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9화
갑작스럽게 줄어들기 시작한 생명력에 어스는 깜짝 놀랐다.
생명의 위험을 느껴서는 당연히 아니다.
천둥소리와 함께 줄어든 생명력은 기껏해야 10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생명력 : 100,360/100,370.
사람들은 영문을 모르는 듯 하늘만 쳐다보았다.
그때 누군가 어스를 향해 은밀히 접근했다.
그러곤 전력을 다해 그를 찔렀다.
일반적인 날붙이도 치명적이다.
하물며 저 날붙이에는 마나가 진하게 담겨 있었다.
마나 소드는 목적지(?)에 닿기 전에 제동이 걸렸다.
덥석!
어스의 손에 잡힌 것이다.
이런 상황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듯 암살자의 두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어, 어떻게!”
암살자 입장에선 당연한 반응이다.
상식을 까마득하게 벗어난 일이 눈앞에서 벌어졌기 때문이다.
소드 마스터도 아니고, 아니 소드 마스터도 감히 맨손으론 마나 소드는 잡을 수 없으니까.
그렇다고 어스에게 피해가 없는 건 아니다.
-생명력 1이 감소합니다.
.
.
분명 생명력이 감소하고 있었다, 이처럼.
이러한 수치 감소는 암살자의 공격이 어스의 급소를 찌르더라도 달라지지 않는다.
왜? 체력 스탯은 생명력 하나만 올려주는 게 아니다.
공격에 대한 저항력도 높여주기 때문이다.
상태창엔 표시되지 않을 뿐.
아무튼 암살자 입장에선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어스의 주먹이 암살자의 가슴팍을 후려쳤다.
단단한 철제 흉갑이 그의 일격에 움푹 들어갔다.
암살자, 아니 기사 체스터의 입에서 고통에 찬 신음이 터졌다.
퍽퍽퍽-!
연속 네 번을 때리자 체스터는 그제야 검자루에서 손을 놓았다.
보통내기가 아니다.
체스터의 몸뚱이는 충격에 저만치 날아가더니 낙엽 뒹굴 듯 한참을 뒹굴었다.
그런데 이 모습을 본.
“괴물 마법사가 체스터 경을 공격했다!”
“이,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갑자기 왜?”
천둥소리에 놀라 하늘을 보던 사람들은 뒤늦게 이 장면을 목격했다.
그들이 본 건 암살시도 이전의 지금 저 모습이었다.
일방적인 구타였다.
“감히 암살을!”
어스는 일갈과 함께 한달음에 체스터에게 접근하여 양팔을 부러뜨렸다.
팔이 부러지는 고통은 견딜 수 없었던지 체스터의 입에서 통제되지 않은 비명이 그제야 터졌다.
“크아아아아아-!”
그 소리에 사람들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마, 마법사가 기사를 주먹질로 이겼어!”
“마, 말도 안 돼!”
“현자는 다른 건가?”
사람들은 여전히 혼란스러워했다.
놀란 사람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그와 거리를 벌렸다.
그사이 어스의 발이 체스터의 무릎을 찍었다.
그 무릎은 꺾여선 안 될 방향으로 꺾어졌다.
체스터는 완전히 무력화되었다.
철옹성의 창촉이 체스터의 목젖에 닿았다.
“너 뭐지? 누가 시킨 것이냐!”
“이, 이단은 지옥으로!”
핏발이 곤두선 체스터의 가슴팍이 돌연 불룩해졌다.
심상치 않은 징조였다.
이에 어스는 반사적으로 무형 방벽을 제 몸에 둘렀다.
아니, 두르려다 실패했다.
앞서 무형 방벽을 시전하였기에 재 시전을 위해선 5시간이 필요하다.
‘앱솔루트 쉴드!’
궁극의 방어 스킬이 그를 감싸자 체스터의 몸에서 일어난 기현상은 폭발로 이어졌다.
콰아아아앙-!
그것은 자폭이었다.
자폭의 위력은 매우 강력했으나 앱솔루트 쉴드의 보호를 받고 있는 어스의 옷깃하나 더럽히지 못했다.
“사, 살인이다! 현자가 체스터 경을 죽였다!”
사람들이 이를 보고 오해했다.
그가 마법으로 체스터를 날린 것으로.
“마, 맙소사!”
“우, 우릴 다 죽일 거야!”
사람들 사이에서 근거 없는 소리다.
그런데.
“도, 도망가! 현자가 폭주했다!”
“현자가 미쳤다!”
그 소리에 부화뇌동했다.
모두가.
어스 입장에선 황당하기 그지없는 상황이다.
피해자는 자신이지 폭사한 암살자, 아니 체스터가 아니니까.
‘내가 언제?’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 나왔다.
그래서 쳐다보았는데 그걸 사람들은 자신들을 공격하려는 것으로 여긴 듯 진짜 도망치기 시작했다.
앞서 어스가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보여준 헬파이어에 대한 인상이 너무 깊은 탓도 있었지만, 선동꾼들이 그들 사이사이에서 그들을 자극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안전, 아니 목숨과 직결된 사안이다 보니 그래서 다들 사정을 알아볼 생각조차 하지 않고 무작정 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저들이 저리 쉽게 선동되고, 공포에 질린 건 앞서 어스가 보여준 헬파이어의 영향도 한몫했다.
아니, 그게 가장 큰 원인이었다.
도망치는 자들 중엔 좀 전까지만 해도 그에게 호의와 경의를 보내던 마법사들도 끼어있었다.
‘설마… 이걸 노린 함정인가?’
아무래도 그런 듯했다.
그렇다면 대체 누가 이딴 지저분한 함정을 마련했을까?
그리고 자신이 여기 올 것이란 건 대체 어떻게 알았을까?
설마 푸리엘이 첩자…일리는 당연히 없다.
일단 당혹감을 접은 어스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 움직였다.
겁에 질린 사람들은 그를 보자마자 발랑 자빠져선 짐승처럼 네발로 기기까지 했다.
그와 멀어지기 위해서.
‘말이 안 통해.’
사람들의 뇌를 지배하는 건 두려움이었다.
조금만 진정하고 이 상황을 따져본다면 자신이 범인이 아니란 걸 금방 알아차렸을 테지만 저들에겐 그러한 이성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그리고.
“다, 달아나! 괴물 마법사가 쫓아온다!”
자신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달아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어이가 없다.
어스는 사람들을 설득하는 걸 포기하고 이 사태의 원인이자 시발점인 예의 그 천둥이 울렸던 방향으로 이동했다.
‘블링크!’
그곳에 도착한 어스는 두 구의 시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시체 옆엔 매직 스틱이 떨어져 있었다.
교단에서 보급한 매직 스틱과는 생김새가 달랐다.
일단 총구가 크고, 총신은 그보다 1.5배쯤 더 길었다.
무게 역시 일반인이 사용하기엔 버거울 정도다.
눈앞의 무기는 중요한 증거가 될 수 있기에 어스는 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인벤토리에 넣어둔 뒤 조사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인벤토리에 입고하기 전 시신들의 가슴 부위가 불룩해졌다.
또?
‘앱솔루트 쉴드!’
쿠아아아아앙-!
앞서와 비교할 수 없는 위력과 규모의 폭발이 발생했다.
이번에도 어스는 멀쩡했다.
그러나 그의 육신과 달리 정신은 큰 혼란을 겪고 있었다.
생소한 데다 너무도 갑작스럽게 일어났기에.
그래도 이것 하나는 분명 인지하고 있었다.
자신을 향한 비난 여론이 들불처럼 일어날 것이란 걸.
* * *
어스의 우려대로 자신을 향한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한때 불거졌다가 잠잠해진 그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이 테른에서의 일로 확대 재생산되어 퍼져나갔다.
사건 현장인 테른 마을은 교단과 레아 왕국에 의해 통제되어 다시 그 현장을 방문할 수 없었다.
이에 이종족 해방 연합은 어스의 진술(?)을 듣고 함정의 배후를 캐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어스의 누명을 벗기지 못할 경우 마탑의 협조로 성사된 이종족 노예 구입과 혼혈 확보에 중대한 차질이 빚어질 것이기에 연합 입장에서도 이 일은 중대한 일이었다.
연합이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한 지도 어느덧 나흘이 흘렀다.
안타깝게도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왕궁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영주님.”
“귀족원이겠지.”
칼렉 왕세자에겐 사건의 자초지종을 설명하여 오해를 푼 상태였다.
더해 왕세자의 협조까지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귀족원은 칼렉 왕세자와 달리 이 기회에 어스의 기를 꺾으려는 것인지, 아니면 그를 숙청하려는 것인지 기를 쓰고 달려들었다.
이에 칼렉 왕세자도 한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명분에서 밀렸다.
“아무래도 그렇지 않을까요?”
귀족원엔 귀족파만 속한 게 아니다.
왕실에 우호적인 귀족들 역시 몸담고 있었다.
그러나 왕당파라 불리는 귀족들의 수와 세력은 귀족파에 비해 약하다보니 귀족원을 장악하고 있는 자들은 귀족파일 수밖에 없었다.
의장을 비롯해 요직 모두 그들이 쥐고 있었다.
물론 그들이 무소불위의 힘을 행사하는 건 아니지만 명분이 쥐어질 경우엔 왕권도 그들을 막아서기 힘들었다.
“교단은 어때?”
“아직 이렇다 할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의외네.”
“확신하긴 이르지만 테른에서의 일은 교단의 뜻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들이 벌인 짓이라면 지금처럼 조용할 리 없으니까요.”
“나도 그 점이 의아해 내가 아는 교단이라면 어떤 식으로든 반응했을 테니까. 일단, 귀족원에서 온 자부터 만나볼게.”
역시나 귀족원에서 보낸 자였다.
어스는 그로부터 출석 요구서를 받았다.
솔론에서 받은 작위를 내놓지 않는 이상 귀족들의 의결기관인 귀족원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니 내키지 않더라도 출석 할 수밖에 없었다.
‘하츠 후작이 작정하고 물어 뜯으려하겠군.’
* * *
어스가 귀족원이 보낸 출석 요구서를 받아든 그 시간, 교단이 운영하는 비밀 거점으로 세 인형이 접근하고 있었다.
세 인형의 정체는 고위 마족인 바레모스, 톨로레스, 레이레아였다.
교단이 비밀리에 운영하는 비밀 거점이다 보니 거점의 은밀함과 방비는 매우 탄탄했다.
그러나 그러한 탄탄함도 작정하고 쳐들어온 세 고위 마족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사실 마족이 어스에게나 손쉬운 상대지 대부분의 인간들에게 있어 마족은 살아 있는 재앙 덩어리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그런 재앙 덩어리도 조직력과 신무기로 무장한 던전 원정대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물론 던전 원정대 역시 피해가 없지 않았지만 사살이든 생포든 둘 중 하나는 이룰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일방적으로 당했다.
마족을 사살하고 생포한 경험자들이 지키고 있음에도 소용없었다.
“크악!”
“마, 마족이 어떻게?”
“룬이시여, 저희를…가엽게 여기소서.”
와인 잔 박살 나듯 인간의 몸뚱이가 박살 났다.
마나 스틱도 고위 마족에겐 무용지물이었다.
성기사의 마나 소드 역시 그들에겐 통하지 않았다.
최소 소드 마스터 급은 되어야 저들에게 통하지 않을까 싶다.
안타깝게도 이 기지엔 소드 마스터 급의 성기사는 배치되지 않았다.
아니,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
소드 마스터가 마계에서나 흔하지 뤼빅스에선 쉽게 보기 힘든 자들이기 때문이다.
교단이라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교단 역시 인간이 모여서 만든 조직이니까.
세 고위 마족에 의해 지상은 물론 지하 3층까지 단숨에 뚫렸다.
그들이 지나온 곳엔 오직 죽은 자들만 카펫처럼 깔려 있었다.
마법 결계가 설치된 문이 변변한 저항 한번 해보지 못하고 틀과 함께 박살 냈다.
바레모스의 발차기에.
이단 심문관의 모진 고문에 거적때기처럼 변한 마족들을 그들이 발견했다.
저들을 심문했던 이단 심문관은 죽기를 각오하고 바레모스를 향해 달려들었지만 그 각오가 무색하게 목이 달아났다.
“하등한 벌레들이 감히 마족을 상대로 이딴 짓을 벌이다니!”
저들이 범죄자이긴 하지만 명색이 마족이다.
그런 이들이 지금 정신과 신체가 유린되어 죽기를 갈망하고 있었다.
화가 치민 바레모스는 고문의 장소로 사용된 지하 시설물을 때려 부쉈다.
그래도 화가 풀리지 않았는지 머리통이 사라진 이단 심문관의 육신을 고기 다지듯 다졌다.
“진정해 바레모스.”
“그러다 지하실이 붕괴할 거야.”
톨로레스와 레이레아가 만류하자 그제야 바레모스는 진정 된 듯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저 녀석들은 재활용도 불가능할 것 같군.”
몸과 정신이 피폐해진 마족은 더 이상 마족으로 보기 힘들었다.
마기는 존재하나 마기의 힘이 너무 약했다.
육체는 살릴 수 있지만 정신은 고위 마족들조차 손쓸 방법이 없었다.
이 자리에 마왕이 강림한다면 모를까.
“너희가 마계의 죄인이나 근본은 마족이다. 명예롭게 죽어라.”
죄인들 모두 삶의 의지를 놓았기에 순순히 이를 받아들였다.
아니, 오히려 죽음을 열망하고 있었다.
마족들을 모두 죽인 바레모스는 교단을 향해 이를 갈아붙였다.
“내 교단의 씨를 말려버리고 말겠다.”
톨로레스와 레이레아는 바레모스를 말릴 수 없었다.
아니, 그들도 바레모스와 같은 심정이었기 때문이었다.
학살자라는 존재가 마음에 걸렸지만 그간 알아본 결과 자신들이 학살자를 만날 확률은 매우 낮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물론 단 1퍼센트의 확률도 걸리면 100퍼센트가 되지만 학살자가 두려워 이 상황을 좌시하기엔 마족으로서의 긍지와 명예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동의한다.”
“나 역시.”
그렇게 세 고위 마족은 뜻을 모아 교단을 향해 선전포고를 선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