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5화
던전 원정은 오랜만이었다.
예전엔 목숨을 걱정하던 존재였지만 오늘날에 와선 제아무리 고위 던전으로 분류되는 5띠 역시 눈에 차지 않았다.
보자, 5띠면 두당 코인이…일반이 30에서 40코인이고 정예나 직위가 있는 경우 100코인에서 조금 더 준다.
그리고 보스의 경우.
‘…팔천이네.’
하급 마족과 5띠 던전 보스의 목숨값은 동일하다.
보스가 일반 몬스터처럼 다수면 모를까 던전마다 단 한 마리뿐이라 마계의 작은 마을 하나 처리하는 게 던전 하나보다 훨씬 이득이다.
보너스 업적 포인트라도 준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특전 조기 종결로 인하여 보너스 업적 포인트를 챙길 수 있는 방법은 자신과 동급의 실력을 가진, 마왕급을 잡아야 겨우 구할 수 있다.
그 외 포인트 수급은 오직 레벨업을 통해서이다.
빡빡하게도.
그래도 오늘 목적은 몇 달 안 남은 수명을 구입할 자금이 목적이기에 불만은 잠시 뒤로하고 곧장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차원 이동 재사용이 충족되기까지 앞으로 남은 시간 4일, 과연 몇 개의 던전을 부술 수 있을지 어스는 자기 자신과 내기를 걸었다.
‘블링크!’
동굴 지형이면 어쩌나 우려했으나 다행히 이곳은 사막 지형이었다.
모래사막이라 몬스터는 필시 그 안에 웅크리고 있을 게 분명하다.
시쿠를 풀어 놓으면 먹기 딱 좋은 환경이었지만, 실리시아의 수문장을 이깟 일로 부르는 건 전력 낭비다.
어차피 사냥은 메테오로 할 테니 놈들이 수백 미터 지하에 웅크리지 않는 이상 코인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메테오 스트라이커!’
메테오의 파괴 반경은 직경 10킬로미터에 이른다.
거대한 바위가 내리꽂히는 것이니 물리적인 공격 피해가 어마어마하다.
사실 이것만 해도 게임은 끝이라고 봐야 한다.
그러나 메테오의 피해는 비단 여기서 끝나지 않고 화염이란 2차 피해를 동반한다.
충격으로 인한 강력한 지진은 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메테오의 위력이 이와 같기에 로엘의 입이 떡 벌어진 것이다.
확실히 금기 마법은 금기 마법이다.
슈아아아아아아-앙!
대기를 찢어발기며 웅장한 자태를 드러낸 거대한 운석.
지면과 충돌하자 모래사막은 증발하고 말았다.
-사막 모래 뱀을 처치했습니다. 50코인을 습득합니다.
.
.
.
역시 광역 파괴.
‘대충 7천 코인은 벌었네.’
메테오가 지상을 강타한 여파로 인해 발생한 지진이 파괴 범위 밖의 크고 작은 모래 언덕이 휩쓸었다.
이에 모래 언덕이 털썩 주저앉았고, 이에 놀란 몬스터들이 지상으로 툭툭 튀어나와 우왕좌왕했다.
놈들이 영원히 진정할 수 있도록 메테오를 그 품에 안겼다.
여긴 이미 볼 장 다 본 곳이라 이동하며 족족 메테오를 날려 던전 지형 자체를 송두리째 바꿔버렸다.
그때마다 알람이 미친 듯 울었다.
수명이 연장되는 소리나 다름없다 보니 오늘의 알람은 사랑스럽기까지 했다.
울어라! 더, 크게 쉬지 않고 쭉.
* * *
대륙 통합 사령부는 마족 침공에 대비하여 각국의 중앙군은 물론이거니와 지방군(영지군)의 병력까지 통제의 대상으로 삼았다.
마족 침공에 대해 그만큼 심각하게 받아들인 결과였다.
그러나 마족 침공이 조짐만 보일 뿐 글리시아 남작 영지 이후 딱히 이렇다 할 조짐이 보이지 않자 대륙 통합 사령부가 지정한 우선 지원 대상에서 밀린 영지의 경우 불만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그중 가장 큰 원인은 역시 던전을 빼놓을 수 없다.
그래서 사전에 이를 진압하고자 하였으나 대륙 통합 사령부가 발족한 이후 일정 이상의 군대나 자원을 사용하려면 필히 대륙 통합 사령부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이 경우 우선 지원 대상 영역에 포함된 영지는 굳이 승인 요청을 하지 않아도 알아서 던전을 처리해주는 반면 그 외 지역의 영지는 열 번을 신청해도 매번 거부당하기 일쑤였다.
이러하니 어찌 영주들이 불만을 갖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그러한 때에 비우선 지원 대상 영지의 던전을 대현자가 현신하여 빠른 속도로 처리해주고 있으니, 다들 대륙 통합 사령부에 승인 요청을 하느니 대현자가 관심을 갖고 있는 이종족 노예와 혼혈을 내줌으로써 제 앞마당의 위험을 제거하려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를 몹시 못마땅하게 여기는 자들이 있었으니.
“놈의 행동은 분명 교단을 저격하려는 의도로 해석해야 할 것입니다. 헤롯 추기경님.”
어스와 각을 세우고 있는 교단이었다.
베로니카 단장의 말에 헤롯 추기경은 묵직한 신음을 흘렸다.
“나 역시 베로니카 단장의 생각에 공감한다.”
“그렇게 생각하신다니 안심입니다. 그럼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어스의 던전 원정은 교단 한정으로 껄끄러운 행동이지 사실 교단을 제외한 이들에겐 가뭄의 단비처럼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를 반가워하는 이들은 우선 지원 대상 지역에 포함된 영주나 백성만이 아니다.
오매불망 그와 만나길 소망하는 마법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작위와 영지를 포기하고 종적을 감춘 대현자가 여봐란듯이 다시 활동을 시작했으니 그를 모두 이를 기회라 여긴 것이다.
“이 일은 신중해야 하네. 베로니카 단장.”
“방금 신중이라 하셨습니까?”
헤롯 추기경의 답변에 베로니카 단장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다른 추기경의 입에서 저와 같은 말이 나왔다면 모를까 상대는 성전단의 당대 수장이다.
그런데 그런 인물의 입에서 온건파에게서나 나올 법한 말이 나왔으니 그녀 입장에선 당연한 의심이었다.
“지금은 명분이 없네, 명분이.”
자신들이, 아니 교단이 언제부터 명분을 중요시했다고 명분을 운운한단 말인가?
베로니카 단장의 표정에서 불만이 노골적으로 쏟아지자 헤롯 추기경은 나직이 한숨을 내불며 설득에 나섰다.
“그자가 이종족 국가 건국을 선포했다면 명분이 우리에게 있겠으나 그는 개인 자격으로 원정을 하고 있네. 그의 행동에 대한 지지자들도 적지 않아. 비우선 지원 영역의 영주들과 백성, 그리고 대현자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는 마법사들이 그를 지지하고 있어. 마족 침공을 대비해야 하는 입장에서 그 문제로 교단이 나선다면 우리 손으로 만든 대륙 통합 사령부의 위상이 추락함은 물론 자칫 내부 분열을 맞이하게 될 거네. 그리한다면 과연 우리가 마족을 상대로 얼마나 버티겠는가?”
헤롯 추기경의 질문에 베로니카 단장은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류가 없다면 교단 역시 없는 것이기에.
그렇다고 이를 수긍하자니 자신의 신념과 상충했다.
“그렇다면 이리 해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차라리 이종족 노예와 혼혈을 병사로 만드는 건 어떻겠습니까? 명목상 말입니다.”
“명분에 부합하긴 할 테지만 일을 그와 같이 처리한다면 그자 역시 마탑과 마법사들을 회유하려 들 수 있어.”
“자유 마법사면 모를까 설마 가진 게 많은 마탑까지 그에 동조하겠습니까?”
“마법사이기에 충분히 가능하지. 당장 교단 마법사들도 대현자에 대해 경외감을 갖고 있네. 물론 다른 마법사들에 비해 덜한 편이지만 지금 그를 자극해봐야 인류의 존망이 걸린 전쟁에 앞서 내부 분열을 피할 수 없을 걸세.”
이래도 안 되고 저래도 안 된다니 속만 타들어 가는 베로니카 단장이었다.
“그렇다면 놈이 원하는 바가 이뤄지도록 방관하자는 말씀이십니까? 이단의 나라를 세우려는 놈의 추악한 야욕을, 신성모독을?”
“당장은 마족을 상대하는 게 맞네. 그리고 이단의 나라가 세워진들 과연 그 나라가 얼마나 가겠는가? 오히려 난 그가 이단의 나라를 빨리 건국하는 편이 낫지 않나 싶기도 해. 적어도 그가 그리한다면 마탑이나 마법사들의 이탈을 막을 명분이 될 테니까.”
듣고 보니 틀린 말은 아니다.
“종족전쟁의 승리로 교단이 지난 수천 년 동안 영광을 누렸으니, 향후 수천 년의 영광을 위해 이단의 나라를 제물로 삼는 것 역시 나쁘진 않겠군요. 음, 혹시 그래서 자중하셨던 것이었습니까?”
헤롯 추기경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경건한 표정으로 룬의 신상을 향해 기도만 올렸고, 그 모습을 보자 베로니카 단장은 답을 듣지 않았음에도 확신할 수 있었다.
‘역시, 성전단의 수장이라 할 만하구나.’
베로니카 단장의 표정에선 더 이상 헤롯 추기경을 향한 불만은 일체 보이지 않았다.
* * *
‘이것이 말로만 듣던 바로 그 나비효과란 것인가?’
던전 원정을 시작한 건 차원 이동에 필요한 시간이 충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코인 수급이 원활한 곳이 있어 채 1년도 남지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 움직였다.
어스 입장에선 밀 빵이든 귀리 빵이든 가릴 처지가 아니기에.
그런데 지극히 개인적인 그 일이 대륙 통합 사령부의 우선 지원 대상 지역에서 벗어나 있던 영주들에게 그만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말았다.
그것은 어스 입장에선 매우 긍정적인 형태의 오해였다.
‘내 생에 더는 용병 일은 안 할 줄 알았는데. 이래서 인생은 알 수 없다고 하는 거구나!’
국가를 세움에 있어 없어서는 안 될 항목이 바로 백성이다.
이런 말 해선 안 되지만 그 백성이 많이 비싸다.
이종족 노예이기 때문이다.
거기다 사회적으로 여러 제한이 걸려 있는 이종족과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까지 대상에 포함하였기에 혼혈이 거주하는 해당 지역 관청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중간에 교단이 끼어들어 거의 성사되다시피 했던 매입도 승인도 줄줄이 불발됐다.
이 땅에서 교단의 심기를 거스를 수 있는 개인도 없고 조직도 없기에.
그런데 자신이 던전 원정을 시작하면서 조건부 거래와 요청이 물밀 듯 들어왔다.
“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대현자님.”
“감사는 무슨, 정당한 거래였습니다. 그럼 저들을 데려가겠습니다.”
돈 한 푼들이지 않고 이종족 노예를 거두었다.
정당한 절차를 거쳐 혼혈을 거두었다.
이제 저들을 실리시아로 보내면 된다.
워프 게이트를 구입하지 못했다면 텔레포트 마법진이 있는 장소로 데려간 뒤 이를 통해 실리시아로 보내는 번거로움이 수반된다.
어디 그뿐이랴.
텔레포트 마법진을 구동하기 위해 들어가는 재원도 막대하다.
텔레포트 구동을 한두 번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텔레포트 구동에 필요한 인력과 자원인 마나석의 경우 아도니스와 연결된 지금은 필요한 만큼 조달할 수 있어 문제가 없지만 뤼빅스에선 소비되는 마나석의 80퍼센트 이상을 교단이 장악하고 있다 보니 그 출처에 의구심을 살 수 있어 대놓고 그리할 수 없었다.
테리우스 영지가 자신의 손에 남아 있다면야 눈 가리고 아웅이라도 하겠지만 이를 솔론 왕실에 반납한 지금은 그럴 처지도 아니다.
그러니 워프 게이트야 말로 어스 입장에선 신의 한수나 다름없었다.
이런 경우를 대비하여 구입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워프 게이트.’
고위 마법일수록 마법 완성에 시간이 필요하다.
유지가 필요한 공간 이동일 경우 한 치의 오차도 곧장 인명피해로 발생하기에 더더욱 꼼꼼해야 한다.
그런데 어스는 달랑 시동어 하나만으로 그 어려운 공간 이동 마법을 식은 스프 먹기 식으로 한다.
이미 이에 관한 소문은 쫙 퍼진 상태였다.
그럼에도 다들 입을 떡 벌리고 워프 게이트에서 눈을 떼지 못하였다.
“여, 역시 대현자시군요.”
“오오!”
“대현자님의 땅에 저희도 받아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감탄과 요청이 쇄도한다.
감탄은 일반인들, 요청은 마법사들이다.
언제나처럼 어스는 그들을 무시했다.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할 것을 우려하여 촉각을 곤두세우며 이종족 노예와 혼혈을 워프 게이트 안으로 들여보냈다.
이번에 확보한 이종족 노예는 349명, 혼혈은 212명으로 총 561명을 확보했다.
일을 끝낸 어스는 사람들을 향해 손 한번 살짝 흔들어 준 뒤 자취를 감추었다.
처리해야 할 던전이 산더미라 잠시도 노닥거릴 시간이 없었다.
물들어 올 때 노를 젓는 법이기에.
현재 이 말을 되새기며 24시간 쉬지 않고 던전 원정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는 어스였다.
이리 고생하다 보니 한번은 몰라도 두 번은 못 해 먹을 짓이 건국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어쩌랴 건국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인 걸, 그러니 한 푼…아니, 한 명이라도 더 구조할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