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화
순시온 외곽의 산중으로 곧장 이동한 어스는 시민들 앞에 나서기 전 던전 위치에 대한 대략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지도도 없이 말로만 듣고 산중에서 던전을 찾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그의 이동 방식이 블링크이다 보니 위치를 찾지 못해 헤매는 시간도 그리 길지 않았다.
순시온 시의 던전 수색대가 찾아낸 3곳의 던전 위치 모두를 자신의 눈으로 확인한 어스는 3곳 중 가장 낮은 등급의 던전인 4띠 던전부터 들어갔다.
‘여긴 겨울이네.’
던전을 통해 어스는 여러 형태의 자연환경을 접할 수 있었다.
그런 그에게 동토의 땅도 더는 특별할 것이 없었다.
4띠 던전의 일반 몬스터의 경우 두당 가격은 20코인에서 많이 쳐 줘봐야 여기서 10코인 정도 더 붙는다.
한마디로 등급이 같아도 몬스터의 질이 등급처럼 동일하지 않다.
‘금액이 낮게 책정된 곳이면 바로 보스 모가지 따고 나가야지.’
곧 위그드라실 칭호를 활성화할 수 있는 남은 조각 모두를 손에 넣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니 어스는 마음이 조급해졌다.
이 던전 이외에도 2개 더 있는 걸 생각하며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곧장 블링크를 시전했다.
일단 보스를 찾기 위해 하늘로 올라갔다.
‘아차.’
지상도 추웠지만 상공은 그보다 몇 십 배 더 추웠다.
살을 에는 추위에 머릿속까지 꽁꽁 얼어버릴 것 같았다.
‘고도를 낮춰야겠어.’
어스가 입고 있는 마법 로브의 출처는 유적지다.
그곳에서 출토된 마법 물품의 경우 현대의 마도학으로도 구현이 불가능한 미지의 영역이었다.
때문에 그가 입고 있는 마법 로브의 가격은 상상을 초월한다.
습하고, 덥고, 추운 환경의 던전에 들어올 때마다 마법 로브를 선물해준 프라이스에게 새삼 감사함을 느꼈다.
프라이스의 통 큰 선물이 아니었다면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다들 향해 중이겠군.’
카멜 일행이 이종족 연합의 수송선을 타고 떠난 지 어느덧 한 달 가까이 되어가고 있었다.
로엘의 말에 따르면 아도니스까지 뱃길로 50일이 걸린다고 하였다.
그러니 도중에 별일 없다면 이달 말이면 소문으로만 듣던 이종족들의 대륙에 발을 내디딜 수 있을 것이다.
기나긴 항해에 다들 건강하길 빌며 상념에서 깬 그의 시야로 한 무리의 몬스터들이 들어왔다.
작고 둥근 귀와 눈을 가진 몬스터였다.
그에 반해 덩치는 곰처럼 컸다.
‘곰은 오랜만이네.’
사냥꾼의 아들로서 곰을 보자 놈의 가죽이 고가라는 것부터 먼저 떠올랐다.
그러나 그보다 더 비싼 게 있었으니 그건 바로 웅담이다.
‘그런데 몬스터 웅담도 약에 쓸 수 있나?’
느릿느릿 움직이는 놈들의 전방으로 내려선 어스는 체인 라이트닝을 시전했다.
번쩍!
5띠 던전의 몬스터도 견디지 못하는 위력의 스킬이 바로 체인 라이트닝이다.
하물며 4띠 던전은 닿는 즉시 사망 확정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래야 하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체인 라이트닝에 당하고도 놈들은 살아 있었다.
불편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지만.
“헐, 뭐야 저 곰탱이들은?”
의외의 상황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가끔 저런 놈들이 있다.
높은 저항력을 가진 녀석들이.
“쿠오오오오오-!”
몸은 생각처럼 움직일 수 없었지만 그 포효는 멀쩡했다.
자신을 공격한 어스를 향한 무한한 증오와 적개심을 표하며 달렸다.
곰은 덩치에 비해 꽤나 빠른 편에 속한다.
그러나 다들 몸이 정상이 아니기에 육신과 마음이 따로 놀고 있었다.
‘아무래도 추운 곳이니까 얼음 속성도 효과가 떨어지겠지. 그럼 불속성밖에 없겠네.’
어스는 파이어 볼을 시전했다.
그의 주변으로 수십 개의 파이어 볼이 등장했다.
허공에 수십 개의 불꽃 궤적을 남기며 전방으로 쏘아진 파이어 볼이 폭발했다.
쾅쾅쾅쾅-!
그러자 체인 라이트닝 때는 듣지 못했던 알림을 들었다.
-화이트 베어를 처치했습니다. 25코인을 습득합니다.
.
.
.
‘고작 25코인이 체인 라이트닝을 버텼다고?’
액수를 확인한 어스는 놀라 입을 벌릴 수 없었다.
고열에 의해 얼음이 녹으며 발생한 수증기는 이내 얼음 알갱이가 되어 흩날렸다.
그래서 까맣게 타버린 놈들의 사체는 다시 하얗게 변하였다.
철옹성의 창날로 화이트 베어의 배를 갈랐다.
아이템을 거듭 먹은 철옹성은 명검과 견주어도 부족하지 않은 절삭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어디 절삭력뿐이랴.
철옹성은 그 무엇으로 파괴 불가의 기능까지 있다.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 이 기능은 사라지지 않는다.
‘위그드라실 칭호만 활성화하면 스킬이 아니라 창술만으로도 사냥이 가능할 거야.’
스탯 : 힘(2.6). 민첩(2.6).
어스의 육체 능력을 수치화한 스탯은 고작 이 수준이다.
하지만 위그드라실 칭호를 활성화하게 되면 보잘것없는 이 수치는 단숨에 100을 돌파한다.
모든 스탯 +100의 영향으로 말이다.
참고로 힘과 민첩 스탯의 경우 업적 포인트 10을 주어야 다른 스탯과 동일한 효과를 본다.
그러니 힘과 민첩 스탯이 100 오르면 이는 업적 포인트로 환산하면 각각 1,000포인트를 분배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수치다.
‘힘과 민첩 스탯이 100넘으면 익스퍼트도 상대할 수 있겠지.’
그들처럼 마나 소드를 사용할 수 없다지만 철옹성의 부가 효과를 생각하면 이 창은 그 자체로 이미 마나 스피어라고 봐야 한다.
파괴 불가니까.
‘내장까지 다 익어 버렸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어스는 웅담을 챙겼다.
‘자, 가보자. 블링크!’
* * *
똑똑.
“들어와.”
실내에서 내방 허락이 떨어지자 거스티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엔 1남 1녀가 앉아 있었다.
교단 제일검 베로니카.
그리고 교황의 성전 선포 이후 영향력이 급격하게 커진 헤롯 추기경이었다.
헤롯 추기경은 교단 내에서도 은둔자라고 불릴 만큼 활동이 없던 추기경이었다.
그런 그가 클락 추기경의 손을 잡고 본격적인 활동을 보이자 은둔자라는 그 별명이 무색하게 왕성한 활동을 하였고, 오늘날에 와서는 클락 추기경이 헤롯 추기경의 아래가 되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두 사람의 입장이 확연히 달라졌다.
이러한 배경엔 헤롯 추기경에게 숨겨진 신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길고 긴 교단의 역사와 함께해 온 비밀 결사조직 성전단!
바로 이 조직의 당대 수장이 헤롯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헤롯 앞에 앉아 있는 교단 제일검 베로니카 역시 성전단에 속한 인물이었다.
“최종 보고서입니다.”
교단을 충격에 빠트린 일대 사건인 솔론 왕국 왕도 내 신전 함몰은 성전단에게도 적지 않은 충격을 안겨준 사건이었다.
그랬기에 이 사건에 대한 성전단의 관심은 매우 컸다.
그래서 성전단 단독으로 이번 사건을 조사했다.
헤롯 추기경과 베로니카 단장은 각자 보고서를 살폈다.
“정령이나 마법의 흔적도 없고, 그렇다고 지반이 약화된 것도 아닌데 대체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지?”
보고서 마지막 장까지 꼼꼼히 읽은 베로니카 단장의 입에서 어이없는 한숨이 흘러나왔다.
헤롯 추기경이라고 그녀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교단 조사단과 우리 측 조사단의 결과가 동일하군. 거스티.”
“예.”
“우리가 놓친 부분은 없는 건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한 결과입니다.”
거스티는 헤롯과 베로니카의 표정을 일별한 뒤 입을 다물었다.
베로니카 단장이 헤롯을 보며 입을 열었다.
“난 그 어린 천둥벌거숭이의 수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수장.”
신전 함몰 사건이 발생한 이후 베로니카는 줄곧 어스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었다.
교단에선 그녀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다른 이도 아닌 교단 제일검 베로니카의 발언이 묻힌 것이기에.
그러나 교단의 이와 같은 행동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솔론 왕국을 중심으로 각 왕국이 연대하여 어스의 방패막이를 자청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같은 연대가 이뤄질 수 있었던 배경은 교단이 어스를 독점할 것을 우려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왕국들의 이러한 전격적인 움직임은 적어도 던전 사태가 진정 국면에 접어들기 전까진 유효할 수밖에 없었다.
참고로 각 왕국의 연대를 끌어낸 인물은 칼렉 왕세자였다.
그 과정에서 칼렉은 어스를 각 왕국에 대여하기로 했다.
“베로니카 단장, 지금은 그자가 필요합니다. 각 왕국도 그리고 우리 역시.”
성전단은 과격한 조직이다.
필요하다면 수백 수천 명의 목도 날릴 수 있으며, 더해 교황의 목도 가차 없이 벨 수 있다.
심증만으로도.
그런데 그러한 성전단이 망설이고 있었다.
던전으로 인해 발생하고 있는 사태가 저들이 보기에도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헤롯 추기경의 단호한 목소리에 베로니카 단장 역시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교단 제일검, 아니 인류 제일검이라는 자부심을 가진 베로니카였지만 막상 어스가 하는 것처럼 똑같이 할 수 있느냐 묻는다면 고개를 내저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분하지만 그게 현실이었다.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감정이 격해졌습니다.”
“베로니카 단장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닙니다. 어스 백작은 분명 교단에 해가 될 인물입니다. 그 자신이 교단을 적대하든 하지 않든 이젠 존재 자체가 문제인 사람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실리를 챙겨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던전으로 인한 룬의 종들이 고통받고 있으니까요. 그러니 우리의 날카로운 검은 이 고비를 넘긴 다음 휘둘러도 늦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교황청에 있어야 할 헤롯 추기경이 솔론 왕국까지 한달음에 달려온 건 신전 함몰 사건에 대한 조사보단 베로니카 단장을 진정시키기 위해서였다.
다행히 여기까지 달려온 헤롯의 목적은 달성할 수 있었다.
“수장의 뜻이라면.”
* * *
“귀가 왜 이렇게 간지러워? 누가 내 욕이라도 하는 건가?”
3개의 던전 중 2개를 정리하자 어느덧 밤이 되었다.
휴식을 가져도 될 테지만 순시온 시 일정을 끝낸 뒤 국외로 이동해야 하기에 어스는 휴식 없이 곧장 6띠 던전으로 들어갔다.
‘마법진만 이용할 수 있으면 좋은데. 진짜, 아쉽단 말이야.’
던전 입장 전 어스는 앞서 4띠와 5띠 던전에서 얻은 보너스 업적 포인트 중 1은 체력 스탯에 분배하여 생명력을 1천으로 만들었다.
나머지 4포인트는 지력 스탯에 분배했다.
마지막 6띠 던전의 환경은 숲이었다.
상공으로 이동하여 지상을 살폈다.
온통 녹색만 보일 뿐 손바닥만 한 공터조차 보이지 않았다.
‘곤란하네.’
이래선 상공 정찰의 의미가 없어진다.
불이라도 질러야 하나?
생각해보니 이 방법도 나쁘지 않았다.
현세면 모를까 이곳은 던전이다.
어스는 자신의 생각을 실천에 옮겼다.
‘파이어 버스터! 파이어 버스터!’
거대한 숲이 화염에 휩싸여 타오르고 있었다.
그 안에 살던 생명들이 불길에 휩싸여 비명을 토하며 죽어갔다.
숲에 살던 몬스터 역시 이를 피할 수 없었다.
놈들은 화재를 피해 달아났다.
그 속도가 상당히 빨랐지만 블링크로 이동하는 어스 앞에선 토끼를 상대로 뛰는 거북이에 불과했다.
제아무리 빠른 거북이도 어찌 토끼를 따라잡을 수 있으랴.
어스는 지상을 향해 연방 파이어 버스터를 쏘아 보냈다.
사방이 불길로 뒤덮이자 몬스터 역시 통구이 신세를 면치 못했다.
-쌍두 원숭이를 처치했습니다. 60코인을 습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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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두 원숭이 전사를 처치했습니다. 150코인을 습득합니다.
-쌍두 원숭이를 처치했습니다. 60코인을 습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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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간이 비싼(?) 전사가 잡혀 어스의 재산을 살찌웠다.
불놀이(?)가 생각보다 편했다.
지상에서 올라오는 연기로 인해 눈과 코가 따가웠지만 금방 이동해버렸기에 그건 잠시였다.
‘블링크!’
고도를 유지하는 것만 제외하면 전투는…… 아니, 사냥은 순조로웠다.
블링크가 아니었다면 이런 식의 사냥은 애초 생각도 못 했을 것이다.
모든 것이 그의 뜻대로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었다.
-레벨업!
-업적 포인트 3을 습득합니다.
블링크를 통한 고도 유지 이외에 딱히 신경 쓸 게 없어 졸리기까지 하던 그때 레벨이 올랐다.
레벨 하나만 더 올리면 레벨도 70이다.
‘인벤토리 확장만 있으려나?’
레벨업에 잠시 한눈을 판 사이 고도가 낮아졌다.
마치 그것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 그를 향해 무언가가 날아들었다.
그것도 한참 불타는 숲에서.
몬스터를 직접 상대하던 상황이 아니라 불만 지르고 다니던 상황이라 방심하고 있던 그에게 있어 이 공격은 의외였다.
그래서 공격을 피하지 못하고 맞고 말았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공격을 받았지만 고통은 없다.
생명력 효과 덕분이다.
어스는 반사적으로 블링크를 통해 이동한 뒤 상태창을 열어 생명력을 확인했다.
생명력 : 600/1,000.
이 한 번의 공격으로 400의 생명력이 증발했다.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맺혔다.
공격이 날아온 곳을 응시했다.
하지만 별다른 동향은 없었다.
거센 화마가 숲을 살라먹고 있을 뿐이었다.
다른 곳처럼.
한 번의 공격으로 생명력 400을 삼켜버린 투척 공격을 날린 몬스터는 보통내기로 볼 수 없었다.
보스 혹은 준보스일지 모른다.
그런데 몇 분을 기다려도 놈의 죽음을 알리는 알림이 뜨지 않았다.
설마 저 불길을 버티는 걸까?
어스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의 등짝에 다시 충격이 가해졌다.
방금 치료 포션을 마셔 회복한 생명력이 이번엔 500이나 깎였다.
이에 크게 놀라 돌아선 어스는 기함했다.
눈앞에 까맣게 그을린 원숭이 한 마리가 허연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며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원숭이가.
‘나, 나뭇잎?’
나뭇잎을 타고 허공에 떠 있었다.
살다 살다 나뭇잎을 타고 나는 원숭이까지 보게 될 줄이야.
그리고 이보다 더 놀라운 건 자신을 공격했던 무기가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임무를 완수하고 그 원숭이의 손에 다시 들어간 것이다.
철옹성처럼 회수 기능이 있는 무기였다.
‘이건 백 퍼센트 아이템 뜨는 각이다!’
앞서 두 번의 공격을 허용하여 심장이 철렁했던 어스는 언제 그랬냐는 듯 두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