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9화
앱솔루트 쉴드를 모조리 부수고 들어온 검은 파편을 피해 몸을 움직였다.
파편은 어스의 어깨를 약간 스치고 뒤로 곧장 날아갔다.
어스의 뒤에는 검은 탑이 있었다.
메테오에도 끄덕하지 않은 신비의 검은 탑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저 파편에 맞아 부서지지 않을까 싶어 잠시 무식하게 강한 놈도 잊고 뒤를 돌아보았다.
조건반사랄까?
아무튼 별 의미를 두지 않은 본능적인 행동이었을 뿐인데 이를 본 놈은 자신을 향한 모독이라며 노발대발했다.
다행히 공격으로 이어지지 않았고, 그 덕분에 검은 탑을 향해 날아가는 파편을 끝까지 지켜볼 수 있었다.
과연 검은 탑은 멀쩡할까?
찰나에 그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저 파편의 위력이 무시무시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웬걸 메테오를 전송시켜 버렸듯 그 대단한 파편도 검은 탑이 가진 신이한 힘 앞에선 힘도 써보지 못하고 사라졌다.
노발대발했던 대마왕도 그제야 이를 알아차린 것인지 눈이 커졌다.
“뭐지?”
유형화된 마기를 두른 대마왕의 입에서 처음으로 인간적인 느낌의 감상을 들을 수 있었다.
대마왕 아니 사탄은 어스를 잊어버리기라도 한 듯 검은 탑을 향해 접근했다.
놈이 뤼빅스로 넘어가면 그날로 뤼빅스는 끝이다.
실리시아 역시.
어린 위그드라실이 있다지만 아직 어리다보니 녀석만 믿고 놈을 그냥 보낼 수 없었다.
이래서 지킬 게 있는 인생은 피곤한 게 아닐까 싶다.
“어, 어디 가?”
사탄은 검은 탑의 전송 영역과 딱 한발 거리를 남겨두고 일그러진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지금 본좌에게 한 소리냐?”
“그, 그럼 여기 너 말고 딴 놈 있냐?”
“놈?”
“그럼 년이냐?”
놈의 비위를 맞춰봐야 어차피 화친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놈의 비위를 잔뜩 긁어주어 검은 탑을 향한 관심을 돌려야 한다.
사탄의 유형화 된 마기가 더 커졌다.
그 순간 일대는 공기가 모조리 증발한 듯 숨이 턱 하고 막혔다.
-생명력 10이 감소합니다.
.
.
.
기세 한번 올렸을 뿐인데 생명력이 주르르 떨어졌다.
튀어야 한다.
이 생각이 번쩍 든 동시에 어스는 곧장 블링크를 시전했다.
가장 먼 곳을 바라보며.
약이 오른 사탄은 그를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편히 죽일 생각도 없었다.
사탄은 제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활짝 펼친 손을 쥐었다.
그러자 어스의 입에서 신음이 터졌다.
그 신음이 사라지기 전 어스는 사탄 앞에 서 있었다.
분명 지평선 저 위쪽 어딘가에 떠 있었는데.
-생명력 10이 감소합니다.
.
.
.
또 떨어지는 생명력.
몸을 옥죄는 느낌에 어스는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검은 덩어리가 상체를 휘감고 있는 것이 보였다.
믿었던 블링크가 소용없음을 알게 된 어스의 머릿속은 백지장처럼 새하얗게 변했다.
방관했어야 했나?
당장 죽을 위기에 처하자 비겁한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다시 한번 더 그 입을 놀려보아라.”
어스를 다 잡은 물고기라고 생각한 듯 사탄의 분노는 많이 사그라진 상태였다.
그렇다고 그를 방생(?)할 생각이 있는 건 아니다.
“놈이 아니라고 해서 년이라고 했을 뿐인데 뭐가 잘못되기라도 했단 말이냐!”
놈이 자신을 살려줄 기미가 조금이라도 보였다면 거친 말투는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고통이 부족하구나.”
사탄은 웃으며 힘을 줬다.
그러자 유형화된 마기가 그를 조이기 시작했다.
-생명력 10이 감소합니다.
.
.
.
살기에 노출되었을 때 생명력 10이 감소했다.
블링크를 통해 도주하다 잡혀 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놈이 작정하고 괴롭히려 드는 이 순간에도 생명력의 감소 수치는 고작 10.
대체 이게 무슨 현상일까?
좀 더 담대해져도 되는 걸까?
“너무 고통스러워서 정신이 나간 거냐? 하등한 것아.”
“X까.”
담대해지기로 했다.
어차피 달아날 수 없다면 자존심이라도 챙겨야 하지 않겠는가.
명색이 대현잔데.
상대를 자극함에 있어 욕이 최고다.
길고 긴 수명을 약속받았다지만 마족 역시 종국엔 필멸자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
사탄은 이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심연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갔다.
다른 여섯 마왕이 그러하듯.
그렇게 그곳에서 불멸의 비밀을 파헤치던 사탄은 얼빠진 두 마왕 놈이 찾아왔을 때 단숨에 죽여 버리려고 했다.
하등한 인간 따위에게 겁을 집어먹은 그 꼬락서니가 한심했기 때문이었다.
흥미를 동하는 이야기가 두 놈에게서 나오지 않았다면 진작 그리하고 불멸의 비밀을 여전히 파헤치고 있었을 것이다.
차원 이동이 가능한 신비의 검은 탑!
사실 사탄이 여기까지 온 건 마족들을 학살하고 다니는 어스보단 검은 탑에 흥미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얻어걸린 게 어스다.
어스 입장에선 재수 없는 노릇이었지만 뤼빅스 입장에선 천우신조라고 해야 할 것이다.
만약 사탄이 검은 탑을 통해 뤼빅스로 넘어갔다면 필시 전대미문의 대참사가 일어났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쥐어짜도 어스의 입에서 신음 한번 나오지 않자 그제야 사탄도 이상했던지 그를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반면 어스는 놈이 열이 받아 하던 공격도 고작 10의 생명력만 감소한다는 걸 알게 되자 난타전을 벌여도 되겠다는 계산이 섰다.
‘메테오 스트라이크!’
그와 동시에 어스는 자신이 가진 가장 파괴적인 스킬을 시전했다.
“메…테오?”
사탄의 표정에 처음으로 진지한 반응이 떠올랐다.
사탄이 본 운석은 하나가 아니었다.
10개의 운석이 약간의 거리를 두고 지상을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
사탄은 검은 탑과 어스 그리고 메테오를 찰나에 살피며 이를 갈아붙였다.
사탄은 자신을 심연에서 나오게 만든 신비의 검은 탑이 파괴되는 걸 원치 않았다.
어스가 신기했지만 두고두고 관찰할 정도까진 아니다.
그리 결정한 사탄은 가차 없이 살수를 날렸다.
자신의 공격을 설마 하등한 인간이 버틸 수 있을 것이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사탄은 하늘로 날아올랐다.
지상을 향해 빠른 속도로 진격 중인 운석을 제거하기 위해.
사탄의 관심에서 벗어난 어스는 줄이 끊어진 꼭두각시 인형처럼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 사이 어스가 시전 한 메테오가 하나하나 박살 나기 시작했다.
흩날리는 운석의 파편이 장관을 연출했다.
메테오를 모두 처리한 사탄은 어깨를 으쓱한 뒤 허공에서 천천히 몸을 돌려세웠다.
그런 사탄의 머리 위로 또 운석이 등장했다.
“뭐지?”
이에 사탄은 적잖이 당황했다.
그때부터 시작됐다.
검은 탑을 보호하기 위한 사탄과 운석의 전투가.
한편 어스는 죽은 척 연기했다.
엎어진 자세로 특제 마나 회복을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마셔대며 회복한 마나를 모조리 메테오로 치환했다.
참고로 사탄이 그의 가치를 검은 탑, 메테오 다음으로 여겨 가차 없는 살수를 펼쳤을 때 어스는 100의 생명력 감소를 경험했다.
앞서 감소율의 10배라곤 하지만 어스가 보유한 생명력 총량에 비해 100이란 수치는 코끼리 뒷다리에 붙은 개미라고 봐야 할 것이다.
생명력 : 260,520/260,520.
뒷다리에 붙은 개미도 지금은 떼어내 생명력은 가득 찬 상태다.
‘지력이 아니라 체력 스탯에 집중했어야 했네.’
설마 자신의 생명력이 9서클 스킬인 앱솔루트 쉴드보다 더 강력한 방어력을 보유하고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진작 알았다면 앱솔루트 쉴드의 구입 여부는 다시 생각했을 것이다.
쾅쾅쾅쾅-!
사탄은 자신의 흥미를 끈 검은 탑을 보호하기 위해 처음엔 가볍게 그러다 운석의 행렬이 그래도 끊이지 않자 어느덧 운석을 상대하는 손속이 거칠게 변했다.
그 말인즉.
‘해볼 만한데.’
사탄에게 어스는 이미 죽은 인간이다.
자신의 실력을 믿었으니까.
그래서 사탄은 끊이지 않는 운석의 출현을 자연재해로 인식했다.
“자연도 나를 넘어서지 못할 것이다! 굴복하라 자연이여! 대마왕 사탄이 널 막고 있다!”
놈이 고래고래 소리쳤다.
덕분에 어스는 놈의 이름과 신분을 알 수 있었다.
‘또라이네.’
놈의 또라이적인 기질 덕분에 잘하면 놈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한 가닥 희망을 가져본다.
꿀꺽.
‘메테오 스트라이크, 메테오…’
그렇게 어스와 대마왕 사탄의 기형적인 싸움이 시작됐다.
대마왕이란 타이틀이 무색하지 않게 사탄은 대단히 강했다.
하지만 무한에 가까운 자원을 보유한 어스 역시 그런 사탄에게 전혀 꿀리지 않았으니.
쾅쾅쾅쾅-!
“마계가 망할 징조인가? 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처음으로 사탄은 당황하고 있었다.
‘마계 내가 필히 망하게 해줄게.’
으드득.
자신을 놀라게 만든 벌이다.
그러나 당장은 쥐죽은 듯 엎어져 있어야 한다.
놈의 기력이 떨어질 때를 노려야 한다.
‘대체 뭘 먹고 살았으면 저리 힘이 좋지?’
기회를 잡기 위해선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싶다.
* * *
신살의 대죄를 저지른 대가로 무려 수천 년을 땅속 깊은 곳에 봉인 당한 채 복수를 꿈꾸던 존재가 다시 눈을 떴다.
존재가 다시 눈을 뜬 건 거대한 힘이 유입되었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10년은 더 건재할 것이라 판단한 봉인이 그새 약해진 상태였다.
설마, 10년이 지난 걸까?
존재는 자신의 영혼에 각인 된 시간의 흐름을 확인했다.
그 결과 10년은커녕 한 달도 지나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왕급이라도 넘어온 건가?’
존재를 가둔 봉인은 오직 마기 혹은 파괴의 힘을 통해서만 녹일 수 있다.
이를 알아내기까지 존재는 긴 시간 방법을 연구했다.
뤼빅스에서 자신이 만족할 파괴의 힘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니 존재에게 남은 방법은 마기를 뤼빅스로 끌어들이는 방법뿐이다.
존재는 이를 위해 자신의 영혼 절반을 희생하여 마계에 씨앗을 심었다.
그 결과물이 바로 마계의 그 검은 탑이었다.
‘예상보다 봉인이 일찍 풀어지겠어. 이 추세라면.’
존재는 광소를 터트리며 다시 의식을 가라앉혔다.
자신을 속여 대죄를 짓게 만든 자들의 피의 처벌, 그 날을 하루라도 더 앞당기기 위해.
스르르.
* * *
오직 마왕들만이 도전할 수 있는 일곱 죄악 중 하나를 손에 넣어 대마왕의 격에 오른 사탄은 불멸의 존재로 거듭나기 위해 스스로 심연으로 들어갔다.
긴, 아주 긴 세월을 다른 죄악들과 경쟁하였지만 이를 완성하기 정말 고되고 힘들었다.
때론 모든 걸 포기할까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았지만 다른 대마왕들을 보며 이를 악물고 참았다.
누군가의 밑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기에.
그랬던 사탄이 외유에 나온 건 심연이 아닌 마왕들이 고한 검은 탑이 불멸의 장막을 걷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는 일말의 희망을 그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 말도 안 돼! 내가 분노의 주인인 나 사탄이 이렇게 죽는다고! 그것도…”
처음엔 자연재해인 줄 알았다.
자주는 아니지만 간혹 그와 같은 일이 벌어지곤 했으니까.
그런데 알고 보니 자연재해가 아니라 간악한 인간의 계략이었을 줄이야.
일개 마족도 아니고 죄악을 지배하는 대마왕의 지위에 오른 자신마저 감쪽같이 속일 힘은 대체 뭐란 말인가? 진정 이것이 인간의 힘이란 말인가? 사탄은 마왕들의 이야기를 귀담아듣지 않은 걸, 자신의 경솔함을 임종 직전에서야 뼈저리게 깨달았다.
“잘 가라 지긋지긋한 X새끼야! 두 번 다신 보지 말자! 현생이든, 내생이든.”
어스는 자신을 노려보는 대마왕 사탄의 찢어진 큰 눈을 노려보며 악에 받쳐 소리쳤다.
정작 죽는 놈은 사탄인데, 열은 오히려 어스가 내고 있는 게 참으로 이상하다.
그러나 속사정을 알면 어스의 마음을 이해할 수밖에 없다.
사탄을 잡기 위해 어스는 무려 열흘 동안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오직 마나 회복 포션을 마시며 메테오 스트라이크만 줄곧 시전했다.
단 하루도 버티기 힘든 짓을 무려 열흘이나 했다.
그러니 욕이 안 나오려야 안 나올 수 있겠는가.
“내가…내가 하등한 인간 따위에게…”
-분노의 대마왕 사탄을 처치했습니다.
-놀라운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칭호 ‘대죄를 멸한 자(+1)’를 습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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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템을 습득합니다.
-철옹성에 아이템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콜.
-보너스 업적 포인트 1,000을 습득합니다.
-10억 코인을 습득합니다.
-레벨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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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상은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찬란했다.
그러나 이를 감상하기엔 그의 정신력은 가뭄에 배를 드러낸 강바닥처럼 쩍쩍 갈라져 버린 상태였다.
시련을 극복하여 보다 더 강해졌음에도 확인할 마음까지 들지 않았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 그의 선택은 단 하나뿐이었다.
‘차원 이동.’
집으로 가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