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화
오랜만에 맛보는 6띠 던전의 공기다.
드넓게 펼쳐진 초원 위를 거침없이 질주하며 괴성을 내지르는 몬스터, 몬스터.
두두두두두.
이 화창한 날씨에 왜들 저리 여유가 없는 것인지.
“시쿠.”
“응, 주인님.”
“쟤들 어떻게 생각해?”
“주인님께 소리치는 놈들이다. 시쿠가 파묻어 버린다.”
“그래, 파묻어 봐.”
“시쿠, 금방 돌아온다. 주인님.”
“가봐.”
시쿠는 지상에서도 제법 빠른 편이지만 지하에선 그보다 더 빨리 움직일 수 있었다.
땅굴을 파고 이동함에도 그러하다.
그러나 녀석이 가진 신비는 이것이 끝이 아니다.
땅을 파면 나와야 하는 흙은 마치 인벤토리에 물건을 수납하듯 사라진다.
대체 그 흙들이 어디로 가는지 궁금하여 물어봤지만 녀석도 그건 알지 못했다.
의식하여 호흡하지 않듯 녀석에게 그건 그런 것이었다.
마른 흙에 물이 스며들 듯 그렇게 지하로 내려간 뒤 시쿠는 자신의 장기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어스를 향해 달려오던 선두의 켄타우로스 무리가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 뒤의 녀석들도 곧 어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당혹한 놈들의 목소리가 푹 꺼진 땅 아래서 들린다.
구덩이에 빠진 놈들이 탈출하려 하였지만 독특한 신체구조상 자력으로 구덩이를 빠져나올 수 없었다.
더구나 구덩이는 실시간으로 깊이를 더하고 있었다.
고통, 두려움, 당혹감이 물든 비명이 용암이 분출하듯 구덩이에서 올라왔다.
그것도 잠시 그 소리는 점점 멀어지더니 어느덧 완전히 사라졌다.
탁탁.
“주인님, 시쿠가 놈들을 모두 파묻고 돌아왔다.”
시쿠는 작은 눈을 반짝이며 자신의 머리를 쑥 내밀었다.
어스는 녀석이 원하는 바를 들어주었다.
쓱쓱.
어스가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시쿠는 세상을 다 가진 아이처럼 기뻐했다.
참으로 소박한 녀석이다.
“간만에 6띠 던전인데 보스만 달랑 잡으면 낭비겠지?”
깜빡깜빡.
시쿠의 작은 눈이 점멸한다.
얼굴에 비해 눈이 워낙 작아서 가능한 재주였다.
어스는 시쿠를 한 팔로 안았다.
그러곤 블링크를 시전했다.
그런 와중에 어스의 머리 한구석에선 의문이 들었다.
블링크는 시전자 본인만 이동시키는 스킬이다.
그 외 생명체는 크기가 아무리 작아도 이동되지 않는다.
반면 시쿠는 이에 해당되지 않았다.
녀석도 분명 살아 있는 녀석인데.
* * *
시야가 탁 트인 지형이라 상공에서도 몬스터를 식별하는 건 무척 손쉬웠다.
어스는 몬스터가 눈에 띌 때마다 상공에서 파이어 버스터를 퍼부었다.
스킬 위력을 높여주는 지력 스탯 87과 3번의 강화를 거친 파이어 버스터의 위력은 일반적인 파이어 버스터와는 비교가 모독이 된다.
그러한 것들이 쉴 새 없이 하늘에서 내리꽂히고 있었다.
파이어 버스터가 폭발할 때마다 켄타우로스의 질기고 단단한 근육질 몸뚱이는 종잇장처럼 찢겨나갔다.
단순 폭발력에 의해서.
그렇게 죽은 놈은 운이 좋은 놈들이었다.
고통 하나는 짧으니까.
온몸에 불이 붙은 켄타우로스의 비명이 땅과 하늘을 꽉 채웠다.
지글지글.
고기 굽는 냄새가 온 하늘을 뒤덮었다.
‘그러고 보니 말고기는 지금껏 한 번도 먹어 본 적이 없네. 파리스 왕국 동부가 말고기로 유명하다던데 기회가 되면 가서 먹어봐야겠군.’
-켄타우로스를 처치했습니다. 65코인을 습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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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타우로스 전사를 처치했습니다. 180코인을 습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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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타우로스를 처치했습니다. 65코인을 습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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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먼지 날아가듯 사라지고 있는 켄타우로스는 결코 약한 몬스터가 아니다.
빠른 기동력과 괴력에 더해 이족 보행 몬스터들처럼 무기까지 다룰 수 있기에 놈들에 대해 아는 자들은 켄타우로스를 일컬어 초원의 재앙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그러한 놈들이 한 인간에 의해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었으니 놈들에게 붙은 그 이명이 무색할 지경이다.
폭음이 사라졌다.
비명도 사라졌다.
들풀로 무성한 대지는 시뻘건 화마에 뒤덮여 있었다.
거대한 불길이 전장의 흔적을 지워나갔다.
콜록, 콜록.
‘으, 맵다.’
연기를 뒤집어쓴 어스는 냉큼 고도를 높였다.
유유히 흘러가는 뭉게구름 가까이 접근하자 그제야 매운 연기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시쿠도 주인님처럼 마구마구 날아다니며 큰 불덩이를 쏘고 싶다.”
“불덩이는 모르겠는데 비행은 아냐. 지금 추락 중이잖아. 그것도 무시무시한 속도로 말이야.”
추락하는 느낌은 원 없이 겪어 이골이 났지만, 제대로 나는 건 아직 경험하지 못하였기에 그건 어스에게도 비행은 미지의 세계였다.
하늘을 훨훨 날아다니면 어떤 기분일까?
“스킬 슬롯만 많으면 비행 관련 스킬을 배울 텐데. 스킬 슬롯이 원수다, 원수야.”
“주인님, 하늘을 날고 싶어?”
“당연하지.”
“시쿠가 주인님 하늘 날게 해준다.”
“네가?”
“주인님이 원하면 시쿠는 뭐든 할 수 있다. 주인님의 기쁨은 시쿠의 기쁨이다.”
기특한 녀석.
어스는 녀석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자신을 향한 녀석의 열정적인 충성심이야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니까.
“야야, 갑자기 왜 그래?”
어스의 품에 안긴 시쿠가 갑자기 그의 등 뒤로 돌아갔다.
겁도 없이.
“떨어져, 떨어진다고!”
물론 녀석은 죽지 않는다.
펫이니까.
설사 추락하더라도 땅에 닿기 전에 소환 해제하면 다칠 리가 없다.
그럼에도 놀란 건 녀석의 돌발행동 때문이었다.
어스의 등 뒤로 돌아간 시쿠의 등딱지에서 촉수가 튀어나왔다.
촉수의 일부가 어스의 상체를 감쌌다.
남은 촉수는 부챗살처럼 퍼지더니 그 끝이 점점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추락하는 속도가 현저히 감소했다.
시쿠는 더 많은 공기를 빨아들였다.
맹렬한 기세로.
길쭉한 시쿠의 촉수는 완전히 그 형태를 잃고 풍선처럼 변해 버렸다.
그러면서 어스의 몸은 더 이상 아래로 떨어지지 않았다.
떨어지긴커녕 오히려 위로 떠올랐다.
“뭐, 뭐야?”
깜짝 놀란 어스는 고개를 뒤로 돌렸다.
드디어 볼 수 있었다.
시쿠의 촉수다발이 풍선처럼 부풀어 있는 걸.
“시쿠, 주인님을 날개 해, 해줬다.”
시쿠의 얼굴은 볼 수 없었지만 녀석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잔뜩 부풀어 오른 촉수가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았다.
아니, 실제 터졌다.
펑펑펑펑펑-.
어스의 몸은 폭발의 여파로 인해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속도로 아래로 추락했다.
“으아아아아아-! 브, 블링크!”
* * *
추락은 이미 이골이 났지만 시쿠의 촉수가 터지면서 발생한 추진력(?)에 의해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던 무시무시한 속도로 추락했다.
순간 의식을 잃었다.
고도가 높아 다행이었지 만약 지면과 가까웠다면 곧장 땅에 처박히고 말았을 것이다.
급한 불을 겨우 끈 어스는 벌렁거리는 심장을 누르며 연방 심호흡을 했고, 그런 그의 앞에는 제 잘못을 아는지 시쿠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눈보다 큰 눈물이라니.
자신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 인식하고 있는 듯하였기에 더 이상 나무랄 수 없었다.
“할 말 있으면 해봐.”
“시쿠가 크게 잘못했다. 주인님을 놀라게 한 시쿠는 벌을 받아 마땅하다.”
녀석은 양팔을 들어 벌을 서고 있었다.
두 손은 얼굴 근처에서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팔이 워낙 짧은 탓에 머리 위로 올라가질 않는다.
저러니 야단칠 마음도 사라진다.
더욱이 녀석의 행동은 자신에게 기쁨을 주려고 한 행동이었기에 정상참작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손 내려.”
어스의 눈치를 보며 조금 더 버티던 시쿠는 천천히 팔을 내렸다.
“주인님, 미안하다.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하겠다. 죽을죄를 지었다.”
“알면 됐어. 다음엔 그러지 마라. 내가 얼마나 놀란 줄 알아?”
“주인님, 너그럽다. 시쿠는 감동했다. 주인님께 더더욱 충성하는 시쿠가 되겠다.”
“그보다 촉수는 괜찮아?”
시쿠는 대답 대신 촉수를 내보였다.
‘그새 재생된 건가?’
하긴 녀석의 모태가 되는 사막 촉수 두더지의 촉수 역시 훼손되더라도 금방 복원되긴 했었다.
하물며 시쿠라면 촉수 전부가 훼손되더라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충성도 좋지만 과한 충성은 오히려 주인에게 독이 돼. 이번처럼 말이야.”
“시쿠는 입이 있어도 말할 자격이 없다.”
“알았으니 됐어.”
시쿠는 침울한 기색으로 어스의 눈치만 살폈다.
의기소침한 녀석을 보자 기운을 북돋워줄 요량으로 사냥을 맡겼다.
“죄를 지은 시쿠는 주인님을 위해 더더욱 열심히 싸운다.”
시쿠는 자신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켄타우로스 무리를 매장시켰다.
* * *
-켄타우로스 보스 쟈인을 처치했습니다.
-1만 코인을 습득합니다.
-보너스 업적 포인트 4를 습득합니다.
-아이템을 발견했습니다.
-아이템을 습득하시겠습니까?
던전 등급이 높을수록 아이템 발생확률도 올라간다.
‘이번엔 먹을 수 있는 아이템일까?’
일단 습득을 외쳤다.
-해당 아이템과 상성이 맞지 않습니다.
철옹성은 배제.
다음 차례는 시쿠다.
자신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더욱더 열심히 살아 준 시쿠였다.
저것이 선물이 되면 좋을 텐데.
-펫에게 아이템을 적용하시겠습니까?
“적용.”
-펫에게 아이템이 적용됩니다.
-72시간이 필요합니다.
-펫을 소환 해제시키십시오.
“시쿠 나중에 보자.”
아이템이 자신에게 적용된 사실을 알고 있는 시쿠는 기대에 찬 목소리로 대답한 뒤 돌아갔다.
곧 던전은 닫혔다.
동쪽 하늘이 밝아지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6띠 던전이라 일반까지 싹 다 잡다 보니 제법 시간이 걸린 듯했다.
저 등급 던전 2, 3개보다 수익은 6띠 던전이 더 낫다.
코인 면에서.
‘경험치도 그만큼 쌓였겠지.’
보스를 처치하고 받은 보너스 업적 포인트, 이번엔 아끼지 않고 지력 스탯에 모조리 분배했다.
스탯 : 지력(91).
‘9포인트만 있으면 지력도 100이네.’
어스는 상회를 향해 블링크를 연거푸 시전했다.
해가 완전히 떠오르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려면 부지런히 서둘러야 했다.
* * *
로엘의 부탁으로 6띠 던전 원정을 무사히 끝낸 어스는 침대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뒤 저택 지하로 내려갔다.
여기에 설치된 텔레포트 마법진을 이용하여 어제처럼 국왕 직할시 페다손으로 이동했다.
오늘은 로엘이 없었다.
마법진을 관리하는 마법사와 간단하게 인사를 나눈 어스는 곧장 페다손 시 상공으로 이동했다.
인적이 없는 곳까지 이동한 어스는 그때부터 이동거리를 대폭 줄였다.
‘던전이 보여야 할 텐데.’
던전을 발견하는 건 생각보다 까다로운 작업이다.
사람들이 발길이 닿지 않는 곳들 모두 산속이나 숲인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도보로 던전을 찾으러 다녔다간 한 달에 두세 개 발견하기도 힘들었을 거야.’
블링크를 구입한 건 확실히 잘한 결정이 아닐 수 없었다.
푸드드드드득.
지상을 살피며 이동하던 그의 전면에서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새들이 일제히 날아올랐다.
그뿐만이 아니다.
숲 전체가 지진을 만난 듯 흔들리더니 동물들이 쏟아지듯 뛰쳐나왔다.
불이라도 났나 싶어 봤지만 화광은 보이지 않았다.
그럼, 무엇이 저 많은 새들과 동물들을 놀라게 했을까?
주변을 살피기 용이한 커다란 바위로 이동한 어스는 얼마 후 그 원인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몬스터에 의해 일어난 일이었다.
한두 마리가 아니다.
대충 봐도 몇 백 마리는 되어 보인다.
종류도 다양했다.
고블린, 오크, 브로, 놀처럼 흔해 빠진 몬스터에서부터 웨어 울프나 애스코모이드 같은 흔히 볼 수 없는 개체도 간혹 섞여 있었다.
‘저것들이 서로 싸우지 않고 함께 움직인다고?’
일반적이지 않은 현상이다.
숲에서 나올 놈은 다 나왔다 싶었지만 그게 아니었다.
앞서 나온 몬스터보다 더 많은 수의 몬스터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이번엔 같은 종류의 몬스터였다.
‘에이프?’
숲의 면적이 작진 않지만 그렇다고 저만한 숫자의 에이프가 정착해서 살 수 있을 만큼 넓지도 않았다.
그러니 자연 던전 브레이크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던전에서 쏟아진 몬스터에 의해 쫓기고 있는 현세의 몬스터, 그 뒤를 쫓아가는 던전 몬스터의 맹렬한 추격전을 보자 마음이 편치 않았다.
‘외면하면 마을이 웨이브에 휩쓸릴 텐데.’
이곳에서 2시간 남짓한 거리에 작지 않은 규모의 마을이 자리하고 있었다.
마을의 규모는 작지 않지만 마을의 힘으로 이 사태를 막는 건 기대할 수 없었다.
인구라고 해봐야 고작 2, 3천인 마을이다.
저놈들이 마을에 당도하면 그 마을은 지도상에서 영원히 자취를 감출 것이다.
‘이를 외면하면 인간성도 내려놓는 것이겠지.’
어스는 이를 두고 보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던전에서처럼 무작정 스킬을 남발할 입장이 아니었다.
이곳은 현세다.
여기서 흔적을 남겼다간 교단의 귀에 들어갈 확률이 매우 높다.
생각만 해도 으스스해진다.
그러니 자신을 의심할 만한 흔적을 남겨선 안 된다.
마침 그에 합당한 스킬이 그에겐 있었다.
씩.
‘일루젼! 일루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