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화
무속성, 화속성, 빙속성, 뇌속성 마지막으로 정신 계열까지.
무려 다섯 가지나 된다.
한 인간이 다섯 가지 속성 마법을 배운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1, 2서클의 마법이면 모를까, 3서클부터는 타고난 속성이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만약 이를 무시하고 배운다면 설사 익히더라도 위력과 시전 속도는 현저히 떨어져 5서클 마법이 2서클 수준의 마법으로 전락하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이 얼마나 비효율적이란 말인가.
물론 모든 마법사들이 효율을 추구하는 건 아니다.
간혹 천재적인 습득 능력을 타고난 자들이 나와 불가능한 영역에 도전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자들도 끝내 극복할 수 없는 것이 있으니 앞서 언급한 바 있는 현저히 떨어지는 위력과 시전 속도다.
그러나 어스에겐 남의 일이었다.
오직 그의 걸림돌은 단 하나 스킬 슬롯 제한뿐이다.
던전 몬스터에 쫓겨 달아나기 급급하던 현세의 몬스터들이 눈을 까뒤집고 돌아서선 본래 갖고 있던 투지와 흉성을 터트리며 역으로 놈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고블린은 0.5초 컷이네.’
수련용 몬스터 아니랄까 봐 죽어도 너무 빨리 죽는다.
오크나 브로, 놀은 그나마 조금 버티나 싶었지만 그도 오래가지 못했다.
그래도 몇 놈 다치게 만들었으니 나름 선방했다.
어스의 스킬에 반응하여 전사한 것이기에 시스템은 이를 어스가 사냥한 것으로 간주했다.
‘이거야말로 손 안 대고 코풀기…… 흐음. 그건 아니군.’
1서클이나 2서클 스킬로 충분히 처치할 수 있는 놈들에게 4서클 스킬을 퍼붓고 있으니 오히려 손해 보는 장사였다.
마법사들이 극도로 싫어하는 비효율적인 방식이다.
마나가 넘쳐나서 감당이 되지 않으면 모를까 세상 그 어디에도 그와 같은 마나를 보유한 사람은 없다.
설사 대마법사도 언제나 입에 달고 사는 말이 마나 부족이다.
그렇다 보니 마법사들에게 있어 어스는 불가사의한 존재로 인식될 수밖에 없었다.
놀라운 재능을 타고난 축복받은 특이 체질.
이것이 마법계에서 어스를 바라보는 시각이었다.
현세 몬스터 대 던전 몬스터의 격돌에서 현세 몬스터가 완패했다.
‘결과는 처참하지만 흥미진진했어. 이래서 고대 사람들이 검투장을 운영했던 건가?’
몬스터 진군 속도에 제동을 걸었지만 잠깐에 지나지 않았다.
‘일루젼! 일루젼!’
이번엔 에이프를 향해 일루젼을 걸었다.
일루젼이 범위 스킬이 아니다 보니 일일이 걸어줘야 한다.
가성비만 놓고 보면 최악이다.
하지만 적진에 혼란을 주기엔 또 이만한 스킬이 없다.
이번엔 놈들끼리 치고받기 시작했다.
동급의 싸움이라 구경꾼으로선 볼만했지만 구경꾼의 입장을 벗어던지면 시간 낭비였다.
‘느리다, 느려.’
띄엄띄엄 찾아오는 알림.
이러다 여기서 날 새지 않을까 싶다.
동족상잔이 벌어지고 있는 장내로 덩치와 기운이 예사롭지 않은 에이프 무리가 등장했다.
‘보스구나!’
어스의 눈이 반짝인다.
에이프 보스는 눈앞에 펼쳐진 장면에 황당했는지 잠시 손을 놓고 있다 이내 분노를 담은 포효를 터트렸다.
소리에 담긴 그 힘에 의해 일루젼에 사로잡혔던 에이프들이 정신을 차렸다.
정신 계열 마법의 단점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그렇다고 아무나 저처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장내의 상황이 진정되자 에이프 보스는 이 사태의 원인을 찾기 위함인지 부리부리한 눈을 횃불처럼 밝히며 주변을 살폈다.
놈의 정수리에 눈이 달리지 않은 이상 어스를 찾는 건 요원한 일이었다.
‘어쩔 수 없이 공격 스킬을 써야겠군.’
콜 라이트닝이 에이프 보스를 직격했다.
번쩍, 번쩍, 번쩍!
세 방까지 갈 필요가 없었다.
두 방이면 충분했다.
보너스 업적 포인트 2와 6,000코인을 습득했다.
보스가 쓰러지자 일루젼을 깨는 놈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빡시네.’
일루젼에 한번 걸렸던 놈들은 일루젼이 잘 먹히지 않았다.
곤란하게.
시쿠가 그립다.
녀석이 있었다면 깔끔하게 매장해버렸을 텐데.
* * *
“이 날씨에 갑자기 웬 번개?”
“비가 오려는 건가?”
망루에서 주변을 경계하던 자경대 소속 두 남자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별들로 촘촘했다.
번개가 칠 날씨가 아닌 것이다.
“이게 무슨 조화야?”
“낸들 알겠어. 그나저나 걱정이네.”
“뭐가?”
“가뭄 때문에 숲도 바싹 마른 상태일 거 아냐?”
“산불이 걱정이야?”
“어.”
“저기서 여기까지 거리가 있는데 불이 나더라도 마을까지 오겠어. 더욱이 중간에 강도 있는데.”
“그게 강이냐? 고랑이지.”
최근 가뭄으로 인해 마을 인근 강이 말라버린 상태였다.
농부들은 한 해 농사를 걱정했고, 상인들은 돈 냄새를 맡고 식량을 사들이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이로 인해 물가는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었다.
어디 이뿐이랴.
던전 브레이크로 인한 피해도 눈덩이 불어나듯 불어나고 있었다.
뭐 하나 좋은 소식이 없는 요즘이다.
그렇다 보니 사소한 일에도 주먹다짐으로 번지는 일이 많아졌다.
이 마을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때문에 낮 근무를 선호하던 자경대의 분위기는 반전되어 지금은 다들 밤 근무를 선호하게 되었다.
“대장님께 알려야 하는 거 아냐?”
“마른하늘에 번개 친다고?”
“네 말대로 불나면 큰일이잖아?”
“알려 봐야 달라질 게 뭐 있냐? 식수도 겨우 구하는 처지에 불을 끌 물은 어디서 구할 거야? 요즘 대장 심기도 안 좋으니까 모른 척하는 게 좋아.”
두 초병은 이내 시선을 거두었다.
마을을 덮쳤을 재앙이 한 사람에 의해 종식되고 있음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채.
* * *
4띠 던전 브레이크를 막아 낸 어스는 다른 던전을 찾아 어둠을 가르며 이동했다.
그렇게 1시간을 단거리 공간 이동으로 이동하던 그의 눈에 검은 소용돌이 하나가 들어왔다.
밤엔 그림자를 찾을 수 없다.
그처럼 던전 역시 까맣기에 밤엔 쉽게 찾을 수 없어야 한다.
하지만 던전은 특유의 이질적인 기운을 풍기고 있었기에 오싹한 느낌으로 위치를 판단할 수 있었다.
특히, 던전을 자주 접한 경우 적중률은 99퍼센트 수준이다.
냉큼 지상으로 공간 이동한 어스는 던전 앞에 섰다.
‘제길, 2띠네.’
보너스 업적 포인트는 기대할 수 없는 던전에 어스는 실망했다.
그렇다고 그냥 돌아서기엔 시간이 없었다.
2시간 이내에 동이 틀 것이기에.
‘여름이 얼른 가야 밤이 길어질 텐데.’
마음에 들지 않는 등급이었지만 시간도 없어 그냥 안으로 들어갔다.
* * *
2띠 던전을 클리어한 후 3띠 던전 하나도 발견했지만 이제는 돌아갈 시간이었다.
통이 틀 무렵 집으로 돌아온 어스는 여느 날처럼 잠자리에 들었다.
하지만 그의 수면은 오래갈 수 없었다.
푸리엘이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푸리엘이라 그녀의 방문은 그만큼 중대한 사안이란 뜻이었다.
“무슨 일이야?”
“영지 내에 던전이 출현했습니다.”
“띠는?”
“5띠 던전입니다.”
어스 입장에서 5띠면 딱히 어려울 게 없는 수준의 던전이다.
그러니 이는 오히려 희소식이다.
하지만 이어진 푸리엘의 말에 실망했다.
“위치는 애덤 마을 밖 농지예요.”
“던전은 누가 발견했지?”
“농민이 발견하고 곧장 신고했어요.”
“신고자 말고 다른 사람들도 알아?”
“마을 주민 태반이요.”
당분간 병자 행세를 해야 하는 입장이라 나서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다.
이러한 사정은 푸리엘도 잘 알고 있었다.
“중앙군과 교단에 도움을 요청할까요?”
“국내에 던전이 여기 하나도 아니고 그들의 도움을 받으려면 최소 두 달은 걸릴 거야.”
“그럼 제가 원정대를 이끌고 안으로 들어갈까요?”
“일반이나 정예쯤 되는 놈들은 네가 상대할 수 있어도. 보스는 힘들 거야. 널 얕잡아 보고 하는 말은 아냐.”
“알엘, 에리엘, 초이와 제가 힘을 합치면요?”
푸리엘이 언급한 그 셋은 모두 익스퍼트다.
알엘은 푸리엘과 동급인 상급 익스퍼트다.
나머지 둘은 초급이다.
초급이긴 해도 만만히 볼 실력은 아니다.
거기다 넷 모두 정령사다.
그러니 5띠 던전 보스라도 상대해볼 만한 전력이다.
“네 사람의 힘에 정령의 힘까지 더한다면 가능성이 없진 않아. 하지만 보스만 달랑 있는 경우는 흔치 않아.”
“그럼 병사들을 대동하면 되지 않을까요?”
어쩌다 보니 어스의 병사들은 모두 이종족 노예로 구성되어 있었다.
때문에 인간 병사들보다 개개인의 무력이 높은 편이다.
“보스를 만나기도 전에 대부분의 병사들이 죽을 수 있어. 막상 보스 앞에 가선 다 죽고 너희 넷만 남을지도 몰라.”
“끔찍하군요. 그럼 지켜만 봐야 하는 건가요?”
푸리엘의 말에 어스는 인상을 찌푸렸다.
던전은 언제 터질지 예측할 수 없는 화산 같은 것이기에 그러니 발견 즉시 정리하는 게 낫다.
민심을 위해서도.
‘교단 녀석들은 왜 이렇게 질척거리는 건지.’
이래서 사람이 너무 잘 나도 피곤한 법이다.
“당장은…….”
-아이템과 펫의 동기화가 끝났습니다.
-펫을 소환할 수 있습니다.
“어스 님? 어스 님?”
“어? 아. 미안.”
“갑자기 말씀이 없으셔서 놀랐어요. 무슨 일인가요?”
“별거 아니야. 그보다 원정 말인데.”
“그건 지켜보기로 하셨잖아요?”
“방금까지 그랬는데…… 음, 아니다. 이 이야기는 내일 다시 하도록 해.”
푸리엘을 내보낸 어스는 서둘러 시쿠를 즉시 소환했다.
* * *
해가 저물자마자 어스는 마치 쫓기는 사람처럼 급히 저택 지하실로 내려갔다.
“어스 님, 오늘은 일찍 오셨네요.”
연합에서 파견한 텔레포트 마법진 관리자 피구엘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를 맞이했다.
“돌아볼 곳이 있어서요. 바로 이용할 수 있죠?”
“물론이죠. 진 중앙에 서 계십시오. 진을 발동하겠습니다.”
어스는 익숙한 걸음으로 진 중앙에 섰다.
피구엘이 진을 가동하자 바닥에서 입자가 솟구치며 그의 몸을 휘감으며 그를 페다손으로 이동시켰다.
도착지 마법진 관리자와 짧게 인사를 나눈 어스는 상회를 나섰다.
오늘의 그는 목적지가 분명한 사람처럼 한눈팔지 않고 블링크를 연속으로 사용했다.
‘블링크! 블링크!’
거침없이 블링크를 사용하여 그가 도착한 곳은 어제 시간이 없어 들어가지 못했던 3띠 던전이었다.
그에게 3띠면 식후 간식거리에 불과한 수준이다.
그럼에도 그 앞에 서 있는 어스의 표정은 상기되어 있었다.
‘시쿠 소환.’
허공에서 시쿠가 툭 튀어나왔다.
아이템을 습득한 시쿠의 외양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대신 녀석은 새로운 스킬 하나를 얻었다.
녀석의 말에 따르면 땅 흔들기라는 스킬이라고 했다.
영지에선 이를 시험할 수 없었기에 이때만을 기다리느라 조바심마저 느꼈다.
“시쿠, 땅 흔들기 시전해 봐.”
아이템을 습득하기 전 시쿠의 능력은 총 3가지였다.
촉수 공격, 굴착, 골렘 생성이다.
촉수와 굴착 스킬의 경우 사실 크게 기대하지 않았었다.
녀석의 덩치가 고작 성인 팔뚝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그런 선입견은 금방 깨졌다.
촉수와 굴착 스킬 모두 살벌한 스킬이었다.
반면 기대를 가졌던 골렘은 어스의 한숨을 유발했다.
소환된 골렘은 소환자인 시쿠처럼 촉수를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굴착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가진 재주라곤 달랑 몸뚱이가 전부였다.
덩치라도 크면 써먹을 때라도 있을 테지만 딱 시쿠만 했다.
그래서 시쿠의 골렘 소환 능력은 곱게 접어 머릿속 창고 구석에 처박은 지 이미 오래였다.
과연 이번 4번째 능력은 어떨지. 아이템에서 얻은 건데 괜찮지 않을까?
“시쿠가 땅을 흔든다! 주인님 기뻐하면 좋겠다.”
땅 흔들기의 범위는 시쿠를 중심으로 반경 50미터에 불과했다.
몸의 균형을 제대로 잡을 수 없는 정도의 흔들림이다.
땅이 흔들릴 것을 감안한다면 중심도 어렵지 않게 잡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땅 흔들기라고 해서 지진 같은 건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구나.’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를 내색할 수 없었다.
칭찬을 바라 마지않는 녀석의 작고 까만 순수한 눈을 보았기 때문이다.
‘괜찮아, 괜찮아. 굴착과 촉수도 이미 사기적인 능력이잖아.’
대충 칭찬의 말을 해준 어스는 녀석을 던전 안으로 들여보냈다.
여기까지 급히 달려온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시쿠 혼자 던전에 들어가서 활동할 수 있는지의 여부다.
‘소환 해제는 되지 않는군. 그렇다면 활동이 가능한 거네. 사냥은 어……?’
-웨어 울프를 처치했습니다. 15코인을 습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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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 이것도 되네.’
이러면 자신이 나서지 않더라도 5띠 던전도 해봄직하다.
푸리엘, 알엘, 에리엘, 초이의 실력도 만만치 않으니까.
‘만약 시쿠가 소환 해제당한다면 그땐 내가 나서야겠지.’
그것만은 피하고 싶지만 매사 상황이 자신의 뜻대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다 보니 최악의 상황까지 고려했다.
곧 어스도 시쿠의 뒤를 따라 던전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