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화
베로니카 단장을 떠보는 건 실패하고 말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별말 없던 그녀가 자리를 비웠기 때문이었다.
시급한 건 아니기에 일단 오염토 지역으로 이동했다.
교단을 바짝 긴장시킨 미답지, 그러나 어스에게 있어 그곳은 개인 사냥터와 다름없었다.
살이 포동포동하게 올라 어딜 베어 물어도 육즙이 팡팡 터지는 진미를 선사했다.
상황이 이러하다보니 어스는 미답지 그 자체에 흠뻑 빠진 상태였다.
블링크를 통해 순식간에 오염토 지역에 도착한 어스는 몬스터들이 모여 있는 곳을 발견했다.
‘몬스터 화합의 땅도 아니고.’
미답지, 정확하게는 오염토 한정 지역에서 본 몬스터는 화합하는 것으로 여겨질 만큼 놈들 사이엔 다툼이 없었다.
그러니 어스의 이런 생각도 틀린 건 아니다.
아무튼 이러한 놈들의 비이상적인 움직임 덕분에 어스는 다양한 몬스터를 한 곳에서 손쉽게 사냥할 수 있었다.
물론 주력은 시쿠고, 어스는 시쿠의 보조다.
‘시쿠, 오늘도 부탁한다.’
교단이 어스에게 원한 건 원정이 아닌 오염토 발생 원인에 대한 조사였지만 현재 어스는 조사보단 원정에 힘을 쓰고 있었다.
-리빙 아머를 처치했습니다. 25코인을 습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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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이 놀을 처치했습니다. 15코인을 습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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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 구울을 처치했습니다. 60코인을 습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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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 츠라를 처치했습니다.
-보너스 업적 포인트 2를 습득합니다.
-6,000코인을 습득합니다.
몬스터와 드잡이하기 위해 가볍게 몸을 풀고 있는 사이 대량의 코인과 경험치가 쏟아져 들어왔다.
처음엔 이에 당황했지만 이젠 익숙해져서 딱히 놀라울 것도 없다.
그와 중에 잡힌 보스 역시.
보너스 업적 포인트는 받는 즉시 체력 스탯에 곧장 분배했다.
-생명력이 오염된 토양에 저항합니다.
-저항에 실패했습니다.
-마나 감소가 발생합니다.
이 알람이 더는 울리지 않을 때까지 체력 스탯에 집중할 계획이었기에.
몸풀기를 끝낸 어스는 살짝 굽힌 무릎을 활짝 폈다.
그러자 그의 신형은 팽팽하게 당겨진 시위에서 떠난 화살처럼 빠르게 전방을 향해 날아갔다.
어스를 발견한 몬스터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놈의 관자놀이가 철옹성에 맞아 바스러졌다.
-켄타우로스를 처치했습니다. 65코인을 습득합니다.
‘마법사가 아니라 창술가로 활동해도 되겠어.’
창술을 익혔지만 정작 실전에선 거의 사용하지 않았던 기술은 이곳에서 비약적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힘과 속도에 제한을 두지 않고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사용하자, 그 자신이 한계로 생각했던 영역을 가뿐이 뛰어넘어 버렸다.
그제야 어스는 알게 되었다.
자신이 위그드라실의 계승자 칭호로 인해 폭발적으로 성장한 신체 능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것을.
“끄아아아아!”
눈앞에서 동족이 살해당한 걸 목격한 켄타우로스의 분노가 창끝에 실려 어스를 향했다.
무시무시한 위력을 품고 있는 찌르기였다.
어스는 이에 힘으로 맞서지 않고 공격을 흘려보냈다.
전력을 다한 일격이 실패로 돌아간 켄타우로스의 중심이 무너졌다.
놈이 중심을 잡기도 전에 철옹성이 곧장 움직였다.
푹!
크고 단단한 근육과 질긴 가죽을 가진 켄타우로스의 가슴팍을 단숨에 찌르고 들어간 철옹성에 의해 놈의 심장엔 구멍이 뚫리고 말았다.
얼굴 가득 단말마를 담고 있던 놈이 쓰러졌다.
그 몸뚱이가 지면에 닿기도 전에 어스는 놈의 하반신을 박차고 옆으로 몸을 날렸다.
또 다른 희생양이 두 눈 부릅뜨고 서 있었다.
놈이 무기를 움직이기 전 철옹성이 한발 빨리 움직였다.
옆구리에 강한 타격을 입은 놈의 몸이 휘청거렸다.
철옹성과 동시에 몸을 빙글 돌려 놈의 시야를 어지럽힌 어스의 신형은 어느새 사각지대로 이동하여 철옹성을 내질렀다.
옆구리를 파고든 철옹성이 놈의 심장을 찔렀다.
놈의 입에서 비명과 함께 핏물이 분출했다.
제아무리 강한 놈도 머리통이 박살나고, 심장에 구멍이 뚫린 이상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언데드 계열의 몬스터에겐 심장 따위 약점이 될 수 없지만 이는 언데드 한정일 뿐 살아 있는 몬스터의 경우엔 이를 내주고 살 수 없었다.
신체를 이용한 전투는 어스에게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고양감이란 선물을 안겨주고 있었다.
-힘 스탯 0.1이 증가합니다.
-민첩 스탯 0.1이 증가합니다.
더해 스탯 증가도 선물해주었다.
힘과 민첩 스탯이 위그드라실의 계승자 칭호 이후 폭발적으로 증가하자 더는 자연적인 방식으로 스탯이 오를까 싶어 기대를 내려놓았던 어스에게 있어 이는 큰 의미를 가진 선물이었다.
‘스탯 작업이 가능하다니!’
그야말로 개꿀이다.
-레벨업.
-업적 포인트 3을 습득합니다.
오늘 중으로 레벨업 할 것 같은 느낌을 받았지만 출근(?)하자마자 바로 하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하였기에 어스의 입은 귀에 걸렸다.
교단을 진심으로 칭찬해주고 싶다.
자신에게 이런 대박을 무려 삥까지 뜯겨 가며 선물하다니.
‘주인님, 몬스터 다 잡았다.’
몇 마리 잡지 못했는데 그사이 그 많은 몬스터를 모두 다 잡다니 역시 시쿠다.
‘체인 라이트닝, 체인 라이트닝.’
시쿠의 발목을 잡을 수 없었기에 나머진 스킬로 모두 정리한 어스는 시쿠의 촉수에 안겨 몬스터를 찾아 나섰다.
만약 베로니카 단장이 이런 그의 행동을 본다면 필시 입에 게거품을 물지 않을까 싶다.
* * *
뤼빅스 대륙에서 활동하는 이종족 해방 연합의 고위급 인물들이 비밀리에 회동을 가졌다.
비밀 회동의 안건은 최근 교단에 의해 보급된 신무기 마나 스틱에 관한 내용이었다.
“인간의 얄팍한 기술력으로 만들 무기가 아닐세. 나는 아직도 인간이 이걸 만들었다고 생각하지 않네.”
여러 종족이 모인 조직답게 회의에 참석한 인물 중엔 대장장이 종족이라 불리는 드워프도 한 자리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 드워프의 입에서 나온 말에 장내는 술렁거렸다.
드워프가 알아내지 못한 걸 인간이 알아내고 이를 만들었다는 게 그들에겐 큰 충격이었다.
“인간이 어찌 드워프도 못 만든 무기를 만들 수 있지?”
“마, 말도 안 돼.”
현실을 부정하는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다른 이도 아닌 대장장이 종족인 드워프가 이를 시인하였으니 사실 그들의 부정은 의미가 없었다.
이종족 해방 연합의 수장이자 회의 주관자인 로엘이 장내를 진정시켰다.
“군터 장로님. 실례인 건 알지만 묻지 않을 수 없군요. 혹시 우리도 마나 스틱을 만들 수 있습니까?”
인간은 탐욕스러운 종족이다.
힘이 없을 땐 순한 양처럼 행동하다가 힘을 가졌을 땐 탐욕스러운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과거 인간을 믿고 아낌없이 도움을 베풀었던 이종족은 그 덕분에 모든 걸 잃고 고향에서 쫓겨나 망망대해를 건너 아도니스로 도망갈 수밖에 없었다.
오래전 일이었지만 이종족들은 어제 일처럼 이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뤼빅스 대륙을 침공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뤼빅스를 침공하지 않겠다는 맹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인류 최초의 초월자 데릭 가이어스!
종족의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 굴욕적인 맹약을 맺은 것이다.
그 맹약이 유효한 이상 지금은 물론 앞으로도 이종족이 뤼빅스를 침공하는 일은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반대로 인간이 아도니스를 침략하는 건 맹약에 없었다.
그 때문에 이종족들은 교단이 이번에 보급한 마나 스틱이란 신무기에 바짝 긴장한 것이다.
로엘을 비롯한 모두가 드워프 장로 군터의 입으로 향했다.
군터 장로는 고개를 내저었다.
“모방은 가능하지만 본래 가진 위력의 10분의 1이 한계네.”
이젠 술렁거림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다른 종족도 아닌 드워프 족이 인간의 기술력에 패배를 자인한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할 말을 잃고 생각에 잠긴 회의장에 누군가 의구심 가득한 목소리를 냈다.
“불안감을 조장하려는 의도는 아닙니다만 저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네요. 혹시, 마나 스틱보다 더 뛰어난 무기도 저들에게 있지 않을까요?”
불안감을 조장하려는 의도는 없다며 본인 입으로 말했지만 이 한마디에 장내의 불안감은 폭발하기 직전까지 차올랐다.
사실 다들 이런 생각은 하고 있었다.
다만, 언급하는 게 두려워 입을 다물었을 뿐이다.
그러니 저자의 잘못은 아니다.
다만 눈치 없이 먼저 말하였기에 눈총이란 몰매에선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에 중압감을 느꼈음일까?
“우리에겐 인간들 사이에서 엄청 유명한 인간 조력자가 있지 않습니까? 그에게 도움을 받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해선 안 될 말까지 하고 말았다.
이에 로엘이 눈에 띄게 당황했다.
묘인족 장로 메이언이 언급한 존재는 간부들에게도 비밀이었다.
그런데 그런 비밀을 공적인 자리에서 메이언이 언급해 버렸기에 로엘도 더는 그 사실을 숨길 수 없게 되어버렸다.
‘메이언 장로의 약속을 믿은 내 잘못이구나, 내 잘못이야. 하아.’
당황하면 생각 없이 말을 툭툭 던지는 저 고양이를 믿었던 자신을 원망하며 로엘은 간부들의 질문 공세에 쩔쩔맸다.
* * *
베로니카 단장은 3일 만에 다시 캠프로 복귀했다.
그사이 캠프는 기존 위치에서 남쪽으로 반나절 거리까지 뒤로 물렸다.
비단 중앙 캠프만이 아니다.
미답지로 들어가는 길목마다 설치한 캠프 모두 외곽으로 장소를 옮겼다.
“어떻게 됐나?”
“아무리 저라도 미답지 전역을 고작 열흘 만에 다 돌 순 없어요.”
단순 횡단이 목적이면 충분한 시간이다.
하나 여기 온 목적은 횡단이 아닌 오염토 발생 원인에 대한 조사이다보니 미답지 전역을 꼼꼼히 살펴야 한다.
베로니카 단장 역시 이 사실은 인지하고 있었기에 채근하진 않았다.
“그래도 서둘러 주게. 오염토가 지금과 같은 속도로 확산된다면 곤란해져.”
“듣자니 마나 스틱이란 신무기를 보급했다고 들었습니다.”
“여기서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외부에 알린 건 아니겠지?”
“계약은 준수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보다 대체 그런 무기는 언제 개발한 거죠? 대륙 각지에 일시에 푼 물량이 상당한 것으로 봐선 오래전부터 양산한 것 같던데. 혹시, 또 다른 무기도 있습니까?”
마나 스틱의 보급은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선사했다.
지지부진하던 전장이나 혹은 후퇴를 거듭하던 전장의 경우 마나 스틱의 보급으로 성과를 내고 있었다.
물론 마나 스틱이 만능은 아니다.
고위 던전의 보스 몬스터의 경우 마나 스틱만으론 상대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런 지역의 경우 소드 마스터나 대마법사가 출동했다.
교단이 전면 개방한 텔레포트 마법진의 도움을 받은 그들은 빠르게 몬스터들을 정리했다.
이처럼 신속한 출동이 가능해지다보니 어스를 갈구하는 목소리는 현저히 줄었다.
‘졸지에 몸값이 똥이 됐지.’
반면 교단의 중요성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었다.
“자넨 자네 일에 집중하게.”
“물론 그래야죠. 그게 계약 조건이니까.”
“알면 됐어. 다른 보고 내용이 없다면 돌아가서 쉬게.”
“참, 한 가지 부탁할 게 있습니다.”
“부탁?”
“제 영지에도 마나 스틱을 보급해줬으면 합니다.”
“자네 영지엔 던전이 없을 텐데?”
“던전이란 게 지정된 장소에만 출현하는 건 아니죠.”
“자네 요청을 상부에 보고하도록 하지. 하지만 당장 보급될 것이란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걸세.”
“기대하겠습니다.”
“분명 말했어. 그리고 요구만 하지 말고 부디 성과를 내게, 성과를.”
오염토는 모든 인간에게 위험하다.
현시대 최초로 그랜드 소드 마스터가 될 가능성이 유력한 베로니카 단장 역시 포함이다.
그러나 어스는 더 이상 오염토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생명력 수치가 2천이 되자 오염토의 공격에 완벽하게 저항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저항에 성공한 어스는 이후 벌어들인 업적 포인트는 모두 정신 스탯에 분배하고 있었다.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사냥을.
뒷말을 삼킨 어스는 베로니카 단장의 막사를 나서 자신의 막사로 향했다.
‘마나 스틱 말고 다른 신무기도 있는 건가?’
베로니카 단장의 태도를 보아 완전히 이를 배제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마나 스틱만 해도 대단히 놀라운 무긴데 하물며 그보다 더 뛰어난 무기를 교단이 보유하고 있다면 과연 이런 무기를 앞세운 인간을 과연 아도니스의 이종족들이 막을 수 있을지 의문스러웠다.
‘그런 일이 없도록 오염토의 발생 원인을 찾긴 찾아야겠군.’
인간과 이종족의 전쟁은 어스 입장에선 곤란한 문제였다.
다른 이종족은 몰라도 엘프만큼은 왠지 보호하고 싶은 욕구가 강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종족 전쟁이 터진다면 엘프가 어찌 이를 피할 수 있겠는가.
‘내가 언제부터 엘프를 이리 생각하게 된 거지?’
모를 일이다.
자신에게 우호적인 종족이 엘프라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로엘에게서 연락이 왔다.
오우거도 자기 말 하면 온다더니 엘프도 딱 그 짝이 아닌가.
어스는 반가운 마음에 문자를 수신했다.
그러나 그 내용은 그를 무척 곤란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