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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로 성장하는 마법사-208화 (208/250)

208화

“소문 들었어? 어스 테리우스 백작이 현자래?”

“고자라고?”

“아니, 현자.”

“현자? 그건 뭐야?”

“대마법사보다 한 단계 높은 경지가 현자란다. 넌 그것도 모르냐?”

마법사나 지식인을 제외하고 현자라는 칭호에 대해 알고 있는 자들은 전무하다.

그런데 그러한 칭호가 지금 그와 상관없는 자들, 백성들의 입에서 널리 퍼지고 있었다.

그 중심은 역시 솔론 왕국이었다.

“푸른 뇌전의 마탑주님과 부탑주님보다 더 강력한 마법사라는 거야? 어스 백작님이?”

솔론 왕국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마탑중 가장 유명한 마탑은 푸른 뇌전의 마탑이다.

푸른 뇌전의 마탑의 시조는 한때 솔론 왕국의 왕실 마법사이기도 해, 수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인연 덕에 솔론 왕국 왕실과 푸른 뇌전의 마탑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솔론 왕국 백성들 사이에서도 푸른 뇌전의 마탑은 가장 유명했다.

“맞아.”

“열일곱 아닌가? 어스 백작님 연치가?”

“천재성에 나이가 무슨 상관이야? 더욱이 그런 천재가 엄청난 깨달음까지 얻었는데.”

“오! 그러면 우리 왕국은 더 이상 던전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네? 그런 엄청난 분이 우리 왕국 귀족이잖아! 아니, 아니군. 지금 당장 테리우스 백작영지로 이사 가야겠어. 앞으로 거기보다 더 안전한 영지는 없을…….”

“아냐. 그러지 마.”

“왜?”

“내 조카사위가 아카데미 교수야. 커험. 그런데 그 조카사위의 말을 들으니까 공용법인가? 뭔가에 의해 어스 백작님이 더는 솔론의 귀족이 아니게 된다더군. 그러니 테리우스 영지도 없다고 봐야지. 하지만 전례를 보아 푸른 뇌전의 마탑처럼 우리 왕국에 협조적인 마탑이 탄생할 거야.”

솔론 왕국 전역은 이처럼 어스에 관한 이야기로 들끓었다.

그날 귀족들 앞에서 어스가 선보인 헬파이어가 일으킨 후폭풍이었다.

그러나 정작 솔론 왕국의 기득권층은 입에 자물쇠를 채워놓기라도 한 듯 조용하기만 했다.

그리고 이 소문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각국의 정보국은 물론 대륙의 모든 마탑이 일제히 움직였다.

* * *

나흘 전 어스는 솔론 왕국에서 힘깨나 쓰는 귀족들 앞에서 무력시위를 보인 뒤 보란 듯 냉기를 풀풀 날리며 그들 면전에서 돌아섰다.

그렇게 돌아선 이후 어스는 영지로 돌아와 연합을 통해 자신에 관한 소문이 퍼지도록 만들었다.

그가 그리하지 않았다면 그날 사건 역시 미답지에서 벌어진 사건이 묻히듯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르고 지나갔을 게 뻔하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큰일을 벌였지만 정작 당사자는 평온하기만 했다.

‘눈 오네.’

어스는 테리우스 영지 내 자신의 방에서 내리는 눈을 감상하고 있었다.

똑똑.

“오빠, 나야!”

뭔가에 단단히 놀란 듯 여동생의 떨리는 음성이 방문 너머에서 들렸다.

오랜만에 감성에 젖으려던 어스는 입을 삐죽이며 방문을 허락했다.

“방주인의 허락까지 기다리고 그새 철 든 거야? 사람이 안 하던 짓 하면 문제 생긴다던데…….”

“정말, 정말이야? 오빠가 정말 8서클 대마법사야?”

“어이가 없네. 나 대마법사 아니거든.”

“그, 그렇지 아니지? 난 또 진짜인 줄 알고 깜짝 놀랐네. 아무리 천재라도 열일곱에 8서클 대마법사는 판타지긴 해. 아니, 이건 판타지여도 욕먹을 일이지.”

“현자거든. 근육만 키우지 말고 책도 좀 읽어.”

제 할 말만 쏟아내던 루시가 잠시 진정한 사이 그제야 어스는 여동생의 무지에 대한 정정을 해줄 수 있었다.

핀잔까지 더했다.

그럼에도 응당 나와야 할 반응이 나오지 않았다.

웬일?

“야?”

“…….”

“루시?”

“…….”

“그런 얼빠진 표정 할 거면 나가. 내 시간 방해하지 말고.”

“저, 정말이야? 진짜 8서클 대마법사야? 에이. 아니지? 농담이지? 소문이 잘못된 거지?”

“귓속도 근육으로 꽉 찼어? 내가 방금 말했지? 8서클은 현자라는 독립적인 호칭이 있다고. 앞서 분명히 가르쳐 줬잖아?”

“보여 줘! 그거 보여 달라고, 소드 마스터랑 귀족들 턱 빠지게 한 그거 말이야! 제발! 헬파이어 보고 싶어.”

현자라는 호칭은 유명하지 않다.

반면 헬파이어는 대중에 널리 알려진 이름이다.

어째서 현자가 아닌 헬파이어가 더 유명하냐면 동화나 소설에선 반드시라고 해야 할 만큼 헬파이어라는 마법이 공식처럼 빠지지 않는 요소였기 때문이다.

사실 어스도 8서클 스킬을 구입할 조건을 충족했을 때 그 많은 8서클 스킬 중에서 가장 먼저 떠올렸던 것도 바로 헬파이어였다.

“창밖을 봐. 함박눈이 저렇게 펑펑 내리고 있는 걸 보면 감성이 막 샘물 솟듯 솟구치고 가슴 한편이 찌릿하고 아련해지는 뭐 그런 느낌 안 들어?”

“뭔 개소리야? 눈이 오늘만 내린 것도 아니고. 그리고 저거 쌓이면 치우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아? 하긴, 예전부터 눈을 치워 봤어야 알지.”

“야! 나도 치워 봤거든!”

“엄마아빠 앞에서도 그 말 그대로 말할 수 있어? 헛소리 작작하고 보여 줘. 헬파이어.”

“오빠가 서커스단 마술사냐?”

“되게 비싸게 구네.”

“헬파이어 엄청 비싸거든.”

“됐어. 안 봐.”

“가.”

“…….”

“가라고!”

“…….”

“야!”

“소리치지 마 귀 안 먹었어.”

“그런데 왜 안 가?”

“치사해!”

버럭 소리치던 루시가 방문이 부서져라 닫곤 나가버렸다.

오우거가 복도를 걷는지 쿵쿵거리는 소리가 방음이 꽤 잘되는 방 안까지 들렸다.

루시가 한바탕 휘젓고 나가버리자 감성도 그를 쫓아 가버렸는지 조용히 내리는 함박눈을 봐도 더는 아무렇지 않았다.

“역시 여동생과는 한 지붕 아래 사는 게 아니었어.”

아도니스와 실리시아를 연결하는 텔레포트 마법진이 구축되면 그편에 루시를 아도니스로 수련 여행을 보내는 걸 고려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겨울 바다는 험악하다는데 로엘은 괜찮을지 모르겠군.’

자신보단 못하지만 명색이 7서클 대마법사이자, 상급 바람의 정령사다 그러니 바다가 뒤집어져도 고초는 있을지 몰라도 목숨이 위험한 일은 없을 것이다.

루시의 방문으로 인해 감성이 깨진 어스는 인벤토리에서 마법 통신구를 꺼냈다.

연합의 조직력을 이용해 자신에 관한 소문을 퍼트린 이후 문자가 쇄도했다.

아는 번호도 있었고 전혀 모르는 번호도 있었다.

어스는 습관처럼 이를 넘기다 깜짝 놀란 표정으로 제 눈을 연방 비비기 시작했다.

‘소피 글리시아?’

대부분의 연락을 무시로 일관하던 어스는 소피 글리시아의 문자는 수신하고 말았다.

-안녕하세요. 소피 글리시아예요. 절 기억하시나요?

알지, 잘 알지.

전 여친의 여동생을 어찌 모르랴.

-오랜만이네요. 소피 양.

-언니와 헤어졌다는 이야기는 들었어요. 그래서 망설였는데…… 용기내서 연락 드렸습니다.

-언니는 잘 지내죠?

-근위대에 있어요. 혹시, 언니와는 연락하지 않으세요?

혹시 루리아가 자신을 못 잊고 괴로워하는 걸까? 그래서 소피가 보다 못 해 자신에게 연락을 한 것일까? 만약 그런 것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재결합해 버릴까?

짧은 순간 오만 생각이 스쳤다.

루리아와 보낸 기억을 배경으로.

찌릿.

가슴 한편이 저민다.

루시의 난입(?)으로 달아난 감성이 언제 그랬냐는 듯 차올랐다.

곧 어스는 그 감성을 쫓아냈다.

뭐든 한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쉽다, 그건 남녀 사이도 마찬가지다.

당장은 감정이 앞서 잠깐은 행복할 수 있다 있지만 마음 한편엔 헤어진 기억이 남아 있어 작은 일에도 그때 그 일이 촉발되어 쉽게 헤어지게 된다.

이걸 어찌 아냐고?

루리아와 헤어지고 나서 나름 조사했다.

돈 들여서.

바쁜 그 와중에도.

하아.

어스는 괜히 받았다는 생각이 해일처럼 일었다.

-불편한 관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편한 관계도 아니죠. 그보다 무슨 일인가요, 소피 영애?

-죄송합니다. 혹시, 괜찮으시면 제가 소속된 마탑의 탑주님을 만나 주실 수 없으실까요?

-차후 마탑의 탑주님들과 자리를 가질 생각입니다. 그때, 일곱 불꽃 마탑에도 초대장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이후 간단한 안부를 묻고 통신을 종료했다.

마음이 갑자기 무거워졌다.

“술이 당기네. 아버지랑 술이나 한잔해야겠다.”

* * *

8서클 마법사의 출현에 마탑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러나 그들보다 더 민감한 반응을 보인 곳은 역시 교단을 들 수 있다.

처음 어스가 8서클 경지의 마법사라는 이야기를 하츠 후작에게서 전해 들은 교단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 이름보단 천재 마법사, 괴물 마법사라는 이명으로 더 유명한 소년마법사였지만 설마 열일곱에 8서클이란 터무니없는 경지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하츠 후작이 자신들에게 감히 거짓을 고할 수 없음을 분명 인지함에도 교단은 당시 현장에 있던 귀족들 전원을 대상으로 재차 이를 확인했다.

그 결과는 하츠 후작에게서 들었던 것보다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미답지에서 정찰대를 공격한 일단의 무리는 테리우스 영지의 이종족 노예 병사들로 봐야겠지?”

어스의 일로 헤롯 추기경은 베로니카 단장을 불러들였다.

“8서클이면 능히 텔레포트 마법진 구축도 문제가 없을 테니, 미답지에서 활동하던 자들은 그가 들여보낸 자들이라고 봐야겠지요.”

“이런 식으로 의문이 풀릴 줄이야. 우리 계획은 백지화해야겠어.”

헤롯 추기경에 말에 베로니카 단장은 나직이 한숨을 내불며 고개만 끄덕였다.

교단은 미답지에 일단의 무리가 활동하고 있는 걸 진작 포착했다.

그리고 그들이 인간이 아닌 이종족이란 사실도.

이에 교단은 어스가 이종족 노예 해방 연합과 손잡은 게 아니냐는 의심을 갖게 되었다.

장거리 텔레포트 마법진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재원과 함께 대마법사의 존재가 필수이기 때문이다.

한데 그러한 의심이 이번 일로 일축되고 말았다.

교단 입장에선 아쉬움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종족 노예 해방 연합과 어스를 엮어 버리면 이를 명분으로 어스를 칠 수 있었는데 이번 일로 그럴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를 절호의 기회라 여기고 있던 교단 입장에선 허무한 결말이 아닐 수 없었다.

“그것도 문제지만 마탑들의 동향이 심상치 않습니다. 헤롯 님.”

교단이 가장 신경 쓰는 세력은 대륙을 양분하고 있는 왕국들이 아니다.

바로 마탑이었다.

각 왕국은 정치, 경제, 외교, 문화, 종교 등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조직이라 교단의 입김이 잘 먹히지만 마탑은 그렇지 않았다.

그랬기에 마탑의 동향을 파악하는 건 교단은 물론 교단의 비밀결사조직인 성전단의 오랜 임무 중 하나였다.

물론 마탑도 교단의 입김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건 아니다.

마법사들 중에도 교인은 있었으며, 마탑이 소비하는 고급 마법 재료의 경우 태반이 교단의 손에서 나오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이중 안전장치를 갖고 있음에도 교단이 마탑을 신경 썼던 이유는 마법사들의 독특한 문화 때문이다.

바로 서클 우선주의. 저서클의 마법사에게 고서클의 마법사의 존재는 자연스레 받들어야 할 대상이 되는 것이다.

현재 어스는 마법계에 있어 가장 핫한 인물로 부상했다.

그러니 전처럼 그를 건드리는 일은 교단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난 마법사들보단 오히려 어스 테리우스 그자가 더 꺼림칙하다. 5서클일 때도 만만치 않은 인물이 지금은 8서클이다. 손대기엔 너무 컸어.”

5서클일 때의 어스는 종종 국가급 무력 소유자란 말을 듣곤 했다.

그런데 이제 8서클이 되었으니 대륙급이라 봐도 무방하다.

개인의 무력이 여기까지 미치다 보니 제아무리 교단이라지만 대놓고 그와 싸우는 건 이젠 위험부담을 느끼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니 내키지 않더라도 이젠 그를 인정해야 하지 않나 싶었다.

“그래서 그를 인정하실 생각이십니까? 미답지의 소유도?”

“그와 충돌한다면 이겨도 문제, 지면 더더욱 문제다. 베로니카 단장.”

“성전단의 수장이신 헤롯 님이 하실 말씀은 아니라고 봅니다.”

“성전단의 창설 목적은 교단에 위협이 될 소지가 있는 개인과 조직으로부터 교단을 지키는 일이다. 그런데 그자와 충돌한다면 본말전도라 생각하지 않나?”

베로니카 단장은 이에 할 말을 찾지 못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의 주변엔 이종족이 너무 많습니다. 이종족이 노예 신분이면 모르겠지만 자유민이 될 공산이 높습니다. 더욱이 미답지라는 광활한 영토까지 가진 이상 이 땅에 이종족의 국가가 세워질 수도 있습니다.”

헤롯은 베로니카 단장의 말을 그저 억측이라 치부할 수 없었다.

그럴 징후가 농후했으니까.

그러나 미답지는 어스가 허락하지 않는 이상 교단도 간섭할 수 없도록 계약에 명시되어 있는 이상 달리 손쓸 방법이 없었다.

‘거스티의 말대로 진작 제거했어야 했나?’

후회의 감정이 치밀었지만 이미 지난 일이라 의미 없었다.

그러니 어스 테리우스를 견제할 방법을 찾는 데 역점을 둬야 할 것이다.

장내의 침묵이 흐른다.

그러나 그 침묵은 외부의 요인으로 인해 깨졌다.

“무슨 일이냐? 거스티 경.”

“추, 추기경 님, 단장님, 큰일 났습니다. 헥터 왕국 남부 지역 던전에서 마족이 나왔습니다.”

“뭐!”

어스로 인해 골머리를 썩이고 있던 헤롯 추기경과 베로니카 단장에게 새로운 근심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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