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로 성장하는 마법사-195화 (195/250)

195화

오염토가 인류에게 미칠 위험성을 알게 된 각국은 비상이 걸렸다.

사안이 중대하였기에 총동원령 전에 교단의 말이 사실인지의 여부를 확인할 필요성이 있었다.

이에 각국은 비밀리에 덩컨 대협곡으로 실사단을 파견했다.

국가의 운명이 달린 중차대한 문제였기에 이를 미루는 왕국은 없었다.

캠프로 복귀한 어스는 예상하지 못한 인물을 캠프에서 볼 수 있었다.

그는 바로.

“오랜만이군요, 어스 백작.”

“저하?”

어스는 제 눈을 의심했다.

왕도에 있어야 할 칼렉 왕세자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노쇠한 국왕을 대신하여 국정을 이끌고 있어야 할 위치의 그가 자리를 비운 일은 예사로 볼 수 없었다.

‘오염토의 존재를 교단이 밝힌 것인가?’

왠지 캠프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평소와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던 어스는 칼렉 왕세자를 보자 바로 직감할 수 있었다.

뤼빅스 대륙에 광풍이 몰아칠 것이라는 걸.

-케이브맨을 처치했습니다. 30코인을 습득합니다.

.

.

.

.

-하이 놀을 처치했습니다. 20코인을 습득합니다.

.

.

.

오염토 지역에 남은 시쿠의 활동이 실시간으로 알람을 통해 어스에게 전달되고 있었다.

좋은 일이다.

그러나 눈앞의 인물로 인해 어스의 얼굴에선 웃음기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안 보이는 곳에서 백작이 큰 수고를 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소.”

“미리 말씀드렸어야했는데 교단과 맺은 약속 때문에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

마음이 무거우니 목소리 또한 절로 착 가라앉았다.

이는 어스뿐만이 아니었다.

어스가 복귀하기 전 덩컨 대협곡에 도착한 각국 조사단은 직접 오염토에 대한 실험을 끝냈다.

그 결과 전쟁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을 그들 역시 내려야만 했다.

“백작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소.”

“누추하지만 앉으십시오.”

간이 의자를 내준 어스는 인벤토리에 보관중인 음료수를 내놓았다.

목이 탄 것인지 칼렉 왕세자는 음료수의 절반을 단숨에 마신 뒤 컵을 내려놓았다.

“원인은 찾지 못하였소?”

“안타깝게도 그렇습니다.”

“하아, 역시 전쟁은 피할 수 없는 것인가?”

칼렉 왕세자의 탄식에 어스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움켜쥐었다.

최악의 경우 종족 전쟁이 벌어질 가능성을 그도 엿보았기에 그 의미를 바로 알아차린 것이다.

그래도 확인이 필요했다.

국가 대 국가의 전면전도 대륙 전체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하물며 대륙 간 전쟁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 전쟁…… 아도니스 대륙이 상대입니까?”

“교단이 말하지 않았소?”

“직접적인 언급은 듣지 못했지만 짐작은 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이처럼 빠르게 진행될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어차피 백작도 곧 알게 될 테니 굳이 숨길 이유가 없겠군. 셀레네 왕국 북부지역이 마지노선이오. 만약 북부지역 전체가 오염토로 뒤덮인다면 그땐 본격적인 전시체제로 돌입하게 될 것이오.”

어스는 오염토의 확산 속도를 떠올렸다.

지금과 같은 속도라면 종족전쟁을 촉발시킬 마지노선까진 길게 잡아도 2달 남짓이 될 것이다.

과연 2달 남짓한 시간 안에 오염토의 발생 원인을 찾아내고 이를 제거할 수 있을지.

‘총동원령이 떨어지면 이젠 모두가 알게 될 텐데. 그리되면 이종족 노예들의 무차별적인 학살이 일어날 거야.’

마법 계약이 오염토에서도 유효하다면 모를까 그게 아니다 보니 총동원령이 떨어지면 가장 먼저 이종족 노예부터 숙청당할 것이다.

그리고 그 대상엔 자신의 영지군도 포함될 공산이 농후했다.

그런 상황까지 닥친다면 자신도 선택해야 한다.

인류의 편에 남을지 아님 그 반대편에 남을지를.

‘가족들과 지인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사실 어스의 마음은 이종족에 더 기울어져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가족과 지인들의 입장은 다를 수 있었다.

어스는 그 점이 신경 쓰였다.

“어스 백작.”

“예, 저하.”

“난 전쟁을 원하지 않지만 교단의 결정은 찬성할 수밖에 없소. 나 또한 인간이기에. 백작은 어떻소?”

어스가 인간보단 이종족을 더 신뢰한다는 건 칼렉 왕세자도 짐작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총동원령이 본격적으로 발동할 경우 어스의 영지는 피로 물들 수밖에 없었다.

과연 그때 어스가 이를 용납할지 칼렉 왕세자는 확신하지 못했다.

그래서 왕세자는 어스에게서 확답을 받고 싶어 했다.

그와 칼부림하는 사태는 피하고 싶었기에.

“두 달이라는 시간이 있습니다. 그 안에 오염토의 원인을 찾아서 제거할 겁니다.”

“백작의 말이 맞소. 아직 두 달이라는 시간이 남았으니까. 그래도 틈틈이 생각해보게. 그리고 교단 측 사람들 앞에선 명확한 태도를 보이게. 설사, 연기일지라도 말일세.”

이것은 어스의 안전을 우려한 칼렉 왕세자의 진심 어린 충고였다.

아니, 그건 경고였다.

“명심하겠습니다.”

* * *

각국에서 파견된 조사단은 예외 없이 무거운 마음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들과 함께 떠나는 칼렉 왕세자를 배웅한 어스의 곁으로 베로니카 단장이 다가왔다.

칼렉 왕세자의 경고도 있었기에 섬뜩했다.

기사에게 거리를 내준다는 건 제 손으로 목을 바치는 꼴이니까.

물론 당장 그녀가 자신을 공격하려하진 않을 것이다.

‘내가 필요 없다고 생각한 순간이 저 할망구와 내가 사생결단을 내는 날이겠지. 아니, 여기 있는 모두인가?’

그게 내키지 않으면 그런 일이 발생하기 전에 자신의 태도를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

자신의 영지에 있는 이종족 노예를 처리하는 것으로서.

‘아직 늦지 않았어.’

칼렉 왕세자 앞에선 큰소리 탕탕 쳤지만 사실 자신은 없었다.

제 아무리 대단한 마법사도 자연재해 앞에선 속수무책이니까.

부디 오염토가 자연재해 같은 것이 아니길 빌 수밖에.

“백작의 어깨에 수많은 목숨이 달려있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 전.”

베로니카 단장에게서 멀어진 어스는 참았던 긴장을 한숨에 담아 쏟아낸 뒤 블링크를 거듭 시전했다.

낮에도 밤에도 시쿠는 쉬지 않았다.

낮엔 주인과 함께 미답지를 정찰했고, 밤이면 단독으로 낮에 확인한 몬스터 무리와 던전을 공략했다.

그 덕에 어스는 큰 폭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캠프에서 멀어진 어스는 시쿠를 소환하여 몸을 맡겼다.

정찰을 마친 지역을 벗어나 새로운 지역에 진입했다.

1시간, 2시간…… 중간에 점심을 먹고 다시 3시간을 움직였지만 오염토 발생 원인으로 볼 수 있을 법한 건 찾을 수 없었다.

대신 다수의 몬스터 무리와 14개의 던전을 볼 수 있었다.

‘던전 공략이 이뤄지지 않은 곳이라곤 하지만 유독 던전이 많아.’

이상한 점은 비단 그뿐만이 아니다.

며칠 전에 싹 정리한 지역에 또 던전이 출현했다.

‘연관성이 있는 건가?’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오염토 확산 속도는 처음 그대로다.

던전을 그리 많이 공략했음에도 말이다.

그러니 이를 연관 짓는 것도 애매했다.

‘그렇다고 아예 관련이 없는 것 같지도 않고.’

답답함이 쌓인 어스는 철옹성을 쥐었다.

이럴 땐 몸을 굴리는 게 최고라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시쿠에겐 자유 사냥을 명령했다.

근면하고 성실한 녀석이라 열심히 하라는 말은 할 필요가 없었다.

몬스터들이 괴성을 지르며 몰려들었다.

위그드라실의 계승자 칭호를 활성화한 이후 나름 폭발적으로 증가한 힘과 민첩 스탯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했던 어스였다.

그러나 실상은 이를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더불어 체득한 창술 역시 완전히 숙달됐다.

이로 인해 형식에 얽매였던 불필요한 움직임 역시 그에게선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찌르고, 베고, 때리며 어스는 놈들 사이를 누비고 다녔다.

그러길 15분.

장내에 유일하게 그만 서 있었다.

‘1, 2분 안에 정리는 아예 불가능한 걸까?’

최상급의 익스퍼트도 해내지 못할 일을 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어스는 이에 만족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스킬을 사용했다면 이쯤은 1분 컷이기 때문이다.

-생명력이 오염된 토양에 저항합니다.

-저항에 성공하여 마나 감소는 발생하지 않습니다.

‘알아, 안다고 이젠 그만 울려라. 지겹다.’

* * *

각국에서 파견한 실사단이 떠나고 보름이 흘렀다.

그사이 어스는 거듭 레벨업을 하여 그 레벨이 89에 이르렀다.

보스 몬스터도 제법 잡았기에 보너스 업적 포인트까지 제법 쌓을 수 있었다.

아이템도 등장했지만 아쉽게도 습득할 수 없었다.

‘상태창.’

이름(성별) : 어스(남).

직업(레벨) : 마법사(89).

칭호 : 위그드라실의 계승자(100/100). 승리의 노래(12/12).

생명력 : 2,000/2,000.

마나 : 2,000/2,000.

인벤토리 : 1(+7).

스탯 : 힘(102.7). 체력(326). 민첩(102.7). 지력(204). 정신(346).

직업 스킬(9/12) : 매직 애로우(+5/12). 파이어 애로우(+3/12). 파이어 볼(+3/12). 파이어 버스트(+3/12). 아이스 스피어(+3/12). 일루젼(+3/12).

콜 라이트닝(+5/12). 블링크(+3/12). 체인 라이트닝(+4/12).

업적 포인트 : 97.

코인 : 9,121,409.

‘88만 코인만 더 모으면 대륙 유일의 8서클 마법사네.’

미답지로 와서 폭발적인 성장을 이루어냈지만 종족 전쟁의 빌미가 되는 오염토의 원인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미답지가 광활하다곤 하나 그나마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넉넉잡아 3일이면 모두 돌아볼 수 있다.

‘거기서도 발견하지 못한다면 그땐 어떻게 해야 할까?’

어스가 마냥 좋아할 수 없는 이유였다.

만약 모두 둘러보고도 끝내 원인을 찾을 수 없다면 그땐 땅속을 의심해야 한다.

문제는 태생이 두더지인 시쿠도 오염토 땅속에선 얼마 버틸 수 없으니 시도조차 할 수 없었다.

현 상황을 막지 못한다면 대륙 간 전쟁은 결국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선택해야 할 것이다.

이종족과 인간 중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지.

제길, 왜 자신에게 이딴 시련을 주는 건지.

상태창을 통해 어수선한 마음을 다잡았지만 이내 그의 마음은 소란스러워졌다.

그때, 로엘에게서 연락이 왔다.

움찔.

아직 총동원령이 내려진 상황은 아니었지만 그에 준하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었고, 이종족 연합은 이를 알아차렸다.

그리고 이 일과 어스가 밀접한 연관이 있음 역시 로엘이 알아차리고 최근 빈번히 연락하고 있었다.

어스는 그때마다 얼버무렸다.

하지만 이젠.

‘더는 모른 척할 수 없어.’

마음의 결정을 내린 어스는 마법 통신구를 집어 들었다.

* * *

어스는 로엘에게 오염토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리고 오염토가 셀레네 왕국 북부 지역까지 확산되면 그땐 침략 전쟁이 시작될 것이라는 말 역시.

이 모든 말을 해준 건 그가 인간이 아닌 이종족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궁리해도 영지에 있는 자신의 병사들과 혼혈들의 죽음을 방관 할 수 없어서였다.

로엘은 이에 큰 충격을 받았다.

“어스 님.”

어스는 로엘과 마주하고 있었다.

오염토 위였다.

앞서 교단이 실험했듯 이종족인 로엘은 조금의 영향도 받지 않았다.

“원망하고 싶으면 원망해도 돼.”

로엘 입장에서 섭섭함을 넘어 배신감마저 느낄 수 있는 사안이었다.

그래서 이를 감수하려했지만 미안하게도 로엘은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그를 위로했다.

“마음고생이 심하셨겠습니다.”

“그리 말하면 내가 더 미안한데. 영지에 텔레포트 마법진 설치는 끝났지? 되도록 빨리 그들을 피신시키도록 해.”

“그전에 저희도 오염토의 원인에 대한 조사에 도움을 드릴까 합니다.”

“도움?”

“자연의 변화에 가장 민감한 존재는 정령입니다. 그리고 그런 존재와 밀접한 종족이 저희 엘프입니다. 저희가 돕겠습니다.”

“괜찮겠어? 인간을 돕는 일인데?”

“물론 저희가 돕는다고 일이 해결될지는 알 수 없지만 피할 수 있는 전쟁이라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스는 이런 결정을 내린 이종족이 대인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 반해 인간은…… 생각을 말자, 생각을.

“그래, 함께 원인을 찾아보자. 그리고 미안해 진작 말하지 못한 점.”

이종족을 향한, 아니 엘프를 향한 어스의 호감이 새삼 깊어졌다.

‘이종족을 향한 인간들의 차별이 사라진다면 어쩜 두 종족이 서로 평화롭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정말 그런 세상은 불가능한 것일까?

어스의 마음 한구석엔 이러한 의문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