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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로 성장하는 마법사-163화 (163/250)

163화

교황 아딜레스가 성전을 선포했다.

대륙 전역이 발칵 뒤집어질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이에 겁먹는 자들은 없었다.

오히려 이를 환영했다.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교단이 몸을 일으킨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반겼다.

모든 왕국들이 박수갈채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한 열렬한 환영은 한 명의 성기사가 사직서를 제출한 일이 알려지면서 뜨거웠던 분위기에 찬물로 작용했다.

이는 당연한 반응이었다.

정예 기사단 네다섯을 묶어 원정에 내보내는 것보다, 소드 마스터와 대 마법사를 한 팀으로 엮은 원정대보다 그 하나가 더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던전 원정에 있어.

그런데 그러한 자가 빠져버렸다.

“성기사 어스 경이 사직한 이유는 알아보았느냐? 대외적인 이유 말고.”

솔론 왕국 왕궁에서 지금 교단의 성전 선포에 찬물을 끼얹은 어스의 사퇴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코넬리 솔론 국왕과 그의 첫째 아들이자 왕세자로 차기 국왕으로 내정된 칼렉 솔론이었다.

“에스터 추기경의 입김이 작용한 것이 아닐까 사료됩니다.”

“그녀가 왜?”

“교황 주재 회의에서 교황은 클락 추기경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에스터 추기경 입장에선 믿었던 도끼에 발등이 찍힌 상황입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교황과 에스터 추기경의 관계를 생각하면 에스터 추기경 입장에선 배신감을 느꼈을 겁니다.”

교단의 분위기를 살피는 일은 비란 솔론 왕국뿐만이 아니다.

모든 나라에서 그러했다.

교단이 가진 거대한 힘은 모든 왕들이 힘을 모아도 동수조차 장담할 수 없었으니까.

그러하다 보니 각 왕국의 최우선 첩보 대상은 교단이 될 수밖에 없었다.

“클락이라…… 의외군. 교황이 그의 손을 들어주다니. 그럼, 어스 경의 사퇴는 에스터 추기경의 입김이 작용한 것이라 봐야겠구나.”

코넬리 국왕은 연로하였지만 그 나이가 무색하게 지혜롭고 강건한 왕이었다.

그리고 그런 성향을 가장 많이 물려받은 인물이 그의 장자이자, 왕세자인 칼렉이었다.

“정보를 좀 더 취합해 봐야 알겠지만 제 생각도 아바마마와 같습니다.”

“이번 일로 교황이 꽤 당황했겠군. 성전의 선봉에 서야 할 핵심 인물이 돌연 사퇴해 버렸으니 말이야.”

“성전을 선포한 지금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교단의 위신은 훼손당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사퇴한 어스 경을 복직시키는 것 역시 교단의 체면과 자존심에 직결된 문제라 손을 내밀기도 껄끄러울 겁니다.”

“일이 이리되었으니 교단에선 우회적인 방식을 선택하겠군. 성전까지 선포한 마당에 성과가 지지부진할 경우, 우리에게 압력을 넣겠군.”

“대외적으로 어스 경은 솔론의 귀족이니까요.”

“허허, 그래서 에스터 추기경이 자신의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그러한 요청을 한 것이로군. 어스 경을 향한 일체의 압박을 사전에 원천 봉쇄하기 위한 것이었어. 허허. 늙은 여우가 더 무섭다더니.”

“그 건은 현재 공표되지 않았습니다. 소자의 생각으론 테리우스 영지에 관한 내용을 신속히 공표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겠지. 우리가 교단을 민망하게 할 순 없으니. 칼렉.”

“예, 아바마마.”

“그 건을 즉시 공표하거라. 테리우스 영지가 자유 영지임을.”

자유 영지란 외부적인 구속이나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영지를 의미한다.

한마디로 솔론 안에 또 다른 나라가 자리하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과거의 유물인 공국이 현재의 자유 영지와 비슷할 것이다.

사실 국왕 입장에선 자유 영지를 인정하는 건 내키지 않는 일이다.

왕의 명령을 듣지 않아도 되는 영지가 탄생한 것이니까.

그럼에도 코넬리 국왕이 에스터 추기경의 요청을 들어준 건 그녀가 소유한 마나 광산의 지분이 이를 상쇄할 정도로 컸기 때문이었다.

요즘 같은 시대는 더더욱.

그리고 방랑벽이 도져 말도 없이 훌쩍 떠나버린 영특한 막내아들의 당부 역시 에스터 추기경의 요청을 받아들이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아바마마, 어스 백작과는 절대 척을 지지 마십시오. 그와 척을 지는 건 국가를 상대로 전면전을 벌이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러니 왕실과 왕국의 운명을 걸어야 할 중차대한 사안이 아니라면 되도록 그와는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셔야 합니다.

왕세자를 내보낸 코넬리 국왕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8월의 강렬한 햇살 아래 사람이건 잡초건 맥을 추지 못했다.

‘던전도 던전이지만 가뭄도 문제구나.’

* * *

12개의 마을을 다스리는 영주가 되었다.

마을이라곤 하지만 그 규모는 어스가 나고 자란 갈색 자작나무와는 규모와 인구는 비교할 수 없이 컸다.

그중 가장 큰 마을의 인구는 3만 명에 달했으며, 가장 작은 마을의 인구는 8천 명 남짓 된다.

당연히 이들에게 자신들의 영주가 바뀌었음을 알려야 한다.

그러나 대외적으로 병자 행세를 하고 있는 어스 입장이라 전면에 나서는 건 부담스러웠다.

아무튼 이 일로 어스는 교단에 제대로 찍히고 말았다.

하나 어스의 효용성이 상당하였기에 사직서가 수리되었음에도 교단에선 은밀히 접근했다.

사직처리를 없던 것으로 해줄 테니 다시 돌아와 달라는 말이었다.

다른 곳도 아닌 무려 교단에서 개인에게 매달린 것이다.

공식적인 루트가 아닌 비공식적인 루트라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사직 이유처럼 몸이 많이 아프다는 이유로 그들을 돌려보냈다.

교황과 교단의 은혜를 생각하면 침대에서 당장 일어나자마자 죽더라도 따라야 함에도 그러지 못한다며 혼신의 힘을 다해 연기했다.

그 연기가 통했는지 이후 찾아오는 교단 측 인사는 없었다.

대신 감시가 대폭 늘어났다.

‘이러니 ‘내가 나 영주다!’라고 떳떳이 돌아다니며 백성들을 만날 수 있겠냐고!’

그래서 그의 영지민들은 자신들에게 새로운 영주가 생겼음을 알고도 정작 그가 누구인지는 소문으로만 들었다.

다 죽어가는 병약한 성기사 출신 영주라는 말만.

그렇다 보니 영지민들은 이를 몹시 우려했다.

자신들의 생사여탈권을 쥔 자가 영주인데 그러한 자가 강건하지 못하였으니까.

거기다 던전 브레이크의 영향으로 곳곳에서 흉흉한 소문이 파다했기에 더더욱 불안했다.

그나마 그건 다른 지역, 아니 다른 왕국의 이야기였다.

요양을 핑계로 내려온 뒤 하루도 쉬지 않고 왕국 내 오지를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던전 사냥을 한 덕분이었다.

그러나 이 사실은 푸리엘을 제외하고 아무도 알지 못하였기에 솔론 왕국의 백성들은 그저 자신들의 왕국이 룬의 축복을 받았다고 생각했다.

푸리엘에게도 던전에 간다는 건 최근 알렸다.

똑똑.

“어스 님, 푸리엘입니다.”

“들어와.”

푸리엘과의 첫 만남은 유쾌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만남이 무색하게 그의 최측근으로서 활동하고 있었다.

참고로 그녀는 어스가 세운 영주 대리인이다.

“감시자들은?”

“교단에서 보낸 사자들이 돌아간 이후 감시가 더 촘촘해진 상태입니다.”

“성전까지 발동된 마당에 인력이 남아도네, 남아돌아. 기존 감시자들은?”

“그들의 모습은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교단의 눈치를 보고 빠졌다고 봐야겠지?”

“그렇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교단에서 보낸 감시자들은 신분을 감추지 않고 노골적으로 이를 드러내고 있으니까요.”

‘영주인데, 내가 영주인데 방구석에서 나가지도 못하는 신세라니.’

이러면 영주가 된 의미가 있나 싶다.

아니, 사실 이건 그에게 중요하지 않다.

영주 노릇이 하고 싶은 게 아니라 자신이 영주가 된 것이 그에겐 더 중요했으니까.

그에게 더 중요한 건 원정에 차질이 빚어진 것이다.

자신의 블링크가 어떤 위력을 갖고 있는지 그들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 감시도 넓고 촘촘하게 짰을 가능성이 높았다.

농장 외곽뿐만이 아니라 더 넓은 지역까지.

그러니 괘씸죄에 걸리지 않으려면 무조건 몸을 사려야 한다.

에스터 추기경 역시 이를 신신당부했다.

“이종족 노…… 흠, 그들은 언제쯤 도착할 것 같아?”

“열흘 정도? 아마 그쯤이지 싶어요. 그자의 말이 사실이면.”

영지의 안전을 위해, 그리고 자신과 가족들의 안전을 위해서 어스는 대량의 이종족 노예를 구입하기로 마음먹었다.

어스는 그 일을 레이몬드 주교에게 부탁했다.

공짜로 구해주지 않을까 은근히 바라며.

그의 바람은 이루어졌다.

에스터 추기경을 위해 과감히 사직서를 던진 그의 모습에 완전히 매료된 덕분이었다.

“이런 일로 뻥 칠 사람은 아니니까 믿어도 좋아. 하아. 난 인간인데 인간보단 이종족을 더 믿게 될 날이 올 줄이야.”

푸념을 늘어놓는 어스의 모습에 푸리엘은 고개를 살짝 돌렸다.

미소를 감추기 위해.

‘어스 님 덕분에 종족을 손쉽게 구출할 수 있어 다행이야.’

자신들이 나섰다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재물은 원래 문제가 아니었다. 구입 과정의 까다로움 때문이었다.

당장은 그들 모두 아도니스로 빼돌릴 수 없지만, 적어도 여기에선 그들도 마음 편히 지낼 수 있으니 그 문제는 차차 해결하면 될 일이었다.

“참, 로엘 씨는?”

“조만간 올 거예요.”

“이 신세는 잊지 않을게.”

앞서 어스는 로엘에게 텔레포트 마법진을 부탁했고, 로엘은 그 뜻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참, 텔레포트 마법진은 어디 설치할 생각이죠? 숲에 하실 건가요?”

“아니, 이 집 지하실에 설치할 거야.”

“여기 지하실은 와인 창고잖아요.”

“그 지하창고 아래 그보다 더 큰 지하실이 있으니까. 자리 문제는 신경 쓰지 않아도 돼.”

푸리엘은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이 농장에 대해 누구보다 빠삭하게 알고 있는 이가 바로 그녀였기 때문이다.

일종의 직업병이랄까? 처음 이곳에 오기 전 사전조사로 건물 구조를 낱낱이 파악해 놓았었는데…….

‘언제 나도 모르게 그런 곳을 만든 거지?’

푸리엘로선 당연히 모를 수밖에. 거대 지하실을 만든 건 어스의 펫 시쿠였으니까.

* * *

드디어 어스는 전용 텔레포트 마법진을 소유하게 되었다.

왕이나 대영주가 아니고선 불가능한 일이었다.

마법진의 관리자 운영과 관리는 이종족 마법사가 맡기로 했다.

그의 대외적인 신분은 이종족 노예였다.

이 농장에서 이종족 노예는 특별할 것도 없다 보니 자연스럽게 생활할 수 있었다.

“피구엘이라고 합니다.”

“당신은?”

“오랜만입니다.”

“그래도 안면이 있는 분이라 다행이네요. 앞으로 잘 부탁해요.”

“마법진 관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불편한 점이 있으면 여기 있는 푸리엘에게 곧장 말하세요.”

“감사합니다. 백작님.”

“그럼 지금 가동됩니까?”

“언제든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아쉽지만 교단처럼 대륙 각지에 텔레포트 마법진을 설치할 수 없었다.

설치 자금도 만만치 않게 들지만 그보단 텔레포트 마법진 자체가 예민하다 보니 24시간 관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저 텔레포트 마법진과 연결된 텔레포트 마법진은 어스의 영지에서 100킬로미터가량 떨어진 이종족 노예 해방 연합이 사용 중인 여러 비밀 거점 중 하나와 연결되어 있었다.

“푸리엘.”

“예.”

“내일 새벽에 올 테니까, 나 없는 동안 알지?”

“걱정하지 마세요.”

사직서를 제출한 뒤 가족들에게조차 어스는 환자 행세를 하고 있었다.

때문에 자신의 방에서 나가는 것도 자제했다.

그러다 보니 어스의 몸은 잔뜩 달아오른 상태였다.

던전 중독이 의심된다.

“부탁할게.”

바닥에서 신비로운 입자가 일어나 그의 몸을 휘감았다.

어스가 다시 눈을 떴을 때 시야에 들어온 건 로엘이었다.

“절 기다리셨어요?”

“작동이 잘 됐는지 확인하기 위해섭니다. 매번 기다릴 순 없을 겁니다.”

“로엘 씨도 일을 보셔야죠. 참, 여긴 어디죠?”

“국왕 직할시인 페다손이란 도십니다.”

“페다손이면?”

“왕국 서북쪽에 위치한 중소도십니다.”

로엘은 건물 비밀 통로를 이용하여 어스를 자신의 사무실로 데려갔다.

이동하면서 페다손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더불어 이곳이 상회라는 것도.

로엘의 사무실은 건물 3층에 위치해 있었다.

번화가에서 조금 떨어진 곳임에도 꽤 많은 수의 마차와 행인들이 거리를 오가고 있었다.

“실제 상행도 해요?”

“하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참, 수송선엔 문제없어요? 이틀 전에 지인들에게 마법 통신을 보냈는데 연락이 안 되던데.”

“먼 바다로 나가면 연락할 수 없습니다.”

“흠, 그렇군요.”

“식사 전일 텐데 간단히 식사라도 하시겠습니까?”

“아뇨, 던전부터 갈게요.”

“남들은 꺼림칙해서 얼씬도 하지 않는데 특이하시군요. 어스 님.”

“예.”

“어차피 던전에 들어가실 거면 페다손 인근의 던전에 들어가시면 안 되겠습니까?”

“로엘 씨도 아시다시피 사람들의 눈을 피해야 하는 입장이라 알려진 던전은 곤란하네요. 모처럼 부탁인데 거절해서 미안해요.”

“그런 것이라면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곳에 던전이 있는 건 저희만 알고 있으니까요.”

그런 것이라면 문제 될 건 없었다.

오히려 던전을 찾아 이동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으니 이쪽이 환영할 일이다.

“몇 띠죠?”

“6띱니다.”

듣던 중 반가운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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