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화
밴드로스 시에 학살자가 공격한다는 신고를 접한 키빌은 고위 마족들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마계를 우습게 보며 날뛰는 인간 학살자에게 더 이상 수치스러운 패배를 당하기 싫었다.
키빌의 요청을 받은 고위 마족들은 즉시 그에 화답했다.
키빌은 그들과 함께 텔레포트 마법진에 몸을 실었다.
그런데 웬걸 밴드로스 시로 공간 이동을 할 수 없었다.
‘설마, 그사이 도시가 박살 나기라도 한 건가?’
그게 아니고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텔레포트 마법진이 설치된 곳은 해당 도심에서 가장 안전한 곳에 설치되는 것이기에.
키빌은 불길한 생각을 애써 억누르며 밴드로스 시와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텔레포트 마법진으로 일행과 함께 이동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전력을 다해 밴드로스 시로 비행했다.
곧 밴드로스 시에 도착한 키빌과 그 일행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도, 도시가 없어졌어!”
“대기에 떠도는 마나의 힘이 이상해 대체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웬만한 일엔 눈 하나 깜빡이지 않을 만큼 대담한 고위 마족들이었지만 대기에 흐르는 비정상적인 마나의 흐름에 다들 충격이 컸는지 심각한 반응을 보였다.
호전적인 성격으로 유명한 자들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강력한 마법이 백수십 회 이상 중첩되지 않는 이상 이런 마나의 흐름은 있을 수 없는데.”
고위 마족들 중엔 마법에 능통한 자들도 더러 있었다.
그랬기에 누구보다 이를 민감하게 받아들였다.
현장에 도착한 내내 키빌은 입에 자물쇠를 채운 듯 입도 벙긋하지 않았다.
그러나 언제까지 책임자란 작자가 입을 다물 수 없는 노릇이라 키빌은 수색을 지시, 아니 부탁했다.
다들 침통한 기색으로 키빌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하늘을 찌르는 자존심을 가진 그들이었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고분고분했다.
“여기 이상한 형태의 구조물이 있다!”
누군가 소리쳤다.
그에 모두 그 목소리를 좇아 몸을 날렸다.
심상치 않은 기운을 풍기는 구조물을 본 마족들의 눈이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커졌다.
구조물은 탑을 연상시켰다.
호기심이 강한 몇몇 고위 마족이 이를 참지 못하고 검은 탑에 접근했다.
키빌이 만류할 사이도 없이.
그렇게 검은 탑을 향해 접근한 그들은 모두의 눈앞에서 홀연히 사라졌다.
그 모습이 흡사 검은 돌을 만지고 사라진 사례를 연상시켰다.
키빌의 놀라움은 다른 고위 마족보다 자연 더 클 수밖에 없었다.
‘인간 학살자의 짓인가?’
검은 탑을 바라보는 키빌은 그러한 의심을 지울 수 없었다.
이곳은 학살자가 만행을 저지른 자리였으니까.
* * *
어스는 사냥을 중단했다.
외부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으로 이동했다.
갈증을 달랜 뒤 뜨거운 머리를 식혔다.
범람했던 알람을 상기하며 이를 곱씹었다.
특전 조기 종결로 인해 잃은 건 단 하나다.
‘뼈를 때리네.’
그래도 이만하길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도시를 공격하기 전, 혹은 중간에 이 알람이 떴다면 그 도시에서 습득한 보너스 업적 포인트를 손에 넣지 못했을 것이다.
그 도시에서 어스가 얻은 보너스 업적 포인트는 자그마치 102,495로 이는 지금까지 획득한 업적 포인트 전체를 합친 것보다 많은 수치였다.
4배 이상이다.
고작 도시 하나 섬멸했을 뿐인데.
이를 생각하면 특전 조기 종결도 납득 못 할 건 없다.
‘그래도 그렇지 유예기간을 주면 서로 좋잖아.’
덕분에 엘프의 군주(유일)라는 칭호를 새로 얻긴 했지만 손해 본 느낌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하아.
세 번째 칭호인 엘프의 군주(유일)는 3가지 기능을 제공한다.
첫째는 마나 회복률 20퍼센트 추가 상승이다.
두 번째는 생명력 회복률 30퍼센트 상승이다.
참고로 생명력 회복률은 마나와 달리 매시간 자연 회복률이 없었다.
‘치료 포션 많다고! 돈이면 되는 데 굳이.’
포션 마시기는 이제 달인의 경지에 이르렀다.
때문에 쓸데없는 기능처럼 보였다.
대망의 세 번째 기능은 스킬 슬롯 +2.
보너스 업적 포인트 수급에 심각한 차질이 빚어진 와중에도 멘탈이 무너지지 않도록 잡아준 기능이다.
‘나와 동급이거나 강한 놈이면 대체 어떤 수준인 거지? 설마 마왕?’
부디, 아니길 빈다.
만약 정말 마왕이 유일한 보너스 업적 포인트 수급처(?)라면 보너스 업적 포인트 수급은 반쯤 포기하는 편이 나을 테니.
이름(성별) : 어스(남).
직업(레벨) : 마법사(154).
칭호 : 위그드라실의 친구(유일). 승리의 노래(12/12). 엘프의 군주(유일).
생명력 : 50,370/50,370. (생명력 회복 1시간 30퍼센트).
마나 : 37,000/37,000. (마나 회복 1시간 40퍼센트).
인벤토리 : 1(+14).
스탯 : 힘(102.7). 체력(10,000). 민첩(102.7). 지력(5,000). 정신(7,000).
직업 스킬(13/16) : 매직 애로우(+5/12). 파이어 애로우(+3/12). 파이어 볼(+3/12). 파이어 버스트(+3/12). 아이스 스피어(+3/12). 일루젼(+3/12).
콜 라이트닝(+5/12). 블링크(+3/12). 체인 라이트닝(+4/12). 헬파이어(+0/12). 레스토레이션(+0/12). 프로즌 템페스트(+0/12). 엘리멘탈 피니쉬먼트(+0/12).
업적 포인트 : 102,975.
코인 : 193,628,057.
손쉬운 포인트 수급의 길이 막혀 무려 여섯 자리나 되는 미사용 포인트 임에도 부족해 보였다.
하루, 딱 하루만 더 시간을 줬다면 좋았으련만.
‘열 받는데 메테오 스트라이크 구입해서 난사하고 다녀?’
마족이 사는 세계를 박살 내는 건 도를 넘는 짓이리라.
놈들이 자신에게 한 짓…… 은 없군.
‘놈들에겐 내가 나쁜 놈이겠군.’
그래도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다른 건 정상적으로 습득할 수 있으니까.
어스는 자신의 기분을 달래기 위해 인벤토리에서 음식을 꺼냈다.
간이 식탁 여러 개를 겹쳐 큰 식탁으로 만든 뒤 가득 채웠다.
소소한 수고를 끝낸 다음 한 점씩 먹기 시작했다.
오물오물.
‘와인도 마실까?’
인벤토리로 향하던 그의 손길은 이성의 외침으로 인해 중간에 멈칫한다.
지금 이 기분에 술을 마신다면 매우 높은 확률로 거하게 사고 칠 것 같았다.
그래서 먹고, 먹고 또 먹었다.
배가 터지기 일보직전까지 양껏 먹자 그제야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그제야 알람의 맨 마지막 내용이 떠올랐다.
‘찬란했던 타락자라 그건 또 뭐지? 이벤트 몬스턴가?’
* * *
고위 마족 셋이 중간계로 넘어갔다.
정확하게 말하면 중간계에 있는 던전이다.
“여, 여긴 어디지?”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전이 마법이라도 걸었나? 아님, 환상 마법인가?”
표범 머리의 고위 마족 톨로레스.
이에 사자 머리를 한 바레모스가 고개를 내저었다.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톨로레스 그리고 하이에나를 닮은 머리를 한 여성 고위 마족 레이레아의 시선이 하늘로 향했다.
그런 둘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푸, 푸른 하늘?”
“맙소사! 저건 기록으로만 전해지는 중간계의 하늘 아냐? 설마, 우리 차원 이동이라도 한 거야?”
“중간계가 아닐지도 몰라. 내 힘이 온전해. 이곳이 중간계라면 말이 안 되지. 설마, 너희는 아닌가?”
“……나도 힘이 온전해.”
“나 역시. 그럼 여긴 확실히 중간계는 아니겠군. 그럼 대체 저 푸른 하늘은 뭐지? 저건 분명 중간계를 상징하는 하늘색인데. 설마, 기록에 오류가 있던 걸까?”
“당장은 아무것도 장담해선 안 돼. 일단 주변을……?”
바레모스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저 멀리 다수의 인영이 이동하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안력에 힘을 준 바레모스는 그 인영의 정체를 확인했다.
“이, 인간이다!”
“인간? 혹시, 학살자?”
“학살자는 한 명이야. 아니, 한 명 이어야 해.”
“앞서도 말했지만 장담도 단정도 해선 안 돼. 바레모스.”
“나도 톨로레스의 말에 동의해. 우린 학살자가 인간이라는 것을 제외하면 그에 대해 아는 게 없어. 제길, 이런 일이 생길 줄 알았다면 키빌 녀석에게 학살자에 대한 정보를 얻는 건데.”
인간이건 마족이건 후회는 어쩔 수 없나 보다.
세 고위 마족은 서로를 보며 나직한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인간을 경계하는 마족이라니.
굴욕이다.
“모든 인간이 학살자 같은 괴물은 아닐 거야. 그랬다면 기록에 없을 리 없잖아? 섣불리 행동하는 건 안 좋지만 그렇다고 주눅 들 필욘 없다고 생각해.”
“짜증 나는군. 인간 따위에게…… 일단 잡담은 접어두고 저놈들을 따라가 보자. 지금은 사소한 정보도 절실한 상황이니까.”
바레모스의 제안에 톨로레스와 레이레아는 고갯짓으로 수락했다.
의견 일치를 본 세 고위 마족은 숨소리까지 줄이며 인간들을 은밀히 뒤쫓았다.
마족들이 미행하고 있는 인간들의 정체는 던전 원정대였다.
기사 다섯, 마법사 둘, 매직 스틱으로 무장한 병사 100명으로 구성된 무리였다.
인간들의 기준에선 무시할 수 없는 전력이었지만 몬스터들이 활보하는 던전이란 특수한 환경에선 대단한 전력으론 볼 수 없다.
그럼에도 원정대의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자신들이 입장한 던전 등급이 원정대 전력으로 충분히 클리어할 수 있다는 걸 다수의 경험을 통해 검증 받았기 때문이었다.
“서쪽으로 경로를 변경한다.”
선두의 기사가 나침판처럼 생긴 물건을 들여다본 뒤 소리치자 일행은 곧장 방향을 틀었다.
고위 마족들은 마족이라 믿기 힘든 인내심을 발휘하며 그들을 미행 중에 있었다.
무려 반나절 동안.
이는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마족과 인내심이라니.
“놈들 모두 약해.”
“인정.”
“확실히 학살자는 아니군.”
“우리가 너무 경계한 것 같아. 확인이 끝났으니 저 벌레들을 잡아다 정보를 캐야겠어.”
미행이란 치욕스러운 행동의 반작용인지 레이레아는 신경질적으로 말하였다. 두 마족 역시 레이레아와 같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움직이기 전 던전 원정대는 보스와 조우하여 전투를 벌였다.
인간들의 전투하는 모습은 처음 보았기에 셋은 좀 더 지켜보기로 했다.
혹시나 기록에 전해지는 인간과 오늘날의 인간 사이에 다른 점이 있나 싶기에.
2띠 던전의 보스엔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원정대와 보스의 전투는 싱겁게 끝났다.
불과 15분 만에.
던전 초기였다면 상상도 못 했을 일이다.
하나 신무기의 등장으로 지금은 보편적인 일로 자리하고 있었다.
보스의 사망으로 던전이 붕괴했다.
이를 처음 접한 세 고위 마족은 크게 당황했다.
‘인간들의 능력인가?’
‘세계를 뒤튼다고?’
‘학살자급은 아니더라도 위험한 놈들이다!’
혼비백산한 세 고위 마족이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들 앞에는 다수의 인간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이에 세 마족은 크게 당황했다.
“수인족?”
“던전에서 수인족이 왜 나와?”
“헐, 나 수인족 처음 봐. 신기하네.”
“생긴 걸로 봐선 수인족 중에서 맹수족인 것 같은데 머리 옆에 저 뿔은 뭐야?”
사람들의 태도에 세 고위 마족은 불안한 표정으로 서로를 보았다.
그 짧은 사이 약속이라도 한 걸까?
세 고위 마족은 동시에 몸을 날렸다.
사람들이 없는 방향으로.
“놈들이 도망간다!”
“잡아!”
“말도 안 하고 튀네.”
사람들은 자신들이 뒤쫓는 자들이 파괴와 죽음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마족, 그것도 고위 마족임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만약 이를 알았다면 지금 같은 상황은 아예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토끼를 두려워하는 맹수가 없는 것처럼.
* * *
특전 조기 종결에 허탈감에 빠졌던 어스는 곧 이를 털어냈다.
인정하든 안 하든 현실은 바뀌지 않을 것이기에.
마음을 다잡은 어스는 미분배 포인트를 한참 들여다본 뒤 스탯에 분배하기 시작했다.
다 쓸 생각은 없었다.
체력, 지력, 정신 스탯을 올 2만으로 만들었다.
이에 들어간 포인트는 1만 8천이다.
그럼에도 아직 84,975포인트나 남았다.
‘제길, 하루만 더 시간이 주어졌다면…….’
현실을 인정하기로 했지만 아쉬운 마음까지 완전히 털어낼 순 없었다.
생명력 : 100,370/100,370. (생명력 회복 1시간 30퍼센트).
마나 : 102,000/102,000. (마나 회복 1시간 40퍼센트).
‘미쳤네, 미쳤어.’
지금의 생명력이면 그랜드 소드 마스터의 공격을 몸으로 때워도 되지 않을까 싶다.
거기다 마나는 또 어떤가.
9서클 스킬을 본신의 마나만으로 무려 10번을 시전할 수 있다.
‘이렇게 보니 특전 조기 종결도 이해가 가네.’
직업 스킬(13/16)
칭호 엘프의 군주(유일)를 소유하여 스킬 슬롯이 2 증가하여 3개의 스킬 구입이 가능하다.
‘함부로 사용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지만 상징적인 의미로 메테오 스트라이크를 구입할까?’
9서클 대현자라면 메테오는 기본으로 깔고 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잠시 고민하던 어스는 곧장 질러 버렸다.
그렇게 어스의 14번째 스킬 칸에 메테오 스트라이크가 당당히 그 이름을 올렸다.
전설로 전해지는 9서클 궁극의 파괴 마법이 그의 손에 떨어진 것이다.
‘그래도 이왕 배웠는데, 기념으로 한번쯤은 쏴봐야겠지. 설명이랑 현실은 다를 수 있으니까.’
어스의 신형은 이내 사라졌다.
연못에 사는 개구리, 아니 마족들을 향해 날릴 거대한 돌덩이를 쥐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