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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로 성장하는 마법사-206화 (206/250)

206화

위그드라실의 계승자를 잃게 되었을 땐 암담했다가 그보다 더 좋은 칭호로 교체되자 세상이 달리 보였다.

시스템이 미리 이를 알려주었다면 하는 원망도 없지 않았지만 결과가 좋았기에 녀석에 대한 섭섭함은 시원하게 털어버렸다.

남자라 함은 응당 지나간 일에 연연하지 않는 법이기에.

‘후후.’

레스토레이션(+0/12). 프로즌 템페스트(+0/12)

칭호를 잃더라도 스킬을 구입하면 남을까 싶어 급하게 구입했던 스킬이지만 막상 구입하고 보니 이 둘이 쓸모가 꽤 많았다.

특히 레스토레이션으로 린다의 팔을 재생시킨 건 자신이 직접 했음에도 잠자리에서 막 일어나 머리가 멍해있을 무렵엔 꿈인가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대륙에 8서클 마법을 쓰는 자는 나 밖에 없으니까.’

서클은 여전히 단 하나도 없지만 마법사들 사이에서 전설로 내려오는 8서클 마법,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치료 마법인 레스토레이션을 사용할 수 있으니 향후 마법사들 앞에서 이를 시전하는 순간 마법사가 아닌 현자로 불리게 될 것이다.

대륙에 있는 모든 마탑이 긍지와 자부심을 내려놓고 자신을 찾아와 고개를 조아리길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마법사들의 서열은 서클, 곧 경지가 신분증이니까.

‘하물며 난 여기서 끝이 아니지.’

자그마치 빈 스킬 슬롯만 두 개다, 두 개!

만약 이를 9서클 스킬로 채워버리면 그땐 현자를 넘어서 대현자로 불리게 될 것이다.

‘이 나이에 현자라니.’

들뜬 마음으로 교단 캠프에 내려선 어스는 사람들의 시선에 호응이라도 하려는 듯 자신의 로브 자락을 힘차게 쳐냈다.

펄럭.

안면이 있는 성기사 둘이 다가왔다.

그중 하나는.

‘저놈이 왜 여기 있지?’

다가온 두 명 중 한 명은 자신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성기사 거스티였다.

자신과의 마찰을 우려하여 자신의 시야에서 치웠던 인물을 다시 불러들인 게 신경 쓰였다.

“오랜만이군요, 어스 백작.”

거스티의 말투는 정중했지만 그 아래 깔린 감정은 반감을 담고 있었다.

어스는 작게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만 까닥였다.

대륙 유일의 8서클 마법사다.

일국의 국왕도 무시할 수 없는 경지인 것이다.

교단의 위세가 하늘을 찌른다지만 고작 성기사다.

어스의 반응에 거스티의 눈가가 꿈틀거렸으며, 손은 자연스럽게 검으로 향하였다.

이에 어스는 픽 웃었다.

마족도 패 죽이는 주먹인데 거스티쯤은 한 주먹이다.

그래서 내심 놈이 검을 뽑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의 바람은 베로니카 단장의 개입으로 이뤄지지 않았다.

‘10초만 더 늦게 왔어도 참교육에 들어가는 건데.’

어스는 거스티를 흘겨본 뒤 베로니카 단장을 따라 그녀의 막사 안으로 들어갔다.

“오염토 문제가 해결되었더군요, 백작.”

물 한잔 권하지 않고 인색하게도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베로니카 단장이었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던데 우린 그러지 말았으면 합니다. 마법 계약서도 작성한 사인데.”

“덩컨 대협곡 너머 미답지 오염토도 해결되었더군요.”

“너머? 그 땅은 내 땅인 것으로 교단과 각 왕국의 대표들과 이야기 끝난 걸로 아는데 들어와서 조사했다는 겁니까?”

설마 이제 와서 다른 말 하려는 걸까?

프로즌 템페스트 맛을 봐야 정신을 차리려나? 그것도 나쁘지 않다.

어중간한 힘이면 감추는 게 미덕이지만 명색이 현자다, 미덕은 자신이 아닌 타인의 몫인 것이다.

어스는 눈에 힘을 주며 베로니카 단장을 쏘아보았다.

“오염토 문제가 해결된 이상 계약은 이미 발동했습니다. 이번 한번은 실수라고 생각하겠지만 다음엔 주인인 내 허락을 반드시 받도록 하세요.”

교단에 적을 둔 자는 그 신분이 신전 뒷간 청소부라 할지라도 어깨에 힘을 주고 다닌다.

하물며 교단 제일검인 베로니카 단장이라면 그 신분이 일국의 국왕이라도 전혀 꿀리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국왕이 눈치를 봐야 하는 신분이다.

그러니 베로니카 단장의 콧대가 얼마나 높겠는가.

그런데 그런 사람이 어스 앞에선 매번 굴욕을 맛보았으니 오염토라는 미증유의 상황이 마무리 된 지금 그때의 감정을 담아 칼을 빼든다 해도 딱히 이상하진 않으리라.

에둘러도 아닌 대놓고 경고를 받은 베로니카 단장의 손이 움직였다.

그 손은 주먹을 쥐는 것으로 끝났다.

‘할망구가 나이를 헛먹은 건 아닌가보네.’

이 모습은 의외였다.

“거래는 완료되었다. 그런데 광활한 그 땅은 어떻게 관리할 생각인가?”

제아무리 비옥한 땅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으면 소용없다.

베로니카 단장은 이 점을 꼬집어 말하고 있었다.

“그건 내 사정이죠.”

“그럼 우리도 우리 사정대로 해야겠군.”

“……?”

“미답지로 향하는 모든 길목을 막을 것이다.”

미답지로 향하는 안전한 길은 덩컨 대협곡이 유일하다.

그러니 그곳을 저들이 막는다면 물류는 물론 사람들도 미답지로 발을 디딜 수 없었다.

비열하다.

명색이 종교인인데 어찌 이리도 비열할 수 있단 말인가.

엄밀히 따지면 자신은 인류의 영웅이라 불리어도 부족함이 없는 큰 공을 세운 사람인데.

베로니카 단장은 어스의 표정을 통해 제대로 한 방 먹였다고 생각한 듯 차갑게 굳어 있던 인상이 풀어졌다.

더해 미소까지 짓는다.

“물론 이는 셀레네 왕국의 뜻으로 행해지는 것이다. 국경을 열고 닫는 건 어디까지나 왕국의 주권이니까.”

뤼빅스의 그 어떤 나라도 온전한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나라는 없다.

세 살 먹은 어린아이도 아는 내용이다.

어처구니가 없다, 어처구니가.

문제는 이 어처구니없는 사태를 막을 수단이 어스에겐 없었다.

교단과 10개 왕국이 서명한 계약서 그 어디에도 이에 관한 내용은 없었으니까.

‘영지를 왕세자에게 팔아버리려고 했더니 안 되겠군.’

저들이 저리 나온다면 어스에게도 방법이 있었다.

테리우스 백작령을 통해 인력과 물자를 미답지로 옮기면 된다.

텔레포트 마법진을 가동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지만 어차피 미답지로 들일 사람들은 이종족과 혼혈이다.

인간들과 달리 이종족은 혼혈을 차별하지 않았다.

자신의 영지에 있는 혼혈이라서 그들이 그러한 모습을 보인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추후 상황을 보아 문제가 발생한다면 충분히 조율할 수 있을 것이다.

위그드라실의 친구이자, 엘프들의 은인인데 그쯤이야.

“그러죠. 나도 덩컨 대협곡을 통제하겠습니다. 추후 미답지, 아니 내 땅으로 넘어오는 자들은 도적으로 간주하고 처리하겠습니다. 볼일을 마쳤으니 얼굴볼 일은 없겠군요.”

“내 말 아직 끝나지 않았네. 어스 백작.”

“또 하실 말씀이 남았다고요? 사람 뒤통수를 그리 쳤는데?”

“셀레네 왕국의 법령으로 덩컨 대협곡의 통행은 금지되었네. 만약, 백작이 이를 어기로 미답지로 넘어간다면 이는 셀레네 왕국의 법을 어기는 행위가 될 것일세. 만약 적발된다면 솔론 왕국 입장이 매우 곤란해질 거야.”

“하늘엔 국경이 없죠.”

“그건 백작 생각이지.”

“처음부터 이러려고 했던 겁니까?”

“빡빡한 행동은 백작이 먼저였네. 계약은 끝났고, 내 할 말은 다 했으니 이제 가보게. 아참, 이것도 돌려줘야겠군. 볼일을 마쳤으니 서로 얼굴 볼 일은 없겠군. 잘 가게.”

통쾌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빙글빙글 웃는 베로니카 단장의 얼굴에 주먹을 꽂는 상상을 하던 어스는 이내 이를 악물고 막사를 나섰다.

‘그래 지금은 웃어라. 장차 미답지가 어떻게 될지 알면 그때도 지금처럼 기고만장할 수 있나 두고 보겠다.’

캠프를 박차고 나선 어스는 블링크를 시전하여 테리우스 영지로 향했다.

어차피 신전에 가봐야 텔레포트 마법진을 이용할 수 없다는 말을 들을 게 뻔하였기에 아예 들리지 않았다.

* * *

테리우스 영지로 돌아온 어스는 로엘에게 마법 통신을 보냈다.

-영지로 가셨다고요?

-어, 된통 당했어.

어스는 베로니카 단장과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그에 로엘은 자신이 겪은 일처럼 크게 분노했다.

역시, 내 편이 있는 건 행복한 일이다.

로엘이 자신의 역성을 들어주자 어스의 기분은 한결 풀렸다.

그렇다고 베로니카나 교단에게 화가 풀린 건 아니다.

-그래서 말인데 테리우스를 통해 이종족과 혼혈들을 미답지로 보낼 거야. 어차피 아도니스와 미답지를 텔레포트 마법진으로 연결하면 언제든 오갈 수 있으니까 상관없겠지?

-물론입니다. 연합은 어스 님의 행보에 적극 지원하도록 하겠습니다.

-고마워. 그럼 미답지와 내 영지 사이에 텔레포트 마법진을 설치해줘.

-곧 찾아뵀겠습니다.

통신을 종료한 어스는 연락을 받고 온 푸리엘과 마주보며 앉았다.

푸리엘에게도 로엘에게 설명했던 내용 그대로 설명했다.

“파렴치한 자들이군요.”

“내 말이. 아무튼 일이 그렇게 되었으니 테리우스 영지는 미답지로 가기 위한 거점으로 사용할 거야.”

“그렇다면 한 번에 모든 인원을 미답지로 보낼 수 없겠군요.”

“최소한의 병력은 남겨야지.”

“텔레포트 마법진이 설치된다면 저도 위그드라실 님을 뵐 수 있을까요?”

“언제든.”

“감사합니다.”

“우리사이에 감사는 무슨.”

“아닙니다. 어스 님은 모든 엘프의 은인이세요. 어스 님이 원한다면 엘프는 언제나 어스 님의 편에 있을 겁니다.”

위그드라실이 친구로 인정한 자신이다.

그리고 그 위그드라실은 엘프의 정신적인 지주다.

그러니 자신이 위그드라실에게 위해를 가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 이상 엘프와의 관계는 쭉 지속 될 것이다.

아니, 설사 그게 아니더라도 칭호 때문이라도 위그드라실은 지켜야 한다.

“영지 전역은 어쩔 수 없지만 주도만큼은 세작이 활동할 수 없도록 철저하게 경계해 줘. 아니, 아예 인간은 주도에 발을 딛지 못하도록 해.”

* * *

로엘은 테리우스 백작 영지와 미답지에 텔레포트 마법진을 설치했다.

마법진 가동을 위한 재원 역시 연합이 책임지고 있었기에 개인적인 지출은 없었다.

아도니스 대륙으로 빼돌리기 위해 영지에 머물던 이종족과 연합이 운영하는 비밀 거점에 있던 이종족은 모두 미답지로 향했다.

엘프, 드워프, 수인족 등이 미답지에 유입되면서 위그드라실을 중심으로 개발이 이뤄졌다.

그에 필요한 인력과 자재 역시 모두 연합이 충당했다.

도시 건설에 있어 열정적인 종족은 역시 엘프였다.

위그드라실은 어스나 엘프 모두에게 중요한 존재였기에 이는 당연한 행보였다.

그렇게 한 달이 흘렀다.

뤼빅스 대륙력 2059년, 드디어 새해가 밝았다.

어스도 이제 한 살을 더 먹어 이젠 열일곱이 되었다.

로엘은 아도니스와 미답지, 아니 실리시아를 연결하기 위한 텔레포트 마법진을 만들기 위해 위그드라실의 가지 하나를 꺾어 아도니스로 떠났다.

참고로 실리시아라는 이름은 태초의 나라 이름을 따서 지었다.

-영주님, 왕실에서 초청장이 왔습니다.

시쿠와 함께 실리시아에 생성된 던전을 처리하고 다니던 어스는 푸리엘의 연락을 받았다.

오염토 문제가 해결되면 칼렉 왕세자와 조만간 자리를 가질 계획을 세웠지만 교단에게서 뒤통수를 거하게 맞은데 이어, 이후 교단이 보인 행보로 인해 칼렉 왕세자를 만나지 않았다.

칼렉 왕세자에게 정치적인 부담감을 주기 싫어서였다.

대신 마법 통신구를 통해 교류를 지속했다.

그런데 갑자기 왕실에서 초청장을 보냈다고 하니 어스 입장에선 의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확실한 거야?

-예.

-알았어.

푸리엘과 통신을 끝낸 어스는 칼렉 왕세자에게 문자를 보낸 뒤 실리시아의 수도를 향해 블링크를 시전했다.

시쿠는 여느 날처럼 단독으로 사냥으로 돌렸다.

어느덧 어스의 신형은 실리시아의 수도 상공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발아래에는 이전에 없던 크고 작은 건물과 성벽 그리고 깊고 넓은 해자가 떡하니 자리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 한 달 살짝 넘은 시간에 저만한 규모의 도시가 세워진 건 룬 교도들의 필독서인 성서의 창세기에 버금갈 수준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대형급으로 발전할 소지를 품은 드워프의 설계도를 바탕으로, 엘프가 주축이 되어 2만 명에 달하는 이종족 및 혼혈이 도시 건설에 참가했다.

건설에 필요한 물자는 텔레포트 마법진을 통해 뤼빅스 전역에서 24시간 공수되었다.

그래도 한 달 살짝 넘는 시간 동안 마을도 아닌 해자와 성벽을 가진 커다란 도시가 위용을 갖추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다.

그런데 그 말이 안 되는 일이 정령과 마법, 그리고 위그드라실의 적극적인 협력이 더해지면서 빠르게 규모, 멋, 실용성 등등 모든 면에서 월등한 도시가 만들어졌다.

‘언제나 낯설다니까.’

그런데 그 도시가 바로 자신의 도시다.

저 도시에서 인간은 자신 하나뿐이지만 모두가 단 하나뿐인 인간을 공경했다.

위그드라실의 친구이자, 수많은 이종족 노예를 해방으로 이끈 공로가 그들에게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혼혈도 빼놓을 수 없다.

고도를 유지하기 위해 블링크를 연방 사용하던 어스의 시선은 이 도시에서 가장 큰 건축물로 향하였다.

도시 중앙에 우뚝 선 그 건축물은 이 도시에서 가장 공을 들인 어스가 머무는 성이었다.

광활한 미답지, 아니 실리시아의 주인이 머무는 거처였다.

도시 전경을 상공에서 살핀 어스는 곧 자신의 성을 향해 움직였다.

뤼빅스 각지와 연결된 전용 텔레포트 마법진이 바로 그곳에 있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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