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화
교단 주도하에 비밀리에 열린 대륙회의에서 결정된 내용에 의거하여 인류는 곧바로 전시체제에 들어갔다.
하나 마족이 어느 던전에서 튀어나올지 전혀 예측할 수 없다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일반 병사로 상대할 수 있는 자들이라면 모를까 기사단을 붙여도 역량이 한참 떨어진다.
그래서 대륙회의에서 내린 결정은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춘 요새를 지정하여 해당 요새에 인력과 물자를 집중 배치하는 식의 전략을 세웠다.
각 요새를 잇기 위해 대규모 텔레포트 마법진을 설치했다.
이에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었다.
사안이 중대한 만큼 부유한 귀족들의 자발적인 협조 하에 비용을 충당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귀족들은 자신과 가문의 안전을 보장 받았다.
그럼 일반인들은 버리는 카드냐면 그건 아니다.
그들을 위한 조치도 신속하게 취했다.
지정 요새만큼은 아니지만 기존의 도시의 경우 성벽을 보수하고 해당 도시의 병력을 확충한 뒤 전원 매직 스틱으로 무장시켰다.
이 모든 일은 대륙회의에서 권한을 몰아준 대륙 통합 사령부 주관으로 신속하게 이뤄졌다.
대륙 통합 사령부의 총사령관은 교황 대리를 맡고 있는 헤롯 추기경이 맡았으며, 각 왕국과 마탑에서 그를 보좌할 인재들을 파견하여 그를 보좌했다.
“늦어도 다음 달 중순까진 큰 틀의 준비는 마칠 수 있을 것입니다. 총사령관님.”
대륙 통합 사령부에 파견된 각 세력의 참모들은 혈연, 지연, 학연, 신분 따위를 초월하여 오직 실력만 보고 뽑힌 자들로 이번 일이 아니었다면 평생 빛을 보지 못하고 쓸쓸히 생을 마감했을 뛰어난 지략가들이었다.
그러한 대단한 지략가들이 모여 전쟁 준비에 필요한 설계를 마치고 업무를 분담하자 짧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성과를 이룰 수 있었다.
“다들 고생했소. 인류가 승리한다면 모두 여러분들의 공일 것이오. 후일 큰 포상을 약속하겠소.”
헤롯 추기경은 참모들의 공을 자신의 진심을 담아 치하했다.
그간 옆에서 지켜본 저들은 뛰어난 지모만큼이나 성실하게 맡은 바 임무에 최선을 다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참모들의 표정은 치하를 받았음에도 그리 좋지 않았다.
이번 일에 최선을 다했지만 그들이 예측한 결과는 최악과 차악 둘 중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착 가라앉은 참모들의 분위기를 읽은 헤롯 추기경의 시선은 그들의 대표인 참모장에게로 향했다.
“내게 할 말이 있는 분위기군. 기탄없이 말하시오.”
“그리 말씀하시니 말씀 올리겠습니다. 총사령관님 외람되지만 어스 테리우스 백작을 지금이라도 불러들이심이 어떻겠습니까?”
“그는 이미 인류를 등졌소.”
어스의 가치를 어찌 헤롯 추기경이라고 모를까.
그래서 내키지 않아도 나름 회유하기 위해 거듭 노력했다.
하나 그 모든 노력은 결국 허사에 그치고 말았다.
그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들끓는 헤롯 추기경이었다.
그러나 이젠 이전처럼 어스를 대할 수 없었다.
제아무리 교단의 위세가 높다지만 상대는 무려 9서클 대현자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결국 그도 인간이지 않습니까? 대현자이기 이전에.”
“내 이런 말까지 안 하려고 했지만 그간 참모진들의 노력과 성실함을 생각하여 밝히겠소. 어스 테리우스는 감히 이 땅에 이단의 나라를 세우려는 야욕에 빠져 있소.”
“이, 이단이라뇨?”
“이종족의 나라. 그의 최종목적이 바로 그것이오. 저 북쪽 미답지에서.”
헤롯 추기경의 말에 참모들은 모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대현자가 설마 그런 계획을 갖고 있을 줄이야.
‘마족 침공이 아니었다면 교단은 대현자를 상대로 이미 성전을 선포했을 상황이었구나!’
‘이종족의 나라라니. 대현자가 나가도 너무 나갔구나! 차악이라도 건지면 정말 다행인 상황인 건가?’
참모진들의 얼굴에 떠오른 짙은 먹구름을 보며 헤롯 추기경이 말을 이었다.
“마족에 비해 인류의 전력이 명백히 부족한 건 사실이오. 하지만 교단도 마냥 손 놓고 있는 건 아니오. 나름 준비한 것들이 있으니 준비가 끝나면 그때 이를 밝힐 것이니, 당장은 현 상황에 집중해주기 바라오.”
참모장 오스발드를 비롯해 모든 참모는 교단이 준비 중인 그것이 부디 대현자를 대체할 수 있는 수준의 수단이기를 빌었다.
* * *
‘오! 저건 엄청 큰 도시네. 시트리 족 왕국 수도인가?’
지금까지 본 그 어떤 도시보다 웅장하고 방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도시가 어스의 눈앞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의 등장을 알아차렸는지 도시 전체가 비상사태를 선포하는 소리로 가득 채워졌다.
그래봐야 저 도시의 운명은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어스가 지금까지 지나온 마을과 도시가 지금 어떤 모습이 되었는지를 생각하면.
그리고 어스는 여기서도 자신이 지나온 발자취를 남기기 위해.
‘메테오 스트라이크! 메테오 스트라이크!’
도시의 규모로 볼 때 분명 강력한 결계로 보호받을 것이다.
어스는 이를 감안하여 열 발의 메테오를 선사했다.
대기를 가르는 묵직한 굉음과 함께 도심 상공에서 거대 운석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슈아아아아아앙!
이를 발견한 고위 마족들이 즉각 요격에 나섰다.
그 수가 무려 수백에 달했다.
거대한 마나 블레이드가 운석을 향해 날아간다.
고 서클의 강력한 공격 마법이 그 뒤를 쫓았다.
이내 하늘은 거대한 굉음에 삼켜졌다.
쿠아아아아아아-앙!
거대 운석은 고위 마족들의 집중 공격을 버티지 못하고 끝내 산산이 부서졌다.
불길을 두른 작은 운석들의 파편들이 비처럼 도시에 떨어졌다.
그 파편 모두 도시를 보호하는 결계에 가로막혀 허공에서 산화했다.
그러나 저들이 상대한 운석은 열 발 중 고작 한발에 지나지 않았다.
아직 9개의 운석이 더 남아 있었다.
멀찍이 떨어져 이를 지켜보던 어스의 입이 감탄으로 동그래졌다.
‘대단하네. 저걸 요격하다니.’
역시, 마계는 마계다.
인재가 정말 차고 넘친다.
운석을 요격한 마족 중 당장 대여섯만 뤼빅스로 넘어가도 뤼빅스는 이를 감당하지 못하고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것이다.
마족들의 입에서 험한 욕설이 비명처럼 터졌다.
그 소리가 어찌나 크고 우렁찬지 바로 옆에서 들리는 듯했다.
‘그래 너희들에게 난 죽일 놈 맞아.’
그들이 내지르는 원망과 욕설을 쿨하게 받아들였다.
곧 죽어 자신의 경험치가 될 녀석들인데 그쯤 못 들어줄까.
더욱이 저들의 왕도 얼마 전 잡아 죽였으니 저들 입장에선 얼마나 애통, 분통, 절통하겠는가.
한뜻으로 뭉친 고위 마족들은 남은 운석도 요격하기 위해 젖 먹던 힘까지 짜내고 있었다.
기특할 정도였다. 제 고향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모습이.
그러한 그들의 노력이 하늘을 감복시켰는지 열 개의 운석 중 고작 하나만 무사히 도시에 떨어졌다.
놀라운 결과였다.
운석이 떨어지는 속도가 느린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운석의 크기가 작은 것도 아닐진대 열 개 중 무려 아홉 개나 요격에 성공했다.
도시에 떨어진 운석은 도시에 아무런 피해도 주지 못하고 결계에 가로막혀 부서졌다.
고열을 동반한 운석이었기에 대량의 수증기가 그곳에서 피어올랐다.
그 수증기가 채 사라지기도 전에 도시에서 함성이 터졌다.
“마, 막았다! 운석을 모두 막았어!”
“우와아아아.”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살았어, 우리 살았다고!”
저 함성과 기쁨이 과연 얼마나 갈지.
“피에 굶주린 미치광이 학살자가 저기 있다! 놈을 죽여라! 동족의 복수를 하자!”
“피의 복수를!”
“복수를!”
“우와아아아아아-!”
도시를 감싼 성벽에 설치된 거대한 기물이 어스를 향해 일제히 불꽃을 토했다.
어린아이 몸통만 한 크기의 탄이 매서운 파공음을 일으키며 쇄도했다.
어스는 이를 피하지 않고 제 자리에서 오연히 이를 응시했다.
당연히 자신의 생명력 하나 믿고 버티는 건 아니다.
12겹의 앱솔루트 쉴드를 믿고 자리를 지켰다.
시야를 가득 채우고 들이닥친 탄이 앱솔루트 쉴드와 충돌했다.
쾅쾅쾅쾅쾅쾅-!
거대한 폭발력에 대기가 이지러지고, 지면은 충격파에 의해 거북이 등껍질 갈라지듯 갈라졌다.
그 대지 위를 새하얀 불길이 위세를 떨쳤다.
‘헐, 헬파이어급 화력이라니.’
자신의 헬파이어엔 부족하지만 그래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의 위력이었다.
이 공격으로 인해 12겹의 앱솔루트 쉴드 중 하나가 ‘와작’하고 깨졌다.
조금 놀랐다.
설마 궁극의 9서클 방어 스킬이 깨질 것이라곤 아예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아직 나에겐 11겹의 쉴드가 남았어.’
귀를 먹먹하게 만들던 폭음과 연무가 걷히자마자 운석 요격에 나섰던 고위 마족들이 지척까지 접근했다.
놈들은 그를 다 잡은 물고기로 생각한 듯 의욕이 넘쳐흘렀다.
“파멸의 검!”
“유부의 울부짖음!”
“절망의 바람!”
어스는 눈앞에서 펼쳐지는 그랜드 소드 마스터의 전력을 다한 공격과 8서클 현자들의 맹렬한 마법을 방해하지 않았다.
돈 주고도 볼 수 없는 진귀한 광경이기도 하거니와 저 공격에 과연 앱솔루트 쉴드가 어디까지 견디나 궁금했다.
전력을 다한 그들의 공격에 11겹의 앱솔루트 쉴드 중 4개가 박살 났다.
‘제법이네.’
어쩌나 그래도 아직 7개나 남았는데.
그리고 필요하면 이보다 더 많은 수의 앱솔루트 쉴드도 문제가 아닌데.
여유가 넘치는 어스와 달리 그를 죽이고자 하는 고위 마족들에겐 여유가 없었다.
다들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당연하다.
앞서 9개나 되는 운석을 요격한 데다 그것도 부족해 한달음에 달려와 전력을 다한 공격까지 퍼부었으니 제아무리 고위 마족이라도 버틸 재간이 없는 것이다.
어스처럼 포션으로 힘을 단숨에 회복할 수 있다면 사정은 달라지겠지만 아쉽게도 뤼빅스와 마계를 통틀어 그런 존재는 어스 단 하나뿐이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힘들 냅시다!”
조금 힘내서는 어림반푼어치도 없을 텐데.
이쯤 맞아줬으니 슬슬 다시 메테오를 날려도 되리라.
이번엔 한 스무 개쯤 떨궈줄 생각이다.
어스는 철옹성의 마나를 뺏었다.
참고로 이번에 아이템을 흡수한 철옹성은 기존 기능 중 하나가 성장했다.
마나 충전이 기존 15,000에서 50,000으로 증가했다.
5만이란 이 수치는 9서클 스킬 5번을 사용할 수 있는 양이다.
어스는 여기에 더 보태 본신의 마나 15만을 더 사용하여 스무 발의 메테오를 도시에 떨구었다.
이를 지켜보며 느긋하게 특제 마나 회복 포션을 마셨다.
철옹성의 마나도 채우고 본신의 마나 역시 채웠다.
뒤늦게 자신들의 도시에 운석이 떨어지는 걸 본 고위 마족들이 부랴부랴 도시로 날아갔다.
다들 힘이 빠진 상태라 제시간에 도시 상공에 도착하더라도 요격은 힘들어 보였다.
과연 어스의 예상대로 그들은 손도 쓰지 못하고 도시로 속속 떨어지는 운석을 지켜보아야만 했다.
“아, 안 돼애애애애애애-!”
울분에 찬 그들의 비명은 결계를 깨부수고 들어간 운석이 일으키는 파괴적인 굉음에 삽시간에 먹혀버렸다.
20개의 버섯구름이 현장에서 하늘 높이 치솟았다.
충격의 여파는 도심에서 제법 떨어진 언덕을 단숨에 무너뜨렸고, 푸른 숲을 갈가리 찢어발겼다.
눈앞에서 자신들의 도시가 사라진 것을 목격한 고위 마족들은 피눈물을 흘렸고, 어스는 파도처럼 밀려오는 알람에 슬며시 미소 짓고 있었다.
-레벨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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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인이 마구 쌓인다.
아이템도 간간이 떨어졌다.
안타깝게도 어느 쪽에도 적용할 수 없는 쭉정이라 이에 살짝 실망했다.
자신의 터전을 구하는 데 실패한 마족들이 피눈물을 철철 흘리며 어스를 향해 몰려들었다.
이번엔 엘리멘탈 피니쉬먼트를 아낌없이 그들에게 베풀었다.
기진맥진한 상태여서인지 중첩까지 갈 필요 없이 놈들을 모조 죽일 수 있었다.
-고위 마족(후작)을 처치했습니다.
-고위 마족(백작)을 처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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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레벨업!
상공으로 이동하여 초토화된 지상을 살핀 뒤 어스는 곧 이곳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그가 사라지고 얼마 후 파괴의 흔적만 남은 장소로 회색 피부의 고모리 족, 소머리의 모락스 족, 까마귀 머리의 말파스 족이 대거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눈앞에 펼쳐진 전경에 얼어붙고 말았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너무 늦었군.”
“학살자 그놈은 대체 정체가 뭐지? 정말, 인간이 맞긴 맞는 건가?”
“참담한 노릇이군. 마계가 고작 인간 하나 따위에게 휘둘리는 날이 올 줄이야. 이것이 말세가 아니면 대체 무엇이 말세일까.”
약육강식의 냉혹한 율법이 지배하는 마계이나 그때 그 시절에도 지금처럼 무차별적인 학살은 없었다.
그런데 그런 신 역사를 지금까지 열등한 존재로 여겼던 인간이 해내고 있었으니 다들 할 말을 상실했다.
인간에 대한 그들의 시각이 달라졌다.
인간도 마족의 천적이 될 수 있음을 뼈저리게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