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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로 성장하는 마법사-174화 (174/250)

174화

하츠 노멜 후작의 영지에 드리운 어두운 먹구름을 단신으로 걷어내고 왕도로 복귀한 어스는 칼렉 왕세자와 잠깐 이야기를 나눈 뒤 퇴궐했다.

왕국 3대 곡창지역을 구한 그의 공로를 감안하면 이는 그를 무시하는 처사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어스는 이를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칼렉 왕세자가 바빠진 이유가 자신의 소소한 복수심이 낳은 결과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신전 함몰이라는 초유의 사건 말이다.

‘베로니카 그 할망구와 음흉한 거스티란 녀석의 탓인 것이야. 결코 내 탓이 아냐. 그나저나 그 할망구는 어떻게 됐는지 궁금하네.’

범인은 사건 현장에 반드시 나타난다는 말을 따라하듯 어스는 사고 현장에 들렀다.

그곳에서 보게 된 광경은 어스의 입을 떡 벌어지게 만들었다.

그 거대한 건물들과 그에 딸린 잘 정돈된 크고 작은 정원 모두 모조리 땅속에 함몰되었기 때문이었다.

‘그 높은 종탑 머리도 안 보이네. 시쿠 녀석, 나 몰래 영약이라도 먹었나? 그 조그마한 덩치로 어떻게 저만한 규모의 구덩이를 만든 거지?’

거대 구덩이로 접근하여 그 안의 사정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외부인 통제도 통제이거니와 몰려든 인파로 인해 북새통을 이루고 있어 도저히 접근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여기서 블링크를 사용하자니 혹여라도 자신이 목격된다면 분명 볼멘소리를 들을 것 같아 시도할 수 없었다.

인파에 묻혀 외곽에서 기웃거리던 어스는 곧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그 몇 걸음 떼기도 전에 함성에 놀라 고개를 돌렸다.

들것을 든 사람들이 보였다.

“저 사람은 죽었나 봐. 얼굴이 담요로 덮여 있네.”

“신전에 꽤 많은 사람들이 있었을 텐데 걱정이네.”

“룬이시여. 당신의 종들을 구원하소서.”

기도 소리와 탄식이 곳곳에서 터졌다.

들것에 실린 건 비단 사망자뿐만이 아니었다.

부상자도 있었다.

부상자라고 모두 들것에 실려 나오는 건 아니었다.

부축일망정 자력으로 걸어서 움직이는 피해자도 보였다.

사고 소식을 듣고 모인 사람들 중에는 피해자의 가족이나 지인도 상당수 있었다.

구조자가 등장한 순간부터 그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비통과 안도가 호흡처럼 끊이지 않았다.

가족, 지인의 주검을 확인한 자들의 대성통곡이 어스의 가슴을 묵직하게 짓눌렀다.

자신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던 베로니카 단장 그 할망구와 그 옆에서 뱀처럼 눈을 굴리던 거스티를 엿 먹일 생각으로 저지른 일로 인해 너무 많은 이들이 고통을 겪은 걸 보았기 때문이었다.

‘……괜히 왔네.’

어스는 멈춘 발걸음을 다시 옮겼다.

불편해진 기분을 달래며 집에 돌아오자 또 신전 함몰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린다로부터.

“어스 너 그 소식 들었어? 신전이 함몰된 거?”

“알고 있어.”

“넌 어떻게 생각해? 이번 사건?”

“사건 아니고 자연재해잖아.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인위적으로 발생한 일로 오해하겠네.”

“그게 뭐?”

“다른 사람들이야 사건이니 뭐니 하는 식으로 떠들어도 되지만 누난 아니야. 내 지인인 걸 교단도 알고 있어. 그러니까 괜한 꼬투리 잡히기 싫으면 첫째도 입조심 둘째도 입조심 해. 그런데 왜 누나만 있어? 다른 사람들은 어디 있어?”

“집이고 네 앞이니까 그런 거지 설마하니 밖에서도 이러겠어?”

“노파심에서 한 말이니까 오해하진 말고.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상회에 있을 거야. 이번 사고로 왕도 내 상회들이 성금과 물품을 모아서 전달하기로 했거든. 그나저나 큰일 하고 왔는데 하필 이런 일 터져서 제대로 된 치하도 못 받겠네. 기분 괜찮아?”

“치하에 일희일비하던 시절은 이미 졸업했거든. 대체 날 뭐로 보는 거야.”

“오! 대인배.”

“그런데 다들 상회로 갔는데 누난 왜 집에 있어?”

“그야 너 온다니까 한 사람은 남아 있어야지. 집에 고용인들만 있고 아무도 없으면 쓸쓸할 거 아냐.”

“내가 앤가. 그래도 누나가 있으니 기분은 조금 낫긴 하네.”

어스의 말에 기분이 좋아진 린다는 활짝 웃었다.

“참, 밥은?”

“지금은 피곤해서 씻고 쉬고 싶어.”

“하긴 큰일하고 왔는데 피곤할 만하지. 얼른 씻고 쉬어. 필요한 건 있으면 문자 보내고.”

린다는 남은 한 손으로 어스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고생하고 올라온 어스를 향한 나름의 치하였다.

어스는 그 손길을 뒤로하고 자신의 방으로 걸음했다.

‘많이 안 죽었으면 좋겠는데.’

시쿠가 몬스터 처리하듯 했으면 생존자는 전혀 없었을 것이다.

‘아닌가? 그전에 시쿠를 귀환시켜서 거기까지 안 간 건가?’

* * *

왕국 3대 곡창 지역이 몬스터에게 짓밟힐지 모른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진 이후 나날이 치솟던 곡물 가격이 그나마 안정세를 보였다.

곡물을 통해 한밑천 잡으려고 매점매석에 나섰던 자들은 이에 실망했다.

반면 백성들은 문제를 해결한 어스를 칭송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이야기 들었어? 노멜 후작 영지의 몬스터 웨이브가 반나절 만에 완전 종식되었데. 대단하지 않아? 교단, 마탑, 중앙군에다 영지 연합군까지 투입했어도 나오지 않던 성과가 어스 백작 한 명 출동하자마자 바로 해결된 거 말이야.”

“사람들이 어스 백작님을 괴물 마법사라며 말해도 사실 난 미심쩍었거든. 그런데 이번 일로 완전히 그분을 인정하기로 했다.”

“네 녀석의 인정 따위가 뭐라고.”

“그건 그렇지.”

“자넬 민망하게 하려는 의도는 아니었어. 참, 자네 어스 백작님이 다스리는 영지 알고 있어?”

이번 일로 어스만큼이나 그의 영지 역시 백성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었다.

서민들은 물론 부유층까지 테리우스 영지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다.

던전 브레이크의 영향으로 인한 몬스터 웨이브가 자주 발생하자 삶의 질을 높이는 쪽보단 안전이 더 대두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하루 벌어먹고 사는 서민들은 관심이 있어도 말로만 떠들 뿐 실제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반면 부유층들은 자신과 가족의 안전을 위해 테리우스 영지의 집과 토지를 알아보고 있었다.

“알지. 왜?”

“그 영지가 자유 영지인 것도?”

“자유 도시나, 자유 마을은 들어봤어도. 자유 영지라니 그런 말도 있었던가? 그런데 자넨 어찌 그리 테리우스 영지에 대해 자세히 아는 거야? 혹시, 그쪽으로 이주할 생각이야?”

친구의 물음에 남자는 고개를 내저었다.

“내 형편에 무슨, 하지만 돈만 있다면 당장 그쪽에 집이든 땅이든 사고 싶어. 내 생각에 테리우스 영지가 가장 안전한 영지가 될 것 같아. 이번 일만 봐도 알 수 있잖아.”

“하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영주가 괴물 마법사니깐 그쪽 주민들은 몬스터 웨이브나 던전 때문에 불안할 일은 없겠네. 그런데 영주로서 백작은 어떤 사람일까?”

어스의 능력은 소문이 파다했지만 영주로서의 그의 역량은 알려진 바 없었다.

“마법사들이 대부분 성격이 괴팍하잖아. 하물며 어스 백작은 천재라는 말까지 듣는 마법사니까 당연히 더 괴팍하지 않을까?”

“흠, 장점이 묻히는 느낌이네.”

“그래도 지금 같은 시국엔 테리우스만 한 곳도 없지 싶어. 기회가 된다면 그곳으로 이주하고 싶다니까.”

“동감일세. 경제적인 여유가 조금만 있었어도 당장 보따리 싸는 건데.”

어스의 활약이 돋보일수록 그와 테리우스 영지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 역시 자연스럽게 높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여전히 어스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들은 바로 귀족파와 교단이었다.

특히 교단이 어스의 인기와 유명세를 싫어했다.

그들이 어스를 싫어하는 이유는 단순했다.

돌아올 명분을 줬음에도 불구하고 어스가 이를 대놓고 외면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외면했으면 성기사로 활동하던 당시보다 활동량이 적던가 해야 하는데, 오히려 물 만난 물고기처럼 활발하게 활동하는 바람에 듣지 않아도 될 세간의 비웃음까지 샀다.

명검을 쥐고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다는 말이었다.

이러니 어찌 교단이 어스를 곱게 볼 수 있겠는가.

‘민심이 배신자에게로 더 기울기 전에 수단을 강구해야 해. 수단을.’

솔론 왕국에 쫙 깔린 그들의 눈과 귀, 그들이 물어온 소식을 접한 교단 상층부에선 어스라는 눈에 가시를 뽑아 버릴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이를 주도하는 자들은 오랜 세월 교단의 그림자로 활동하다 최근 양지로 그 모습을 드러낸 강력한 성향의 성전단이 주도하고 있었으니, 그 대책이란 필시 쇳내 진동하는 대책일 확률이 열에 아홉일 수밖에 없었다.

* * *

오지에 생겨나 존재조차 파악하지 못했던 던전의 위험성을 알게 된 사람들은 오지의 수색을 등한시할 수 없었다.

솔론 왕국 북부 도시 순시온도 마찬가지였다.

이 도시의 서쪽엔 십수 개의 거대한 산들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었다.

그중 한곳에서 최근 던전 3개가 연속으로 발견되었다.

이 사실은 왕도로 바로 통보되었고 어스가 직접 오게 되었다.

하츠 노멜 후작 영지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지 5일 차였다.

그동안 그는 네 곳에서 발생한 몬스터 웨이브를 정리했으며, 3개의 던전을 닫았다.

어스는 거기서 얻은 보너스 업적 포인트와 노멜 후작 영지에서 얻은 보너스 업적 포인트 모두 체력 스탯에 분배했다.

그 결과 현재 어스의 생명력 수치는 995가 되었다.

포인트 하나만 더 체력 스탯에 분배하면 세 자리 숫자가 네 자리 숫자가 되는 것이다.

‘날 보던 베로니카 할망구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지.’

왕도 내 신전이 함몰되는 역대급 사건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가 이뤄지고 있었다.

지질학자는 물론 오랜 경험을 가진 광부 그리고 마법사와 정령사까지 조사에 동원됐다.

사람들은 이번 사건을 자연재해 일각에선 교만하고 방자한 교단에 대한 신의 심판이 아니냐고 했지만, 교단은 이 사건을 인위가 개입된 테러로 행위로 몰아가고 싶은 듯 그와 같은 행보를 보이고 있었다.

이 이야기를 더글러스 부단장에게서 전해 들었을 당시 어스는 심장이 가슴뼈를 부수고 튀어나오지 않을까 싶을 만큼 심장이 마구 뛰었었다.

그래서였다.

업적 포인트를 체력 스탯에 분배하고, 그것도 모자라 혹사에 가까운 일정을 소화한 이유가.

그러나 세상은 불안감에서 촉발된 그의 이런 속내보단 겉으로 보인 그의 행보만 주목하고 있었기에 온 나라에서 그에 대한 칭송이 끊이지 않았고, 덕분에 그의 손을 잡은 왕실은 그간 왕당파와 귀족파 사이에서 눈치를 보던 중립파를 회유하여 왕실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신도 모두의 사랑을 받을 수 없는데 한낱 인간인 내가 그걸 바라는 건 허황된 바람일 거야.’

교단도 자신을 미워하고, 귀족파도 자신을 미워하지만 그래도 왕실과 왕당파 그리고 솔로의 수많은 백성들이 자신을 지지하니 이를 위안 삼기……는 개뿔.

귀족파의 미움은 상관없지만 교단의 미움만큼은 자신의 지지층 전부와 맞바꿔서라도 없애고 싶은 게 어스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대륙의 주인은 솔론도 아니고, 솔론의 백성도 아닌 교단이니까.

그런데 그런 거대 세력의 미움을 사고 있으니 어찌 두 다리 뻗고 잘 수 있겠는가.

‘앞으로 5일, 5일이다. 5일만 더 버티면 조각이 손에 들어온다. 그때까지만 참으면 두 다리 뻗고 잘 수 있을 거야.’

“도시 순시온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어스 백작님, 부디 이 도시를 위협하는 던전으로부터 우리 도시를 지켜 주십시오!”

도시 순시온의 주인 채프먼 컬페퍼 자작이 자신의 신하들과 백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어스에게 허리 숙였다.

참고로 채프먼 자작은 이번에 왕당파로 돌아선 중립파 귀족들 사이에서 영향력이 큰 인물이었다.

그래서 이번 원정은 정치적인 노림수가 깔린 원정이었다.

“물론입니다, 채프먼 자작.”

어스는 채프먼 자작의 신하와 백성들이 똑똑히 볼 수 있도록 자작의 손을 잡으며 순시온, 아니 컬페퍼 영지에서 던전으로 인한 문제가 발생하면 언제든 달려오겠다는 말 대신 행동으로 이를 대신했다.

채프먼 자작과 일면식이 있는 것도 아닌 그가 이런 행동을 보인 이유 역시 다분히 정치적인 의도가 깔린 포석이었다.

‘이 한 편의 연극으로 얻는 수익이 크니깐.’

그리고 어스의 이런 행동은 결코 공짜가 아니었다.

거너가 바지 상단주로 있는 상단에 이권 하나가 새로 생기는 일이었다.

“우리 영주님과 어스 백작님이 많이 친한가 보네.”

“두 분이 저리 친한 걸 보니 앞으로 던전은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어.”

“어스 백작님 만세! 만세!”

“영주님 만세! 만세!”

교단과 귀족파 빼고 두루두루 다 좋은 일인 것이다.

“여러분들에게 던전의 위협이 없는 평화로운 일상을 선물하겠습니다. 어스 테리우스! 내 이름을 걸고 약속합니다.”

내키지 않았지만 이 또한 약속한 것이기에 출정 선언까지 해준 이후 도망치듯 장내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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