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화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는 가르지 않겠다던 어스는 메테오 스트라이크의 한방에 중독되어 처음에 가진 생각을 잊고 도시는 물론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마을마다 메테오를 꽂아 넣었다.
메테오를 제외한 다른 광역 스킬들의 경우 해당 스킬의 설명을 보면 살상 반경이라는 단어가 붙는다.
반면 메테오 스트라이크는 살상 반경 대신 파괴 반경이라는 불길한 느낌의 단어가 붙는다.
그래서 이를 구입하고도 사용은 되도록 자제하려고 했다.
한데 막상 이 스킬을 써보니 사냥이 편해도 너무 편했다.
‘동급인 엘리멘탈 피니쉬먼트와도 비교가 안 되네. 과연 이게 9서클이 맞는 건가?’
이러한 생각마저 들게 만들었다.
어스의 눈이 지상을 향한다.
파괴 반경 이내는 그렇다 치더라도 그 너머의 여파가 미친 숲과 들판, 언덕과 산들을 보라.
온전한 형상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
‘뤼빅스에선 정말 자제해야겠어.’
메테오 스트라이크가 남긴 후폭풍이 잠잠해진 걸 확인한 어스는 거듭 블링크를 사용한 뒤 한적한 호숫가에 내려섰다.
백만이 안 되던 코인은 그사이 억 단위로 불어나 있었다.
이를 보니 아쉬워졌다.
특전 조기 종결로 인해 더는 받을 수 없게 된 보너스 업적 포인트였다.
‘진짜 마왕이라도 잡아야 하나?’
인간 세상에선 반신이라 여겨지는 존재가 바로 마왕이다.
그런데 그런 마왕을 사냥할 생각까지 하다니.
문득 2년 전 기억이 어스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고향 마을을 습격한 고블린을 피해 필사의 탈출을 감행하던 때였다.
‘각성 마법사란 게 참으로 무서운 능력이구나!’
새삼 자신이 가진 능력에 대해 경이를 느꼈다.
그리고 이런 능력이 자신에게 왔음에 감사를 느꼈다.
9서클 스킬을 구입할 자금을 모았으니 이젠 남은 한 자리를 채울 차례다.
공격, 이동, 치료 스킬을 배웠으니 나머지 한 자리는 방어 스킬로 채우는 게 맞지 싶다.
이를 제외하곤 딱히 쓸 만한 스킬도 없었다.
무형 방벽이 있긴 하지만 재사용 시간과 지속 시간이 붙어 있는 데다 자신을 중심으로 펼치는 것이라 단점이 존재한다.
그러나 어스가 눈여겨본 앱솔루트 쉴드, 절대 방어막은 범위 조절은 물론 재사용 시간의 구애받지 않고 상시 시전이 가능했다.
거기다 즉시 발동까지 된다.
참고로 보통의 마법사들의 경우 자신의 경지와 동급의 마법을 완성하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궁수가 활을 쏘기 위해선 화살통의 활을 꺼내 시위에 이를 걸고 활줄을 당기는 단계를 거쳐야 한다.
숙련도에 따라 시간을 단축할 수 있지만 위와 같은 단계를 무시할 수 없다.
그에 반해 스킬은 시동어로 즉시 완성된다.
무려 9서클임에도 불구하고 그냥 된다.
남은 한 자리에 앱솔루트 쉴드로 채웠다.
직업 스킬(16/16)
‘시원섭섭하네.’
1억 코인을 지출했음에도 남은 코인은 2억이 넘는다.
거액이지만 9서클 1번 강화하면 사라질 액수다.
고작 1강에.
‘스킬 전부 12강 시켜버리면 그땐 코인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건가?’
스킬을 구입하는 것 이외에 코인 사용처는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미래는 모른다.
사용처가 생길지.
‘생겼으면 좋겠는데.’
빈 슬롯을 꽉 채워서인지 사냥을 하고 싶은 의욕이 대폭 감소했다.
보너스 업적 포인트가 전처럼 적용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이젠 자신과 동급이 아닌 이상 이를 기대할 수 없다.
그러니 남은 건 레벨업을 통해서 받는 포인트가 전부다.
직업(레벨) : 마법사(179).
여러 마을과 도시 3개를 지상에서 지웠지만 200레벨 근처에도 못 미쳤다.
레벨이 높아질수록 레벨업에 필요한 경험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토가 나올 지경이다.
자신의 상태창을 꼼꼼히 확인한 어스는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막상 움직이진 않았다.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밥이나 먹자.’
메테오의 출현으로 마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어스는 그렇게 태평하게 호수을 눈요기 삼아 미식을 즐겼다.
그러다 문득.
‘마계의 음식은 어떨까?’
뤼빅스로 돌아가면 통역 마법 물품을 반드시 구입하기로 마음먹었다.
오물오물.
* * *
어쩌다 보니 중간계인 뤼빅스로 오게 된 세 고위 마족 바레모스, 톨로레스, 레이레아는 마법을 통해 외모를 인간으로 바꾸었다.
인간의 언어는 통역 마법으로 해결했다.
인간을 하찮게 보는 마족이었지만 인간 학살자로 인해 인간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 세 고위 마족은 인간 사회로 스며들었다.
이를 통해 그들은 학살자만 특별한 인간인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외 인간들은 식당에서 서빙 하는 마족 하나만 던져줘도 난리 날 상황.
“인간들의 수준은 형편없군.”
“이게 정상인 거야. 학살자가 이상한 거지.”
“생태계 교란 종은 항상 있는 일이니까. 흔치 않지만. 그런데 학살자에 대해 아는 인간이 없는 건 신기하군.”
레이레아의 말에 바레모스와 톨로레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음식이 나왔기에 세 고위 마족은 입을 다물었다.
세 고위 마족은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허겁지겁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성인 남성 20명이 먹어도 남을 양을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먹어 치운 그들의 먹성에 사람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덩치는 고만고만한 사람들이 엄청 먹네.”
“위대한 위를 가진 사람들인가 봐. 특히, 저 젊은 아가씨는 그 많은 음식이 대체 어디로 들어간 거야.”
“열흘 굶은 거지들 같네.”
호기심과 탄성을 터트리는 사람들은 먹는 것도 잊고 떠들었다.
세 고위 마족은 사람들이 자신들을 동물원 원숭이 보듯 구경하자 기분이 상했다.
‘하찮은 버러지들이!’
‘감히!’
마계에서 학살자가 자행한 짓을 생각하면 그의 세계에서 이를 고스란히 돌려줘도 부족하다.
톨로레스와 레이레아의 눈빛에 스산한 살의가 차오르자 바레모스는 급히 그들을 제지했다.
바레모스는 음식값을 지불한 뒤 둘을 데리고 식당을 나섰다.
마침 으슥한 골목길이 보였다.
“왜 만류한 것이냐?”
“하등한 놈들이 우릴 모욕했어.”
“지금은 감정에 치우칠 때가 아니다. 당장은 정보를 모아야 해. 고향에 안 갈 거야?”
“정보는 모을 만큼 모았어. 인간들은 약해. 기록은 진실이었어. 학살자만 특별한 경우지.”
“그래, 톨로레스 네 말처럼 인간은 약해. 하지만 학살자 같은 괴물이 없으리란 보장은 없어. 너도 알다시피 열등한 인간이 이종족을 지배하고 있어. 물론, 이종족이라고 해봐야 마족인 우리에겐 좀 덜 하등한 생물이라곤 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무시할 수 없는 놈들이야. 그런 놈들을 그보다 열등한 인간이 지배하고 있어. 넌 이게 정상이라고 생각해?”
“……”
“……”
“잊지 마. 첫째 학살자의 정보. 둘째 중간계의 정보. 셋째 귀환. 마지막 세 번째 문제를 해결한 다음에 각자 행동해도 말리지 않겠어. 하지만 지금은 참아.”
두 사람을 겨우 달랜 바레모스는 골목길에서 나왔다.
그런 둘을 누군가 막아섰다.
불량한 인상과 복장을 한 이 마을 양아치들이었다.
“아까 보니 주머니가 두둑하더군. 나눔 좀 합시다. 형씨들.”
가래침을 탁 뱉으며 단검을 빙글빙글 돌리며 위협을 가했다.
마족들은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화가 나도 참았다.
저들이 원하는 돈주머니를 주고 떠날 생각이었다.
어차피 자신들이 열심히 일해서 번 돈도 아니기에 미련은 없었다.
하지만 상황은 마족들이 생각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돈주머니를 받은 양아치들은 더욱더 기가 살아서는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하고 말았다.
양아치 중 하나가 인간 여성체로 변신한 레이레아를 추행한 것이다.
선을 넘어선 양아치들의 머리통이 일제히 허공을 맴돌다 바닥에 떨어졌다.
머리를 잃은 몸통은 이에 놀라 잠시 움직이다 통나무 쓰러지듯 쓰러지며 대량의 피를 쏟아냈다.
그 피가 골목 밖까지 흘렀다.
“피, 피다!”
“사, 살인이다!”
행인들이 이를 발견했다.
행인들의 행동은 레이레아를 자극했다.
바레모스가 만류할 사이도 없이 레이레아는 헬파이어를 시전했다.
그녀의 머리 위로 떠오르는 거대한 백색의 불덩어리는 행인들을 충격에 빠트렸다.
창백한 그들의 육신은 흔적도 없이 증발했다.
비단 그들뿐만이 아니다.
폭주한 레이레아에 의해 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는 마을은 지도상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참으랬잖아!”
“바레모스 그만해. 어차피 엎지른 물이야.”
“제길, 일단 자리를 옮긴다.”
세 고위 마족은 텔레포트 마법을 시전하여 현장을 이탈했다.
평범한 마을에서 벌어진 이 사건은 향후 엄청난 파장을 야기했다.
마을에 남은 헬파이어의 흔적으로 인해.
* * *
한편 그 시간 마계에선.
“내일 뤼빅스로 가신다고요?”
“예.”
“하면 저희들은?”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을 때까지 여기서 생활하시면 됩니다. 시쿠가 있으니 위험하진 않을 겁니다.”
어스의 말에 시쿠가 두 다리로 일어선 뒤 짧은 앞발로 자신의 가슴을 탕탕 쳤다.
믿음직스럽다기보다 귀여울 뿐이다.
“여러모로 신세만 지는군요. 어스 백작님의 은혜에 보답할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걸 다 가진 어스에게 있어 도리아 하우든의 보답은 의미가 없었다.
하지만 상대의 기분을 고려하여 내색하지 않았다.
아니, 굳이 내색하지 않더라도 도리아나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알고 있다.
자신들이 그에게 해줄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걸.
“그 마음이면 됩니다.”
“거듭 감사드립니다.”
“제가 안 보이더라도 찾진 마세요.”
어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동굴을 나섰다.
그 하나 더해져도 공간엔 여유가 남았지만 모르는 자들과 함께 지내고 싶은 마음이 없어 따로 자신만의 공간을 마련했다.
동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폭포 위쪽에 우뚝 서 있는 거대한 나무였다.
“주인님!”
“오늘도 마물 잡았다고?”
“마물 캠프에 접근하기 전에 땅속 깊은 고스로 데려가서 지웠다.”
“조용한 곳인 줄 알았는데 마물이 많네.”
시쿠와는 거리가 아무리 떨어져 있어도 의념을 통해 소통할 수 있었다.
그래서 캠프의 상황은 그가 원할 경우 실시간으로 파악이 가능했다.
“이젠 마물도 뜨문뜨문 온다. 시쿠가 무섭다는 걸 마물도 알고 있다.”
“앞으로도 잘 돌봐줘.”
“걱정 마라. 시쿠 주인님 말 잘 듣는다. 인간들 시쿠가 보호하면 안전하다.”
“역시, 시쿠.”
어스는 시쿠가 좋아하는 음식을 인벤토리에서 꺼내 건넸다.
이를 받아든 시쿠는 기뻐하며 음식을 먹었다.
그 모습을 잠시 쳐다보던 어스는 상태창을 열었다.
‘강화나 해볼까.’
미친 실패율에 그간 시도조차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상황이 달라졌다.
코인의 사용처가 강화 하나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코인 : 14,610,628,057.
이것이 현재 어스가 보유한 코인 총액이다.
백만이 넘는 마족을 죽이고 쌓은 부다.
그런 자금이 지금 도박에 모조리 투입되고 있었다.
시작은 1서클부터다.
가볍게.
‘8서클 하나만 12강으로 만들면 좋겠는데.’
천문학적인 양의 코인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어스가 저리 소박한 바람을 갖는 건 단 한 번의 실패 없이도 8서클 스킬을 12강 만들기 위해서는 14억 3천만 코인이 필요한 때문이다.
저 서클 스킬도 고강의 경우 신물이 넘어올 정도로 성공확률이 낮다.
하물며 8서클이면 실패율이 시작되는 구간부터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각오가 필요하다.
다 날려도 상관없다.
마계는 넓고 마족은 잡초만큼이나 많다 보니 수급은 조금도 어렵지 않다.
‘전 스킬 12강은 마족의 씨를 말리면 가능하려나?’
그렇게까진 하지 않을 것이다.
마계는 소중한 사냥터이기에.
“가즈아-!”
강화 작업의 성공을 기원하는 기합을 잔뜩 불어넣은 어스의 손이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쁨과 슬픔이 반복한다.
어느 순간 기쁨도 슬픔도 잊고 강화에 매몰되었다.
저도 모르게 이를 갈아붙이고.
깨드득.
저도 모르게 ‘쾅’ 잠자리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그래서 마련한 잠자리가 엉망이 되었다.
우라질.
뜨거워진 머리를 식히기 위해 폭포수를 정수리로 받았다.
몸이 부서질 것 같은 압력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차분하게 돌아온 마음으로 지금까지 걸어온 여정을 살핀다.
1서클 1개 매직 애로우 +12강.
2서클 1개 파이어 애로우 +12강.
3서클 1개 파이어 볼 +12강.
4서클 1개 파이어 버스터 +10강.
파이어 버스터와 동급인 아이스 스피어와 일루젼은 강화 시도조차 못 했다.
그럼에도 남은 코인은.
코인 : 7,610,628,057.
어금니를 갈아붙이고, 몸을 눕힐 공간을 때려 부수고, 미친놈처럼 바위도 쪼갤 위력의 폭포수에 정수리를 내주었는지 잔액이 말해주고 있었다.
하아.
‘현실은 비극이라더니.’
자신을 두고 나온 말이 아닐까 싶다.
운이 없어도 어쩜 이리도 운이 없는 건지, 영험한 이종족 주술사를 불러다 제사라도 지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여기서 접자 이래선 안 돼.’
폭포수를 맞은 게 도움이 된 건지 이성을 되찾은 어스는 부서진 잠자리를 수리하며 눈물을 삼켜야만 했고.
지금 하면 되지 않을까라는 유혹과 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