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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로 성장하는 마법사-221화 (221/250)

221화

교단은 어스를 블랙리스트에 올렸다.

그럼에도 교단이 어스를 지금껏 용인한 건 그가 자신들에게도 필요한 구석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테른 마을에서의 사건을 이용하여 어스를 물어뜯었을 것이다.

자근자근.

참고로 레아 왕국 수사대의 빠른 공식 발표 역시 그 이면엔 교단이 힘을 쓴 덕분이다.

또한 제2, 제3의 어스를 향한 공격이 이어지지 않은 것 역시 마찬가지다.

“아직도 불만이냐? 거스티.”

“…….”

베로니카 단장은 얼굴에 살얼음을 깔고 고개를 돌렸다.

그런 그녀의 전방엔 파괴의 흔적이 역력한 신전이 위태롭게 서 있었다.

“보아라, 마족이 저지른 짓이다. 그리고 놈들의 만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 네가 어스 테리우스를 잡기 위해 함정을 팠던 테른 마을과 같은 마을이, 도시가 늘어날 것이다.”

“룬께서 지켜주시는 교단은 강합니다. 굳이 그자의 힘까지 빌릴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거스티의 고집에 베로니카 단장의 입에서 탄식이 나왔다.

“그래 우리의 신은 강하지, 하지만 신은 결코 우리를 위해 길을 내주시진 않는다. 우리가 그분을 위해 길을 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길에 큰 걸림돌이 생겼다. 우리의 힘만으로 뿌리 뽑을 수 있을지 나는 장담할 수 없구나. 누구보다 교단이 가진 역량에 대해 잘 아는 나도, 그리고 헤롯 추기경님도 그러하다. 그런데 넌 어찌하여 그리 장담하는 것이냐?”

“사람은 고난과 시련을 통해 성장합니다. 마족이란 존재 역시 전 그리 봅니다. 물론, 큰 희생이 뒤따르겠지만 과거 종족 전쟁에서 약체였던 인류가 승리하였듯 마족 역시 이겨 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스 테리우스 그자가 아닌 교단이 되어야 한다고 저와 동료들은 믿고 있습니다.”

“형제자매의 주검과 선량한 신도들의 시신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느냐?”

“순교는 인간이 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선하고 아름다운 행윕니다.”

“미친놈.”

더는 들어줄 수 없었던지 베로니카 단장의 입에서 험악한 말이 튀어나왔다.

이에 놀랐지만 거스티는 자신의 감정을 추스르며 꿋꿋이 베로니카 단장을 응시했다.

“널 교단에서 파문한다. 너와 동조한 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또한 성전단에서도 너희를 영구 제명하겠다. 너희의 행동은 교단과 인류의 저력을 깎는 짓이다. 순교? 그래 이것이 박해의 산물이라면 나 역시 순교를 신이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하며 달게 받을 것이다. 그러나 마족은 아니다. 이는 헤롯 추기경의 뜻이기도 하다. 받아들이겠는가?”

기회를 줬으나 끝내 이를 거부하였기에 베로니카 단장은 자신의 뼈를 잘라내는 심정으로 이를 통고했다.

거스티의 표정이 눈에 띄게 흔들렸다.

파문은 성직자의 지위를 내려놓는 것으로 끝난다.

그러나 제명은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

“수, 수장과 단장님의 뜻을…좇겠습니다. 하지만 저와 제 동지들의 뜻은 죽어서도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룬께서도 이런 저희를 어여삐 여겨주실 겁니다.”

상대의 가슴을 후벼 파는 말로 유언을 대신한 거스티는 흡사 순교자라도 된 듯 엄숙한 표정을 하고선 밖으로 나갔다.

저벅저벅.

그것은 거스티의 생전 마지막 모습이었다.

베로니카 단장은 마음이 좋지 않았다.

몹시.

그런 그녀에게 하츠 노멜 후작이 찾아왔다.

솔론 왕국에서 어스를 쫓아내려던 야심찬 계획을 실행하던 귀원에서와 달리 하츠 노멜 후작의 얼굴은 되레 자신이 당한 듯 표정이 잔뜩 굳어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베로니카 단장님.”

“오랜만이군요. 하츠 후작님.”

“신전에서 일어난 불미스러운 일에 애도를 전합니다. 저와 솔론의 귀족파는 범인을 색출하는 데 있어 온 힘을 기울이겠습니다. 필요하시면 언제든 저희를 써 주십시오.”

국왕이 주제하는 대전에서도 고개를 빳빳이 드는 솔론의 권세가가 바로 하츠 노멜이다.

그런 그가 지금 스스로를 낮추고 있었다.

“영민의 피해도 컸다고 들었습니다. 나 역시 하츠 후작께 애도를 전합니다.”

“그깟 영민이 대수겠습니까?”

안 그래도 기분이 좋지 않았던 베로니카 단장에게 있어 하츠 후작의 발언은 대단히 자극적이었다.

하지만 이를 내색하진 않았다.

시즌이 끝나면 솥으로 들어가는 사냥개와 달리 하츠 후작은 시즌에 관계없이 활용해야 하는 경비견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냥 넘어가기엔 좀 전의 여운이 가시지 않았기에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후작님의 영민이기 이전에 신도들입니다.”

“그, 그렇지요.”

평소라면 그냥 넘어갔을 일을 꼬집어 말하는 베로니카 단장의 태도에 하츠 후작은 그제야 그녀의 표정을 살폈다.

국왕의 눈치도 보지 않는 후작에겐 이는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후작이 대동한 귀족들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들이 누리는 부귀영화를 줄 수도 있고, 뺏을 수도 있는 인물이 눈앞의 저 여자였기 때문이다.

하츠 후작은 베로니카의 기분을 풀어 줄 겸 귀족원에서 있었던 일을 보고했다.

그것은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는 일이었다.

아끼는 수하를 그 때문에 제명했는데 그보다 더한 짓을 저 개새끼가 저질러 버렸기 때문이다.

“하츠 후작님만 남고 다른 분들은 나가 주세요.”

베로니카 단장의 살벌한 어투에 귀족들은 ‘앗 뜨거워라!’하며 서둘러 나갔고, 홀로 남은 하츠 후작은 불안감에 눈알을 이리저리 굴렸다.

그 모습은 마치 잔뜩 화가 난 주인 앞에 끌려온 개를 연상시켰다.

“어금니 꽉 깨무세요.”

“……!”

“가문을 지키고 싶다면 말입니다.”

덜덜.

일국의 후작이자, 국왕까지 교체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귀족원의 수장이며, 그 개인은 소드 마스터인 하츠 후작이었지만 결국 그녀의 말에 굴복하여 선임자에게 구타당하는 신참처럼 따라야만 했다.

‘비, 빌어먹을 대체 왜?’

설마 에스터 추기경이 복귀한 걸까?

그런 이야기는 듣지 못했는데.

빠-악!

높고 높은 귀족도 그 면상을 처맞으니 소리가 농노와 다를 바 없었다.

농노의 후손이라서 그런 걸까?

“똑바로 서세요. 후작.”

“으으으…예, 예.”

“지금 당장 어스 테리우스 백작에게 가세요. 가서, 그를 여기 데려오세요.”

“어, 어째서?”

“내가 지금 부탁하는 것으로 보입니까? 후작?”

고수들의 경지에서는 종이 한 장 차이도 크다.

하물며 그랜드 소드 마스터에 한발 걸친 베로니카 단장과 고작 초입에 불과한 하츠 후작의 간격은 언급 자체가 무의미하다.

베로니카 단장의 전신에서 뿜어지는 투기에 떨리는 사지를 겨우 추스른 후작은 허겁지겁 나와야만 했다.

* * *

“주인님!”

“잘 있었어.”

“시쿠 사람들 지켰다. 한 명도 안 죽었다.”

펫인 시쿠와는 언제든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차원이 달라도 그건 가능했다.

그렇다 보니 도리아와 그녀의 수하들이 무사한 건 이미 알고 있었다.

“잘했어.”

주인의 칭찬에 시쿠는 활짝 웃으며 그의 다리에 머리를 비볐다.

두더진데 행동은 영락없는 강아지다.

시쿠를 대동한 어스는 예의 그 동굴로 향했다.

입구엔 도리아의 기사들이 경비를 서고 있었다.

“백작님!”

“어서 오십시오.”

어스를 알아본 기사들은 죽은 부모가 돌아온 것처럼 반갑게 그를 맞이했다.

“도리아 백작님은 안에 계세요?”

“폭포에 계십니다.”

뤼빅스는 낮이었지만 이곳은 밤이었다.

그것도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다.

갸웃.

“거긴 왜?”

“가끔 가시곤 합니다.”

마음이 답답해서 폭포로 간 게 아닐까 싶다.

동굴에서 폭포까지 그리 멀지 않았기에 안전엔 문제가 없다.

“알겠습니다. 참 그리고 이거 받으세요.”

인벤토리에서 20개의 공간 주머니를 꺼낸 어스는 기사들에게 이를 넘겨주었다.

앞서 저들에게 넘겨준 식량이 많다지만 모두 보존 식품이다.

굶지 않으려고 먹는 음식이다.

그러니 그 수준이 어떻겠는가.

“이건?”

“식재룝니다.”

기사들의 표정이 대번에 밝아졌다.

일반 병사들이야 배만 부르면 그만이지만 기사들은 그렇지 않았다.

음식도 먹어본 놈들이 잘 먹는다고 그들의 입은 꽤 고급지다.

그러니 이 어찌 반갑지 않겠는가.

“감사합니다. 어스 백작님.”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빈 공간 주머니는 나중에 돌려주시고요.”

“물론이죠.”

기뻐하는 기사들을 뒤로한 어스는 시쿠에게 주변 경계를 맡긴 뒤 폭포로 향했다.

땅을 살짝 치자 그의 신형은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기사들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에 두 기사의 눈이 커졌다.

마법사가 보일 수 있는 능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곧 그들은 이를 잊었다.

지금은 제대로 된 음식이 너무 그리웠기에.

폭포에 도착한 어스는 화들짝 놀랐다.

마계의 두 보름달이 들여다보고 있는 폭포에서 나신의 여인이 머리카락을 쥐어짜며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신체 능력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힘과 민첩 스탯이 세 자리 숫자를 넘어서며 그의 눈도 전보다 밝아졌다.

초승달만 떠도 웬만한 어둠은 꿰뚫어 볼 수 있었다.

하물며 지금은 말해 무엇하랴.

멍.

“어, 어스 백작?”

“…. 예, 옛. 죄송합니다.”

정신을 차린 어스는 부랴부랴 바위 뒤로 몸을 숨겼다.

두근두근.

눈만 좋아진 게 아니다.

청각도 좋아졌다.

그래서 도리아의 옷 입는 소리까지 생생했다.

그게 잔상(?)과 맞물리며 그를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옷 입는 소리가 더는 들리지 않자 그제야 어스는 귀를 막았다.

이건 의도한 것이 아니다.

그제야 생각이 났을 뿐이다.

“흠흠. 어스 백작님? 어스 백작님?”

불러도 대답이 없자 도리아는 재빨리 그가 숨은 바위 뒤로 갔다.

거기서 도리아는 쭈그려 앉아 귀를 막고 있는 소년을 발견했다.

그 모습에 도리아는 저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그를 어찌 대해야 할지 난감하던 마음도 저 웃음과 함께 사라졌다.

톡톡.

검지로 어깨를 두드리자 그제야 어스는 슬쩍 고개를 들었다.

벌겋게 익은 얼굴을 하고서.

“시, 실수입니다. 진짜 실숩니다. 눈곱만큼도 의도하지 않은 사고였습니다. 도리아 백작님.”

“벗은 여체는 처음인가요? 어스 백작님이 지닌 사회적인 지위나 능력을 감안하면 여자는 길에 차이는 돌멩이처럼 쉽게 구할 수 있을 텐데.”

귀족에게 있어 일부다처제는 남자들 사이에선 당연한 미덕으로 여겨진다.

오히려 일부일처를 고집하는 자들을 이상하게 생각한다.

물론 이는 헥터 왕국의 정서지 솔론 왕국에선 조금 다르다.

그렇다고 불법은 아니다.

도리아의 태연한 행동에 어스는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만약 도리아가 호들갑을 떨거나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면 어스 역시 그에 휩쓸려 쩔쩔맸을 것이다.

‘이것이 나이든 여자의 클래스인가?’

도리아가 그의 마음을 들여다보았다면 뒷목 잡지 않을까 싶다.

스물다섯에 불과한 아가씨에게 나이든 여자의 클래스를 운운하고 있었으니까.

“참, 편지는 자유 마을 촌장인 제프니 씨에게 전달했습니다. 제가 직접 가려고 했지만 이런저런 일이 있어 믿을만한 사람을 통해 보냈습니다. 그리고 마법 통신도 했습니다.”

어스는 촌장 제프니에게 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도리아에게 전달했다.

“추방된 제 이복오라비들이 가만있지 않겠군요.”

“뤼빅스로 돌아갈 방법을 최대한 빨리 찾겠습니다.”

“검은 돌이 흔하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흔치 않지만 찾기 힘든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어스는 테른 마을에서 발생한 사건에 대하여 이야기해 주었다.

“…. 마족이지 싶어요.”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요? 마족이 뤼빅스로 넘어갈 수 있다는 걸.”

“당장은 아니더라도 조만간 알려지겠죠. 놈들이 은밀히 활동한다면 모를까 이번처럼 대형 사고를 쳤으니까요. 그리고 사고가 이번 한 번으로 끝난다는 보장도 없죠.”

“어스 백작님이 그땐 큰 힘이 되겠군요. 인류에게.”

마족이 활개 치면 칠수록 어스 입장에선 손해보다 이득이 크다.

교단이나 왕국들이 힘들면 힘들어질수록 이종족과 혼혈을 백성으로 삼아 건국할 마음을 먹은 자신을 필요해서라도 실리시아를 그들은 인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글쎄요. 마계와 달리 뤼빅스는 마족만 있는 게 아니니까요.”

“하긴 마법엔 눈이 없으니깐 그렇겠네요.”

나신 사건은 주제의 무거움으로 인해 두 사람의 기억에서 잠시 잊혀졌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시쿠에게서 의념이 날아들었다.

‘주인님, 마족이 나타났다.’

마물이야 흔했지만 마족은 이번이 처음이다.

어스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

“시쿠가 마족을 발견했다고 하네요. 상황을 알아보고 알려드릴 테니 도리아 백작님은 동굴로 가세요.”

“몸조심하세요.”

도리아는 곧장 몸을 날려 동굴로 향했다.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어스 역시 곧 움직였다.

‘블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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