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화
대륙 통합 사령부의 주도로 처음 마족과의 전투가 발발했다.
결과만 놓고 말하면 험트리 자작 영지에서의 전투는 승리했다.
그러나 당시 현장에 있던 자들도 그렇고 후에 이 사실을 알게 된 자들 모두 과연 이 전투를 인류 연합의 승리인가라는 화두 앞에선 고개를 끄덕이는 자들보다 고개를 내젓는 자들이 훨씬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험트리 자작 영지에 모습을 보인 마족의 숫자는 고작 100명인 것에 반해 아군은 그보다 더 많은 전력을 투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상당수의 적을 놓쳤기 때문이었다.
그 과정에서 지원군이 우세를 보여줬다면 평가는 지금과 확연히 달라졌을지 모르겠지만 아쉽게도 교단 제일검 베로니카 단장과 성기사들을 제외한 나머지 전력은 대 마족 전에 있어 처참한 수준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말았다.
이러니 그날의 정보를 손에 쥔 자들 입장에선 나오니 한숨이요, 누우니 걱정에 밤잠을 이룰 수 없게 된 것이다.
“사령관님 애석하지만 추격을 중단해야 합니다.”
“비통하지만 현실을 직시해주십시오.”
험트리 전에서 패한 마족들은 주도의 공격을 포기하고 후퇴했다.
적이 등을 보이고 후퇴하였지만 일반적인 전장에서와 달리 후퇴하는 놈들에게 큰 타격을 줄 수 없었다.
오히려 달아나는 놈들을 쫓느라 아군의 전사자만 증가시켰다.
이후 뿔뿔이 흩어진 마족을 처치하기 위해 추격대를 편승하여 파견했지만 희소식보단 비보뿐이었다.
참모장을 비롯한 참모들의 간청.
헤롯 추기경의 겉모습은 꿋꿋했지만 그 속은 한숨이 범람하고 있었다.
“추격대의 임무를 수색과 공격에서 수색으로 전환한다.”
공격은 몰라도 수색은 포기할 수 없다.
참모진들 역시 공감했다.
참모들의 표정은 아직 할 말이 남은 듯했다.
헤롯 추기경은 그들이 하고자 하는 말을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대현자를 대륙 통합 사령부로 초빙하거나 그게 불가능하면 대가를 지불하고서라도 그 힘을 빌려야 한다는 말들이 각 왕국에서 줄기차게 나오는 중이었다.
험트리 자작 영지에서 일이 발생하기 전까지만 해도 대현자와 교단 사이의 관계를 고려하여 말을 아꼈던 그들이 지금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대현자를 찾고 있었다.
당장은 교단의 눈치가 보여 직접적인 행동은 하고 있지 않지만 그건 시간문제였다.
“사령관님 교단의 입장도 분명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인류의 번영과 생존이 달린 중차대한 상황입니다. 부디, 대현자와의 관계 개선에 앞장서 주십시오. 간곡히 요청드립니다.”
이처럼 참모들의 입을 빌렸다.
헤롯 추기경도 더는 그들의 요청을 무시할 수 없었다.
아니, 무시해선 안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대륙 통합 사령부의 존폐는 물론 교단에 대한 노골적인 반감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겁먹은 개는 짖기만 하다 끝난다지만 자신의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에서 마냥 짖는 개는 없다.
그러니 그 개가 행동하기 전에 미리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래서 헤롯 추기경은 더는 이 문제로 침묵할 수 없었다.
“대륙 통합 사령부의 이름으로 대현자와 접촉하겠소. 그 임무는 오스발드 참모장이 맡도록.”
“사령관님의 명령을 받듭니다.”
대륙 통합 사령부가 교단이요, 교단이 곧 대륙 통합 사령부다.
그러니 둘 중 어떤 이름을 쓰건 헤롯 추기경의 발언은 교단이 현실을 인정하고 굴복한 것이라 봐야 한다.
저 똑똑한 참모들이 어찌 이를 모르랴.
그래서 다들 표정 관리에 들어갔다.
헤롯 추기경은 참모 회의를 해산한 뒤 자신의 집무실로 향했다.
그곳엔 짙은 피로감을 드러내고 있는 베로니카 단장이 헤롯 추기경을 기다리고 있었다.
베로니카 단장을 본 헤롯 추기경은 참았던 한숨을 저도 모르게 내쉬며 베로니카 단장과 마주했다.
‘이것이 자리의 무게인가?’
단순한 목적으로 운영되던 성전단의 수장일 때가 자신의 봄날이었음을, 음지에서 양지로 자리를 옮기면서 확실히 깨달은 헤롯 추기경이었다.
“무슨 일인가?”
부디 뻔하지 않은 말을 듣길 원하며 헤롯 추기경은 그렇게 입을 뗐지만 상대는 역시 뻔한 말로 그의 속을 긁었다.
앵무새도 아닌 것이.
“대현자에 대한 분위기가 노골화되고 있습니다. 저들이 경거망동하지 못하도록 엄히 경고를…”
듣기 싫다, 몹시 싫지만 자신이 중심을 잡지 않는다면 인류 분열이 뻔히 보였기에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륙 통합 사령부의 이름으로 대현자와 접촉하기로 했네.”
“추, 추기경님!”
저 인간을 어찌 납득시켜야 할지.
헤롯 추기경은 마음을 가다듬은 뒤 현실을 예로 들어 베로니카 단장의 뼈를 때렸다.
그러나 뼈를 때리는 헤롯 추기경 역시 자신의 입에서 나온 말에 상처를 입었다.
그 역시 교단의 인물이기에 자기 자신의 손으로 교단에 굴욕을 안기는 일이 어찌 좋겠는가.
‘내가 지옥에 가지 않으면 누가 갈까?’
어스가 들었다면 어이가 없어서 저 면상에 침을 뱉지 않았을까 싶다.
다행히 어스는 헤롯 추기경의 심정을 알 수 없었고, 그리고 그럴 의향도 어스에겐 없었다.
당장 그 자신이.
* * *
분노의 대마왕 사탄을 어렵게 처치하고 집으로 돌아온 어스는 곧장 침대에 몸을 뉜 뒤 사흘 내내 침대와 한 몸이 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는 그를 흔들어 깨우는 대담한 손이 있었으니.
“오빠, 오빠 일어나 봐. 언제까지 잠만 잘 거야?”
흔들흔들.
빌어먹을 여동생이었다.
건국을 공식적으로 천명하지 않았지만 실리시아 주민들 사이에서 이미 왕이나 다름없는 공경을 받고 있다.
그런 용체(?)를 이리 무엄하게 흔든다? 여동생만 아니면 참수감인데.
“그만 흔들어.”
“이제 깬 거야?”
만 하루 동안 푹 잤더니 고갈된 정신력은 어느 정도 수습했다.
그럼에도 이틀 내리 침대 밖으로 나가지 않은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곤함이 가시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혹시나 제 몸이 이상이 있나 싶었지만 딱히 그건 아니었다.
객관적인 지표도 그리 말하였다.
그 지표란 바로.
이름(성별) : 어스(남).
직업(레벨) : 마법사(318).
칭호 : 위그드라실의 친구(유일). 축복받은 자(유일). 엘프의 군주(유일). 마왕 살해자. 대죄를 멸한 자(+1).
생명력 : 311,020/311,020. (생명력 회복 1시간 40퍼센트).
마나 : 312,600/312,600. (마나 회복 1시간 60퍼센트).
인벤토리 : 1(+30).
스탯 :
힘(252.7). 민첩(252.7). 체력(50,150). 지력(45,937). 정신(50,150).
직업 스킬(16/16) :
매직 애로우(+12/12). 파이어 애로우(+12/12). 파이어 볼(+12/12). 파이어 버스트(+12/12). 아이스 스피어(+12/12). 일루젼(+12/12). 콜 라이트닝(+12/12). 블링크(+12/12). 체인 라이트닝(+12/12). 헬파이어(+5/12). 레스토레이션(+3/12). 프로즌 템페스트(+3/12). 엘리멘탈 피니쉬먼트(+3/12). 메테오 스트라이크(+3/12). 워프 게이트(+3/12). 앱솔루트 쉴드(+3/12).
업적 포인트 : 1,340.
코인 : 13,011.186,057.
속이 꽉 찬 치즈 볼을 연상케 하는 지금 이 상태창이다.
역시 이번 마계 행에서도 대박을 터트렸다.
아니 초대박이라 해야 할 것이다.
상태창을 보니 기분이 살짝 풀렸다.
“이미 깼어. 그런데 내 방엔 왜 들어온 거야? 분명, 아무도 들어오지 말라고 말했을 텐데.”
여느 날과 달리 지친 모습으로 돌아온 어스를 본 로엘과 푸리엘은 깜짝 놀랐다.
하지만 그들의 입은 열리지 않았다.
사전에 질문을 차단했기 때문이다.
더해 자신이 자신의 방에서 나오기 전까지 들어오지 말란 말도 하였다.
두 사람은 그 말을 충실히 따랐다.
묻고 싶은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음에도.
이는 어스의 부모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여동생만 아니면.’
한 대 쥐어박으려다 참았다.
이전엔 힘이 없어 참았다면, 지금은 오히려 힘이 넘쳐서 참을 수밖에 없었다.
살짝만 쳐도 사망일 게 뻔하니까.
“알아, 알지만 엄마아빠도 걱정하고 로엘 씨와 푸리엘 씨도 엄청 걱정하잖아. 그래서 들어온 거야.”
부모님 핑계를 대니 차마 더는 나무랄 수 없었다.
“그래도 조심해.”
“알았어. 그런데 정말 괜찮은 거야? 몸은 멀쩡해 보이긴 한데.”
“너무 멀쩡해서 오히려 위험하지.”
“뭐? 그게 무슨 말이야?”
어스가 사람들을 자신의 방에 들이지 말라고 명령한 건 피곤함도 피곤함이지만 그보단 적응하지 못한 힘 스탯으로 인해 주변인을 다치게 할까봐 취한 조치였다.
스탯 : 힘(252.7).
농담 아니고 지금 이 스탯이면 가벼운 터치만으로도 바위 하나 부수는 건 일도 아니다.
힘 스탯 150일 적에도 그랬는데 하물며 지금은 자그마치 250을 넘긴 상태다.
물론 높아진 힘 스탯만큼이나 민첩 스탯도 높아져 힘의 방향을 즉시 조절할 순 있겠으나 그것도 의식이 멀쩡한 상태일 때의 이야기다.
그러니 잠결일 때의 어스는 살아 있는 공성병기라고 봐야 한다.
때문에 당분간 이 힘에 적응할 시간을 가져야 한다.
일전 이 과정을 무시했다가 사람 여럿 잡을 뻔한 사례도 있었기에 이 점에 있어 어스는 자연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게 있어. 아무튼 앞으론 내 말을 절대 무시하지 마. 특히 내가 잠든 상태에선 근처도 오지 마.”
이 힘에 적응하고 나서야 문제가 없을 테지만 굳이 힘에 적응하고 나서도 됐다는 말은 해줄 생각이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짜증 나는 일이 수면을 방해받는 일이니까.
“아, 알았어.”
“나가 있어. 씻고 내려갈 테니까.”
루시를 내보낸 어스는 욕실로 들어간 뒤 차가운 물에 몸을 맡겼다.
초봄이라 찬물이 부담될 수 있었지만 달라진 그의 신체 능력은 조금의 부담도 느끼지 않았다.
어스는 자신을 단숨에 달라지게 만든 새로운 칭호를 들여다보았다.
대죄를 멸한 자(+1)
1. 추가 피해 100퍼센트 증가.
2. 모든 스탯 +100.
3. 생명력 & 마나 +5만 증가.
이 칭호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1이란 수치는 대죄의 힘을 가진 대마왕을 처치하면 칭호는 성장한다.
그것도 무려 2배.
‘대마왕이 몇 놈이나 더 있으려나?’
사탄과의 전투는 요행이 따라주었다.
아니, 놈이 자존심을 굽히지 않고 누가 이기나 해보자라는 마인드를 갖고 물러서지 않은 덕분이다.
그게 아니었다면 놈에게 죽진 않더라도 이러한 성과는 꿈도 꿀 수 없었을 것이다.
이후로도.
‘엄청난 놈이었지.’
지금 생각해도 몸서리가 절로 쳐진다.
그래도 승자이기에 웃을 수 있다.
“참! 철옹성.”
자그마치 대마왕에게서 뜬 아이템이다.
과연 철옹성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이를 확인한 어스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마나 충전량이 기존 5만에서 지금은 그 열 배인 50만으로 증가했기 때문이었다.
‘이러면 대마왕도 더는 문제가 아닐지도.’
히죽.
마족도 마족이지만 앞으론 대마왕을 잡으러 다녀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일단 그전에.
어스는 두 번 생각하지 않고 보유한 업적 포인트 모두 체력 스탯에 분배했다.
9서클 방어 스킬의 방어력보다 자신의 생명력이 더 강력한 방어력을 보유한 사실을 이번에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생명력 : 317,720/317,720. (생명력 회복 1시간 40퍼센트).
‘앞으로 죽을 일은 없겠어.’
마법사에게 있어 진정 중요한 건 마나가 아닌 생명력이라는 사실을 감히 누가 상상이나 하겠는가.
물론 이것도 어스 한정 이야기지 다른 이들에겐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개운한 상태로 욕실에서 나온 어스는 콧노래를 부르며 아래층으로 걸음 했다.
그리고 거기서 푸리엘을 만난 어스는 대륙 통합 사령부의 이름으로 전달 된 서신을 손에 쥘 수 있었다.
‘건국을 선포할 타이밍이네.’
허전한 자신의 머리 위에 왕관을 씌울 순간임을 직감한 어스는 푸리엘을 통해 곧장 답신하도록 명령했다.
“수락한다고 해. 대신 선불임을 명시해서 보내.”
뤼빅스 대륙에 존재하는 모든 이종족 노예와 혼혈들에게 새로운 터전과 삶이 열린 역사적인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