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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로 성장하는 마법사-207화 (207/250)

207화

어스가 온다는 연락을 미리 받은 푸리엘은 업무를 뒤로 하고 그를 맞으러 지하실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지하실의 마나가 공명하며 텔레포트 마법진에서 흰빛무리가 기둥처럼 솟구쳤다.

그 기둥은 이내 흩어지고 그 자리에 어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기다리고 있었어?”

“바로 떠나서야 할 것 같아 초청장을 가져왔습니다.”

“바로?”

“날짜가 촉박합니다. 여기.”

푸리엘에게서 초청장을 건네받은 어스는 내용을 보자마자 황당한 듯 혀를 찼다.

그도 그럴 것이 익일 오전 11시까지 입궁하라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내일 이 시간까지 왕궁에 가는 건 어렵지 않다.

실리시아에서 이곳으로 왔듯 그리하면 시간은 넉넉하다.

그럼에도 어스가 저처럼 반응하는 건 교단과의 사이가 틀어진 걸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상황에서 이처럼 일정을 빡빡하게 잡았다는 건 자신을 물 먹이려는 악의적인 의도로밖에 해석할 수 없었다.

입을 꾹 다문 채 표정을 굳히고 있는 어스의 표정을 살피던 푸리엘이 조심스레 질문했다.

“칼렉 왕세자완 연락하셨습니까?”

“아무리 바빠도 내가 연락하면 즉각 답신하던 사람인데 오늘은 없네.”

어스는 손에 쥔 초청장, 아니 명령서라고 해야 하지 않나 싶다.

이를 인벤토리에 던진 뒤 지하실을 나섰다.

“바로 출발하시려고요?”

“아니.”

“그럼 신전에 양해를 구할 생각이신가요?”

“양해를 구한다고 들어주겠어?”

“하면 지금 우리 측 텔레포트 마법진을 이용하실 생각이십니까?”

대외적으로 활동해야 하는 경우 어스는 연합의 텔레포트 마법진을 이용하지 않았다.

만에 하나 교단의 귀에 말이 들어갈 경우 자신이나 연합이나 입장이 곤란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요즘처럼 교단과의 사이가 틀어질 대로 틀어진 상황에선 더더욱 조심해야 한다.

어스가 이를 인지하고 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푸리엘은 의아할 수밖에 없던 것이다.

“블링크로 갈 거야. 내일 아침밥 든든히 챙겨 먹고.”

“영주님의 블링크가 대단하다지만 그리하신다면 시간에 맞추어 도착할 수 없을 텐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어느새 둘은 어스의 방에 도착했다.

나흘 만에 다시 주인을 맞이한 방이다.

어스는 소파에 엉덩이를 붙였다.

푸리엘도 맞은편에 자리했다.

“그 이야기는 그만하고. 그동안 이종족과 혼혈들은 얼마나 들어왔어?”

“혼혈까지 합쳐 120명에 조금 못 미칩니다.”

“날이 갈수록 숫자가 팍팍 떨어지네.”

“영주님과 교단이 실리시아를 두고 마찰을 빚은 다음부터 하향 추세긴 했지만 이번은 좀 심각하네요.”

“앞으로 더 떨어진다고 봐야겠네.”

“아무래도 그렇지 않을까 싶어요.”

“연합에서 파악한 이종족 노예의 숫자가 몇이라고 했지?”

“대략 18만 명입니다. 혼혈의 경우는 50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꽤 많이 사들였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빙산의 일각이네.”

“매직 스틱이 보급된 이후 이종족 노예를 팔겠다는 귀족이나 상단이 급감했습니다. 혼혈들의 이주 역시 중단된 사례가 속출했으니까요.”

“교단이 이를 노리고 매직 스틱을 그 시기에 보급했다고 생각하는 건 억측일까?”

“워낙 음흉한 자들이긴 하지만 그건 억측이지 싶네요.”

푸리에의 말에 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의 속은.

‘이벤트가 또 한 번 터져야 내게 손을 내밀겠네.’

띠 7개짜리 던전, 혹은 마족이 출현하면 충분한 이벤트가 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이 둘 모두 자신이 임의로 할 수 없는 것들이다 보니 감나무에서 감이 떨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그래도 많은 이들이 영주님의 명성에 힘입어 자유를 되찾았으며, 또한 차별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됐어. 내가 진작 적극적으로 관여했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이종족과 혼혈들이 자유를 찾았을 텐데 아쉽네.”

“그땐 바쁘셨잖아요.”

“그래도 짬은 낼 수 있었어, 그랬다면 더 많은 이들을 빼낼 수 있었을 텐데. 하긴 이미 지난 일인데 무슨 소용이겠어. 문제는 앞으로 추산 인원을 어떤 방식으로 빼내는가가 관건이네.”

사실 지금으로선 방법이 없다.

뤼빅스가 물에 빠지지 않는 이상.

그런데 현재로선 그들의 등을 떠밀고 싶어도 방법이 없었다.

매직 스틱의 등장으로 던전 원정이나 몬스터 웨이브도 전과 달리 수월하게 막아 내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막대한 자원을 획득하여 부가 눈덩이 쌓이듯 쌓였다.

그리고 그렇게 쌓인 부는 교단으로 흘러들어갔다.

매직 스틱은 위기에 빠진 인류를 위한 교단의 기부라고 할 수 있으나, 핵심인 스틱으로 쏘는 구슬은 금액을 지불하고 교단에서 구입해야 한다.

구슬 제조법은 드워프의 기술력과 이종족의 마법까지 동원했음에도 아직 구현하지 못했다.

유사품은 만들어 냈지만 유사품의 경우 위력도 형편없는데다, 마나 스틱의 내구성까지 크게 깎아 먹어 배보다 배꼽이 더 컸다.

그리고 구슬 하나를 제조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은 교단이 판매 중인 구슬 가격보다 5배나 더 들었다.

“연합은?”

“그쪽도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이래저래 이벤트가 필요한 상황인가?”

“이벤트라뇨?”

“혼잣말. 참, 루시는 요즘 어때?”

“유저 상급에 안정적으로 안착했습니다.”

“걔도 천잰가?”

“재능도 재능이지만 근성이 남다르더군요.”

딱딱한 이야기는 접은 어스는 여동생 루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저녁식사 전까지.

* * *

아침에 눈을 뜬 어스는 씻기 위해 화장실로 들어갔다.

졸린 눈을 비비며 온수에 손을 담그는 순간.

-오우거를 처치했습니다. 80코인을 습득합니다.

.

.

.

.

‘오! 오우거.’

충성스러운데다 성실하기까지 한 시쿠의 상황을 알려주는 알람.

이에 픽 웃던 어스는 손에 담은 물을 얼굴에 가져가려다 멈칫했다.

-레벨업!

‘이 녀석 밤새 사냥한 거야?’

씻는 것도 잊은 그는 서둘러 상태창을 열었다.

이름(성별) : 어스(남).

직업(레벨) : 마법사(123).

칭호 : 위그드라실의 친구(유일). 승리의 노래(12/12).

생명력 : 26,870/26,870.

마나 : 27,000/27,000. (마나 회복 1시간 20퍼센트).

인벤토리 : 1(+11).

스탯 : 힘(102.7). 체력(5,300). 민첩(102.7). 지력(3,200). 정신(5,000).

직업 스킬(12/14) : 매직 애로우(+5/12). 파이어 애로우(+3/12). 파이어 볼(+3/12). 파이어 버스트(+3/12). 아이스 스피어(+3/12). 일루젼(+3/12).

콜 라이트닝(+5/12). 블링크(+3/12). 체인 라이트닝(+4/12). 헬파이어(+0/12). 레스토레이션(+0/12). 프로즌 템페스트(+0/12)

업적 포인트 : 63.

코인 : 69,513,057.

지난 한달 동안 실리시아에서 열심히 사냥하고 돌아다녔음에도 불구하고 성장 폭은 크지 않았다.

당장 코인만 해도 7천 만을 넘기지 못한 게 그 증거다.

‘마계에 다녀왔어야 했는데.’

교단에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실리시아를 정탐하기 위해 잠입한 이들이 다수 있었다.

교단에 경고했듯 그들은 살아남지 못했다.

실리시아의 주민으로 거듭난 이종족 노예 출신과 혼혈의 손에 혹은 연합의 비밀 부대에 의해 모두 죽었다.

하지만 교단이나 혹은 그들을 보낸 자들은 모두 어스의 손에 당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들 입장에선 당연했다.

광활한 미답지에 있는 존재는 어스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도 아니고 내 결심을 확인했으면 이제 그만 보내도 될텐데.’

참 지독한 인간들이다.

교단이나 혹은 실리시아에 욕심을 부리는 기득권층 모두.

“이벤트나 확 터져 버려라.”

어스는 신경질적으로 세수를 시작했다.

또 오늘은 어떤 일이 기다릴까? 부디 자신을 자극하지 않길.

“오빠! 밥 다 차렸어!”

“방문 벌컥벌컥 열고 들어오지 마!”

“노크 했어.”

“허락하면 들어와야지.”

“그럼 알아서 내려오던가.”

“내 이놈! 기사가 되려는 놈이 감히 영주에게 반말이냐?”

“나 아직 임관 안했거든. 그리고 내가 오빠에게 임관한다고 약속한 적 없거든.”

콧방귀를 뀌며 홱 돌아서 가버리는 여동생의 등판이 유난히 크게 보인다.

‘완전 사내 등판이네, 사내 등판이야.’

전에도 체구가 또래 여자애들보다 큰 루시는 본격적으로 무술을 수련하면서 장정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커진 상태였다.

골격도 키도 모든 면에서.

‘저 녀석 평생 노처녀로 늙어죽진 않겠지?’

바퀴벌레도 짝이 있는데 설마 바퀴벌레보다 못하진 않겠지.

여동생과 한바탕 투덕거린 어스는 가족과 함께 아침을 먹은 뒤 느긋하게 왕도를 향해 출발했다.

‘블링크! 블링크!’

* * *

어스는 역시 입궁에 늦고 말았다.

이미 예상한 일이었기에 어스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칼렉 왕세자에게선 여전히 연락이 없었다.

왕궁에 도착해서 알아보니 그제야 연락이 없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왕세자는 국왕의 건강을 기원하는 기도를 올리는 중이었다.

다른 곳도 아닌 신전에서 말이다.

‘역시, 초청장을 보낸 주체는 칼렉 왕세자가 아니었군.’

칼렉 왕세자의 변심(?)을 내심 우려했던 어스는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지인의 형인데다 자신에게도 꽤 잘해준 인물이라 마찰을 빚기 싫었으니까.

칼렉 왕세자를 대신해서 국정은 귀족원이 맡고 있었다.

귀족원의 수장은 솔론 왕국의 세 소드 마스터 중 한 명이자 대귀족인 하츠 노멜 후작이 맡고 있었다.

참고로 하츠 후작은 칼렉 왕세자완 대척점에 서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초청장을 받고도 이리 늦게 도착하다니 참으로 무엄하군. 어스 백작.”

하츠 노멜 후작은 마치 자신이 왕이라도 된 듯 거만하게 행동했다.

그럼에도 그의 행동을 제지하는 자들이 없었다.

이 자리엔 하츠 노멜 후작에게 뒤지지 않는 지위의 슈리에 율리아스 후작은 물론 왕실 근위단의 단장을 맡고 있는 알렉터 코넬리 후작까지 자리하고 있음에도.

이는 이전과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그사이 정변이라도 터졌나?

이런 의심까지 들 지경이었다.

아니, 설사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정변이 일어났더라도 이건 말이 안 된다.

슈리에와 알렉터 후작 두 사람은 귀족파가 아닌 왕당파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정변은 의심의 대상도 될 수 없었다.

그럼 뭐지?

“초청장은 왕실에서 보낸 것인데 어째서 후작께서 역정이십니까?”

어스의 입은 하츠 후작을 향했지만 두 눈은 슈리에와 알렉터 후작을 살피고 있었다.

“뭐라? 백작은 지금 귀족원의 의장이자, 후작인 나를 능멸하려는 것인가! 더욱이 왕실의 초청에 늦은 주제에. 백작은 사리분별이 없는가!”

하츠 노멜 후작의 말은 지나쳤다.

어스가 자신보단 작위가 낮지만 엄연히 고위 귀족이다.

그런 그를 사석도 아닌 공적인 자리에서 저렇게 대하다니.

하츠 후작의 태도에 왕당파 귀족들이 불쾌한 낯빛으로 헛기침을 날렸다.

그제야 하츠 후작의 태도가 누그러졌다.

하지만 어스는 이에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레벨이 맞아야 상대하지 하츠 후작은 이미 그의 상대가 아니었다.

‘국왕을 대신하여 국정을 수행하는 왕세자가 왕궁도 아니고 신전까지 가서 기도를 올리는 건 말이 안 돼. 역시, 이번에도 교단인가?’

그렇다면 하츠 후작의 망발도 이해가 된다.

자그마치 교단을 등에 업었으니.

‘그런 교단도 날 함부로 하지 않는 걸 저 영감은 모르는 건가?’

교단의 위세와 힘을 생각하면 마음에 들지 않는 어스를 내버려두는 건 사실 말이 안 되는 일이다.

전가의 보도라 할 수 있는 이단의 굴레를 씌울 수 있음에도 말이다.

이는 교단 역시 어스와의 전면전을 피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런데 고작 교단을 등에 업은 자가 저리 날뛰고 있으니.

‘가만있으니 날 가마니로 보는 건가?’

아무래도 이벤트는 자신이 터트려 줘야 할 듯싶다.

“그래서 절 부른 용건은 뭡니까? 사과는 차후 왕세자 전하께 할 터이니, 절 부르신 용무를 밝혀주십시오.”

“백작은 이 나라의 귀족이다. 인정하는가?”

“인정합니다.”

“그렇다면 그대가 가진 땅 역시 솔론에 귀속되어야 한다고 본다? 인정하는가?”

‘아하! 이제 보니 감히 내 땅을 빼앗기 위한 자리로군.’

이러면 이벤트를 던져주지 않을 수 없다.

안 그래도 실리시아로 들어오는 인간들 때문에 신경 쓰여 마계에도 못가 성장이 빌빌거려 슬슬 짜증이 치밀고 있는데 잘 됐다.

“인정하는가?”

하츠 후작이 재촉했다.

“나는 인정하고 싶은데, 내 경지가 이를 인정할 수 없게 만드는군요.”

“뭐라?”

“일단 이거 보고 이야기 합시다. 후작. 헬파이어!”

마법계를 발칵 뒤집어 놓을 일대 사건이었다.

수세기 동안 한 번도 탄생하지 않았던 현자의 탄생을 알리는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현자가 고작 열일곱이었으니.

사람들의 눈과 입은 찢어질 듯 커졌고, 그들의 마음엔 거대한 바윗돌이 떨어졌다.

쿵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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