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화
이종족 노예 해방 연합의 결성 목적은 박해받는 동족 구출을 목적으로 설립됐다.
그러한 목적으로 결성되었던 이 조직은 최근 정보조직으로서의 역할에 중점하고 있었다.
이들이 수습한 각종 정보는 고스란히 실리시아의 수도로 향했다.
폭발적인 스탯 증가에 적응하기 위해 훈련 중인 어스의 개인 연무장으로 로엘이 입장했다.
연무장의 구성을 보면 이곳이 과연 마법사의 연무장이 맞는지 제 눈을 의심할 기구와 시설물로 가득했다.
기구는 그렇다 하더라도 가장 눈에 띄는 건 두 가지 시설물이었다.
첫째는 시계추처럼 움직이는 철퇴의 길이었고, 두 번째는 창을 거꾸로 박아 넣은 지면에 세워진 바퀴 형태로 빙글빙글 돌아가는 통나무 징검다리였다.
서로 맞물린 이 두 시설물의 길이는 무려 200미터에 달하였다.
개인이 사용하기엔 넓은 연무장이라고는 하나 200미터 길이의 시설물이 들어설 정도는 아니기에 길은 원형으로 설치되어 있었다.
그래서 이 시설물을 지은 드워프는 이곳을 쳇바퀴라고 불렀다.
지금 그 쳇바퀴 위를 어스가 달리고 있었다.
“어스 님.”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훈련이다.
그럼에도 로엘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를 불렀다.
물론 로엘이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다.
처음엔 입도 떼지 못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소한 자극도 훈련자의 실수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실수의 대가가 타박상이면 모를까 목숨과 직결되는 고난도의 훈련방식이기에 처음엔 그의 훈련이 끝날 때까지 입을 꾹 닫고 기다렸었다.
하나 굳이 그럴 필요가 없음을 확인한 이후 로엘은 어스가 훈련 중임에도 서슴없이 그를 부를 수 있었다.
고장 난 시계추처럼 매우 빠르게 움직이는 철퇴의 길을 걷고 있던 어스는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왔어.”
좌우로 움직이는 철퇴 통로에 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스는 전혀 긴장하지 않고 걸음을 멈춘 채 고개를 돌렸다.
철퇴의 통로는 안전지대가 없다.
쉬지 않고 교차하는 철퇴 사이를 지나야 한다.
그러니 어스의 저와 같은 행동은 명백한 자살행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스와 로엘에게선 조금의 긴장감도 찾아볼 수 없었다.
턱.
어스가 팔을 뻗어 펼친 손바닥으로 철퇴를 막아 세웠다.
철퇴의 운동에너지를 감안하면 미친 짓이다.
하물며 철퇴의 표면은 날카로운 가시까지 박혀 있다.
그걸 손바닥으로 막았으니…분명 큰 사고가 나야 하는데 예상과 달리 어스는 조금의 상처도 입지 않았다.
철퇴의 통로에서 빠져나온 어스는 인벤토리에서 수통을 꺼내 이를 마시며 로엘에게 다가갔다.
“대륙 통합 사령부와 저희가 파악한 정보를 교차 검증한 결과입니다.”
로엘은 손에 쥐고 있던 서류를 어스에게 건넸다.
수통을 인벤토리에 휙 던진 어스는 받아든 서류를 살폈다.
“놈들이 이곳에 있단 말이지?”
“예.”
“교차 검증까지 끝냈으니 이번엔 헛걸음하는 일은 없어야 할 텐데.”
험트리 자작 영지에서 발생한 마족과의 전투는 대륙 통합 사령부가 정보 은폐를 시도했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입소문을 타고 퍼져 지금은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이로 인해 뤼빅스 전역이 공포에 떨고 있었다.
그리고 험트리 전에서 패해 도망친 마족들은 현재 뤼빅스 전역에서 잇따른 사고를 일으키고 있는 중이었다.
이러니 소문이 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대륙 통합 사령부는 이들을 처리하기 위해 소드 마스터가 포함된 추살대를 운용하고 있었지만 지금까지 그들의 손에 처리된 마족은 고작 다섯에 불과했다.
그렇다고 추살대에 피해가 없는가 하면 또 그건 아니다.
험트리 자작 영지에서 도주에 성공한 마족은 총 27명으로 22명이 남았다.
대륙 통합 사령부는 이들의 처리를 어스에게 의뢰했고, 어스는 이 의뢰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들이 의뢰의 대가로 내놓은 것이 이종족 노예와 혼혈 양도였기에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현재 어스는 도망친 22명의 마족 중 15명을 단독으로 처리했다.
이제 7명만 더 처리하면 계약 완료다.
“부탁드리겠습니다.”
“부탁은 무슨 당연한 일인데.”
* * *
대륙 통합 사령부와 이종족 연합의 정보를 교차 검증하여 밝혀낸 트리언 산맥에 어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트리언 산맥으로 숨어든 마족은 총 두 명으로 놈들의 손에 12개의 크고 작은 마을이 전멸당했다.
흉악한 놈들이 아닐 수 없다.
양민 학살이라니.
‘흠, 내가 할 소린 아니지만.’
마계에서 자신이 자행한 일에 비하면 두 놈이 저지른 일은 어린애 장난 수준이라 해야 할 것이다.
철옹성을 통해 비행이 가능해진 어스는 허공을 유유히 날아다니며 수색에 나섰다.
마족에 익숙해진 터라 어스는 마기를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제아무리 어스라도 단시간에 15명이나 되는 마족을 처치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옳거니 바로 저기군.’
무료함으로 물들어가던 어스의 두 눈에 이채가 스쳤다.
어스는 곧장 그곳으로 블링크했다.
동굴을 등지고 앉아 있던 두 마족 역시 어스를 발견하곤 곧장 덤벼들었다.
겁도 없이.
어스는 스킬을 배제한 채 오직 본신의 힘만으로 마족과 싸웠다.
이 또한 그에겐 훈련의 일환이다.
‘느려.’
자신의 얼굴을 향해 쇄도한 검을 상체를 살짝 비틀어 피해냈다.
그러곤 놈의 손목을 냉큼 낚아챘다.
마족이 이에 크게 당황했다.
“마, 마법사가 아니구나!”
“응, 대현자.”
“대…대현자? 설마, 학살자?”
“날 아는구나?”
“도, 도망쳐. 헬슨!”
곧 죽을지 모를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마족은 뒤에 있는 마족을 향해 급히 소리쳤다.
부분가? 아님, 남매? 관계가 어떻게 되든 어스의 눈에 띈 이상 두 놈의 운명은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시, 싫어!”
“이놈은 학살자야!”
“우애는 저승에서 나눠. 오늘 중에 일을 마무리하려면 노닥거릴 시간이 없거든.”
마법사 계열의 마족에겐 매직 애로우를 다발로 선물했다.
기존 매직 애로우도 마계 생명체 한정 추가 피해 적용으로 충분한 살상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하물며 지금은 사탄을 처치한 업적으로 손에 넣은 대죄를 멸한 자(+1)의 칭호를 통해 추가 피해 100퍼센트가 더해진 상태다.
참고로 이번에 손에 넣은 추가 피해는 마계 생물체 한정이 아닌 모든 존재에게 적용된다.
마족 마법사는 고위 방어막을 생성하는 한편 제 가족을 구할 요량으로 공격 마법을 펼쳤다.
그러나 그 마법이 어스에게 닿기도 전에 앱솔루트 쉴드에 의해 차단당했다.
앱솔루트 쉴드 역시 기존보다 더 강화된 상태다.
추가 피해는 공격 스킬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중급마족을 처치했습니다.
“헤, 헬슨!”
“억울해하지 마라. 손잡고 저승 가게 해줄게.”
상대의 손목을 단숨에 부러뜨린 어스는 그 몸을 제 쪽으로 끌어당긴 뒤 세운 무릎으로 명치를 찍었다.
-중급마족을 처치했습니다.
스킬이 아닌 물리적인 공격에도 추가 피해 100퍼센트가 적용되다 보니 단 한 번의 공격에도 마족은 목숨을 잃었다.
‘이제 다섯 남았네.’
어스의 시선이 동쪽을 향했다.
그 순간 그의 신형은 증발했다.
* * *
마계에서 마왕의 숫자는 백 명이 넘는다.
하나 대마왕의 자리는 고작 일곱 명만이 차지할 수 있는 자리였다.
그런데 그런 자리에 공석이 발생했다.
이에 마왕들과 대마왕의 자리를 넘볼 수 있는 자격을 보유한 후작 이상의 고위 마족들이 대거 분노 대죄를 손에 넣기 위해 움직였다.
자신의 격을 높일 수 있는 일이었기에 그들의 모습은 흡사 불나방을 연상시켰다.
마왕들과 고위 마족들이 모두 공석인 분노를 차지하기 위해 혈안이 되자 자연 검은 탑에 대한 그들의 관심도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앞서 어스에게 사냥당한 종족들 입장에선 기가 찰 노릇이다.
마계를 위협하는 학살자가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상황임에도 다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스스로 불나방을 자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이를 보다 못한 몇몇 현자들이 심연을 찾아가 대마왕들에게 읍소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냉담했다.
아니, 어처구니가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대마왕들 역시 다른 마왕이나 고위 마족들처럼 주인을 잃고 마계를 떠도는 분노에 욕심을 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족의 앞날을 걱정하던 현자들은 이에 통탄을 금할 수 없었다.
“믿었던 대마왕들까지 욕심에 눈이 멀다니. 절망적이군.”
“그러게. 그분들까지 이럴 줄이야.”
“학살자가 잠잠해진 걸 보면 놈도 마계에 오래 머물 수 없다는 가설이 맞는 것 같아? 다들 어떻게 생각하나?”
“동의해.”
“나도.”
“그럼 놈은 중간계에 있을 가능성이 크겠군.”
“아무래도 그렇지 않겠나?”
“그래서 하는 말인데 이 혼란이 수습되기 전까지 우리에겐 시간이 필요하다고 보는데 다들 어떻게 생각하는가?”
“중간계를 침공하자는 건가?”
“맞네. 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에서 설마 마계를 넘보진 않겠지.”
“동의.”
“놈에게 큰 피해를 입고 흩어진 민족들을 부추기면 되겠군.”
그렇게 마족 현자들은 어스의 발을 중간계에 묶어 두기 위해 중간계 침략을 선택했으니, 바야흐로 대 마족 침공의 서막이 그렇게 열렸다.
* * *
대륙 통합 사령부의 의뢰를 모두 완수한 어스는 의뢰의 대가를 일일이 받으러 다녔다.
‘워프 게이트.’
이종족 연합이 비밀리에 운영하는 텔레포트 마법진이 있다지만 이건 들켜서는 안 될 중요한 인프라이다 보니 어스는 직접 발로 뛰어다닐 수밖에 없었다.
“오오! 저것이 궁극의 이동 마법인 워프 게이트인가!”
“9서클이라니! 살아생전에 9서클을 목도하는 영광을 누릴 줄이야.”
“구전으로 내려오는 다른 9서클 마법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건 내 욕심이려나.”
어스가 대금(?)을 받으러 오는 장소마다 일반인들은 평생 가도 마주칠 일이 없는 마법사들이 백사장의 모래알 깔리듯 깔려 있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마법사를 구경하기 위해 몰려들었다.
그렇다 보니 어스가 모습을 드러내는 장소마다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워프 게이트로 속속 사라지는 이종족 노예와 혼혈들, 그들의 수가 줄어들수록 마법사들과 사람들 입에선 안타까운 한숨이 터졌다.
“대, 대현자시여!”
자신의 백성으로 거듭날 이들의 안전을 위해 두 눈을 부라리며 지켜보던 어스의 곁으로 백발이 성성한 노마법사가 공손한 자세로 접근했다.
그는 어스도 안면이 있는 자였다.
하지만 안면이 있다고 해서 대화까지 나눌 생각은 없었다.
대금(?) 회수가 끝나면 바로 마계로 넘어갈 생각이다.
그러니 마법사들에게 발목이 잡히는 일이 없도록 그들을 냉담하게 대하였다.
아쉬운 건 자신이 아니라 마법사들인 점도 한몫했다.
그래서 이번에도 그리하려고 했는데.
“소피? 나리아?”
전 여친의 여동생과 헥터 왕국 왕도에서 도움을 받았던 나리아가 노마법사 곁에 있어 차마 냉담하게 내칠 수 없었다.
“오, 오랜만입니다. 대현자시여.”
“오랜만에 뵙습니다. 대현자시여.”
마법사의 세계에서 서클이 곧 계급이다.
그러하다 보니 격의 없던 지난 시절을 두 사람의 행동에선 찾아볼 수 없었다.
두 사람을 보자 어스는 자신의 올챙이 시절이 떠올랐다.
그리 오래되지도 않았는데 마치 수십 년 전의 일처럼 느껴졌다.
“두 사람 모두 오랜만이네.”
소문과 달리 어스가 자신들을 반갑게 맞이해주자 소피와 나리아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불었다.
일곱 불꽃마탑의 탑주 알레드 포거는 어스가 두 어린 제자들을 반갑게 맞이하자 두 사람을 자신에게 추천한 중년의 제자를 향해 칭찬의 의미로 눈길을 준 뒤 사뭇 엄숙한 태도로 한발 앞으로 나섰다.
“대현자시여, 저희 일곱 불꽃마탑은 대현자의 휘하에 들기를 원합니다. 대현자의 땅 한 귀퉁이에 부디 저희 일곱 불꽃마탑을 세울 수 있도록 허락해주십시오. 그리해주신다면 대현자의 손발이 되어드리겠습니다.”
일곱 불꽃마탑은 규모가 큰 마탑이다.
그렇다 보니 저들을 자국에 유치하려는 왕국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렇게 자국에 유치하면 그다음엔 대영주들이 나서 자신의 영지에 마탑을 유치하려고 로비에 나선다.
마탑이 자신의 영지에 들어선다는 건 국방과 경제에 있어서 큰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데 어스는 그러한 수고를 하긴커녕 역으로 마탑이 간청하고 있었다.
어스는 매번 그 간청을 거절했다.
마탑 입장에선 대단히 불쾌한 일이다.
그럼에도 아무도 이에 불만을 드러내지 않았다.
불만은커녕 오히려 안달했으니 이것이 바로 대현자의 위상이었다.
이러니 교단 입장에선 어스가 더더욱 껄끄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전에도 말했다시피 내 땅에 마탑을 들일 생각이 없습니다. 차후 생각이 바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그렇군요.”
“마탑이 안 된다면 개인 자격으로 휘하에 들 수 있겠습니까?”
9서클은 바라지 않는다, 8서클 경지에 들어갈 수 있는 힌트만 얻어도 좋다.
알레드 포거는 어스가 허락한다면 당장이라도 마탑주의 지위를 내려놓을 생각으로 말하였다.
이에 소피와 나리아는 화들짝 놀랐다.
어디 저들뿐이랴.
일곱 불꽃마탑의 마법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법사로서의 성장을 위해 자신의 모든 걸 내려놓을 수 있다는 대마법사 알레드 포거의 발언은 어스 입장에서도 꽤나 신선한 발언이었다.
그러나 당장은 인간들을 실리시아에 들일 생각이 없는 어스였기에 이마저도 거절했다.
사실 대마법사가 인간들 사이에서나 귀하지 실리시아에선 딱히 귀한 경지는 아니다.
마법에 입문한 이종족 100명을 모으면 그중 20명은 대마법사다.
어스는 부드러운 어조로 알레드 포거의 요청을 거절했다.
노안에 들어찬 실망을 외면하자 어느새 이종족 노예와 혼혈 모두 워프 게이트에 들어간 후였다.
어스는 곧장 몸을 돌려세워 워프 게이트로 향했다.
남을 이유가 없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