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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로 성장하는 마법사-229화 (229/250)

229화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는 말이 있다.

실리시아로의 이주를 가족들에게 통보한 바로 다음 날 어스는 충격적인, 아니 황당한 소식을 접했다.

그건 바로.

“왕세자 저하가 여긴 무슨 일이십니까?”

“놀랐나? 놀랐군.”

왕성에 있어야 할 칼렉 왕세자가 몸소 테리우스 영지까지 찾아온 것이다.

인원은 단출했다.

왕실 근위대 단장이자 개인적으로 왕국 3대 소드 마스터 중 한 명인 알렉터 코넬리 후작 외 2명의 기사가 전부였다.

인원은 단출했지만 경호로 소드 마스터를 동행했으니 질적으론 충분히 차고 넘쳤다.

“그야 당연히 놀랄 수밖에 없는 상황이잖습니까? 한데, 오신다는 연락도 없이 갑자기 무슨 일이십니까?”

“얼마 전 대륙회의가 있었네.”

마족이 대거 등장한 이상 당연히 열릴 것이라 생각했기에 딱히 놀랍진 않았다.

오히려 칼렉 왕세자의 출현이 어스에겐 더 놀라운 일이었다.

귀족원의 수장이자 귀족파의 수장이기도 하며 개인적으론 소드 마스터인 하츠 노멜 후작이 지병을 핑계로 자신의 영지로 내려가 귀족파의 힘이 다소 약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한 머릿수로 인해 잠시도 그들의 견제를 늦출 수 없는 것이 현재 칼렉 왕세자의 처지였다.

그러한 그가 왕도 내도 아니고 이 먼 테리우스 영지까지 내려왔으니 얼마 전 열렸다던 대륙회의에서 자신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 게 아닐까 싶었다.

대단히 안 좋은 쪽이리라.

‘마족의 침공이 기정사실화했는데도 나에 관한 이야기를 한 것이라면 저들은 마족보다 내가 더 위험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봐야겠지.’

왕세자가 직접 내려온 것으로 보아 결코 좋은 일은 아니리라.

어스가 최악의 경우로 산정하는 건 단 한 가지였다.

대륙 곳곳에 흩어져서 험하게 다뤄지는 이종족 노예와 혼혈을 저들이 끝까지 내어주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그 일로 왕세자가 몸소 찾아온 건 이해하기 힘들었다.

솔론 왕국에도 이종족 노예와 혼혈이 있다지만 앞서 칼렉 왕세자와 그를 지지하는 왕당파 귀족들은 자신들이 거느린 혹은 영향력이 닿는 자들에 한해 소유한 이종족 노예를 팔도록 영향력을 행사한 바 있었다.

덕분에 다수의 이종족 노예와 혼혈을 실리시아로 보낼 수 있었다.

물론 그에 합당한 가격은 지불했다.

그렇다고 해도 고마운 일이다.

“저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 건가 보군요?”

“마족 침공이 확실시되는 불안한 상황에서도 그들은 자네 목에 목줄을 걸고 싶어 하더군.”

“목줄이요?”

어처구니가 없다.

감히 대현자의 목에 목줄이라니.

아직 이를 밝히지 않았다지만 그래도 명색이 현자요, 1천의 마족을 단신으로 몰살한 장본인이다.

머리가 장식이 아니라면 오히려 눈치를 보고 설설 기어야 이치에 맞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주제도 모르고 분수는 더더욱 모르고 날뛰고 있으니 제대로 망해봐야 그제야 ‘아차! 내가 지 정신이 아니었구나!’ 이리 후회하며 정신을 차리지 않을까 싶다.

“백작의 작위와 영지를 회수하라는… 하아, 그런 권고를 받았네. 이 나라의 왕세자로서 당당히 거부해야 마땅하지만 그러지 못했네. 미안하네. 백작.”

“국왕 대리이긴 하나 아직 국왕이 아니시지 않습니까? 그리고 저하가 짊어지신 막중한 책임감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사과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예까지 오신 것만으로도 전 충분합니다.”

“…. 미안하네.”

“그 말씀도 거두십시오. 작위와 영지를 반납하도록 하겠습니다. 솔론이 아니라 왕가에 반납하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던 테리우스의 주도는 과거를 탈피하여 현재 성곽 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

여기에 들어간 자원이 적지 않다.

그걸 고스란히 귀족파가 가지게 할 순 없다.

“맡아 주겠네. 언젠가…”

“아뇨,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앞서 왕가가 보유한 이종족 노예와 혼혈을 무상에 가까운 액수로 넘겨주신 것으로 충분합니다. 이 영지는 왕가의 것입니다. 만약, 이를 다른 이가 탐낸다면 그땐 현자인 제가 직접 그를 방문할 것입니다. 물론, 좋은 의도의 방문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니 이 땅을 탐내는 자가 있다면 그땐 제 이름으로 경고하십시오. 현자를 빡치게 하지 말라고요. 아! 상스러운 단어였네요. 빡이라니. 하하.”

“…그대는, 그대는 나를 참으로 미안하게 하는군.”

“미안해하실 필요도 없습니다. 사실 작위와 영지를 반납하기로 이미 마음먹은 상태였습니다.”

“이미?”

“그것도 바로 어제 저녁이었죠. 수일 이내로 영지를 비우겠습니다.”

“미답지로 갈 생각인가? 하지만 그 길이 쉽지 않을 텐데?”

“저 현잡니다, 현자. 그쯤은 제겐 일도 아닙니다. 다만, 이번에 제가 미답지로 가게 된다면 이후 세상일에 관여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자신의 목에 목줄을 채우려는 심보는 자신을 배제하기 위함이 아니라 부리기 위함이다.

마족이란 위험 요소가 대두된 상황에서 자신보다 부리기 좋은 말은 없을 테니까.

그러나 그들은 생각을 잘못했다.

이런 방식이 아니라 앞서 베로니카 단장에게 했던 제안을 승인했어야 했다.

그랬다면 귀찮더라도 성가시더라도 마족 처리에 앞장섰을 테지만 그들은 지인들의 가슴에 비수를 박는 짓을 서슴지 않는 뒤통수를 준비했다.

대체 누가 이런 계략을 세웠는지 그 머릿속이 궁금할 지경이다.

아무튼 어느 멍청한 작자의 머릿속에서 나온 계략인지는 모르지만 이로 인해 향후 저들이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할 때, 그때 저들은 엄청난 값을 치러야 할 것이다.

“바쁘신 걸음 하신 왕세자 저하를 위해 가시는 길 빠르고 편리하게 모시겠습니다.”

칼렉 왕세자는 텔레포트 마법진을 예상했다.

그의 수행원들 역시 그리 생각하였다.

그런데.

두둥.

눈앞에 웬 신비로운 문이 생기는 게 아닌가?

칼렉 왕세자는 물론 그 수행원들까지 다들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들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저것이 공간 이동 마법의 최고 단계인 워프 게이트임을.

그러나 이는 저들의 문제가 아니다.

“저, 저것은 무엇인가?”

“워프 게이틉니다. 저길 들어가시면 바로 왕세자 궁 후원이 나올 것입니다.”

어스의 입에서 나온 워프 게이트!

그 단어에 모두가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그리고 향후 이 일이 알려질 경우 발생할 파장이 저절로 눈앞을 스쳤다.

8서클 현자의 출현에도 난리가 났던 마탑과 마법사들이다.

하물며 인간은 도달할 수 없는 궁극의 경지로 알려진 9서클 대현자에 고작 열일곱 소년이 올랐으니 비단 마탑과 마법사뿐만 아니라 대륙 전체가 발칵 뒤집힐 대사건이라 해야 할 것이다.

마족의 침공이 거의 확실시 된 시점에 탄생한 9서클 대현자!

칼렉 왕세자는 생각했다.

인류는, 아니 교단이 터무니없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고.

그런데 그 대가가 교단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안타까웠다.

지금이라도 그를 붙잡아야 한다.

애타는 마음으로 고개를 돌린 칼렉 왕세자는 어스의 두 눈을 보곤 힘없이 고개를 내저었다.

바짓가랑이를 잡고 매달려도 돌아서지 않을 눈빛이었기 때문이었다.

“안녕히 가십시오.”

“대, 대현자의 자비를 부탁드립니다.”

칼렉 왕세자는 진심을 담아 어스를 향해 깊이 머리 숙였다.

그러곤 쓸쓸한 표정으로 놀란 수행원들과 함께 워프 게이트에 발을 디뎠다.

담담한 표정으로 칼렉 왕세자를 배웅한 어스는 언제 그랬냐는 듯 잔뜩 화난 얼굴로 푸리엘을 불렀다.

“짐 싸.”

번갯불에 콩, 아니 그렇게 어스 일가와 이종족 그리고 혼혈들이 테리우스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 * *

“어스 테리우스 백작이 9서클이라고?”

“칼렉 왕세자와 알렉터 코넬리 후작이 직접 확인했다고 합니다.”

“마, 말도 안 돼. 그는 고작 열일곱이야?”

“이미 현자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깨달음에 나이가…그냥 그러려니 하지요.”

왕궁으로 복귀한 칼렉 왕세자는 어스에 관한 이야기를 발등에 불이 떨어진 사람처럼 사방에 알렸다.

이는 그의 어림짐작이 크게 작용한 대응이었다.

칼렉 왕세자의 어림짐작의 근거는 텔레포트 마법진으로 자신들을 이동시켜 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자신들 앞에서 워프 게이트를 선보인 이유에서였다.

당연히 마탑과 마법사들 역시 발칵 뒤집혔다.

비단 저들만이 아니었다.

각 왕국과 그리고 그들을 좌지우지했던 교단 역시 뒤통수를 세게 맞은 사람처럼 한동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소문은 점점 아래로 퍼져 일반 백성들에게까지 알려졌다.

사람들은 초지를 찾아 헤매는 유목민처럼 테리우스 영지로 몰려들었다.

성벽과 건물만 덩그러니 있을 뿐 그 안에 있어야 할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어디 사람뿐이랴.

가축 한 마리 찾아볼 수 없었다.

어스에 관한 소문이 퍼진지 3일도 안 된 상황이라 더더욱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어스 테리우스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그 해답은 곧 찾을 수 있었다.

덩컨 대협곡 너머 미답지였다.

사람들은 다시 북쪽으로 움직였다.

그러나 그중 단 한 명도 덩컨 대협곡 너머로 발을 디딜 수 없었다.

미답지와 면한 대협곡에 전에 없는 거대한 골짜기가 떡하니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며칠 전만 해도 보이지 않던 거대한 골짜기는 모두를 충격에 빠트렸다.

그리고 이를 본 사람들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저 거대 골짜기를 만든 장본인의 의중에 대해 추측하며 일제히 탄식했다.

‘교단 때문에 우린 대현자의 외면을 받게 됐어.’

‘마족이 언제 침공할지 모르는 이때에 대현자와 척을 지다니.’

누군가는 교단을 원망했고.

‘끝까지 현자님, 아니 대현자의 편에 섰어야 했는데.’

누군가는 현실에 타협하여 관망한 사실을 후회했다.

원망과 후회 그리고 아쉬움이 뤼빅스 전역을 강타한 그 시간, 정작 대륙을 충격과 혼란에 빠트린 장본인은 엉뚱한 곳에 가 있었으니 그곳은 바로.

-하급 마족을 처치했습니다.

.

.

-상급 마족을 처치했습니다.

-레벨업!

-레벨업!

-고위 마족(백작)을 처치했습니다.

-아이템을 발견했습니다.

-아이템을 습득할 수 있습니다.

-철옹성에 결합할 수 있습니다.

-아이템을 철옹성에 결합하시겠습니까?

“오! 대박. 무조건 콜!”

승낙을 부르짖고 있었다.

그냥 고위 마족도 아니고 무려 백작의 작위를 가진 고위 마족이 주는 아이템이다.

그러니 어찌 기대와 흥분을 누를 수 있겠는가.

-아이템 활성화까지 72시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당분간 철옹성을 사용할 수 없게 되었지만 까짓것 그게 대수이랴.

* * *

시트리 왕국을 다스리는 마왕성으로 급보가 날아들었다.

“검은 탑 요새가 점령당했습니다.”

이에 마왕성이 발칵 뒤집혔다.

어떤 이는 살의를.

어떤 이는 허탈감을.

어떤 이는 조용히 은퇴를 떠올렸다.

마족이라 하여 모두가 용맹한 것은 아니기에.

시트리 족 마족을 다스리는 군주는 크고 웅장한, 그러면서도 살벌한 느낌이 물씬 풍기는 왕좌에서 한 점 흐트러짐 없는 태도로 급보를 전달받았다.

“마, 마왕님 소신이 나아가 그자의 수급을 베겠습니다.”

“소신을 보내주십시오!”

살의를 풍겼던 자들이 앞다투어 마왕에게 청하였다.

아홉 개의 뿔이 흡사 왕관을 닮아 더더욱 위풍당당한 모습의 마왕은 잠시 감았던 눈을 그제야 떴다.

풍성한 마왕의 적색 갈기가 흡사 한올 한올 모두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움직였다.

뭇 신하들이 이에 놀라 황급히 고개를 조아리며 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수치스럽군.”

묵직한 그 한마디와 동시에 시트리 왕국의 지배자는 왕좌에서 몸을 일으켰다.

4미터에 육박하는 장신의 육체는 오밀조밀한 근육으로 꽉 채워져 있었다.

저 근육이 잘게라도 떨리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잘 알고 있는 마왕의 신하들은 더더욱 넙죽 엎드렸다.

“짐이 직접 봐야겠군. 기다리도록.”

마왕이 선언했다.

그 누구도 그 선언에 반박하지 않았다.

마왕의 뜻은 곧 하늘의 뜻.

하늘이 움직이겠다는데 한낱 미물이 어찌 그 뜻을 막아 세울 수 있으랴.

“마왕의 뜻을 받듭니다!”

“만세, 만세 만만세!”

“마왕께 영광이!”

그렇게 마왕은 움직였다.

뭇 신하들의 목소리를 뒤로하고서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대전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자신의 왕국을 어지럽히는 열등한 생명체를 박살 내기 위해, 마왕이 몸소 출동한 것이다.

왕국 대 왕국의 전면전이 아닌 개인을 상대로 마왕이 직접 움직인 건 역사에 길이 남을 대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더욱이 인간 따위를 상대로 마왕이 직접 나선 것이라 그 의미는 당연히 남다를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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