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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로 성장하는 마법사-196화 (196/250)

196화

다음 날 로엘은 무려 백 명의 엘프를 대동하고 약속 장소로 왔다.

이종족에 대한 이 땅의 차별을 고려하면 자유로이 활동하는 백명의 엘프는 이례적인 수자였다.

더욱이 저들은.

‘모두 땅의 정령사라니.’

참고로 엘프라고 모두 정령사는 아니다.

과거, 그러니까 위그드라실이 존재하던 시절엔 백이면 백 모든 엘프가 정령과 계약을 맺을 수 있었지만 인간들에 의해 위그드라실이 불태워진 이후 태어난 엘프들의 경우엔 열 명 중 서넛 정도만이 겨우 정령과 계약을 맺을 수 있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까?”

“아니, 그보다 먼 길 오느라 고생 많았어.”

대화는 로엘과 하고 있었지만 어스의 시선은 엘프들을 살피고 있었다.

위그드라실의 계승자 칭호를 활성화한 이후 엘프들이 유독 자신에게 호감을 내보였다.

그래서 처음 보는 저들도 과연 그럴지 그 반응이 궁금했다.

아직까진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이에 살짝 실망하던 어스는 곧 그들에게서 일어나는 변화를 목도했다.

무덤덤하던 눈빛이 점차 변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더니 종국에 가선 자신의 영지에서 보았던 엘프들처럼 자신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닥쳐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칭호엔 엘프의 호감을 높인다는 기능은 없었는데 정말 신기하네.’

아무튼 엘프들의 반응은 어스를 만족시켰다.

저들과 한편이 되기로 이미 마음먹은 상태라 더더욱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절벽 높이가 까마득하군요.”

덩컨 대협곡의 골짜기를 제외하고 미답지로 안전하게 넘어갈 수 있는 길은 없다.

저와 같은 얼음으로 뒤덮인 거대한 절벽이 미답지를 둘러싸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의 위대함을 새삼 깨닫는 순간이다.

육상이 아닌 해상을 통해 진입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그 방법을 이용하느니 차라리 저 절벽을 오르는 게 백번 낫다.

바다는 빙하와 유빙으로 뒤덮여 있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튼튼한 배를 이용하더라도 수장될 확률 99.9999퍼센트라고 봐야 한다.

그럼 저 얼음으로 뒤덮인 90도 경사의 절벽을 오르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내가 재봤는데 대략 900미터 남짓 되더라고.”

“재보셨다고요?”

“기다리기 심심해서.”

“말씀과 달리 오래 기다리셨군요.”

“아냐, 고작 30분인걸. 그러니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참, 내가 땅굴을 뚫어 놨으니까 따라와.”

정령을 소환하여 땅굴을 뚫을 생각을 하고 있던 엘프들은 어스의 말에 다들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절벽의 높이를 감안하면 폭은 그 몇 배라고 봐야 한다.

그런데 그러한 면적을 관통하는 땅굴을, 그것도 땅의 정령사도 아닌 마법사가 하루 만에 뚝딱 만들었다고 하니 어찌 의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여기 있는 엘프 모두 땅에 관해선 전문가 소릴 들어도 부족하지 않은 땅의 정령과 계약한 정령사이기에 더더욱 믿기 힘들었다.

“마, 말도 안 돼.”

“상급 정령사라면 가능하지 않나?”

“정령의 힘은 정령사의 마나가 기반인 걸 잊었어?”

“하지만 그게 아니고선 설명이 안 되잖아? 그리고 넌 저분에 관한 소문 못 들었어? 마법을 하루 종일 시전할 수 있다고 하잖아.”

“그래도 그렇지 마법사잖아.”

웅성웅성.

“이 무슨 추탠가? 다들 조용하라!”

로엘이 목에 힘을 주어 소란을 잠재웠다.

장내의 소란을 단호한 목소리로 잠재웠지만 실상 로엘 역시 어스의 말에 의문을 품고 있었다.

다만 이를 내색하면 어스의 마음이 상할까 봐 조심하고 있을 뿐이다.

로엘의 태도는 흡사 상관의 마음을 미루어 살피듯 충성스러운 부하를 연상시켰다.

그럼에도 로엘은 이에 대한 조금의 거부감도 느끼지 못했다.

‘이해할 수 없군. 대체 어떻게 고작 하루 만에 땅굴을 뚫을 수 있지? 어스 님이 거짓말할 분은 아닌데. 혹시, 내가 모르는 뭔가가 더 있는 것일까?’

로엘은 7서클 마법사이자, 상급 정령사다.

때문에 여기 있는 그 누구보다 어스의 말을 반박할 자격이 있는 엘프였다.

한편 어스는 엘프들의 반응에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땅의 정령과 계약한 엘프들도 불가능이라고 단언한 일을 성인 팔뚝만 한 크기의 시쿠 혼자 다 해치웠기 때문이다.

그것도 10분도 걸리지 않아서 대형 마차 한 대가 넉넉하게 지나갈 수 있는 땅굴을 완성했다.

“소란을 피워 죄송합니다.”

“그 정도로 무슨. 다들 궁금해하는 것 같으니까 직접 봐. 백번 말하는 것보다 한번 보는 게 낫다는 말도 있잖아.”

어스는 시쿠가 파 놓은 땅굴로 이동했다.

다들 땅굴을 궁금하게 여기고 있었기에 발걸음에 급한 마음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그렇게 도착하여 땅굴을 본 엘프들은 하나같이 놀라 입을 떡 벌렸다.

사람 하나 간신히 통과할 수준의 땅굴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엘프라고 성질이 유순한 건 아니다.

몇몇 엘프가 땅굴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정령의 힘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

“벽을 만져 봐. 흙인데 바위처럼 단단하다고!”

“다들 여기 와 봐. 여기부턴 쭉 암석이야!”

“마, 맙소사! 벽의 단면이 거울처럼 매끈하다니!”

그들의 정신없는 이야기는 입구에 있던 엘프들을 충동질했고,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땅굴 안으로 우르르 들어갔다.

이에 로엘은 크게 당황했다.

“저, 저들의 추태를 용서하십시오. 원래 저런 자들이 아닌데.”

저들의 반응 하나하나가 자신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시쿠에 대한 찬사였기에 오히려 기분이 좋은 어스였다.

저런 추태라면 사흘 밤낮을 봐도 웃으며 봐줄 수 있다.

“우리도 들어가지.”

로엘 역시 땅굴이 궁금했기에 지체하지 않고 그의 뒤를 따랐다.

‘정말이다! 정령의 향이 없어. 그리고 마나의 흔적도 없어. 드워프라도 동원해서 판 건가?’

아니, 그것도 불가능하다.

제아무리 드워프라곤 하지만 단 하루 만에 이만한 규모의 땅굴은 팔 수 없다.

더욱이 드워프 솜씨면 흔적이라도 남아야 하는데 그런 흔적은 눈을 씻고 봐도 보이지 않았다.

‘정말 신비한 분이다. 정말, 인간이긴 한 걸까?’

어스는 로엘의 시선을 기분 좋게 받으며 걸음을 옮겼다.

엘프들은 여전히 소풍 나온 아이들처럼 떠들고 있었다.

귀가 살짝 아팠지만 내용 모두 내 새끼 칭찬이라 이쯤은 충분히 감수할 수 있었다.

‘우리 시쿠 꿀 과자 한 봉지 사 줘야지.’

오우거도 제 말 하면 찾아온다던가? 물론 소환하지도 않은 시쿠가 그 앞에 나타날 리 없다.

대신.

-보스 캐치를 처치했습니다.

-보너스 업적 포인트 4를 습득합니다.

-1만 코인을 습득합니다.

-아이템을 발견했습니다.

-해당 아이템과 상성이 맞습니다.

-철옹성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시쿠 단독으로 6띠 보스를 잡았다는 알람에 어스는 깜짝 놀랐다.

5띠 던전 보스는 잡은 전례가 있었지만 6띠는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하물며 상성이 맞는 아이템까지 손에 넣었으니.

‘스, 습득!’

아이템은 즉시 철옹성에 적용됐다.

마나 충전량 증가를 내심 기대했지만 적용된 기능은 무형 방벽이었다.

기능은 기다림 없이 즉시 적용됐다.

10시간마다 반경 5미터, 지속 10분의 무형 방벽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전보다 시간은 1시간 줄어들었고, 반경은 2미터 증가, 시간은 4분 증가했다.

애매하지만 그래도 못 먹는 것보단 나았기에 이에 위안했다.

‘아! 그러고 보니 코인!’

어스는 서둘러 상태창을 열었다.

그의 동공이 지진을 만난 듯 거세게 흔들렸다.

드디어 8서클 스킬을 구입할 천만 코인이 모였기 때문이었다.

두근두근.

“어스 님?”

스킬 상점을 연 어스는 그간 눈독 들였던 스킬을 구매하려다 로엘의 부름에 멈칫하곤 잠시 뒤로 미루었다.

‘조금만 기다려 형이랑 평생 가자.’

* * *

장장 4킬로미터에 이르는 땅굴을 나오자 새로운 세상이 엘프들의 눈앞에 펼쳐졌다.

그 모습에 다들 차원 이동이라도 겪은 것처럼 놀라워했다.

던전이라는 설명할 수 없는 기괴한 일들이 일상처럼 안착했다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이 현상은 예외 없이 충격을 상쇄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엘프 역시 인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런 장면은 이미 익숙해진 어스에겐 일말의 감흥도 일으키지 못했다.

‘구, 구입!’

로엘을 비롯한 엘프들의 관심이 눈앞에 펼쳐진 초원에 가 있는 사이 어스는 드디어 8서클 스킬을 구입했다.

어스가 구입한 8서클은 마법사들 사이에서 전설처럼 회자되고 있는 궁극의 화염계 마법 헬파이어였다.

처음엔 광역 마법에 관심을 가졌지만 시쿠라는 살아 있는 광역 마법을 거느리고 있었기에 선택한 것이 바로 헬파이어였다.

‘흐흐, 마법사라면 응당 헬파이어는 기본이지.’

간혹 보스 몬스터 중엔 강력한 속성 저항력을 가진 더러 존재하여 어스를 애먹인 적이 있었다.

그런 그가 속성 마법을 구입한 건 헬파이어가 가진 속성 무시라는 효과가 크게 작용했다.

그리고 또 하나, 하위 서클 화염 스킬 한정 공격력 20퍼센트 증가도 결정에 한몫했다.

이로써 빈 슬롯은 두 개 남았다.

‘문제는 마나네.’

헬파이어 스킬이 잡아먹는 마나는 한 번에 5,000이나 된다.

이 수치를 줄이기 위해선 스킬 강화를 해야 한다.

문제는 코인이다.

성공률 백 퍼센트 구간인 3강까지 하는 것만 해도 6천만 코인이 필요하다.

지금으로선 1강조차 엄두를 낼 수 없다.

‘제길, 마나 충전량이 아쉽네.’

“어스 님, 정말 이곳이 그 미답지가 맞습니까?”

로엘이 다가왔다.

좀처럼 볼 수 없는 얼빠진 모습이다.

“맞아. 그보다 마나 감소는?”

“없습니다.”

“피곤해? 눈이 충혈됐네.”

“음, 실은 미답지는 저희 엘프들에겐 깊은 의미가 담긴 곳입니다.”

“의미?”

“모든 엘프들의 신앙인 위그드라실이 있던 곳이 바로 인간들이 말하는 이곳 미답지입니다.”

‘여기가 엘프들의 성지였다고?’

동토의 땅이다.

이런 환경은 결코 엘프나 나무가 생존하기 힘들다.

설령 위그드라실일지라도.

그런데 과거엔 동토가 아니었다는 건.

“혹시, 위그드라실이 환경에도 영향을 미쳐?”

감회에 젖어 있던 로엘은 어스의 질문에 깊은 깨달음이라도 얻은 듯 그 표정이 확연히 달라졌다.

표정뿐만이 아니다.

몸까지 덜덜 떨었다.

어스는 로엘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엘프에게 위그드라실이 어떤 의민지 너무도 잘 알기에.

* * *

오염토의 발생 원인을 찾아 제거하려던 당초 목적은 사라지고 대신 위그드라실이란 이름이 떡하니 자리 잡았다.

로엘을 비롯한 엘프들은 최선을 다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신들만으로 부족하다고 느꼈는지 연합에 연락을 취해 엘프들을 더 불러들였다.

그사이 덩컨 대협곡까지 밀고 내려간 오염토로 인해 교단 캠프는 다시 남하했다.

‘미답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현상은 인간을 향한 위그드라실 후손의 복순가?’

엘프들이 위그드라실의 흔적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동안 어스는 미답지 전역의 정찰을 끝마칠 수 있었다.

엘프를 제외하고 이 사실을 아는 인간은 없었다.

‘지상엔 이렇다 할 흔적이 없네. 마족도 안 보이고. 그럼 대체 그 놈은 뭐지? 어디서 튀어나온 걸까?’

날이 저물자 어스는 캠프로 돌아갔다.

미답지 전역에 대한 정찰은 이미 끝냈지만 아직 이를 보고하지 않았다.

그랬다간 마지노선이고 뭐고 당장 총동원령이 떨어질 게 뻔했으니까.

“성과는?”

“못 찾았습니다.”

“그렇군. 알겠네. 가서 쉬게.”

어스는 최근 베로니카 단장의 태도가 달라지는 걸 느꼈다.

‘불안 불안하네.’

교단이 정한 마지노선까진 아직은 여유가 있지만 그것만 믿고 있기엔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시쿠를 영지에 보낼까?’

아무래도 그편이 마음이 놓일 것 같았다.

영지의 전력이 막강하다지만 신무기로 무장한 군대가 쳐들어오면 그러한 전력으로도 막아낼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아군에게도 마나 스틱이 있다면 모를까 교단은 아직 어스의 영지에 마나 스틱을 보급하지 않았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안 되겠어. 시쿠를 영지로 보내야겠어.’

시쿠가 빠지면 사냥에 차질이 빚어지겠지만 어찌 가족의 안위보다 우위일 수 있으랴.

마침 로엘이 설치한 텔레포트 마법진이 이곳과 멀지 않은 곳에 설치되어 있었기에 이를 이용하면 영지까진 오늘 밤중으로 얼마든지 오갈 수 있었다.

막사로 들어간 어스는 엉덩이 한번 붙이지 않고 곧장 블링크를 시전하여 캠프를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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