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화
연락을 받은 로엘이 어스를 찾아왔다.
장내에 도착한 로엘은 머리를 제외한 전신이 밧줄에 묶인 수인족을 발견하곤 순간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나 그 표정은 찰나에 사라졌다.
로엘은 흡사 못 볼 꼴을 본 사람처럼 크게 놀라선 수인족, 아니 마족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어스는 그런 로엘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였다.
‘단숨에 알아보는 건가?’
외부에서 확인할 수 있는 마족의 신체적인 특징은 두 가지다.
머리 양쪽의 뿔과 보기만 해도 불편함을 유발하는 까만 눈이 바로 그것이다.
이를 제외하면 놈이 마족인지 아닌지 사실 구분하기 힘들었다.
어스가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자 그제야 자신의 행동을 깨달은 로엘이 부랴부랴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어스 님. 그런데 저것은 무엇입니까?”
“짐작하고 있는 거 아니야?”
로엘은 길게 침음했다.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한 듯.
급할 이유가 없었기에 어스는 재촉하지 않고 기다렸다.
사실 앞서는 마족을 만나게 된 경위와 결과까지 창졸지간이라 자신을 거짓말쟁이 보듯 보던 베로니카 단장의 콧대를 납작하게 만들어주겠다는 1차원적인 생각만 했다.
그러던 것이 시간이 생기자 과연 저 마족을 베로니카 단장에게 가져다 줘도 될까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오염토 문제만으로도 바다 너머 이종족의 땅까지 쳐들어가려는 생각을 아무렇지도 않게 먹은 교단인데, 마족이란 또 다른 변수가 던전 내부에서 발견되었다는 사실까지 안다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 즉시 아도니스를 향한 전쟁을 선포하는 것 아닌지 우려가 되었다.
생각의 정리를 마친 로엘은 볼썽사나운 꼴을 하고 있는 마족을 가볍게 흘겨본 뒤 입을 뗐다.
“어스 님은 저것의 정체를 이미 아시고 계시는 듯하군요. 그리고 이를 통해 제 속내를 짐작하신 것 같고요.”
“말을 빙빙 돌리는 걸 보니 입에 담기도 싫은가 보네. 아니, 부정하고 싶은 건가? 내 추측이 맞는 거야?”
“모든 면에서 참으로 빠르게 성장하시는군요. 솔직히 그렇습니다.”
“그럼 내가 대신 말해 줄게. 저 녀석 마족이야.”
이미 짐작하고 있었음에도 로엘은 어스의 입에서 이 말을 듣는 순간 침음을 숨기지 못하였다.
또 생각에 빠진, 아니 생각 정리에 들어간 로엘.
어스는 그를 방해하지 않았다.
‘베로니카 단장 할망구의 반응과 로엘의 반응은 분명 다른데 이상하게 비슷한 느낌이네.’
현실을 부정하고 싶어 하는 태도라고나 할까?
하긴 6띠 던전 보스도 단칼에 죽일 정도의 무력을 갖췄으니 두려워 할만은 하다.
저런 것들이 현세에 우르르 쏟아져 나온다면 인류가 똘똘 뭉쳐 대항하더라도 버티기 힘들 것이다.
‘꼭 그렇게 보긴 힘들어. 이번에 신무기를 대량으로 보급한 것만 봐도 교단은 필시 수단이 있을지 몰라.’
이러한 선례가 있지 않은가 그러니 어쩌면 교단은 무지막지한 능력을 갖춘 초인을 꽁꽁 숨겨 두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쩜 그 수준은 과거 종족 전쟁에서 인류에게 승리를, 교단이 오늘날과 같은 성세를 누릴 수 있도록 그 발판을 마련해준 데릭 가이어스와 같은 인물일지도.
“어스 님? 어스 님!”
“아! 어? 왜? 아니, 흠흠. 생각 정리 끝났어?”
“저보단 오히려 어스 님이 생각의 정리가 필요해 보이는군요.”
“누구 덕분에 짬이 나서 잠시 망상의 나래를 펼쳤을 뿐이야. 내가 아직 어려서 그런가? 간혹 생각이 자유분방해질 때가 있거든.”
“망상의 나래라뇨?”
교단이 데릭 가이어스와 같은 능력자를 숨겨두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자신의 망상은 차마 이야기할 수 없다.
부끄러워서가 아니다.
인간들에게나 데릭 가이어스가 영웅이자, 구원자이지 이종족들에게 있어 데릭 가이어스는 전 종족 공통의 원수이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조상, 지식, 고향, 신앙을 말살당한 것도 부족해 고향에서 마저 쫓겨나 멀고 먼 아도니스로 가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인류의 영웅이라 불리는 데릭 가이어스였다.
더욱이 끝내 고향을 버리지 못하고 뤼빅스에 남은 이종족은 오늘날 인간들의 노예로 생활하고 있으니 그들 입장에서 어찌 데릭 가이어스가 곱게 보이겠는가.
“그런 게 있어. 그리고 이번이 두 번째야. 저 녀석 포함해서.”
“일이 점점 심상치 않게 변해가는군요. 던전이란 기현상에 더해 이야기책에서나 간혹 등장하는 마족까지 나타나다니.”
‘로엘 하나 더 빠졌잖아. 종족 전쟁도 있잖아.’
암울함이 목 끝까지 찬 상태인데 굳이 종족 전쟁까지 주지시킬 필요는 없었다.
“교단이 걸핏하면 종말이니 뭐니 하면서 사람들의 두려움을 부추기더니 지금 상황이 딱 그 짝이지 않아? 말이 씨가 된 상황 말이야.”
“꼭 남 일처럼 말씀하시는군요.”
“그냥 답답해서 하는 말이야. 그보다 저 마족을 깨워서 대화를 나누고 싶은데 혹시 가능할까? 전에 그놈은 대화가 안 되더라고. 무슨 말은 하는 것 같은데 내 귀엔 짐승이 우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거든.”
마족을 베로니카 단장에게 데려간다는 생각은 접어버렸다.
마족을 빌미로 교단이 대륙 전쟁을 서둘러 진행할 수 있기에.
“한번 시도해 보겠습니다.”
“기대할게.”
* * *
마족을 깨운 로엘은 대화를 시도했다.
고대 이종족 언어를 죄다 동원했지만 끝내 실패했다.
남은 방법은 마법이다.
만약 마법까지 동원하고도 실패한다면 마족과의 대화는 깔끔하게 포기하는 수밖에 없다.
실망스럽겠지만.
다행히 실망하는 일은 없었다.
로엘의 소통 마법을 통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놈은 제 할 말만 했다.
질문에 대한 답은 눈곱만큼도 주지 않았다.
놈이 내지른 말이라곤 너희 세상을 모조리 불태워 산 자도 죽은 자도 절망하게 만들겠다는 악에 바친 저주였다.
특히나 어스를 볼 때마다 악악거리는 건 더 심해졌다.
“로엘.”
“예.”
“내게 10분만 줘 봐.”
“예? 10분이요?”
“이런 식으론 안 될 것 같아서 말이야.”
“어떻게 하시려고 그러십니까?”
“걱정하지 마. 귀중한 주둥이는 남겨둘 테니까.”
손가락 관절을 보란 듯 풀며 어스는 마족의 머리채를 잡아 한 손으로 번쩍 들었다.
그리고 남은 한 손을 들었다.
하지만 그 손은 휘두르지 않았다.
면상을 때리면 귀중한 주둥이에 문제가 생길 소지가 다분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가 선택한 건 명치였다.
퍽퍽퍽-!
어스의 폭력적인 모습에 로엘은 할 말을 잃었다.
그도 그럴 것이 로엘이 생각한 장면은 마법을 동원한 고문이지 우악스러운 폭력 따위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과연 저런다고 말을 할까?
로엘은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다.
아니, 단언했다.
구전으로 전해지고 있는 마족은 결코 폭력에 굴복하지 않는 종족이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엘은 어스를 만류하지 않았다.
앞서 마족이 어스를 향해 지나칠 정도로 심한 막말을 쏟아냈기 때문이었다.
제3자인 자신이 들어도 피가 거꾸로 치솟을 만큼 심한 욕인데 당사자는 오죽할까.
‘이 일로 어스 님의 기분이 나아진다면 그것도 나쁘진 않지.’
로엘은 물리적인 폭력이 아닌 정신적인 고문을 강구했다.
그리 강구하다 보니 적당한 것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로 수면 위로 고개를 내미는 물고기처럼 하나둘 생각났다.
그러나 로엘이 떠올린 고문 마법은 강구에서 그쳤다.
마족이 조건부 대화를 선택했기 때문이었다.
“저, 정당하게 승부를 겨루자. 그러면 대화에 응하겠다!”
“어스 님 안 됩니다. 마족의 간악한 말에…….”
“괜찮아.”
어스는 로엘의 말을 자르며 마족을 묶고 있는 밧줄을 풀었다.
마족은 어스가 자신의 말을 순순히 들어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한 듯 밧줄이 풀렸음에도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뭐해? 정당한 승부 안 해?”
그제야 마족이 움직였다.
부러진 사지는 그새 회복되어 움직임에 무리가 없었다.
로엘은 다급했다.
마법산데 마법을 배제하고 힘으로 마족을 상대하려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만류하려 했는데 상황은 로엘이 상상한 것과 정반대로 흘러갔다.
마족이 일방적으로 얻어맞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주둥이 빼고.
“……져, 졌다. 괴물 같은 인간이여.”
* * *
“이름.”
“위대한 시트리 족의 하울이다.”
“지위.”
“하급 마족이다.”
“나이?”
“이천스물세 살이다.”
“뭐?”
“이천스물세 살이다.”
“이천 살이 넘었다고? 이봐 로엘.”
“예, 어스 님.”
어스의 새로운 면모, 아니 능력에 로엘은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였다.
더해, 그 앞에서 고분고분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마족의 모습에 남은 정신도 제대로 흔들린 상태다.
한마디로 정신이 없단 소리다.
“저 말이 믿겨? 쟤 이천 살이 넘었데.”
“구전에 따르면 마족의 평균 수명은 7천 년이라고 하더군요.”
“미친, 드래곤도 아니고 왜 그렇게 오래 살지? 그건 좀 부럽네. 그럼 저 녀석 인간으로 치면 청소년 정돈가? 어이가 없네.”
백 년도 못 사는 입장에서 평균 수명이 7천 년이란 건 좀 부러웠다.
‘나도 오래 살고 싶은데.’
어째서 자신은 인간으로 태어났을까 하다못해 엘프로 태어나도 인간보단 훨씬 오래 살 텐데.
단명(?)하는 종족으로 태어난 것에 잠시 슬퍼하던 어스는 이내 정신을 차렸다.
심문은 지금부터기에.
“던전은 너희 마족의 짓이냐?”
“모른다.”
“뭐?”
“모르기에 모른다고 했다. 퇴근하고 귀가하는 중에 처음 보는 검은 돌이 있기에 만졌더니 네가 말한 던전이란 곳에 떨어진 것뿐이다.”
“그런데도 침착하게 보스를 죽였다고?”
“하급이긴 하지만 난 마족이다. 마족인 내게 그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건 너도 마찬가지 아닌가?”
“작정하고 넘어온 게 아니라고?”
“나도 내가 왜 여기 있는지 궁금하다. 크흑.”
사실 누구보다 답답한 심정은 귀가 중에 이계로 떨어진 마족 본인이었다.
‘놈의 말이 사실이면 그나마 다행이군. 작정하고 쳐들어온 게 아니니까.’
잠시 숨을 돌린 어스는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마족은 자포자기한 듯 본인이 아는 내용은 술술 불었다.
최종 심문 결과 미답지의 기현상은 마족과 무관한 현상임도 밝혀졌다.
‘마족이 배후가 아닐까 싶었는데 그게 아니면 진짜 위그드라실의 힘인가?’
마족 하울의 진술은 듣는 입장에선 맥 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뭔가 거대한 음모를 기대했는데.
‘부주의 한 놈이네. 땅거지도 아니고 길에 떨어진 걸 왜 주워. 낌새가 이상하다 싶으면 멀찍이 돌아갈 것이지.’
이래서 호기심이 문제다, 호기심이.
“로엘 저자의 말을 어떻게 생각해?”
“마족의 말입니다. 온전히 믿을 수 없습니다.”
“맹세코 난 거짓을 말하지 않았다! 마족으로서 내 명예를 걸고 맹세한다!”
또 명치를 맞을까 봐 마족 하울이 울부짖듯 소리쳤다.
“닥쳐.”
“나, 나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 돌아가게 해다오. 내겐 노모와 처자식이 있다.”
마족도 자기 목숨은 중요한지 감성팔이도 주저하지 않았다.
그런다고 흔들릴 어스가 아니다.
“널 던전으로 보낸 그 검은 돌, 지금 갖고 있어?”
“……없, 없다.”
“로엘, 내가 보기엔 저 녀석의 말이 거짓말 같지 않아 보여.”
“우연의 산물이라고 하기엔 녀석이 두 번째이지 않습니까?”
“그 녀석도 같은 방식으로 넘어온 것일 수도 있어.”
“안 그래도 골치 아픈 일이 산적했는데 이런 일까지 터지다니. 저자의 말이 사실이면 그 검은 돌은 마계와 던전을 잇는 가교의 기능을 하는 게 아닐까 싶군요.”
“제삼, 제사의 마족이 등장하겠지. 이번이 두 번째니까.”
오염토의 문제만 해결되면 큰 걱정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어스는 땅거지 기질이 있는 마족들로 인해 이 땅에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발생할 것 같은 느낌에 인상이 절로 구겨졌다.
‘이 모든 사건의 주범은 던전인데, 던전이 발생하는 원인조차 모르니 뭘 할수도 없고.’
던전의 수가 한정적이라면 모를까 지금도 꾸준히 등장하고 있었다.
상황이 이러하다보니 마족도 지금의 던전처럼 일상처럼 여겨질 날이 오지 않을까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하급 마족이 소드 마스터와 동급인데 그 이상이면 대체 얼마나 강하다는 거야?’
부디 하울이란 저 마족이 길에서 주운 그 검은 돌이 많지 않기를 바라는 수밖에.
그건 로엘도 마찬가진 듯 찌푸려진 얼굴이 좀처럼 펴지지 않았다.
“어스 님.”
“응.”
“저 마족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자신의 처분이 내려질 상황이라 마족 하울은 크게 당황했다.
“저놈 운에 맡기고 한 가지 실험을 해볼까 해.”
“실험이요?”
“던전으로 데려가 볼까 해. 거기서 놈이 마계로 넘어갈 수 있는지 확인할 생각이야.”
“그렇다면 저도 동행하겠습니다. 마족의 출현은 인간만의 문제가 아니니까요.”
그렇게 마족 하울의 사용처가 결정되었고, 하울은 당장 죽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안심했다.
“참, 마족 넌 고향에서 무슨 일 했어?”
“식당에서 서빙 일을 하고 있다.”
소드 마스터와 동급의 실력을 가진 자가 고작 식당 종업원이라니, 누가 있어 이를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있으랴.
마족 하울의 직업에 어스와 로엘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