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7화
단숨에 영지로 귀환한 어스를 푸리엘이 맞이했다.
그녀에게선 전투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일단 안심.
시선을 돌려 창밖을 보니 그곳 역시 여느 날과 다름없었다.
마족이 자신에게나 경험치지 그 외 사람들에게 있어 재앙이다.
그럼에도 이처럼 평화로울 수 있다는 것이 한편으론 이상하고 다른 한편으론 그만큼 테리우스 영지의 전력이 강력하다는 반증과도 같은 말이었기에 안심됐다.
“어떻게 된 거야?”
“30분 전 마족들이 서쪽 성벽을 넘어 주도에 침입했습니다. 알람이 작동하자마자 곧장 정령들을 보내어 놈들의 발목을 잡은 뒤 수비대가 출동했습니다.”
알람 마법이 보조마법이라곤 하지만 성벽마다 설치하는 건 어렵다. 경제적으로 부유한 영지에서도 감히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마법사의 인건비는 비싸기 때문이다.
설치용 알람 마법 물품이 없는 건 아니지만 실외에 설치하는 것이라 최대 3일이 한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물건의 가격은 300테스에 육박하고 있었다.
이는 도시 직장 생활자의 한 달 월급이다.
고작 알람 마법이 누군가의 한 달 월급일 수 있게 된 원인은 던전 때문이다.
던전 출현 전만 하더라도 알람 마법 물품의 가격은 70~80테스의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테리우스 영지의 주도를 둘러싼 성벽에 모두 이 알람 마법 물품을 설치했냐 하면 그건 아니다.
마법사들이 직접 설치했다.
던전 출현과 동시에 몸값이 폭등한 마법사들이 말이다.
이 일이 가능했던 이유는 인간보다 마법의 재능을 선천적으로 타고난 이종족이 많은 덕분이었다.
“침입한 마족이 하난가?”
“넷이었습니다.”
소드 마스터 넷이면 국가급 전력이라고 봐야 한다.
그런데 그걸 막아 낸 것도 모자라 생포까지 해버렸단다.
자신의 영지지만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래, 넷이구나. 흠흠. 그럼 인명 피해는?”
“열두 명이 사망하고 서른여섯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습니다. 부상자 중 스무 명은 영구적인 신체 손상을 입었습니다.”
인명 피해를 보고하는 푸리엘의 표정엔 분함이 서려 있었지만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전쟁엔 항상 피해가 따르는 법이니까.
그리고 48명의 희생과 부상으로 마족 네 명을 생포한 건 큰 성과였다.
앞서도 언급했듯 소드 마스터 넷이면 국가급 전력으로 봐야 하기 때문이다.
“설마 그들만으로 마족들을 상대한 건 아니지?”
“동원된 병력은 총 150명입니다.”
일반적인 영지의 경우 150명을 동원해봐야 마족의 일검도 받아 낼 수 없다.
그러나 이곳 테리우스 백작 영지의 병사들은 전원 이종족이었기에 그와 같은 일이 가능할 수 있었다.
“놈들은?”
“마법적인 조치를 취한 뒤 지하에 감금했습니다.”
“일단 병동으로 가지.”
푸리엘을 앞세워 병동에 도착한 어스는 입구에서부터 비릿한 혈향을 맡고 멈칫했다.
곧 이를 무시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영주님을 뵙습니다.”
“영주님을 뵙습니다.”
“신체가 훼손된 자들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줘.”
병실로 들어간 어스는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팔이 아예 없는 자도 보이고, 양 다리가 허벅지까지 잘린 자들도 더러 보였다.
깨어 있는 자들은 없었다.
어스는 부상자들을 향해 레스토레이션을 시전했다.
8서클의 이 스킬은 사지와 눈을 잃은 자들을 단숨에 정상으로 만들어버렸다.
더해 그들의 자잘한 병까지 모조리 사라졌다.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자들은 하나 같이 놀랐다.
“나 현자인 거 잊었어? 새삼스럽게.”
자신의 땅을 위해 열심히 싸워준 이들에게 온전한 신체와 건강을 선사할 수 있어 어스는 내심 뿌듯했다.
경외감을 담은 이종족들의 시선을 잠시 즐긴 어스는 푸리엘을 앞세워 지하 감옥으로 향했다.
감옥으로 들어서자마자 어스의 표정은 냉기가 풀풀 날렸다.
“충!”
“충!”
간수들의 인사를 뒤로한 어스는 사지 근맥이 모조리 잘리고 이에 더해 단전마저 철저하게 망가진 포로들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의 눈엔 증오와 원망이 가득했다.
그런 그들의 목엔 어김없이 철로 만든 띠가 장착되어 있었다.
“저건 뭐야?”
“폭발 마법이 담긴 마법 물품입니다. 허가 없이 감옥 밖으로 나오면 즉시 폭발하도록 세팅되어 있습니다.”
저런 마법 물품이 있는 건 이번에 처음 알았다.
“철저하네.”
“상대는 마족이니까요.”
간수가 철문을 열자 어스는 안으로 들어갔다.
“너희가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으냐!”
늑대 머리의 마족이 송곳니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그러게 월담은 왜 하고 지랄이야? 참, 내 소개를 하지 너희가 월담한 이곳의 주인이다.”
“어스 테리우스?”
“단번에 알아보네. 그런데 그 이름보단 너희 세계에선 학살자로 더 유명하지.”
늑대 머리 마족의 눈이 커졌다.
비단 저 하나만이 아니라 다른 셋도 마찬가지였다.
마족들의 분위기가 180도 바뀌었다.
그러나 이건 잠시였다.
자신들의 처지를 떠올린 놈들은 이래죽나 저래죽나 매한가지라고 생각한 듯 독기를 피워 올렸다.
그런다고 쫄 어스가 아니다.
“날 노린 거야? 고작 넷이서?”
“죽여라!”
“응, 안 그래도 죽일 거야. 그전에 궁금한 게 있어서 찾아왔어. 너희들이 신전을 공격한 놈들이니?”
놈들은 입을 꾹 다문 입도 벙긋하지 않았다.
“말하지 마. 그건 너희 자유니까. 그럼 여긴 왜 왔어? 혹시, 날 암살하려고 온 거야?”
이번에도 묵묵부답.
이에 대한 보답으로 어스는 한 손에 헬파이어를 생성했다.
실내인 점을 감안하여 작게 만들었다.
이렇게 작게 만들어도 들어가는 비용(?)은 같다.
똑같이 5,000의 마나가 든다.
덩치는 작지만 새하얀 불꽃이 가진 힘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린 것인지 놈들의 몸이 눈에 띄게 떨리고 있었다.
어스는 별말 없이 맨 좌측에 있는 마족에게 헬파이어를 던졌다.
발끝에 닿은 헬파이어는 심지를 타고 움직이는 불꽃처럼 이동했다.
“크아아아아-!”
헬파이어가 지나간 부위는 재만 남았다.
몸이 불에 타는 고통만큼이나 자신의 몸이 실시간으로 재가 되는 장면을 보는 것 역시 끔찍한 경험이었다.
육신과 정신 모두.
그리고 다음이 자신의 차례라는 걸 아는 자들은 하나 같이 공포에 질려버렸다.
부들부들.
새하얀 불꽃은 곧 마족의 전신을 집어 삼켰다.
-하급 마족을 처치했습니다.
“하급 마족이었군.”
어스의 시선이 옆으로 이동했다.
그와 눈이 마주친 마족은 급히 고개를 조아렸다.
놈에게서 지린내가 확 올라왔다.
마족도 겁에 질리면 지린다는 걸 이번에 알았다.
어스의 독한 손속은 푸리엘 마저 놀라게 만들었다.
그녀의 목에서 마른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신경 쓰였지만 모른 척했다.
애써 잡은 분위기를 망칠 수 없었다.
“너도 말 안 할래?”
“…무, 무엇을 묻고 싶은 거냐?”
놈은 굴복했다.
다른 두 놈의 입에서 동시에 한숨이 흘러나왔다.
안도의 한숨 같았다.
* * *
바레모스, 톨로레스, 레이레아는 뤼빅스에서 괴물 마법사로 불리는 어스가 마계에서 악명을 떨치고 있는 학살자인지의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 교단의 손에서 구출한 마족을 투입했다.
이들을 투입한 이후 세 고위 마족은 주도가 내려다보이는 산등성이에 은신하여 지켜보았다.
그러나 결과는 그들을 실망시켰다.
집주인은 아예 나오지 않고 집 지키는 개(?)들에게 네 마족 모두 털리는 어이없는 상황이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역시 이종족이군. 우리가 이종족을 너무 얕본 것 같아.”
“그야 당연하잖아. 하등한 인간 따위에게 패해 땅도 잃고 거기다 노예로 부려지고 있잖아. 이걸 보고 이종족을 높게 평가한다는 것 자체가 오히려 더 문제 아냐?”
바레모스의 말에 레이레아가 반박했다.
“지금 그게 중요해? 정작 어스 테리우스란 인간이 학살자인지 아닌지 확인하지 못했다고. 차라리 우리가 알아보는 건 어때?”
세 고위 마족은 여전히 산등성이에 머물러 있었다.
톨로레스의 말에 바레모스는 고개를 내저으며 반문했다.
“괴물 마법사로 불리는 저 땅의 영주가 학살자면?”
“아닐 수도 있잖아?”
“놈에 대한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학살자일 확률이 높아. 스물도 안 된 놈이 8서클 경지를 이룩했어. 마계에서도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야. 그런데 고작 인간나부랭이가 그 나이에 8서클이야. 이게 일반적이라고 생각해?”
“그럼 놈을 학살자로 규정하면 될 걸 왜 애꿎은 애들을 보낸 거냐?”
“보다 확실하게 하기 위함이었어. 그건 너도 동의했잖아? 왜 이제 와서 딴소리야.”
바레모스의 타박에 톨로레스는 입을 삐죽이며 고개를 돌렸다.
그런 톨로레스의 눈이 커졌다.
한 손에 창을 쥐고 있는 소년이 나뭇가지에 걸터앉아서 이쪽을 빤히 응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순간 톨로레스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바레모스, 레이레아 저기 저쪽을 봐라.”
톨로레스가 또 무슨 헛소리를 하나 싶어 고개를 돌렸던 두 마족은 튕기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웬 놈이냐!”
“긴가민가했는데 다들 마족이네. 모습은 왜 그래? 마족인 게 부끄러워서 인두겁을 쓴 거야? 아니, 마법인가?”
어스는 무형 장벽을 두른 채 놈들 앞으로 블링크를 시전했다.
어스의 당당함과 마법 실력에 세 고위 마족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숨 쉬듯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는 그의 마법 실력에 다들 놀란 것이다.
그리고 저처럼 마법을 사용하는 자에 대해 그들은 알고 있었다.
바로 이 땅의 주인.
“어스 테리우스인가?”
바레모스가 일행을 대표하여 앞으로 나서 말하였다.
“폴리모픈가 보네. 나도 여유가 되면 사고 싶었는데. 부럽다, 제한 없이 마법 배울 수 있어서.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가지? 나도 너희를 이해할 수 없더구나. 그래도 이 말은 꼭 하고 싶네. 고맙다, 너희 덕분에 콧대 높은 교단이 협상이란 카드를 들고 찾아왔거든. 하지만 그건 그거고 오늘 한 짓거리는 선을 넘었어. 내 소중한 부하가 열둘이나 죽었어. 그러니 이 자리에서 내 부하들의 목숨값을 받아야겠다. 그러니 단단히 준비하고 덤벼.”
놈들을 굳이 살려둘 필요는 없다.
놈들이 신전을 공격하여 교단에 자신의 필요성을 높여주었지만 앞서 두 번의 신전 테러만으로 충분했다.
거기다 마계 침공이 본격화되었다고밖에 볼 수 없는 글리시아 남작 영지 사건도 있었기에 얄짤 없이 이 자리에서 처리할 생각이었다.
그럼에도 진작 처리하지 않은 건 놈들이 뤼빅스에 와서 그간 뭘 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순순히 말해줄 경우엔 들어줄 용의가 있지만 이처럼.
“죽엇!”
“차앗!”
주둥이가 아닌 칼질부터 들어오자 그 마음도 싹 사라졌다.
소드 마스터의 마나 블레이드보다 더 압축된 마나 블레이드가 어스를 향해 번개처럼 다가왔다.
두 개의 마나 블레이드는 무형 방벽을 뚫지 못하고 멈추었다.
자신들의 검이 막힌 것에 두 고위 마족은 깜짝 놀랐다.
어스를 노린 건 비단 마나 블레이드만이 아니었다.
마법 역시 그의 목숨을 노렸다.
그러나 상대의 마법은 완성하기도 전에 그 주인과 함께 폭사했다.
하늘에서 떨어진 번개를 맞고.
“레, 레이레아!”
“마, 말도 안 돼. 고작 콜 라이트닝 따위에 레이레아가 당하다니!”
바레모스와 톨로레스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나처럼 내 마법도 특별해서 그래.”
“튀어!”
“칫.”
바레모스와 톨로레스는 도주를 선택했다.
소기의 목적은 일단 달성했으니까.
그러나 둘은 어스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공간 이동 마법을 펼친다면 모를까 앞서 레이레아가 당하는 바람에 이는 바랄 수 없는 처지였다.
그렇다고 그들의 움직임이 느린 건 아니다.
명색이 고위 마족이자, 그 실력은 그랜드 소드 마스터씩이나 되니 말이다.
그럼에도 놈들은 전력을 다한 도주에 제동이 걸렸다.
자신들보다 더 빠른 마법이, 아니 스킬이 몸을 후려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프로즌 템페스트(+3/12).
냉기의 폭풍우였다.
지력 스탯 45,159가 더해진 스킬은 이전보다 훨씬 강력하여 냉기에 대한 저항력이 높더라도 버틸 수 없었다.
-고위 마족을 처치했습니다. 5만 코인을 습득합니다.
톨로레스는 한발도 떼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았다.
냉기 저항력이 없어 벌어진 결과였다.
있든 없든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겠지만.
반면 바레모스는 프로즌 템페스트의 살상반경을 무사히 탈출했다.
달리는 속도가 가히 번개를 연상시켰다.
놈의 전신을 뒤덮은 서리도 어느새 마기에 의해 순식간에 증발했다.
말보다 빠른 건 생각이다.
생각만으로도 스킬 시전이 가능한 어스는 콜 라이트닝을 선사했다.
찰나의 순간에 백 개쯤 떨구자 그중 두 방을 맞은 녀석은 감전된 개구리마냥 몸을 활짝 펼치다 이내 쪼그라들었다.
-고위 마족을 처치했습니다. 5만 코인을 습득합니다.
‘청명한 저녁 하늘에 벼락 다발이라니…가족들이 많이 놀라겠네.’
찾아다니기 귀찮을 뿐 눈에 띄면 그냥 죽는다.
상대가 뭐든 그렇게 만들어버릴 능력을 가진 괴물 마법사는 느긋하게 몸을 돌렸다.
교단에 생색을 내야 하는데, 아무래도 저 녀석들을 죽인 건 당분간 비밀에 부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