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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로 성장하는 마법사-218화 (218/250)

218화

공간을 뛰어넘으며 바삐 서둔 덕분에 해지기 한 시간 전에 테른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작은 숲과 개울을 두르고 품은 마을은 온전했을 당시엔 꽤나 아름다운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는 숲도 개울도 그리고 주민들이 살던 가옥 모두 한데 얽히고설켜 거대한 검은 흉물로 변해 있었다.

현장은 테른 마을이 속한 벨싱 남작 영지의 병사들이 통제하고 있었다.

구름떼처럼 모인 군중이 현장에 진입하지 못하도록.

‘마법사들이 제법 많네.’

참변의 원인이 헬파이어라는 소문이 퍼진 게 마법사들이 여기 있는 이유이지 않을까 싶다.

마탑주들과 그들의 수제자들 앞에서 헬파이어를 시연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이 어스 입장에선 공교로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바로 참변 현장에 내릴까도 생각했지만 외교적인 문제로 비화 될 수 있을 것 같아 정식 절차를 밟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그나마 구경꾼들이 덜 모인 장소에 내려섰다.

신기루처럼 불쑥 등장한 그를 본 사람들은 처음엔 놀라 움찔거리다 곧 고개를 갸웃거렸다.

처음부터 어스가 그 자리에 있었나 싶어서였다.

어스는 그들의 시선을 뒤로하고 걸었다.

다른 이들이 그러했듯 어스 역시 경비를 맡고 있는 병사들에게 제지당했다.

“멈추시오!”

마법사들이 즐겨 입는 로브 차림이라 병사들의 말투와 행동은 정중했다.

어스는 병사의 지시에 따랐다.

“외부인은 안으로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내가 외부인은 맞는데 그렇다고 완전 외부인은 아니라서 말이야. 날 안에 들여보내 줬으면 해.”

자신의 신분을 감출 것이 아니기에 처음부터 하대로 나갔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어린놈이 대뜸 하대하자 병사들은 그가 마법사임을 알면서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렇다고 이를 내색하진 않았다.

지금까지 본 로브 중 어스가 입고 있는 로브가 까막눈인 그들의 눈에도 상당히 고급스러워 보였기 때문이었다.

병사들의 시선이 일제히 뒤로 향했다.

그러자 당당한 체구와 각진 턱이 인상적인 남자가 일정한 보폭을 유지하며 어스 앞으로 걸어왔다.

어스의 위아래를 훑어본 남자가 입을 열었다.

“벨싱 남작 영지의 기사 체스터입니다. 실례지만 누구십니까?”

“솔론 왕국의 어스 테리우스 백작이라고 한다.”

“현… 자?”

주변에서 지켜보던 사람들, 특히 마법사들의 입이 동그래졌다.

그런 입에서 감탄이 터졌다.

이도 잠시 그들은 자세를 바로한 뒤 공손하게 그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

그들에게 어스는 존경받아 마땅한 웃어른(?)이라 예의를 차린 것이다.

어스는 그들을 향해 살짝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마법사들과 달리 일반인들의 눈빛은 곱지 않았다.

눈빛만 곱지 않은 게 아니다.

누군가 악을 쓰며 어스를 향해 돌을 던졌다.

상대가 하위 마법사라도 이는 미친 짓이다.

하물며 어스는 대륙 유일의 현자이자, 외국이긴 하나 솔론 왕국의 고위 귀족이다.

그것도 영지를 가진 자이다.

감히 그러한 신분을 가진 사람에게 돌을 던졌다.

미치지 않고서야 할 수 없는 짓이었다.

장내는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어스를 노리고 날아간 돌은 현재 어스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어스는 손에 쥔 돌멩이와 이를 날린 범인을 보았다.

“저, 저놈이 미쳤구나! 감히, 현자께 돌을 던지다니!”

“저 망할 놈을 잡아!”

공격을 받은 사람은 어스였지만 정작 그보다 마법사들이 더 흥분했다.

어스를 공격한 남자, 아니 소년은 품에서 단검을 꺼내 다가오는 마법사들을 향해 휘두르며 소리쳤다.

“저자가 내 가족을 죽였어! 마을 사람들을 죽였다고!”

소년의 거친 반항에 마법사들은 뒤로 물러섰다.

몸을 단련하는 마법사들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흔치 않다.

여기엔 흔한 마법사들만 있었다.

마구잡이로 단검을 휘두르는 소년 하나 제압할 수 없었다.

그러니 자신들이 잘 하는 것으로 제압할 수밖에.

매직 애로우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수십 개나 된다.

살상력이 떨어지는 마법이긴 하나 저만한 숫자의 마법을 얻어맞는다면 죽을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소년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어스를 향해 곧장 달려들었다.

“죽어! 이 악마!”

“마, 막아!”

“현자님이 위험하다!”

마법사들이 시전한 매직 애로우가 일제히 허공을 가르며 소년에게 향했다.

소년은 무사했다.

표적이 움직이고 있는 탓에 빗나간 게 아니다.

어스의 매직 애로우가 단 한 발의 예외 없이 모조리 요격해버렸다.

매직 애로우를 날린 마법사들은 이에 경악했다.

“마, 맙소사!”

“마, 말도 안 돼!”

“이것이 현자인가?”

“오!”

매직 에로우 다발의 폭발은 크지 않았지만 소년이 버티기엔 무리였다.

소년은 바닥을 뒹굴었다.

그와 중에 돌부리에 걸렸는지 팔이 찢어지는 상처를 입었다.

충격에 머리가 멍한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소년이 다시 벌떡 일어나선 눈이 뒤집힌 멧돼지처럼 다시 어스를 향해 돌격했다.

그러나 이번엔 어스도 마법사도 나서지 않았음에도 돌격은 저지당했다.

“놔! 놔주세요! 전 저 자를 죽여야 해요! 우리 마을을… 모두를 죽인 악마라고요! 흑흑.”

소년은 벨싱 남작의 기사 체스터의 크고 두툼한 손에 덜미가 잡혀 허공에서 버둥거리며 악을 썼다.

이에 어스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의 눈엔 이 모든 게 잘 짜인 한 편의 연극을 보는 듯했기 때문이다.

어스가 그리 생각한 건 나름의 근거가 있었다.

기사 체스터의 늦은 반응 때문이었다.

힘과 민첩 스탯이 형편없던 시절이면 기사도 사람인데 반응이 느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나 지금은 아니다.

그에 준하는, 아니 뛰어넘는 신체 능력을 그 자신이 보유하게 됨으로써 기사가 의도적으로 방관하고 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호오, 이것 봐라.’

잠시 이 연극에 어울려주기로 했다.

“체스터 경.”

“거듭 사죄드립니다. 백작님.”

체스터의 저의를 이미 의심하고 있었기에 진정성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병사들의 손에 붙잡힌 소년은 여전히 발버둥 치며 고래고래 소리쳤다.

어스가 마을 주민들을 학살하는 장면을 목격했다는 말도 안 되는 말을 해댔다.

‘연긴가? 만약 저게 연기면 녀석은 이미 완성된 연기자네. 나도 혹할 정도니.’

자신은 테른 마을을 공격한 적이 없다.

그러나 소년의 완성된 연기는 그만 제외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범인은 사건 현장에 반드시 돌아온다!

그 말을 상기한 듯.

달라진 사람들의 시선에 위축될 어스가 아니다.

“저 꼬맹이와 할 말이 있다.”

어스는 체스터를 무시하고 소년 앞으로 향했다.

“위험합니다!”

“내가? 아님, 저 소년이?”

“그…”

“내 몸은 내가 알아서 지킬 테니까 체스터 경은 맡은 바 역할… 아! 임문가? 아무튼 거기에 충실하세요. 이봐, 꼬맹이 내가 마을을 공격한 걸 봤다고 했나?”

어스는 소년의 표정과 눈빛을 유심히 살폈다.

녀석이 누군가의 사주를 받아 이런 짓을 벌인 것이라면 순간적으로 티가 나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자신의 목숨이 누구 손에 달려있는지 잘 알 테니까.

그런데…

‘…뭐지? 이 녀석 진짜 내가 한 것으로 알고 있는 건가?’

녀석의 눈엔 오직 원수를 갚지 못해 분노하고 슬퍼하는 감정 밖에 담겨 있지 않았다.

“죽어도… 내가 죽어도 널 용서하지 않을 거야! 이 악마야! 으아, 으아아아아-!”

소년을 향해 뜨거운 동정이.

어스를 향해 차가운 의심이 쏟아졌다.

여론에 편승한 것일까? 한발 물러섰던 체스터가 검을 뽑아 들었다.

군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함인가?

그건 어스의 오해였다.

“영지민을 학살한 죄로 어스 테리우스 백작님 그대를 체포합니다! 죄가 없다면 순순히 포박에 응하십시오!”

체스터는 이 한편의 잘 짜인 연극에서 영웅의 역할을 맡은 것 같았다.

군중들은 이 한편의 연극에 제대로 감정이 이입된 것인지 모두 체스터를 응원하였으며, 그 반대편에 선 어스를 향해선 욕을 아끼지 않았다.

평민이 저린 행동을 한다는 건 자신의 목을 갖다 바치는 일이다.

그럼에도 저들이 저러는 건 군중심리일 것이다.

사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마법사들은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뒤로 슬쩍 빠졌다.

‘역시 마법사는 똑똑하군.’

내 편이 하나도 없다.

그러나 어스는 이에 조금도 굴하지 않았다.

오히려 픽 웃었다.

* * *

“그래서 넌 어디서 지켜보았지?”

“저기 저쪽 바위 뒤에서 보았어! 당신이 사람들과 마을을 불태우는걸!”

외국의 고위 마법사이자, 마법사들의 존경을 받는 현자이기도 한 어스를 향해 칼을 빼 들었지만 어스가 이에 동의하지 않은 이상 현장에 있는 병력으로 그를 체포하는 건 어림반푼어치도 없었다.

이는 체스터는 물론 병사들도 잘 알고 있었다.

보통 이런 분위기에선 결백한 자들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 순순히 체포된다.

그 반대의 경우 결백하지 않은 자라면 도주하거나 증거 인멸이 가능한 상황이면 가차 없이 증거 인멸에 들어갈 것이다.

어스는 전자와 후자 모두 가능했지만 둘 다 선택하지 않았다.

그는 현장 검증을 선택했다.

군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마법사들은 자신이 속한 조직, 혹은 지인들에게 마법 통신을 실시간으로 주고받는 상황에서.

“그래? 운 좋네.”

“비웃지 마라 악마야!”

“내가 결백하다는 게 증명되면 어떡하려고 그래? 아! 이미 죽을죄를 저질렀구나. 통쾌하게 죽여 줄 테니까. 일단 입 닥치고 있어. 체스터 경.”

“말씀하십시오.”

마법사와 기사의 싸움에서 둘 중 누가 이길지의 여부는 거리가 결정한다.

물론 기사보다 수준이 한참 떨어지는 마법사일 경우엔 거리의 여부는 무의미하다.

반대의 경우는, 적어도 아직까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니 어스는 긴장해야 한다.

그러나 어스의 모습 그 어디에도 긴장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저 녀석이 여기서 내가 마을을 불태우는 걸 봤다는 말 체스터 경도 들었지?”

이는 체스터 한 사람에게 하는 말이 아니다.

여기 있는 모두에게 하는 말이었다.

“들었소.”

“그 말 똑똑히 기억해줘. 꼬맹이 너도 한입 갖고 두말하지 말고.”

“대체 뭘 하려고 그러는 것이오?”

“내가 웃고 있어도 지금 웃고 있는 게 아니거든. 속은 부글부글 끓고 있어. 그러니 닥치고 내 말대로 해. 그리고 똑똑히 봐.”

도주의 우려가 있다면 모를까 대륙에서 어스를 모르는 자들은 없다.

그의 집 역시.

그랬기에 체스터는 일단 그의 말을 들어주기로 했다.

사람들이 멀찍이 물러섰다.

어스는 꼬맹이가 자신을 목격했다는 장소에 섰다.

흠흠.

목소리를 가다듬은 어스는 크게 소리쳤다.

“지금부터 헬파이어 쏠 거야! 아, 걱정 마 당신들을 향해 날리려는 건 아니니까. 자 그럼 헬파이어를 쏠 테니까 잘 봐둬. 이 몸이 헬파이어를 쏘면 어떻게 되는지 말이야.”

마을에 남은 흔적은 분명 헬파이어에 의한 흔적이다.

그러나 그 흔적이 오히려 자신의 결백에 힘을 실어줄 것이다.

왜?

‘내 헬파이어는 특별하니까.’

쿠아아아아앙-!

거대한 백색의 뜨거운 파도가 모든 걸 집어삼켰다.

이에 삼켜진 건 무로 돌아갔다.

영원히 그 형상을 잃어버렸다.

어스가 학살을 자행한 걸 목격했다고 말한 소년이 숨어 있던 장소 역시 깔끔하게 지워졌다.

만약 어스의 말을 듣지 않고 물러서지 않았다면 먼지 한 톨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져버렸을 것이다.

꿀꺽.

사람들은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꽤 오랫동안.

사람들은 더 이상 어스를 의심하지 않았다.

의심의 화살은 소년에게 향했다.

“아, 아니야. 난 봤다고! 거짓말하지 않았어!”

소년은 애처롭게 소리쳤지만 이젠 그 누구도 소년의 말을 믿지 않았다.

아니, 믿을 수 없었다.

자신들이 본 게 있었기에.

헬파이어의 불길은 여전히 기세가 줄지 않았다.

바위도 강철도 단숨에 녹여버리는 강력하고 신비로운 하얀 불길을 걸어 나오는 이가 있었다.

그는 바로 어스였다.

무형 방벽을 두르고서.

그 모습이 사람들의 뇌리에 강렬하게 새겨졌다.

“체스터 경, 이래도 내가 범인이라고 생각하나?”

도리도리.

“꼬맹이 넌?”

“봤는데… 정말. 당신이었는데.”

소년은 그리 말하였으나 전처럼 목소리에 힘이 담겨 있지 않았다.

‘환상 마법에 걸렸던 건가?’

어스가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마른하늘에서 천둥이 울렸다.

그런데 천둥이 어째…

-생명력 1이 감소합니다.

.

.

.

.

아니, 그건 천둥이 아니라 저격이었다.

‘이건 또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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