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상상은 끝 모르게 이어졌다.
마르스티엘이 눈을 감고 고개를 젖힐 것이다. 저는 그가 내뱉는 낮고 그윽한 신음 소리로 고막을 채우면서 입을 크게 벌려 성기를 삼킬 것이다.
그럼 저 커다란 손이 제 뒤통수를 쥐고 머리칼을 헝클이지 않을까. 신음이 짙어지고 반쯤은 무아지경이 되어 성기를 빨아 대면 그가 그만, 이라는 말을 내뱉을 것이다. 아랑곳하지 않고 그때 더 힘껏 조여 대면 그가 제 이마를 밀며 사정할 것이다.
흰 정액이 입술과 뺨에 튈 것이다. 그가 이럴 마음은 아니었습니다, 라며 눈가에 묻은 정액을 엄지로 닦으면 자신은 그 손가락을 잡고 입 속에 넣을 것이다.
질척하고 야릇하게 빨면서 그를 바라보면, 그가 목을 긁는 거친 소리를 내뱉으며 허리를 낚아챌 것이다.
격렬한 키스가 시작되기 직전, 입술을 붙인 채 이렇게 속삭이면 그는 뭐라고 답을 할까.
-맛있었어.
그는 아마도…….
-그럴 리 없을 텐데요. 전하께서 맛있게 드시는 정액은 따로 있지 않습니까?
“……젠장.”
상상은 거기서 끝이 났다.
그래, 그런 게 가능할 리 없지.
각인 반응이 문제였다.
손가락만 닿아도 제 몸은 그를 거부했다. 머릿속으로 아무리 음탕하고 야한 상상을 해도 몸은 달랐다. 마르스티엘을 와인 통에 담가 놓아도 그가 페로몬을 흘리기 시작하면 위장이 뒤틀리고 저는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왜 그러십니까?”
마르스티엘이 포크를 놓고 물었다.
표정을 읽기엔 멀었다. 16인용 식탁은 너무 컸다.
그렇다고 잔을 들고 옆으로 가서 앉을 용기는 나지 않았다.
그는 페로몬에 절어 흐느끼던 자신을 역겨워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게 섹스할 정도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썩은 생선 같은 향을 뿌리며 구토하는 인간을 붙들고 내내 아랫도리를 세울 수 있는 인간이 얼마나 될까. 자신은 그저 얌전히 구토만 하는 게 아니라 각인 반응이 심해질수록 도망치려 발버둥을 칠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섹스는 불가능했다.
“……그냥, 생각이 들어서.”
“무슨 생각을 하셨습니까?”
“네 생각.”
달칵.
그가 손을 움직였는지 접시 부딪치는 소리가 작게 울렸다.
“보고 계시잖습니까.”
“보는 게 생각을 다 따라가지는 않아.”
“그래서, 무슨 생각을 하셨습니까?”
“야한 생각.”
“…….”
마르스티엘은 턱을 갸웃대다 피식 웃었다.
“방심을 못 하겠군요.”
“그런 일에 관해서는 솔직한 편이라.”
끼익.
마르스티엘은 목에 건 냅킨을 풀며 의자를 뒤로 살짝 움직였다.
“뭘 하고 싶으십니까?”
“뭐든지. 일단은 네 입술에 와인을 붓고 빨아 마시는 것부터.”
“……옷을 버리겠군요.”
마르스티엘은 목에 딱 붙어 있던 셔츠 칼라를 살짝 끌어 내렸다.
“그런 다음에는?”
“내가 키스를 하니까 네가 옷을 벗다 찢었어.”
“어차피 버린 옷이라 상관없습니다. 그리고?”
“들러붙어서 입술이 닿는 데는 전부 핥았다. 네가 흥분해서 눈을 감았고 그때 바지 속에 손을 넣었어.”
“……그리고.”
마르스티엘은 고개를 들어 올리며 눈을 감았다. 페란스는 저도 모르게 입술을 핥았다. 턱만 약간 들렸을 뿐인데 그는 상상 속에서 성기를 빨리며 흥분하던 모습과 비슷했다.
……더럽게도 잘생겼네.
끼익.
페란스는 의자를 밀고 일어섰다. 마르스티엘에게 다가가려던 그는 갑자기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식탁 아래로 들어갔다.
소리를 죽여 맞은편까지 다가간 페란스는 손을 들어 마르스티엘의 무릎을 붙잡았다.
“…….”
마르스티엘의 몸이 잠시 움찔거렸다.
이제 무릎을 벌리고 성기를 꺼내서 바라던 대로 손에 쥐고 감촉을 느끼다 맛을 보는 일이 남았다.
“……그래서 허무해졌어. 아니, 무서워졌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페란스가 마르스티엘의 다리를 벌리는 일은 없었다. 무릎을 잡았던 손이 기운을 잃고 아래로 늘어졌다.
“할 수 없을 게 뻔하니까.”
“…….”
마르스티엘은 의자를 뒤로 밀고 식탁보를 걷었다. 식탁 아래를 기어온 페란스가 눈꼬리를 늘어트린 채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었다.
“손을.”
“……? 내 손을 달라고?”
페란스는 앞으로 다가오는 마르스티엘의 손에 양손을 얹었다. 그가 제 손을 쥐고 훌쩍 잡아당기자 몸이 주르륵 끌려갔다. 페란스가 식탁을 벗어나자 그는 가볍게 그 몸을 들어 제 허벅지 위에 앉혔다.
뜻밖의 동작에 당황한 페란스는 몸을 버둥댔다.
“아, 잠깐만. 이게 가능해? 무슨 힘이 이렇게 센 건데.”
“전하.”
마르스티엘은 페란스의 턱을 살짝 만졌다. 자신에게 집중하라는 의도 같았다. 페란스는 뒤척이는 걸 멈추고 마르스티엘을 마주 보았다.
“왜.”
“안고 싶어졌습니다. 이렇게.”
“그러니까 왜.”
“제 성기를 빨지 못할까 봐 울적해하는 전하가 사랑스러워서.”
페란스는 입술을 비틀었다.
“그런 말을 잘도……. ……네가 그렇게 말하니 갑자기 괜찮아졌어. 안 빨아도 될 것 같아.”
“강요하는 건 아닙니다.”
마르스티엘이 다시 한번 턱을 살짝 만졌다.
각인 반응이 일어나지 않도록 스치기만 하는 손짓이 안타깝고, 야했다. 등골이 저려 왔다.
“하지만 원하시는 대로 할 수 있게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저를 움츠러들게 하던 걱정을 그 말이 녹였다.
그래.
너는 내가 모르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블루와렌의 수호자가 파는 물건이라면 확실할 테니까.
네 마음이라면 몰라도, 너와 한 거래마저 의심하는 건 아니니까.
“……그래.”
페란스는 마르스티엘의 머리칼 속에 손가락을 찔러 넣었다. 손가락에 매끄럽게 감기는 흑발의 감촉도 마찬가지였다. 애가 탔고, 초조해지는 만큼 야했다.
“그러려고 너와 거래를 했으니까.”
페란스는 충동적으로 마르스티엘의 이마에 입술을 댔다.
이제 섹스를 할 시간이었다.
* * *
옷을 입을 필요는 없다고 했다.
“후우.”
페란스는 잠옷 대신 맨몸에 가운을 걸쳤다. 갓 목욕을 마친 얼굴이 붉었다. 머리칼이 젖어 있는 게 신경 쓰였다. 제 머리칼은 물기가 빨리 마르는 편이었지만 그 전까지 마르스티엘의 피부를 간지럽게 만들지도 몰랐다.
“좀 말리는 게 나으려나.”
페란스는 거울을 들여다보며 중얼대다 마른 수건을 집어 들었다.
머리를 탈탈 터는 손짓이 묘하게도 초조해 보였다.
제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젖은 머리와 상기된 뺨이 너무 날것 같았다. 알몸을 보이는 게 처음도 아닌데 지금은 벌거벗었다는 느낌이 너무 생생했다. 자신을 포장할 게 아무것도 없었다.
마르스티엘이 이미 지금보다 더 못한 모습을 봤다는 사실은 아무런 위안도 되지 못했다.
물건이 서 있으려면 어디 한 군데는 괜찮아 보여야 하는 게 아닐까.
단순히 발정기 증세를 가라앉히려는 게 아니라 섹스를 해야 하니까.
“마음에 안 들어.”
대충 수건으로 말린 머리는 엉망이었다. 키슬크가 솜씨 좋게 빗질해 주는 머리 모양과는 달랐다. 페란스는 이마를 덮는, 젖어서 색이 약간 어두워진 머리칼을 괜히 잡아당겨 보았다.
“목욕 시중을 받을 걸 그랬나. ……아니, 아니야.”
목욕을 마친 몸에 향기 나는 오일을 바르고 머리는 단정히 빗은 채 나타나면 마르스티엘이 그걸 알아볼 것 같았다.
그리고 또 헛소리를 하겠지.
자신을 위해서 몸단장을 한 게 사랑스럽다느니 어쩌느니.
페란스의 미간이 구겨졌다.
“건방지게. 내 나이가 세 살이나 더 많다는 걸 모르진 않을 텐데.”
그렇다고 짜증만 나는 것도 아니었다.
외모를 두고 하는 말이야 질리도록 들었다. 그러나 아름답다느니 어쩌느니 하는 말과 방금 전 마르스티엘이 한 사랑스럽다는 말은 달랐다. 이유를 지금 당장 말할 수는 없었지만 하여간 달랐다.
아름답다는 말들은 절대 제 가슴을 지끈거리게 만들지 않았다. 지금처럼.
“그게……,”
페란스는 얇은 가운 위로 심장 위를 문질렀다. 끙,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사랑스럽다는 게 무슨 뜻인지 사전이라도 찾아봐야겠군.
갑자기 사랑스럽다는 단어의 의미를 도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환장할 노릇이었다.
만약 네가 그 말에 어떤 의미를 담은 거라면.
페란스는 초조하게 손을 쥐었다 폈다.
혹시라도 네가 우리 거래에 뭔가 다른 것을 더하기로 한 거라면.
그럼 나는 너를 어떻게 해야 할까.
“…….”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상념을 깼다.
“전하. 준비가 되셨습니까?”
오늘 밤의 시작을 묻는 마르스티엘의 음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