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화
광활한 미답지를 단순 비행만으로 조사하는 건 어스 입장에선 매우 답답한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블링크를 마나를 감당할 수 없었다.
마나 회복 물약과 철옹성을 통해 더는 마나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 생각했었던 어스에게 있어 저 증식하는 오염토는 존재 자체가 짜증 유발자였다.
그래도 시쿠에게 비행 능력이 있어 꽤나 넓은 면적을 둘러볼 수 있었다.
아쉽게도 오염토의 원인으로 생각되는 특이점은 발견할 수 없었다.
해가 저물려 하자 어스는 시쿠를 소환 해제한 뒤 블링크를 이용하여 캠프로 복귀했다.
베로니카 단장이 단숨에 그를 향해 달려왔다.
전엔 보기만 해도 눈에 쌍심지부터 내보이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달라진 베로니카 단장이었다.
“어떻게 됐나?”
“던전 브레이크가 터졌더군요.”
“역시 미답지 내에서도 있었군.”
“그리고 던전도 하나 발견했습니다.”
“이 사태의 원인이 던전일 수 있지 않을까?”
“던전이나 던전 브레이크가 터진 곳이 미답지 하나뿐은 아니지 않습니까?”
“답답해서 그냥 해본 말이다.”
어스의 말을 핀잔으로 들었는지 베로니카 단장은 자신의 무안한 감정을 숨기기 위해 냉랭하게 응대했다.
한 배를 탄 입장이라 서로 각을 세워봐야 좋을 게 없다.
그건 어스도 베로니카 단장도 인정하고 있었기에 서로가 서로의 감정을 상하지 않는 선에서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런데 언제까지 이 일을 숨길 겁니까? 이건 교단만의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모든 사람들이 마도 문명의 혜택을 누릴 수 없다.
그러니 마도 문명이 그 기능을 상실하여 쓰레기가 되건 그래서 절대 다수의 사람들에겐 남의 일이다.
그러나 그런 자들도 해당되는 사항이 있다.
그건 바로 몬스터에 의한 위험성이다.
물론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평생 몬스터를 보지 못하고 살다 죽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모든 이들이 마도 문명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듯이 모두가 도시의 시민은 아니었기에 몬스터에 대한 위험성을 인지하고 경계하는 자들의 수는 도시민의 수를 상회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몬스터에 의해 무너진다면 도시라는 거대한 거주지도 더는 존재하기 힘들어진다.
인간의 사회는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듯 돌아가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교단은 이러한 사실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아직 어려서 소견이 좁군.”
비아냥거림인가 싶어 쳐다보았지만 베로니카 단장의 얼굴에선 그러한 기색을 찾아볼 수 없었다, 없지만 그래도 기분 나빴다.
어려서 소견이 좁다니.
‘내참, 어른이라고 다 소견이 넓나?’
마뜩잖았지만 마뜩찮은 이 기분을 풀어봐야 잠시 잠깐이라 스스로를 달랜 어스는 눈을 샐쭉하게 뜨며 베로니카 단장을 빤히 쳐다보았다.
말없이.
이에 베로니카 단장은 눈살을 잠시 모으다 이내 풀었다.
“백작을 무시하려고 한 말은 아니다. 일부를 제외하고 백작 나이대의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지내는 게 보편적이니까.”
화해의 몸짓이었기에 어스는 이를 받아들였다.
“저도 모든 사람들이 이 사실을 다 알아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각 왕국과 마탑엔 이를 알려 정보를 공유해야 하지 않나 싶어 말한 겁니다. 만에 하나 일이 잘못될 경우 급하게 이를 알리는 것보단 미리 알려서 혹시 모를 최악의 경우를 맞이하더라도 그에 대비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자 들었냐? 이게 나의 생각이다.
이 말 어디에 좁은 소견이 있느냐?
어스는 당당한 태도로 베로니카 단장을 응시했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그렇지 하지만 이 경우는 다르다는 게 교단의 생각일세.”
“왜죠?”
어스의 말투는 냉소적이었다.
교단의 태도가 이기적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 땅엔 우리만 있는 게 아니다. 아도니스의 간자들이 있다. 만에 하나 이 일이 그들의 귀에 들어간다면 어찌 될 것 같은가?”
여기서 왜 아도니스의 간자들이 나온단 말인가 설마, 이종족은 오염토의 영향을 받지 않기라도 한단 말인가? 그렇지 않고서야 이는 생뚱맞은 언급이 아닐 수 없었다.
어스의 표정이 달라지자 베로니카 단장은 나직이 한숨을 내불었다.
“백작에게 의뢰하기 전 우리는 여러 가지 실험을 했다. 동물부터 인간까지. 그 사이에 이종족을 끼워 넣는 건 지극히 당연한 과정이지. 그 실험 결과 이종족과 몬스터는 멀쩡했다. 이게 무슨 의민지 이해했겠지?”
교단이 바짝 긴장한 이유를 이제야 알 수 있었다.
교단이 이종족을 적으로 간주했듯 이종족 역시 교단을 적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쪽이 무력화된다면 다른 쪽이 이를 지켜보고 있을 리 만무하다.
‘가만, 혹시 마법 계약서도 오염토의 영향을 받나?’
어스의 생각을 눈치챈 것인지 아니면 우연인지 베로니카 단장은 그가 궁금하게 여기는 부분도 이야기했다.
“마법 계약서도 유명무실해지더군.”
‘만약, 오염토의 확장을 막지 못한다면 교단이 먼저 칼을 빼들 수 있겠구나!’
생각이 여기까지 미친 어스는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오염토의 존재는 대륙 대 대륙, 종족 대 종족의 대결로 치달을 확률이 거의 100퍼센트로 봐야 하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 그런 상황이 발생한다면 사람들이 가장 먼저 공격할 대상은 자신의 영지가 될 것이다.
‘교단 이 새끼들, 설마 극단적인 상황까지 감안하고 내 조건을 수락한 건가?’
오염토의 확산을 막지 못하면 테리우스엔 내일이 없다.
그리고 인간과 이종족이 과거처럼 싸우게 된다면 자신 역시 공중에 붕 뜨게 될 것이다.
전쟁은 오직 하나 적 아니면 아군만 존재하니까.
우라질.
던전으로 한참 꿀 빨고 있어 마냥 행복했는데, 눈에 가시라곤 교단 하나뿐이었는데 이리되면 양쪽 모두 신경 써야 할 판국이다.
‘어째서 내 대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거야? 일어나도 나 죽고 난 다음 터질 것이지.’
오염토의 원인과 제거는 이제 제 발등에 떨어진 불이란 걸 깨닫게 된 어스는 조바심을 느꼈다.
* * *
베로니카 단장과 헤어진 어스는 자신의 막사로 돌아왔다.
마치 이때를 기다리기라도 한 듯 로엘에게서 문자가 도착했다.
이를 보자 어스는 생각이 많아졌다.
모든 이종족이 자신을 향해 검을 겨누어도 엘프만은 우호세력으로 남아주지 않을까? 위그드라실의 계승자 칭호를 활성화한 이후 보인 엘프들의 반응은 전에 없이 우호적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생각은 이내 그의 내부에서부터 흔들렸다.
친구 사이일지라도 때론 친구의 피를 봐야 하는 경우가 세상엔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하물며 종족의 운명이 걸린 거대한 전쟁 앞에선 최악의 경우를 산정하는 게 맞지 싶었다.
‘제길, 이종족과 엮인 게 너무 많아. 누구 편을 들던 어느 쪽도 온전히 받아들여지기 힘들 것 같은데.’
마법 통신구를 쥐고서 한참을 고민하던 어스는 끝내 문자를 수신했다.
-그곳 상황은 어떤지 궁금해서 연락드렸습니다.
-조사 중이야. 그보다 작업은 어때?
-덕분에 다수의 이종족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조만간 그들을 수송하겠네?
-그래야지요. 그래서 말씀인데 테리우스에 대규모 텔레포트 마법진을 만들까 합니다.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어차피 이종족 연합과는 확실히 엮인 상황이다.
이제 와서 발을 뺄 수도 없는 처지다.
‘최악의 경우 내 힘을 온전히 사용할 수 있는 곳인 아도니스의 정착이 유리할 것이다.’
어떤 상황이 닥쳐도 이에 휘둘리지 않을 무력을 갖추고 있으면 중립자로서의 지위를 보장 받을 수 있으리라.
그러려면 이종족 연합과의 줄을 놓을 수 없다.
아니, 놓아선 안 된다.
-그래, 그렇게 해.
-어스 님껜 항상 감사드립니다.
부디, 그 감사가 한결같기를 빌어 마지않으며 어스는 로엘과 좀더 대화를 나눈 뒤 통신을 끊었다.
‘내일은 미답지 던전을 살펴봐야겠군.’
오염토 위에 등장한 던전 내부는 과연 어떤 모습일지, 만약 던전 내부도 오염토의 영향을 받아 기이한 환경이 조성된 상태라면 어스 입장에선 상당히 골치 아파진다.
마법산데 마나가 없어서 마법을 못 쓰니까.
그래도 하나 다행인 게 마법, 아니 스킬은 사용할 수 없더라도 달라진 신체 능력과 시쿠가 있어 다행이라 해야 할 것이다.
‘잠이 안 오네, 잠이.’
막상 잠자리에 들었지만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하는 어스였다.
그렇게 긴 밤을 보낸 어스는 다음 날 곧장 어제 봐두었던 던전을 향해 전력을 다해 비행했다.
물론 그 전력을 다한 비행의 주체는 시쿠다.
“시쿠, 힘내!”
* * *
어제 발견한 던전 등급은 3띠다.
어스 입장에선 식후 간식거리도 아니다.
그럼에도 그 앞에 선 어스에게선 긴장감이 물씬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순간에도.
-오염된 토양입니다.
-오염된 토양의 영향으로 체내 마나가 감소합니다.
-생명력이 오염된 토양에 저항합니다.
-저항에 실패했습니다.
-마나 감소가 발생합니다.
감소 수치는 여전히 10에 불과했다.
다행히 감소 수치가 어스 한정이기망정이지 철옹성도 해당되었다면 그의 근심은 더 컸을 것이다.
‘오염토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 마나 회복 포션이 있으면 좋겠는데.’
교단이라고 무작정 전쟁만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 역시 자체적으로 오염토를 정화할 방법 혹은 그에 대응할 수단을 연구 중에 있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어스는 던전 안으로 발을 들였다.
황량한 벌판에 돌산 하나가 서 있었다.
환경은 삭막했지만 여기에 발을 디딘 어스는 오히려 안도했다.
던전 내부는 오염토의 영향을 받지 않은 정상적인 환경이었기 때문이었다.
한 가지 걱정을 덜어낸 어스는 여태껏 아껴 두었던 블링크를 마음껏 시전했다.
곧 이곳 던전 보스를 찾을 수 있었다.
원정이 목적이 아니었기에 콜 라이트닝으로 보스만 정리했다.
공간 전체가 일그러졌다.
던전에서 나오자마자 예의 그 알람이 그를 반겼다.
“시쿠, 비행.”
시쿠는 촉수로 어스의 몸을 부드럽게 감싼 뒤 날아올랐다.
보다 더 깊숙이 이동했다.
상공에서 오염토 지역과 아닌 지역을 구분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동토는 비 오염지역이고 초봄의 들판을 연상시키는 곳은 오염된 지역이기 때문이다.
한 무리의 몬스터가 동물을 쫓고 있었다.
무심히 지나쳤다.
지금은 오염토의 면적을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기에.
2시간을 한 방향으로 이동하던 어스는 시쿠에게 하강을 명령했다.
어스는 오염토 위에 발을 디뎠다.
그러자 예의 그 알람이 울렸다.
.
.
.
.
-마나 감소가 발생합니다.
제법 깊숙한 곳까지 들어왔다.
아직까진 마나 감소가 10으로 고정되었지만 과연 이곳은 어떨까?
상태창을 열어 본 어스는 안도의 한숨을 내불었다.
여전히 10의 마나만 감소했기 때문이다.
만약 감소율이 고정이라면 아깝긴 해도 나쁘진 않다.
앞서 교단에서 파견한 정찰대의 경우 고작 초입부터 마나 손실(영구 손실)로 인해 예외 없이 모두 힘을 잃고 평범(?)한 상태로 돌아갔다.
마나 로드와 서클이 부서진 그들이 과연 이전처럼 능력을 되찾을 수 있을지는 아직까지 미지수였다.
“시쿠, 이동하자.”
마나 감소율의 차이가 아직 발생하지 않아 좀더 편한 마음으로 이동하던 중 어스는 대규모 몬스터 무리를 발견했다.
고블린에서부터 시작해서 오우거와 같은 대형종이 섞인 무리였다.
이는 일반적인 경우가 아니었다.
‘광연 스킬이 마렵네.’
놈들을 보자 절로 스킬 상점에 기웃거리게 되는 어스였다.
‘그냥 눈 딱 감고 살까?’
마나 회복 포션만 정상적으로 기능한다면 유혹에 흔들리지 않을 텐데.
이런 그의 마음을 알아차린 것일까?
“주인님, 시쿠는 저놈들 사냥할 수 있다. 시쿠에게 맡겨라.”
기특한 녀석.
“상대할 수 있겠어?”
“폭격 여러 번 하면 된다.”
“폭격?”
어스는 시쿠가 말을 잘못했다고 생각했다.
생매장이 아니라 폭격이라니.
“시쿠가 보여 준다. 시쿠의 힘을!”
어스는 자신이 모르는 뭔가가 시쿠에게 있나 싶어 일단 수락했다.
그에 시쿠는 자신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골렘 소환!”
전에 보았던 시쿠와 똑 닮은 녀석들이다.
과연 녀석들로 뭘 할 수 있을는지.
‘아닌가? 하긴 짱돌도 이 높이에서 떨어지면 가속도가 붙으니까 위력이 상당하겠지.’
하물며 시쿠의 골렘은 짱돌보다 큰 바윗돌쯤 된다.
성인 머리통 크기다.
문제는 숫자다.
예닐곱 마리로 잡아봐야 몇 마리나 잡을까?
머리를 정확하게 명중하면 그 숫자에 비례한 수를 잡을 수 있겠으나 그런 식으로 잡으려 들다간 반년은 더 걸릴 것이다.
그러니 자신도 여기서 마나를 다 쏟아부어야 하리라.
그래서 준비를 했는데…….
멍.
그럴 필요가 없었다.
시쿠는 무려 1천 기의 골렘을 소환했다.
‘미, 미친!’
소환된 골렘은 중력에 의해 빠른 속도로 지상으로 떨어졌다.
그러곤 일정 높이에서 자신의 몸집보다 훨씬 넓은 범위의 적과 함께 사라졌다.
사라진 몬스터들이 어찌 되었는지는 굳이 궁금하게 여길 필요가 없었다.
-검은 얼룩무늬 오크를 처치했습니다. 15코인을 습득합니다.
-화이트 베어를 처치했습니다. 25코인을 습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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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람이 미친 듯 울었다.
그런데 시쿠의 폭격은 그 한 번에 그치지 않았다.
재물이 계속하여 나오는 화수분처럼 시쿠는 딜레이 없이 1천 기의 골렘을 계속하여 뽑아대고 있었다.
7서클 광역 스킬조차 비벼볼 수 없는 위력이었다.
최종병기!
그 이름을 붙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