들었다. 보다 못한 페란스는 경비의 손에서 열쇠를 빼앗아 들었다.
“비켜.”
“저, 전하…….”
철컥철컥, 철컹!
자물쇠를 여는 데 서투른 것은 페란스가 더했다. 그래도 경비보다 시간이 덜 걸린 것은 순전히 오기였다.
“마르스티엘!”
자물쇠가 열리자 눈치 빠른 근위대가 재빨리 걸쇠에서 자물쇠를 뽑아 들었다.
쾅!
페란스는 제 몸으로 문을 밀며 소리를 질렀다.
“어디 있나!”
감옥 안은 어두웠다. 그래서 그냥 제 눈에 안 보이는 줄 알았다.
“내가…… 뭐 잘못된 건가?”
페란스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감옥이 텅 비어 있었다. 다만 마르스티엘의 겉옷이 더러워진 채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