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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로 성장하는 마법사-234화 (234/250)

234화

로엘은 어쩜 찬란했던 타락자에 대해 알고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던 어스의 기대는 결국 이뤄지지 않았다.

이제 남은 건 엘프들의 존경을 받는 살아있는 그들의 역사서라고 할 수 있는 대장로다.

만약 그마저 모르겠다고 말한다면 그땐 몸으로 부딪칠 수밖에 없다.

시스템이 직접 언급할 정도면 필시 보통내기는 아닐 테지만 자신 역시 마계라는 차원 높은 세계를 주름잡고 있는 강자다.

그러니 놈에게도 자신은 역경으로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로엘도 돌아오고 아도니스와도 연결됐으니 앞으론 사냥에 집중해도 되겠지.’

시쿠도 실리시아에 남겨 놓을 테니 일이 터지면 바로 알 수 있으니 그땐 즉시 돌아오면 된다.

뤼빅스와 달리 마계에선 차원 이동 재사용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고 언제든 돌아올 수 있기에.

다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점은 놈이 완전히 회복하여 활동하게 될 경우 과연 그때도 검은 탑이 지금과 같은 기능을 유지하느냐다.

‘이왕이면 자력으로 오는 게 낫긴 한데.’

이래서 미지는 짜증이다.

막상 들여다보면 별거 아닌데 그전까진 심장 졸이게 만들기에.

어스는 어린 세계수 앞에 서 있었다.

누구는 서너 달을 힘든 뱃길로 가야 닿을 수 있는 대륙이 이젠 저 문만 지나면 눈 깜빡할 사이에 갈 수 있다.

어디 사람뿐이랴.

물자 역시 아도니스에서 공수할 수 있다.

아도니스의 이종족이 생산하는 물건이 교역 섬에서 거래되어 뤼빅스로 전파된 지는 오래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만든 물건의 가치는 떨어지지 않고 여전히 기득권층 사이에선 구하지 못해 안달인 물건으로 다뤄졌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이란 말인가.

자신들이 터부시하는 이종족이 만든 물건에 열광이라니.

‘지금도 부자지만 앞으론 더 부자가 되겠어.’

저 문을 통해 향후 쏟아질 아도니스 산 물품을 뤼빅스에 뿌린다면 인간의 재화로 이종족의 나라인 실리시아 전체를 도배할 수 있을 것이다.

더 강해지고, 더 부유해진 이종족의 나라 그리고 그 나라의 왕이…

“영주님!”

아직은 영주로 불리지만 조만간 실리시아를 왕국으로 선포할 것이다.

교단이 눈에 쌍심지를 세울 테지만 그게 그들이 할 수 있는 전부다.

대현자를 도발해봐야 얻을 수 있는 것이 참극뿐임을 저들 역시 알 테니까.

그래도 언젠가는 충돌이 있지 않을까 싶다.

신앙에 근거한 신념은 무모함도 불사하니까.

“기분이 좋아 보이네.”

“오랜만에 고향에 가잖아요.”

푸리엘이 아도니스를 떠나 뤼빅스에 온 지 햇수로 15년이라고 한다.

장수종족인 엘프에게 있어 15년은 엘프에 비해 짧은 생을 살아가는 인간의 15년과 어찌 비교할까.

“엘프는 언제부터 늙어?”

“500살 전후로 노화가 조금씩 진행돼요.”

500살이라니 국가 단위의 수명이지 않은가.

부럽다, 몹시.

“좋겠다.”

“예?”

“좋겠다고, 오래 살아서.”

“영주님도 오래 살지 않나요? 격을 거듭 뛰어넘으셨잖아요.”

그래 일반적인 경우의 마법사라면 그럴 것이다.

하지만 자신은 일반적인 경우의 마법사가 아니라 푸리엘이 말한 그 격이란 놈을 뛰어넘지 못했다.

그걸 어떻게 아냐고? 혹시나 싶어 그에 관한 내용을 조사해보니 알게 되더라.

가진 자들이 불사를 꿈꾸며 저지른 헛짓거리가 이전엔 정말 이해되지 않았지만 요즘은 그들의 심정을 이해하고 있는 어스였다.

“가자.”

“옙!”

어스는 푸리엘과 함께 걸음을 옮겼다.

전경이 단숨에 바뀌었다.

공간 이동은 물론 차원 이동까지 수시로 하는 어스에게 단시간에 벌어지는 풍경의 변화는 더 이상 새로울 게 없다.

그럼에도 어스의 눈이 커진 건 동화나 이야기로만 전해 들은 엘프의 마을을 직접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인공이 가미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를 활용하여 만든 도시가 전하는 생경함은 그의 마음에 경이라는 이름의 파문을 만들었다.

엘프들이 흡사 구름떼 모이듯 모여들었다.

“위그드라실의 구원자를 뵙습니다!”

“실리시아의 영주님을 뵙습니다.”

마음을 담은 엘프들의 환대에 어스는 부드러운 미소로서 화답했다.

‘내가 네들 왕이다. 앞으로 잘 보살펴 주마.’

* * *

엘프들이 열어준 성대한 잔치에 초대받았다.

미식가의 반열에 든 그의 입은 무척 까다로웠지만 엘프들이 정성을 다해 마련한 음식은 그 정성 때문인지, 이국적인 재료가 들어가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느 하나 맛없는 게 없었다.

그러나 그 모든 걸 다 합쳐도 이것 하나만 못하다.

미미르의 축복이었다.

계란 정도의 크기를 가진 이 미미르의 축복은 천 년에 한 번 맺히는 영약으로 엘프족에겐 귀한 보물이었다.

그런데 그걸 자신에게 내주었다.

듣기에 이것 하나뿐이라던데.

‘그냥 먹으면 된다고 했지.’

영약은 아끼는 게 아니다.

있을 때 얼른 먹어야 한다.

꿀꺽.

입안에 넣기 전 목구멍이 찢어지면 참사가 발생하면 어쩌나 싶어 살짝 걱정했지만 입안에 들어가자마자 금방 녹아 목구멍으로 쉬이 넘어갔다.

페어몬트에게서 전수받은 마나 연공법을 오랜만에 돌렸다.

칭호 승리의 노래가 활성화된 이후 사용하지 않았지만 혹시나 약빨을 더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해보았다.

그 때문인지 아니면 미미르의 축복 자체가 대단한 것인지 몰라도 즉각적인 반응이 왔다.

-엘프족의 경의를 담은 ‘미미르의 축복’을 복용했습니다.

시스템이 반응했다.

지금까지 귀한 영약을 제법 먹었지만 이런 반응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러니 자신이 방금 먹은 영약이 그만큼 대단한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칭호 승리의 노래가 축복받은 자(유일)로 변경됩니다.

알람이 끝나자마자 어스는 곧장 상태창을 확인했다.

기존 칭호는 마나 회복률 10퍼센트, 마나 증가 +150, 생명력 증가 +200이 전부였다.

그랬던 칭호의 기능이 마나 회복률 20퍼센트, 마나 증가 +10,000, 생명력 증가 +10,000으로 상향됐다.

그러나 앞서 세 기능의 향상보다 어스의 눈길을 사로잡은 건 하단의 네 글자였다.

수명(17/18).

이를 확인한 어스는 눈앞이 아찔했다.

남아 있던 술기운은 자신의 남은 수명을 보자마자 그 충격에 멀리 달아나버렸다.

곧 죽을 놈과는 엮이기 싫어서인가?

지금 이게 무슨 상관이랴.

당장 내년에 죽는다는데.

천재는 단명한다더니.

그런데 자신이 천재? 거지발싸개처럼 기분이 더럽다.

‘나 천재 아니라고! 그냥 평범한 사람이라고!’

남들은 다들 천재라 추켜세우지만 실상 천재의 발뒤꿈치에도 미치지 못한다.

시스템의 도움이 없었다면 아버지가 소개해준 작은 상회의 점원으로 쭉 살았으리라.

오르지 못할 나무를 부러워하는, 주변에 흔해빠진 그렇고 그런 사람들처럼.

축복받은 자? X팔 이건 명백한 저주다.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는 멘탈을 겨우 부여잡았다.

짝-!

찰지게 뺨을 때렸다.

정신이 번쩍 들어야 마땅하지만 망할 놈의 생명력 덕분에 느낌만 살짝 든다.

거듭 심호흡을 하여 겨우 잡은 멘탈을 어르고 달래 정상수준까지 회복할 수 있었다.

활짝 열린 칭호로 손을 가져갔다.

상세설명을 보기 위해서다.

만약, 상세설명에도 자신의 단명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다면…그래, 그때 가서 욕을 하든 지랄을 털든 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안도와 긴장감에 저도 모르게 질끈 눈을 감았다가 조금이라도 부정을 탈까봐 조심하며 눈을 떴다.

*코인을 지불하여 수명을 연장할 수 있습니다.

오! 역시 길은 있었다.

그것도 쉬운 길이.

‘코, 코인쯤이야.’

*1만 코인을 환전하여 1년의 수명을 구입할 수 있습니다.

1만 코인이면 적은 액수가 아니다.

하지만 마계라는 양질의 사냥터를 오갈 수 있는 입장에선 부담되는 액수도 아니다.

그전에 수명부터, 늘려야 하는데 잔액이 달랑 2,057코인뿐이다.

‘아직 내겐 몇 달의 시간이 있으니까.’

시간은 충분하다.

그제야 미미르의 축복이 진정한 축복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만약 이를 모르고, 혹은 로엘을 올 말이나 내년에 아도니스로 보냈다면 영문도 모르고 죽었을 테니까.

‘이러면 엘프에게 도리어 목숨의 빚을 진 셈이구나!’

명군이 되리라, 엘프들이 마음껏 행복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 엘프들이 대대손손 잘 살 수 있도록.

그렇게 그는 홀로 다짐 또 다짐했다.

* * *

행선지도 밝히지 않고 외출한 대장로를 찾는 일은 깔끔하게 포기했다.

찬란했던 타락자고 나발이고 지금 그에게 중요한 건 사냥이다.

아직 몇 달의 여유가 있었지만 이를 믿고 느긋하기엔 조바심을 떨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당장 마계로 달려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보니 일단 던전부터 들어가기로 했다.

아도니스엔 던전이 없어 실리시아로 돌아갔다.

5개의 왕국을 세울 수 있는 거대한 영토였지만 던전 보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던전이란 게 처리한다고 끝나는 게 아님에도 다른 지역과 달리 실리시아에선 새로 출현하는 경우가 없었다.

‘위그드라실의 영향이겠지.’

그 외엔 이 상황을 설명할 길이 없다.

그렇다면 위그드라실이 성목이 되어 그 힘이 실리시아를 넘어 뤼빅스 전체에 뻗칠 경우 던전은 역사의 기록으로만 남지 않을까 싶다.

문제는 위그드라실이 전성기 시절의 힘을 되찾으려면 앞으로 1만 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개자식들 왜 남의 신앙을 불태우고 지랄이야.’

특히, 교단의 편에서 위그드라실을 불태운 공로를 인정받아 사후 성자로 추대되어 오늘날까지 추앙받고 있는 데릭 가이어스 그 새끼가 문제다, 문제.

‘내 눈에 띄었다면 모가지를 비틀어 버렸을 텐데.’

그러니 놈은 죽은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 것이다.

던전이 그나마 많이 밀집한 곳이 어딘지 연합을 통해 정보를 입수했다.

그래서 낙점한 곳이.

‘헥터 왕국이랑 던전이랑 전생에 원수라도 졌나 왜 여기만 집중 공략하는 거지?’

이왕 헥터 왕국에 온 김에 도리아 백작을 만나봐야 할 것 같았다.

전날 마계에서 구해준 일로 도리아 백작은 어스에게 이종족 노예와 혼혈을 주기로 했다.

하지만 자신과 관계된 연이은 사건으로 인해 선물(?)을 수령할 수 없었다.

그러니 헥터 왕국에 들린 김에 겸사겸사 그들을 받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워프 게이트!’

하우든 백작 영지 주도 인근에 워프 게이트를 연 어스는 곧장 그 안으로 뛰어들었다.

* * *

도리아와 42인의 던전 원정대는 어스를 제외하고 인류 최초로 마계에 발을 딛고도 무사히 돌아온 유일한 케이스였다.

그런 엄청난 일을 겪었으니 트라우마가 장난 아닐 테지만 그들은 꿋꿋이 이를 극복했다.

어디 그뿐이랴.

어스와의 약속을 잊지 않고 마계에 관한 이야기는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한두 명도 아닌 그들 모두.

“어, 어스 백작이 어떻게 여길?”

집무실에서 밀린 업무를 보던 도리아 하우든은 테라스에서 어른거리는 인형을 보자마자 칼을 빼 들었다가 상대를 확인하곤 급히 이를 거두었다.

“잘 지냈죠?”

“물론입니다. 참, 이젠 백작이 아니라 대현자님이라고 불러야겠군요. 자리에 앉으세요.”

“요즘 바쁘죠?”

마족의 침공을 대비하여 물자의 징발이 이뤄지고 있었다.

이 때문에 영문도 모르는 서민들의 입에선 단내가 진동하고 있었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더 많은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정은 영주들도 마찬가지였다.

“저보단 영문도 모르는 백성들이 더 바쁘죠.”

“진실을 알게 되면 혼란이야 있겠지만 그래도 말해주면 백성들도 이해해 줄 텐데 그 점이 아쉽네요.”

“그러게요. 참, 요즘도 마계에 가시나요?”

“물론이죠.”

“혹시, 마족들이 나타나지 않는 건 대현자님 덕이 아닌가요?”

자신의 덕인지 아닌지 놈들의 머릿속을 열어본 게 아니라 장담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아예 관계없는 일도 아니지 싶다.

인정하자니 자기 자랑이 될 것 같아 대충 얼버무린 어스는 이종족 노예와 혼혈들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녀는 선물로 그들을 주겠다고 하지만 최근 상황을 고려하면 한 푼이 아쉬울 테니 그냥 받아갈 생각은 없었다.

‘나와의 약속도 지켜줬으니 도움을 주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재물이 없는 것도 아니고 이번에 아도니스와 상시 오갈 수 있는 통로를 구축한 뒤로 실리시아의 부는 상상할 수 없는 수준으로 불어나 있었다.

한 나라를, 한 조직을 운영하는 데 있어 재원 확보가 가장 큰 골칫거리인 걸 감안하면 실리시아는 그야말로 땅 짚고 헤엄치고 있었다.

“당장은 힘들고 3일 후에 주도 서쪽 숲에 그들을 데려가겠습니다.”

도리아는 그들을 내줘도 어떻게 데려갈 것이냐는 따위의 질문은 아예 하지 않았다.

대현자에게 그쯤은 일도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감사합니다. 참, 골치 아픈 던전이 있습니까?”

왜 없겠는가.

최근 영지에 5띠 던전 4개가 한 번에 출몰하는 바람에 주도 방비에 돌린 인력을 원정대로 꾸려야 할지 고민 중에 있었다.

영지의 병권을 쥔 도리아가 고민만 하고 행동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대륙 통합 사령부가 국가와 영지를 가리지 않고 병력이란 병력은 죄다 통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들의 승인이 반드시 필요한 데, 그 승인이란 게 좀처럼 떨어지지 않아 여러 문제를 낳고 있었다.

그렇다고 대륙 통합 사령부를 원망하자니 마족이 더 큰 문제였기에 다들 벙어리 냉가슴 앓듯 속만 끓였다.

그러니 어스의 제안이 어찌 반갑지 않으랴.

“염치없지만 그리해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어스는 이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이 일이 향후 어떤 파장을 불러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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