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화
나뭇잎을 타고 날아다니는 원숭이의 기습에 두 번 당했다.
그 공격에 실린 힘은 단단한 바위도 단숨에 부수고도 남을 위력이었다.
그러한 공격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받고도 멀쩡할 수 있는 인간이 과연 몇이나 될까?
흔치 않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원숭이 역시 알고 있었던 걸까?
녀석도 꽤나 혼란스러워했다.
녀석은 기습에 성공하고도 기선을 잡지 못했다.
어스의 단단한 몸에 놀란 것도 놀란 것이지만 그보단 블링크를 통한 그의 이동 방식 때문에 매번 공격에 실패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어스가 기선을 잡았냐 하면 또 그건 아니었다.
‘여긴 허공이잖아. 허공인데 왜 빠른 거야!’
원숭이, 아니 놈이 타고 있는 나뭇잎은 경기용 마차처럼 신속하였으며, 방향전환 역시 그러했다.
때문에 어스의 공격은 매번 아슬아슬하게 빗나가고 말았다.
차라리 전장을 지상으로 옮기는 건 어떨까 싶었다.
매번 마나만 낭비하였기에 어스는 이 생각을 행동으로 옮겼다.
그건 실수였다.
놈이 쫓아오긴 왔지만 하늘을 날아다니며 예의 그 회수가 가능한 아몬드처럼 생긴 투척 무기만 던지기만 할 뿐 땅에 발을 딛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탓에 맞지 않아도 될 공격을 한 방 먹어야만 했다.
생명력 덕분에 아프진 않았지만 자존심이 크게 상했다.
그래서 다시 전장은 허공으로 옮겨졌다.
‘이래선 답이 없어, 답이.’
불덩이는 그렇다 쳐도 녀석은 번개까지 피했다.
녀석과 붙은 지 30분 만에 어스는 속성 공격이 능사가 아님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일루젼!’
내심 어스는 기대를 가졌다.
아니,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희망마저 꺾이고 말았다.
일루젼이 놈에겐 통하지 않았다.
‘망할 원숭이!’
이제 어쩔 수 없이 장기전으로 가야 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 문제가 있다.
놈의 체력이 자신의 체력보다 더 좋아 보인다는 점이다.
승리를 위해 골몰하는 그사이 또 예의 그 아몬드(?)가 날아왔다.
세 번이나 맞아봐서 아는데 저게 보기보다 겁나 세다.
연속으로 두 번 맞으면 자칫 눈떠 보니 저승이란 말을 이해하게 될지도 모를 상황에 처할 수 있었다.
‘잠시 후퇴한 뒤 작전을 다시 짜야 할까?’
나뭇잎의 속도가 쾌속하지만 시야가 닿는 곳까지 이동이 가능한 블링크완 견줄 수 없다.
한마디로 어스에겐 완벽한 작전상 후퇴가 가능하단 소리다.
큰 힘은 아니더라도 놈의 시선을 잡아줄 조력자만 있어도 이처럼 제자리걸음 같은 상황을 극복할 텐데.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어스는 중요한 뭔가를 잊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 시쿠! 시쿠가 있었어!’
어둠 속에서 빛을 본 듯했다.
이정표도 없는 광야에서 길을 찾은 듯했다.
그런 그의 마음이 전해졌을까 소환하기 전에 시쿠가 짠하고 등장했다.
“시쿠, 피해!”
하필 시쿠가 그 모습을 드러낸 곳이 아몬드가 날아오는 곳이었다.
시쿠의 신체 80퍼센트가 거북이 등껍질을 뒤집어쓰고 있다지만 저 아몬드의 위력을 몸소 체감하였기에 고작 성인 팔뚝만 한 크기의 시쿠가 버틸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분면 시쿠의 작은 몸뚱이를 산산조각 내고 자신까지 명중하리라.
그래서 블링크로 일단 자리를 옮겼다.
펫인 시쿠는 죽어도 죽은 게 아니니까.
그런데 들려야 할 시쿠의 비명이 들리지 않았다.
혹시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즉사한 건가 싶어 예의 그 자리를 보았다.
“시, 시쿠?”
시쿠가 너무나 멀쩡한 모습으로 아래로 추락하고 있었다.
짧고 통통한 두 팔과 두 다리를 벌새의 날갯짓처럼 움직인 채.
기적 같은 이 일에 감동할 사이도 없이 어스는 냉큼 블링크를 시전하여 추락 중인 시쿠를 낚아챘다.
‘뭐지? 그새 살쪘나?’
어스가 알던 시쿠의 무게가 아니었다.
몸무게뿐만이 아니었다.
전보다 더 불어 있었다.
등껍질도 살이 찔 수 있나?
그것은 어스의 오해였다.
놀랍게도 시쿠는 그 긴박한 상황에서 원숭이가 날린 아몬드를 촉수로 잡았던 것이다.
나이스 캐치.
원숭이가 가진 두 가지 수단 중 가장 위험한 수단을 시쿠가 꽁꽁 싸매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자 원숭이는 크게 당황하여 손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때마다 시쿠의 촉수에 감긴 아몬드가 들썩거렸다.
“주, 주인님. 시쿠 식겁했다.”
그제야 시쿠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파랗게 질린 채 파들파들 떨고 있었다.
“잘했어, 정말 잘 했어. 그 무기 꽉 잡고 있어. 절대 빼앗기면 안 돼? 알았지?”
펫인 시쿠는 어스에게 무한한 사랑을, 무한한 충성심으로 똘똘 뭉친 생명체였다.
그랬기에 이 순간에도 작고 작은 그 까만 눈을 힘차게 부릅뜨며 그의 명령을 수행했다.
원숭이, 아니 던전 보스는 자신의 무기가 포로(?)로 잡히자 처음엔 가소롭다는 듯 비웃다 이젠 언제 그랬냐는 듯 성이 잔뜩 난 얼굴을 하고서 괴성을 터트렸다.
‘개자…… 아니, 원숭이 자식이 이제야 내 마음을 알겠냐!’
놈의 공격 수단은 시쿠의 나이스 캐치를 봉인했지만 문제는 놈을 태우고 날아다니는 저 나뭇잎이다.
어스는 블링크 한 번 시전할 수 있는 최소한의 마나를 제외한 모든 마나를 매직 애로우로 전환했다.
‘위력이 아닌 물량이다!’
천 개에 달하는 매직 애로우가 하늘을 뒤덮었다.
이를 바라본 던전 보스는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물량 공세에 깜짝 놀란 듯 순간적으로 멈칫했다.
‘한 대만, 딱 한 대만 맞아라.’
그 순간 콜 라이트닝을 날려 주리라.
그리 단단히 작정하고 두 눈을 힘차게 부릅떴다.
던전 보스도 바보가 아니었기에 이 상황에선 온전히 몸을 뺄 수 없다고 판단한 듯 놈은 정면 돌파를 시도했다.
수가 많긴 해도 매직 애로우가 만만해 보였던 것이다.
하긴 고작 1서클 스킬로 어찌 6띠 던전 보스에게 비빌 수 있겠는가.
펑펑-!
파이어 애로우의 폭발력에 비할 수 없지만 매직 애로우도 터지는 성질이 있었다.
살상력은 기대할 수 없는 수준이지만 그것이 연속으로 터지고 있었기에 던전 보스는 자신의 몸에 별다른 피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순간 멈칫했다.
그 순간 어스는 단단히 벼르고 있던 콜 라이트닝을 놈의 정수리에 박아 넣을 수 있었다.
번쩍!
파츠츠츠.
“끼이이이이이이익-!”
지금껏 보아온 그 어떤 던전의 보스 몬스터보다 이곳 던전 보스는 몸집이 작았다.
만약 놈의 몸집이 컸다면 스킬이 빗나가는 참사는 처음부터 겪지 않았을 것이다.
한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쉽다.
그 말처럼 콜 라이트닝이 제대로 적중하자 이후 공격은 단 한 번의 빗나가지 않고 모조리 놈의 몸뚱이를 때렸다.
그 몸이 지상에 닿기 전 알림이 울었다.
-던전 보스를 처…….
-보너스 업적 포인트…….
-1만 코인을…….
이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아이템 습득을 알리는 알림이다.
어스는 이를 놓칠 새로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런 그의 기대에 부응하기라도 하듯.
-아이템을 발견했습니다.
‘좋았어!’
여기서 마냥 기뻐할 수 없다.
해당 아이템과 상성이 맞지 않을 경우 그림의 빵이니까.
-아이템을 습득하시겠습니까?
두근두근.
“습득!”
젖 먹던 힘까지 끌어 올려 외쳤다.
그러한 기백이 통했음일까?
아이템을 습득할 수 있었다.
-펫에게 아이템이 적용됩니다.
-펫이 습득한 아이템 적용을 위해 48시간이 필요합니다.
-48시간 동안 펫을 소환할 수 없습니다.
보스의 아몬드를 나이스하게 캐치한 시쿠가 이번에도 아이템을 받아먹었다.
시쿠가 자신의 것이긴 하지만 이왕이면 철옹성에 적용되었으면 하고 은근 바랐는데.
‘그래도 최악은 아니잖아.’
이번엔 부디 저번처럼 땅 흔들기와 같은 허접한 능력이 아닌 제대로 된 능력이 터지길 속으로 기원했다.
* * *
순시온 시에서 일을 마무리한 어스는 곧장 북동쪽으로 이동했다.
그의 첫 번째 국외 일정은 파리스 왕국으로 교단의 명을 받은 성기사로 가본 경험이 있었다.
‘다른 건 정말 다 괜찮은데 텔레포트 마법진은 정말 아쉽네.’
그래도 어쩌랴 성기사를 그만둔 것도 자신이고, 빡빡한 일정을 굳이 소화하겠노라 주장한 것도 자신이기에 하소연할 곳도 없었다.
그래도 그리 빡빡하게 활동한 덕분에 성장하고 있었다.
‘내가 말이야 어, 나이 들면 진짜 여봐란듯이 아주, 아주 화려하고 게으르게 살 거야. 꼭 그리하고 말 거야.’
어스가 생각한 그 시기는 이십 대 중후반이었다.
보통 그 나이면 은퇴가 아니라 성공을 위해, 자신의 꿈을 좇아 이제 막 출발선에서 발을 떼기 시작한 시기였다.
그러니 어스의 저 생각은 일러도 너무 이른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하나 지난 1년간 그가 걸어온 길, 그리고 이룩한 모든 것들을 감안하면 당장 오늘 은퇴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돈, 명예, 인기, 권력, 개인적인 무력 등등.
시골 영지 출신의 평민이 가지기엔 그 무엇 하나도 기적이라 경탄할 수밖에 없는 것들을 이미 쥐고 있었으니까.
이동에 박차를 가한 어스는 지평선 저 멀리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태양을 보며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번에 그가 할 일은 무능한 지방 영주들로 인해 초기에 확산을 막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막지 못해 몬스터 웨이브의 범위가 파리스 왕국 북부 절반으로 확산된 전장의 솔론 왕국을 대표한 지원군 자격으로 참가했다.
달랑 혼자서.
그럼에도 파리스 왕국은 수천 명의 병사를 보내준 다른 동맹국 왕국들이 섭섭할 정도로 성대하게 그를 맞이했다.
그러한데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이를 두고 불만을 표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국이 도움을 받은 것처럼 그를 대하였다.
그런 그들의 속은 듣지 않아도 뻔하다.
다음엔 자신들의 왕국을 지원해 달라는 의미였다.
“……어스 백작께 갠스 강 중류에 위치한 평야로 진출한 몬스터를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엔슬리 이즈와드 후작은 정중하게 어스의 양해를 구하고 있었다.
참고로 엔슬리 후작은 파리스 왕국이 자랑하는 명장이자, 상급 정령사로 파리스 왕국뿐만 아니라 주변국에도 그 이름이 자자하다.
그런 인물이 자신보다 한참 어린 사람에게 존칭과 존대를 껄끄러워하지 않고 사용했다.
어스는 엔슬리 이즈와드 후작에 대해 잘 알지 못했지만 연합군 모두의 존경과 인정을 받고 있는 후작이 이처럼 겸허하게 나오자 크게 감동했다.
아니, 반했다.
순시온에서 일을 끝내자마자 곧장 달려와서 피로한 감이 없지 않았지만 존경 받아 마땅한 인물의 태도에 감동한 어스는 휴식을 임무 뒤로 미루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후작님.”
“파리스 왕국의 일원으로 어스 테리우스 백작께 진심으로 경의를 표합니다.”
“지금 당장 가겠습니다.”
그렇게 어스는 연합군 중앙 막사를 나서 또다시 블링크에 불을 댕겼다.
‘블링크! 블링크!’
* * *
무능한 지휘관은 용맹한 적군보다 두렵다는 말이 있다.
이번 파리스 왕국 북부에 발생한 몬스터 웨이브야말로 무능한 지휘권자의 피해를 여실히 증명하는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파리스 왕국 북부엔 돌대가리들만 영주로 세운 건가?’
엔슬리 후작이 부탁한 지역에 단숨에 도착한 어스는 혀를 차지 않을 수 없었다.
어스의 발아래 펼쳐진 드넓은 평야로 몬스터가 진입하기 위해선 외부의 침입을 막기 용이한 협곡과 늪지가 존재했다.
그런데 멍청한 이 지역 영주들은 어이없게도 전장으로 평야를 선택했다.
듣기로 평야에서의 전투를 선택한 자들 모두 몬스터 밥이 되었다고 했으니 모두 자업자득이라 할 것이다.
아무튼 파리스 왕국 북부 영주들이 이런 멍청한 결정으로 인해 북부 절반이 몬스터 손에 들어가고, 거기 살던 수많은 이들이 죽거나 난민으로 떠돌고 있었다.
‘전투에서 살아나왔어도 백성들에게 맞아 죽었을 거야.’
물론 영주들이 완전 무뇌아라서 평야를 선택한 건 아니었다.
파리스 왕국 북부는 정통적으로 기병으로 유명한 지역이었고, 실제 북부의 영주들은 기병에 많은 투자를 하여 그에 대한 자부심도 높았다.
그러나 제아무리 기병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더라도 그렇지 일단 자신들이 상대해야 할 적이 누구인지는 확인했어야 했다.
그 자부심이 자신들의 영지와 백성을 몬스터에게 고스란히 상납한 결과로 나올 줄은 죽은 그들도 몰랐을 것이다.
‘오우거 밭이네, 오우거 밭이야.’
어스는 혀를 크게 차며 지상을 향해 불덩이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파이어 버스터라는 이름을 가진 불덩이였다.
쾅쾅쾅쾅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