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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로 성장하는 마법사-249화 (249/250)

249화

교황청은 교단의 상징이자 자존심이다.

그런데 그러한 곳이 이단에 넘어갔다.

이는 룬 교단에 길이길이 남을 치욕적이 사건이었다.

이 치욕을 갚기 위해 외방에서 활동하던 추기경들을 중심으로 임시 교단 지도부를 구성하여 대대적인 수복 작전을 펼쳤다.

그러나 처음의 그 기세와 신앙심은 온데간데없어지고 지금은 거듭된 패전으로 인해 성전에 대한 회의적인 자들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다.

신의 품에서 나고, 신의 품에서 자라고, 신의 품으로 돌아가는 삶이야말로 올바른 인간이라면 응당 가야 할 길이라 믿던 광신도들조차 말이다.

바로 그때 대륙 북쪽에서 희소식이 날아들었다.

“대현자께서 직접 교황청으로 가신다더군.”

“대현자는 가능하겠지?”

“가능해야지. 아니, 가능할 거야. 대현자마저 패하면 그땐 입에 담기도 싫은 대악마의 하수인에게 잡혀 모조리 머리통만 남아 울부짖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 거야.”

대악마의 주구인 수급의 뱀은 단 한 번이라도, 단 한 번의 울부짖음만 들어도 잊히지 않아 매일 끔찍한 악몽에 시달리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나날이 피폐해졌다.

처음엔 종교적인 힘에 의지했지만 그건 잠시였다.

종교적인 힘만으로는 트라우마를 이겨낼 수 없었던 자들은 술과 약에 손을 댔다.

연합군 상부에선 이를 알고 있었지만 다들 쉬쉬했다.

미쳐 날뛰는 것보단 차라리 술과 약에 절어 있는 무기력한 편이 더 나았기 때문이다.

“대현자가 대악마를 잡으면 그땐 이 끔찍한 곳을 벗어날 수 있을 거야.”

“시국 하늘과 고향 하늘이 다 같은 하늘인데 기분 탓인지 여긴 지옥의 아가리 같아. 어떨 땐 유황 냄새도 맡아지는 것 같다니까. 으으.”

넘을 수 없는 벽 앞에 세워져 좌절하고 절망했던 병사들, 그러나 어스의 출전 소식이 퍼지면서 그런 병사들 사이에서 긍정적인 분위기가 조금씩 새어 나오고 있었다.

이것이 어디 병사들만의 이야기이랴.

장교들과 기사들 사이에서도 대현자에게 희망을 거는 자들이 적지 않았다.

그리고 그 희망은.

“내일이나?”

“그래, 내일이야.”

모두가 대륙의 열한 번째 왕국이 있는 북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 * *

임시 교단 지도부를 구성한 클락, 돌스, 웬들리 추기경 등이 전장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연합군 창설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자들이었지만 지금껏 전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자들이었다.

그랬던 자들이 이곳에 그 모습을 드러낸 건 이번 대현자 대 대악마의 싸움이 그만큼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교황청 비고의 물건은 단 하나도 외부에 유출되어선 안 된다.’

‘대현자가 승리하면 무조건 안으로 진입하여 교황청을 확보해야 해.’

‘그 어린놈의 승리를 바랄 날이 올 줄이야.’

추기경들의 마음은 착잡했지만 개인적인 감정을 내세우기엔 그의 존재가 몹시 필요했기에 대현자를 목 빠지게 기다리는 좌중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음에도 이를 내색하지 않았다.

참고로 이곳엔 각 왕국에서 보낸 고위 귀족들도 참관을 위해 모인 상태였다.

대현자가 약속한 시각이 가까워졌다.

시간을 확인한 자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초조한 마음을 누르기 위해 주먹을 쥐락펴락했다.

“워, 워프 게이트다!”

바로 그때 연합군과 시국 사이에 워프 게이트가 그 모습을 드러냈고, 이를 본 척후병들이 일제히 소리쳤다.

쥐죽은 듯 조용했던 연합군 진지 전체가 일제히 술렁거렸다.

워프 게이트에서 일단의 무리가 걸어 나오고 있었다.

척척척.

“대현자만 오는 거 아니었어?”

“이종족들은 왜?”

어스가 대동한 이종족들은 그 수가 3천 명에 달하였다.

어스의 뒤를 따라 나타난 건 비단 이종족뿐만이 아니다.

실리시아의 백성으로 거듭난 마법사들 역시 실리시아 군의 복장을 하고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

늙은 마법사부터 젊은 마법사까지 그 수가 500명에 달하였다.

총원 3,500명의 병력이 질서정연하게 도열했다.

연합군은 저들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였다.

어스는 연합군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한 손엔 철옹성을 쥐고서 연합군 지휘부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 앞에 섰던 연합군 병사들이 화들짝 놀라 길을 내주었다.

클락 추기경을 선두로 고위 성직자와 각국의 고위 귀족들이 그를 맞이했다.

“클락 추기경 오랜만이군요.”

“오랜만입니다. 대현자시여.”

은자의 추기경이라 불리던 헤롯 추기경을 교황청으로 불러들인 장본인이 바로 클락 추기경이었다.

그 대가로 클락 추기경은 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나고 말았다.

이는 예상하지 못한 전개였다.

그러나 헤롯 추기경과 그를 추종하는 자들의 세력이 워낙 강력하였기에 클락 추기경은 변변한 저항도 못 하고서 외방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대악마가 출현하지 않았다면 아직도 그는 외방에서 지내야 했을 것이다.

시국 근처엔 평생 얼씬도 못 했으리라.

“약속을 지키러 왔소.”

“대악마를 물리쳐 주신다면 교단 역시 대현자와의 약속을 이행할 것입니다.”

교단 임시 지도부와 10개 왕국의 왕실 사이엔 밀약이 있었고, 이 자리는 그 밀약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고위 귀족들 역시 밀약을 확인해주는 의미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스 입장에선 저들의 밀약이 있건 없건 이 자리에 왔을 것이다.

대악마, 아니 데릭 가이어스를 실리시아에서 맞이할 수 없었으니까.

만약 이러한 사실을 저들이 알고 있었다면 결코 실리시아와 밀약을 맺지 않았을 것이다.

“로엘 재상.”

“예, 전하.”

“서명받도록 하시오.”

로엘은 밀약의 내용을 서면으로 작성한 계약서를 모두가 보는 앞에서 꺼내 들었다.

밀약에 대해 알고 있는 자들은 어스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다들 화들짝 놀랐다.

밀약이 왜 밀약인가? 이렇게 대놓고 알린다면 애초 밀약은 없었을 것이다.

“대, 대현자여? 이게 무슨?”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나도 날 못 믿는데 타인을 믿는 게 말이 되나 싶더군요. 그래서 깔끔하게 서류로 우리의 약속을 남기려는 것이오. 내키지 않으면 서명 안 해도 좋고. 하지만 우리의 약속 역시 없는 것으로 하겠소.”

밀약에 대해 알지 못하는 자들은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쳐다보았다.

그 시선에 밀약의 당사자들은 진땀을 쏟아야만 했다.

그렇다고 서명을 거절하자니 시국을 수복할 절호의 기회가 눈앞에서 날아가는 것이기에 다들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계약서에 서명했다.

로엘로부터 서명이 끝난 계약서를 받아든 어스는 대동한 마법사의 도움으로 계약서의 내용까지 공표해버렸다.

지도부와 대현자 사이에 모종의 거래가 있을 것이라는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짐작보다 더 센 내용에 연합군은 할 말을 잃었다.

계약서의 내용을 짧게 간추리면 이러하다.

교단과 왕국들은 이종족의 나라 실리시아를 왕국으로 정식으로 인정하며 추후 실리시아에 대한 정치, 경제, 군사, 외교, 종교적인 이유를 들어 압박하지 않으며, 또한 실리시아 왕국의 백성에 대한 보호를 우선 한다.

이것이 계약서의 골자였다.

그 내용만 보면 이는 교단의 무조건적인 항복 선언이나 다름없었다.

광신도들 사이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지만 어스는 못 들은척했다.

‘일이 마무리되면 지들끼리 치고받고 싸우겠군.’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으리라.

모든 절차를 끝낸 어스는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러곤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하늘을 걸어 시국을 향해 다가갔다.

밀약의 공표로 연합군 내부에 혼란이 적지 않게 발생했지만 그것도 곧 잠잠해졌다.

밀약의 내용이 충격적이었지만 그보단 대악마가 우선이었으니까.

* * *

“이종족의 나라라…오만하고 탐욕스러운 놈들에게 제대로 한 방 먹였군.”

“덕분이죠.”

어스는 데릭 가이어스와 마주하고 있었다.

데릭의 뒤에는 연합군을 공포에 질리게 만든 수급의 뱀들이 봄날 들판의 아지랑이 움직이듯 흐느적거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그중 한 마리(?)가 어스의 눈에 띄었다.

‘저 할망구를 이런 식으로 보게 될 줄은 몰랐군.’

고통으로 잔뜩 일그러진 베로니카 단장의 수급은 피눈물을 흘리며 울부짖고 있었다.

지난날 베로니카 단장과 있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신앙의 대가치곤 너무 가혹하지 않나 싶다.

쌤통이라 말해 해주고 싶지만 차마 그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베로니카 단장의 수급은 정말 고통스러워 보였기 때문이다.

어디 그녀 하나뿐이랴.

모든 수급이 그러했다.

“약속을 지켰으니 내게 다오.”

데릭은 당연하다는 듯 어스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에 어스는 철옹성을 장난스럽게 그 앞에서 흔들어 보였다.

“무슨 뜻이지?”

“무슨 뜻이긴 무슨 뜻이겠어. 힘으로 뺏어보란 뜻이지.”

“후회할 것이다.”

“내가 말이야. 마계도 가고 천계도 가고 다 갔거든. 거기서 들은 말이 뭔지 알아? 다들 후회할 거라고 하더군. 그런데 결과가 어떻게 된 줄 알아? 그 말한 놈들 모두 스틱스로 갔어. 내가 보낸 놈들로 스틱스가 매립되지나 않았을까 걱정이야. 거기 뱃사공 실업자 됐다고 징징거리면 내가 많이 미안하다고 전해줘.”

데릭의 전신에서 거대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 살기에 영향을 받은 수급의 뱀들 역시 더 크고 울부짖었다.

“듣기 싫은 소리네. 저승에 있어야 할 건 저승에 있어야지 이승에 있으면 안 되지.”

어스는 손을 살짝 들었다.

그러자 하늘에서 콜 라이트닝(+12/12)이 소낙비 떨어지듯 쉴 새 없이 떨어졌다.

최상급 소드 마스터도 어쩌지 못했던, 대마법사의 마법으로도 변변한 타격을 입히지 못했던 마물임을 감안하면 5서클 스킬은 털끝 하나 훼손할 수 없다.

당연히 그래야 하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어스의 콜 라이트닝은 최상급 소드 마스터의 마나 블레이드보다, 대마법사의 마법도 할 수 없던 일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버렸다.

이는 당연한 결과였다.

콜 라이트닝의 상위 스킬을 익혔기에 추가로 발생하는 피해도 피해지만, 대죄를 멸한 자(+7)의 추기 피해 6,400퍼센트의 힘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으니 제아무리 수급의 뱀이라지만 이를 버틸 재간이 없었다.

데릭 가이어스는 이러한 결과를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바람 앞에 촛불처럼 데릭의 전신에서 뿜어지던 가공할 살기가 맥없이 꺼졌다.

마계? 천계? 스틱스를 매립했다고 떠들던 어스의 말을 믿지 않았던 것도 이젠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건 인간의 힘이 아니었다.

근본은 인간의 힘일지 모르나 파괴력은 결코 인간의 것이 아닌.

‘지, 징벌의 힘!’

신이 아니고선 불가능한 영역이었다.

“자 우리 데릭 님도 스틱스 갑시다.”

더 이상 말은 필요 없다.

데릭 역시 이에 동의한 듯 동공이 파충류로 변한 뒤 어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데릭의 그 공격 속도가 어찌나 쾌속한지 번개도 따돌릴 지경이다.

그러나 정작 데릭의 공격은 어스의 옷깃 하나 스치지 못했다.

데릭의 모든 공격을 어스가 막아버렸기 때문이다.

물리적인 수단으로.

“마, 마법사가 어찌?”

“내가 힘이랑 민첩이랑 좀 됩니다. 노인공경을 이쯤이나 했으니, 우리 부모님도 더는 잔소리 안 하실 것 같고… 이젠 그대도 맞아봅시다.”

철옹성의 위치를 살짝 비틀어 창대 끝으로 데릭의 허벅지를 찍었다.

딱히 힘을 주고 찍은 게 아니지만 데릭의 허벅지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망가졌다.

“끄아아아아-!”

고통과 분노가 데릭의 전신에서 쏟아졌다.

수천 년간 봉인 당하면서 기른 힘이 고작 인간 하나 어쩌지 못하는 것에 데릭은 미쳐 버릴 것 같았다.

데릭의 발톱이 더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그러나 그 공격 모두 어스의 옷깃 하나 스치지 못한 채 허공만 할퀴고 끝났다. 그게 미안해서일까? 일부러 맞아줘 봤지만 생명력이 한두 개가 아니다 보니 간에 기별도 오지 않는다. 이래서야 죽어 주고 싶어도 죽어줄 능력이 없다.

“이게 최선인가? 진심?”

“미, 믿을 수 없어…이건.”

“그렇게 얌전히 살다 흔적 없이 사라질 것이지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이 난리를 쳐.”

철옹성이 데릭의 반대쪽 다리를 찍었다.

그 다리 역시 맥없이 박살 났다.

“이, 이노오오오오옴!”

이대론 어스의 상대가 되지 않음을 자각한 데릭은 자신의 영혼에 아로새겨진 죄의 낙인을 개방해버렸다.

순간 데릭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온 무형의 기운이 어스를 들이쳤다.

여유만만이던 어스는 그 기운에 노출되자 고무공 날아가듯 날아가 십여 동의 건물을 몸으로 부순 뒤에야 겨우 멈출 수 있었다.

건물 잔해를 헤치고 밖으로 나온 어스는 12개의 머리를 가진 거대한 뱀을 목격할 수 있었다.

저 밖의 군중들 역시.

“네놈을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만들어주겠다!”

분노한 데릭의 목소리가 하늘과 땅을 쥐고 흔들었다.

우르르릉.

‘새끼, 졸라 열 받았나 보네.’

놈의 변화에 당황하긴 했지만 두렵진 않았다.

두려움을 느끼기엔.

자신이 저보다 더한 괴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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