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열 웨딩 (24)화 (24/122)

24.

마르스티엘이 뭔지 모를 약을 마시고 나자 페로몬이 짙어졌다.

“아…… 이상해애…….”

페란스는 괴상한 침대에 앉아 셔츠 단추를 푸는 마르스티엘을 바라보았다.

“네 페로몬이…… 느껴지는데 각인 반응은…….”

“느리게 오긴 하겠지만 사라진 건 아닙니다. 심장 박동을 늦추는 약을 드셨습니다.”

“아, 네가 나한테 먹인 게…….”

“그렇습니다.”

기분이 몹시 이상했다.

자신은 가만히 있는데 주위가 알아서 빙글빙글 돌아가는 듯했다. 손발이 차가워지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럼 너는…… 네가 먹은 건……?”

“최음제.”

“으응……?”

“효과는 여섯 시간 정도입니다.”

“아, 그럼…… 여섯 시간…… 그러니까아…….”

“네.”

여섯 시간 동안 그쪽과 섹스할 거라 말하는 것치고 마르스티엘의 태도는 지극히 사무적으로 보였다.

너에게 이건 섹스가 아닌가 보지.

대가를 받았으니 제공하는 노동력 같은 건가.

제 생각이 우습고도 불쾌했다. 페란스는 피식 웃었다.

단추를 전부 푼 마르스티엘은 셔츠를 걸친 채로 다가왔다.

동작이 느려진 탓에 사라지는 것도 느린 웃음이 아직도 입가에 걸려 있었다. 마르스티엘은 페란스의 턱을 손가락으로 들어 올렸다.

“각인은 다른 페로몬을 거부하게 만듭니다.”

“그건…… 알아.”

“그러니까 각인을 깨는 건 강제로 다른 페로몬을 받아들이게 만드는 겁니다.”

“아……. 알겠어. 그런데 그걸…… 어떻게……?”

“각인 반응이 일어날 때가 기회입니다. 각인 반응이 일어나 역치에 다다르면 페로몬 벽에 틈이 생깁니다.”

“아, 그러니까…… 결국 죽기 직전까지 섹스를 하란…… 그런 말이겠네.”

“네, 맞습니다.”

“그럼 해.”

페란스는 제 턱을 올린 마르스티엘의 손가락을 잡아 입 속에 넣었다.

손가락을 빨자 뭉클, 덩어리진 페로몬이 빨려 들어오는 것 같았다.

해, 어서.

마르스티엘은 모를 것이다.

각인한 그날부터 자신은 오직 이 순간만을 기다리고 살아왔다는 걸.

죽기 직전까지 몸을 혹사하라는 말도 이 순간만큼은 최음제나 다름없었다.

“……해.”

“그럼.”

마르스티엘의 페로몬이 몸을 짓눌러 왔다.

* * *

“흑, 우욱!”

괴상하게 생긴 침대와 그 아래 양동이를 모욕이라 불렀던 것은 실수였다. 그게 아니었다면 지금 이 순간은 몇 배나 더 수치스러워졌을 것이다.

“으웩!”

구토 소리가 끔찍했다.

목이 다 헐어 버린 듯 침을 삼키는 것도 고통스러웠다. 팔뚝과 가슴은 온통 긁혀 피가 줄줄 흘렀다. 손발을 묶으려는 마르스티엘을 말린 대가였다. 온몸의 혈관이 찢기는 것 같은 고통을 참지 못해 정신을 차리고 보면 손톱으로 살갗을 후벼 파고 있었다.

결국은 그 괴상한 침대에 몸을 묶어야 했다. 엎드린 채 허벅지를 벌리고, 양 손목과 발목은 끈으로 묶여 엉덩이를 치켜든 자세가 수치스러웠던 것도 잠깐이었다.

그저 죽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숨을 쉴 때마다 맡아지는 페로몬이 폐를 난도질했다.

“좀 쉬시겠습니까?”

당연한 말이었지만 각인 상대가 아니라면 최음제를 먹어도 뒤가 젖지 않았다. 앙다물린 뒤를 벌리기 위해 마르스티엘은 최음 성분이 섞인 향유를 쏟아붓고 모형 성기를 이용해 기름을 펴 발랐다.

그래도 성기가 들어오자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던 고통이 시작되었다.

제 온몸이 마르스티엘을 거부하고 있다는 걸 매 초마다 느꼈다. 내장이 전부 입 밖으로 뛰쳐나올 것 같았다.

이제야 그가 보였던 태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이건 섹스가 아니었다. 발가벗고 아랫도리를 섞는다고 해서 섹스가 될 수는 없었다. 지옥에서나 할 법한 고문이었다.

그중에서 제일 끔찍한 것은, 맹렬히 솟구치는 애정이었다.

마르스티엘이 주는 모든 고통이, 그를 증오하며 동시에 각인 상대를 찾게 만들었다. 아만다리스의 이름을 불러 대며 흐느끼고 몸부림치게 만들었다.

자신이 온 마음으로 아만다리스를 연모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이 미친 짓거리를 하면서 각인을 풀어야 하는 이유를 잊어버렸다. 이대로 아만다리스를 사랑하다 죽고 싶었다.

곤죽이 된 머리가 제 몸을 유린하는 마르스티엘에게 저주를 퍼붓다가 그의 손가락을 물어뜯기도 했다.

“……쉬겠습니다.”

스르륵!

마르스티엘이 몸을 물렸다. 빠듯하게 벌어져 있던 구멍으로 주르륵, 미적지근하게 뒤섞인 액체가 흘러내렸다.

한 조각 남은 이성이 이대로 끝낼 수는 없다고 외쳐 댔지만 페란스는 이미 멀쩡한 상태가 아니었다. 한 번도 느껴 본 적이 없던 강도의 각인 반응이 페란스를 반쯤 백치로 만들어 놓았다.

“수면제를 드리겠습니다. 이번에는 물지 마십시오.”

맨몸에 가운을 하나 걸친 뒤 마르스티엘이 물약을 들고 다가왔다.

“…….”

잇자국이 깊게 파인 중지에서는 아직도 피가 흐르고 있었다.

저 상처는 분명히 흉터로 남을 것이다.

“중독이 되지 않는 선에서 아편을 섞었습니다. 푹 주무실 수 있을 겁니다.”

“네가……,”

페란스는 흐느끼듯 입을 열었다.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쏟아졌다. 토사물과 피로 더러워진 뺨 위에 눈물이 새로운 얼룩을 만들어 냈다.

“네가 너무 싫어…….”

“각인 반응으로 인한 겁니다.”

마르스티엘은 엉망으로 헝클어진 페란스의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엎드린 채 있던 고개를 옆으로 꺾은 그가 턱을 잡아 입을 벌리게 한 다음 물약을 흘려 넣었다.

페란스는 진저리를 치며 물약을 뱉어 냈다. 머리로는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가 주는 게 독 같았다.

“네가 싫……, 정말로 너무,”

“생각보다 튼튼하시군요, 전하.”

마르스티엘은 가운 자락을 들어 페란스의 얼굴을 닦아 냈다.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는 머리로도, 옷자락 사이로 언뜻 비치는 푸른 눈이 얼음장 같아서 소름이 끼쳤다.

“쉴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손대지…… 싫…… 가서 아만다리스를 불러…… 흡!”

마르스티엘은 턱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턱뼈가 벌어지며 입이 강제로 열렸다.

“하실 수 있습니다.”

“……읍!”

입 안으로 성기가 들어왔다. 뱉어 내지 못하도록, 마르스티엘이 다른 손으로 페란스의 뒷머리를 붙들었다.

성기는 그저 입 안을 채우는 게 아니었다. 꾸역꾸역, 목구멍까지 넘어왔다.

손발이 묶인 상태에서는 밀어낼 수도 없었다. 단단히 붙들린 고개는 마르스티엘이 움직이는 대로만 움직였다.

“흐, 으…… 으욱, 흐……,”

헛구역질을 해도, 눈물을 왈칵 쏟아 내도 머리를 움직이는 마르스티엘의 손에는 틈이 없었다. 페란스의 입 안과 목구멍은 이 순간 사람의 일부가 아니라 성욕을 달래는 기구가 된 듯했다.

“아무래도 조이는 맛은 없군요.”

최음제를 과용한 마르스티엘의 눈에는 핏발이 서 있었다. 붉어진 눈 탓인지, 아니면 구음을 강제하는 거친 손짓 탓인지 그는 화가 난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제 말이 귀에 들리지 않는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애를 써 보십시오. 아니면 최음제 효과가 다 될 때까지 목구멍을 벌리고 계셔야 할 겁니다.”

“읍, 크, 흑!”

“뱉으려고 애쓰지 말고 빠십시오.”

마르스티엘의 말대로 그가 하는 말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입 안과 목구멍을 불로 지지는 것 같은 고통만 느껴질 뿐이었다.

퍼억!

뒷머리가 강하게 눌리며 귀두 끝이 목구멍을 깊숙이 찔렀다.

까드득, 퍽!

침대를 긁어 대던 손톱이 부러졌다.

더는…… 더는 못 해.

더는…… 싫…….

온몸이 조각조각 깨어지는 것 같은 감각 속에서 페란스가 눈을 뒤집었다. 그리고 정신을 잃었다.

* * *

“……악!”

정신이 돌아오는 순간 비명부터 터져 나왔다. 잠이 든 자신을 누가 오븐 속에 집어넣고 불을 때는 게 아닌가 싶었다.

“으, 흐윽……! ……컥!”

두 팔로 몸을 감싸던 페란스는 갑자기 상체를 접으며 격한 구토를 시작했다.

“우욱…… 컥!”

이불 위로 더운 피가 한 움큼 쏟아졌다. 붉다 못해 검게 느껴지는 피가 오히려 더 섬뜩했다.

“가만 계시지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는데 누군가가 곁에 있었다.

고개를 드니 아직은 흐릿한 시야에 붉은 머리칼이 어른거렸다.

“움직일수록 더 아픕니다.”

빨간 머리가 피에 젖은 이불을 걷어냈다. 몸을 덮은 이불이 사라지자 곧장 피부에 소름이 올라왔다. 손등으로 핏기를 닦아 낸 뒤 드러난 입술이 파랬다.

“춥습니까?”

“조금.”

빨간 머리가 제 겉옷을 벗었다.

“이거라도 두르고 계십시오. 금방 새 이불을 가져다드리겠습니다.”

페란스는 땀으로 끈적이는 머리칼을 걷어 올리며 말했다.

“네 옷은 필요 없어. 이불이나 가져다줘. 마르스티엘은?”

“아……. 옷에도 신분을 따지시나 봅니다. 단주님은 볼일을 보고 계십니다.”

빨간 머리는 꽤나 무례한 말을 던지며 제 옷을 다시 걸쳤다.

페란스는 짜증스럽게 눈썹을 구겼다.

다시 봐도 빨간 머리는 미형이었다. 다른 사람들보다 도톰해서 육감적으로 보이는 입술이 특히나 짜증났다.

“신분이 아니라 페로몬을 따지는 것이다. 형질을 모르는 자의 옷을 함부로 덮을 수는 없어. 이 몸으로 다시 각인 반응을 겪을 생각은 없다.”

“아…….”

고집이 더럽게 셀 것 같은 얼굴을 한 주제에, 빨간 머리는 의외로 수긍이 빨랐다.

“그렇겠군요. 사과드리겠습니다. 제 불찰입니다.”

“볼일이라는 게 뭔데?”

그래서 페란스는 자신이 옹졸한 인간이라는 걸 깨달았다. 빨간 머리가 깔끔하게 사과를 하자 그것도 짜증이 났다.

설마 성격도 좋은 건 아니겠지. 그러면 진짜 마음에 안 들 것 같은데.

“한두 가지가 아닐 겁니다. 워낙 바쁘신 분이라.”

“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할 시간도 없단 말인가? 그것 참 괘씸한데.”

빨간 머리는 페란스 못지않게 짜증스러운 가짜 웃음을 지었다.

“그래서 제게 지켜보라 이르셨습니다.”

“시키는 건 쉽지.”

“최음제가 단주님 몸에는 잘 안 맞습니다. 고생을 꽤 하셨습니다.”

“…….”

제기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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