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삼 일 동안 페란스는 매 순간 마르스티엘을 기다렸다.
밤과 새벽 사이, 이전에는 치를 떨었던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기를 잠을 설쳐 가며 기대하고 또 기대했다.
“……바쁘긴 해도 사흘 밤을 꼬박 샐 정도는 아닙니다.”
마르스티엘이 등 뒤에서 손을 뻗어 페란스의 손을 쥐었다. 손등에 입을 맞춘 그가 손을 돌려주었다. 페란스는 더는 미련을 부리지 않고 의자에서 일어섰다.
그를 끌어안고 각인 반응이 오기 전까지 실컷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알현실은 적당한 장소가 아니었다.
“손을 줘.”
대신 마르스티엘을 데리고 사실로 갈 생각이었다.
거기라면 무슨 짓을 해도 괜찮았다. 마르스티엘과 밤을 보낼 것을 대비해 사실을 돌보는 궁인들을 싹 치워 두라는 명을 내려 두기까지 했다.
“네, 전하.”
마르스티엘이 정중하게 내미는 손을 페란스가 와락 움켜쥐었다. 그를 끌고 알현실을 나서는 걸음이 점점 빨라졌다.
“엘링이라고 했나? 저런 인물은 어디서 찾았어? 저런 인물이 있다는 걸 진작 알았다면 마이카오 같은 인간은 왕실 길드에 얼씬대지도 못했을 텐데.”
“마음에 들어 하실 줄 알았습니다. 정직한 인물이니 전임자와 같은 우를 범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리라 믿어. 네가 고른 인물이잖아.”
“감사한 말씀이지만 사람은 변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는 게 낫습니다. 그래서 감사원을 조직하는 방도를 생각해 두었습니다. 전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감사원?”
“왕실의 인가가 붙는 조직을 정해진 시기에 감사하는 겁니다. 감사원은 전하께서 임명하시되, 공정성을 위해 대귀족회의 추천을 받는다고 하십시오.”
“꼭 그래야 해?”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는 인간이라면 감사원의 권한을 짐작할 겁니다.”
“그러니 제 입김이 닿는 인물을 앉히려 들겠지. 뻔한 거 아냐?”
“네. 대귀족들의 인맥도를 그리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추천을 하는 대로 전부 임명할 게 아니라 그중에서 가릴 테니 서로 눈치를 보게 만드는 역할도 할 테고.”
“먹이를 하나만 던져 놓고 싸움을 붙이겠다는 거로군. 좋아. 영악하고 비열한 수야.”
“칭찬 감사합니다.”
사실까지 가는 길이 오늘따라 길었다.
계단을 한꺼번에 두 칸씩 올라가는 페란스의 등 뒤에서 마르스티엘이 소리 없이 웃었다.
“혹시 제가 보고 싶으셨습니까? 사흘간.”
페란스가 고개를 홱 돌려 마르스티엘을 노려보았다.
“묻지 마. 그리고 웃지도 마. 귀엽다느니 하는 말도 하지 마.”
“셋 다 하고 싶습니다.”
“하지 마. 명령이다.”
“……사실에 도착하면 해도 되겠습니까?”
“그건 허락하겠다.”
“그렇다면.”
갑자기 마르스티엘이 속도를 높였다.
제 마음만 급한 줄 알았는데, 긴 다리로 성큼성큼 계단을 오르는 속도를 도무지 못 따라갈 것 같았다.
“제기랄. 너는 왜 그런 것도 잘하는 거야.”
“제 마음이 더 급한 것뿐입니다.”
“그런 말도 하지 마. 달리고 싶어지니까.”
“왕족은 달리면 안 됩니까?”
“아니. 체면은 좀 구기겠지만 예법으로 정해져 있는 건 아니야.”
“그럼?”
“네 앞이라서 싫어.”
내가 얼마나 급한지 전부 드러나는 게. 그걸 네가 전부 보고 있는 게.
“다음부터는 그러지 않으셨으면 좋겠군요.”
“어디선가 들었는데. 연인 사이에도 예의 정도는 지키는 게 좋다고.”
“이런 상황에서는 달리는 모습을 보이는 게 예의일 거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도착하면 이해하실 겁니다.”
숨이 차도록 계단을 올라와 사실에 도착했다.
쾅!
문이 열리자마자 페란스의 허리를 감아 든 마르스티엘이 제 등짝으로 문을 닫았다.
쿵!
문을 닫는 동시에 그가 페란스를 벽에 붙였다.
“각인 반응은?”
“알잖아. 아직 멀었어.”
“좋군요.”
그리고 마르스티엘이 입술을 집어삼켰다. 페란스는 그를 힘껏 마주 안으며 혀를 얽었다.
숨이 달았다. 침이 달았다. 좋아서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이렇게 예쁜 건지.”
잠깐 입술을 놓아주고 숨을 몰아쉬는 페란스를 바라보던 마르스티엘이 중얼거렸다. 그 말을 듣는데 아랫도리가 짜릿해졌다.
“나는 네가 그런 말을 어디서 배워 왔는지 더 궁금한데.”
“저도 모릅니다.”
다시 입술이 먹혔다. 아랫입술을 질리도록 빨아 댄 마르스티엘이 혀로 입 안을 핥았다. 그의 혀가 어딘가를 스칠 때마다 쉴 틈도 없이 몸이 저릿저릿 울려 댔다. 미칠 것처럼 황홀했다.
“오늘 밤에는 해도 될 것 같아.”
마르스티엘이 목덜미로 입술을 미끄러트리는 틈을 타 페란스가 말을 꺼냈다. 양손이 부지런히도 그의 머리칼을 헤집고 있었다.
“다 나았는지 확인해 보셨습니까?”
“나았을 거야. 벌써 며칠이나 됐잖아.”
“그건 전하의 생각이고.”
“다 나았을 거야.”
“확인을 해야겠군요.”
마르스티엘이 바지 위로 페란스의 엉덩이를 움켜쥐었다. 허리께가 짜릿하게 달아올랐다.
“지금 하겠다는 거야?”
“……아니요. 아직 그 정도 분별력은 남아 있습니다.”
마르스티엘은 엉덩이를 주무르며 아쉽다는 듯 아랫입술에 작은 입맞춤을 남겼다.
“이젠 준비가 없어도 되지 않을까?”
페란스도 그를 보며 비슷한 얼굴로 입술을 핥았다. 아쉬움으로 치자면 제 것이 훨씬 더 클 것이다.
“그래서 계속 다치셨습니다. 매번 발정기 때 같을 수는 없습니다.”
마르스티엘은 엄했다. 예기치 못하게 약을 바르는 짓을 하면서도 사실은 계속 선을 재고 있었다.
“약을 드시고 하는 게 훨씬 더 안정적입니다.”
“……네가 그렇다면.”
시무룩한 표정은 무게가 생기기라도 하는 듯 고개를 처지게 했다. 마르스티엘은 검지로 페란스의 턱을 들어 올렸다.
“갑자기 그렇게 귀여운 표정을 지으시는 건 반칙입니다.”
“그 소리 좀 그만할 수 없나?”
“받아들이십시오. 전하의 약혼자는 이런 말버릇을 지녔습니다.”
“기왕이면 좋은 버릇인 게 좋잖아.”
“연인의 사랑스러움을 말하는 건 아무리 자주 해도 부족할 거라고 믿는 편입니다.”
“……그럼 좀 점잖은 표현을 쓰는 게 어때?”
“음……. 안 될 것 같습니다.”
“왜?”
“전하께서 귀엽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좋지 않은 척하시는 게 귀여워서.”
“……대체 뭐라는 거야.”
페란스가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투덜거렸다. 사실 마르스티엘의 말이 맞았다. 투덜거리는 척하는 것뿐이었다.
……그렇다고 좋아서 어쩔 줄 모르겠다고 할 수는 없잖아. 세 살이나 어린 알파한테 귀엽다는 말을 들으면서 마냥 좋다고 하면 밸도 없는 인간 같잖아.
하지만 그게 싫지 않아서 문제였다.
“고개 돌리지 마십시오. 오랜만에 보는데.”
마르스티엘이 다시 고개를 돌려놓았다.
옅은 푸른색 시선이 곧장 이쪽을 향해 내려앉았다. 꼭 심장을 찔리는 기분이었다.
“범인을 찾았습니다.”
“……그래?”
착각이 아니었다.
마르스티엘은 정말로 제 심장을 찌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누구……였는데?”
페란스는 마르스티엘이 알레프를 위해 무슨 변명을 할지 무서웠다.
살려 달라고 할까. 저를 봐서 살려 달라고.
그를 잃을 수는 없다고. 그는 내 목숨 같은 것보다 더 소중한 존재라고. 독을 먹었어도 살아 있지 않냐고. 그러니 그냥 잊어 달라고. 설마 그렇게 말을 할까.
“사주를 받은 자가 있었습니다.”
“네가 데리고 있는 자들 중에?”
“네. 유감스럽게도.”
“…….”
“송구합니다, 전하. 사실을 알고 처리했습니다만, 제 불찰입니다.”
현실은 상상보다 더 나빴다.
마르스티엘은 아예 거짓말을 했다.
“믿을 수가 없는데. 네가 데리고 있는 자들은 전부 블루와렌에서 함께 온 게 아냐? 아만다리스가 아무리 재주가 좋아도 그렇지, 그런 자들 중 하나를 골라 회유했다고?”
“블루와렌에서 온 자가 아니었습니다. 호위를 위해 위스타드에서 고용한 자입니다.”
“그걸 아만다리스가 알았다는 거야? 그렇게까지 네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고? 아만다리스가?”
“……제 불찰입니다.”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다.
그리고 그의 거짓말이 이렇게나 저를 헤집어 놓을 줄도 몰랐다.
그는 내게 독을 먹였어.
해약이 일 인분밖에 없는 독을.
너는 그걸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뭉개 버리겠다는 건가.
“실망이로군.”
페란스는 눈을 꾹 감고 일그러진 얼굴로 내뱉었다.
나는 네게 대체 뭐야.
네 수하만도 못한 나는 대체 뭐냐고.
“앞으로 두 번 다시 없을 일이라고 약속드리겠습니다.”
아니, 이미 벌어진 일이야.
네가 그를 감싸는 건 감정을 부추기는 것이다. 그는 더 절박하게 너를 원하게 되겠지. 내가 언제라도 죽기를 바라면서.
내가 아는 걸 네가 모른다고 하지 마…….
“약속……. 그 말 하나로 내가 너를 믿어야 하나?”
말해 봐.
네 감정은 진실인가?
네 수하보다 덜한 것으로 나를 여기면서, 동시에 배우자로 사랑할 수 있나?
……아니, 말하지 마.
그런 말이라면 하지 마. 차라리 듣지 않는 게 낫겠어.
“내 안위를 그따위로밖에 돌보지 못하는 너를?”
“전하,”
“입 다물어. 변명은 하지 마라.”
퍽!
페란스가 마르스티엘을 밀쳤다.
“돌아가.”
“전하.”
“돌아가. 지금은 너를 대하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