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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로 성장하는 마법사-162화 (162/250)

162화

아도니스로 떠나는 지인들을 배웅한 어스는 농장으로 복귀했다.

그렇게 이틀이 흐른 어느 날 농장으로 손님이 찾아왔다.

“레이몬드 주교님이 어쩐 일이십니까?”

어스는 환하게 웃으며 레이몬드를 맞이했다.

그에 반해 레이몬드 주교의 표정은 어두웠다.

저와 같은 표정의 레이몬드는 처음이었기에 어스는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몸은 어때?”

“많이 나아졌습니다. 그런데 표정이 왜 그래요? 추기경님께 야단이라도 맞으셨어요?”

“우리 추기경님이 어디 그럴 분인가.”

“하긴. 일단 앉으세요. 참, 식사는 하셨어요?”

“그보다 심각한 문제가 터졌네. 조만간 공식 발표가 나올 테지만 자네는 미리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 겸사겸사 내려왔네.”

“공식 발표요? 설마, 던전 처리부를 해산하기라도 한데요?”

“그보다 더 큰일일세. 조만간 성전이 선포될 걸세.”

“전쟁이요?”

“맞아.”

뤼빅스 대륙에서 힘으로 교단을 이길 수 있는 왕국은 없다.

모든 왕국이 힘을 하나로 모은다면 모를까 그건 소설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가끔 소설보다 더한 현실도 일어나기에 이를 배제할 수 없었다.

“상대는 누구죠?”

“던전일세.”

“예? 던전을 상대로 성전을 선포했다고요? 그게 말이…….”

말이 되냐고 말하려다 그만두었다.

요양을 핑계로 농장으로 내려왔지만 귀까지 닫고 사는 건 아니다.

현재 대륙 각지에서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나고 있었다.

사람들의 눈이 닿는 지역이 아닌 오지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로 인해 기존의 몬스터들이 던전에서 쏟아진 몬스터로 인해 대거 외부로 밀려나면서 몬스터 웨이브가 예년과 달리 폭증했다.

참고로 솔론 왕국은 다른 왕국들과 달리 조용한 편이었다.

그 이유는 그가 사람들의 발길이, 눈이 미치지 않는 오지의 던전을 사냥하고 다녔기 때문이다.

덕분에 솔론 왕국 백성들에게 있어 몬스터 웨이브 폭증은 자신과 상관없는 남의 이야기였다.

“……되겠네요.”

“그렇지.”

“그런데 그게 문제가 되나요?”

“문제지, 아주 큰 문제야.”

“자세히 말해 주세요.”

레이몬드 주교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푹푹 내쉰 뒤 설명하기 시작했다.

“추기경님들의 권한이 대폭 축소…… 아니, 사실상 권한 정지될 거라네. 우리 추기경님도 마찬가지지.”

“그럼 추기경님이 가진 권한은 누가 가져가죠? 교황님?”

자신에게 보물창고를 개방해 준 아딜레스 교황은 어스에겐 은인이나 다름없었다.

교황의 과감한 결단 덕분에 포션의 과도한 복용으로 인한 후유증을 더는 걱정하지 않을 수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포션을 마실 시간을 아낄 수 있어 보다 빠르고 여유롭게 상대를 격살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외에도 막강한 권한까지 부여받았다.

정작 써 본 적은 없지만.

“그래, 교황님이지.”

“그건 평시에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같지만 달라. 아무튼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 우리 추기경님이 실권을 내려놓으셔야 한다는 거야. 그리되면 던전 처리부의 사정도 지금과 완전히 달라질 거야. 던전 처리부의 지휘권 역시 이참에 내려놓으셔야 해.”

“깐깐한 상관이 올 수도 있단 말이네요. 그런데 그거…… 확정이에요?”

“돌아가는 분위기가 거의 그래.”

“추기경님의 상심이 크시겠네요.”

“하늘을 훨훨 날아다니던 독수리가 날개를 잃어버린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참, 전에 자네가 말했던 선물을 추기경님이 마련해서 보네셨네. 이거 받게.”

레이몬드 주교가 건넨 건 두툼한 서류였다.

“이게 뭐죠?”

“자네가 전에 내게 말했잖아. 자신만의 독자적인 영역을 갖고 싶다고.”

‘내가? 듣고 보니 그 비슷한 말을 한 것 같기도 하네.’

정확하게 생각나진 않지만 일단 자신의 말을 잊지 않았다는 건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이 상황에서 자신을 배려했으니 더 감사한 노릇이다.

“그럼 이게?”

“맞아. 이제 자넨 영주가 됐네. 이 농장을 포함하여 인근 12개 마을을 다스리는 영주가 된 걸세. 테리우스 백작 영지의 영주가. 축하하네.”

* * *

레이몬드 주교를 잘 대접한 뒤 위로의 말과 함께 그를 돌려보낸 어스는 목에 힘을 잔뜩 주며 가족들을 불렀다.

그 자리에서 어스는 이 농장을 중심으로 인근 12개 마을이 자신의 영지가 되었음을 알렸다.

“여, 영주가 된다고?”

“예, 아버지.”

행크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꿈인가 싶어 제 살까지 꼬집었다.

그제야 꿈이 아닌 걸 알 수 있었다.

현실을 자각하자 행크는 울컥하여 이 감정을 추스르기 위해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스의 어머니 엘이나와 여동생 루시도 행크 못지않게 놀랐다.

엘이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아, 아들.”

“응.”

“고생 많았어. 정말, 고생 많았다. 우리 아들.”

어스의 등을 두들겨 주던 엘이나는 이내 그를 안았다.

어깨가 뜨거워졌다.

뭔가 싶어 쳐다본 어스는 그것이 어머니의 눈물임을 볼 수 있었다.

순간 감정이 울컥했다.

어스도 어머니를 힘껏 안아 주었다.

포옹을 풀자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루시가 잽싸게 끼어들었다.

“오빠, 영주면 기사단도 만들고 군대도 만들어야 하지 않아? 관료들도 뽑아야 하고 말이야.”

기존의 영지를 물려받은 것이 아니다 보니 하나부터 열까지 맨손으로 시작해야 한다.

‘음…… 돈으로 처바르면 되겠지. 세상에 돈으로 안 되는 게 어디 있다고.’

하지만 돈도 잘 써야 제 가치를 한다.

‘솔론에 한스 씨 같은 사람 없나?’

이참에 왕도에 올라가 봐야 할 것 같았다.

에스터 추기경도 위로하고 잔뜩 위축된 레이몬드 주교의 마음도 달랠 겸.

“오빠!”

“깜짝이야! 소리는 왜 질러.”

“내가 몇 번 불렀잖아. 아무튼 그건 됐고.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

“네가 영주냐? 내가 영주지. 넌 신경 꺼.”

“제길.”

“어디서 욕질이야? 영지에서 영주는 곧 법이다. 앞으로 날 대함에 있어 이 점 조심해.”

행크와 엘이나 역시 어스의 편에 서서 한마디씩 하자, 루시의 입이 새부리처럼 튀어나왔다.

“루시 너 이 오빠 말씀 잘 들으면 내가 기사 시켜주마.”

“나보고 오빠 부하를 하라는 거야?”

“싫어? 그럼 하지 마. 자리가 없지 사람이 없겠어.”

그 말에 루시는 몸을 움찔거렸다.

그래도 기사는 하고 싶은 모양이다.

“정말…… 기사 시켜 줄 거야?”

“시켜 준다니깐. 내가 누구냐? 마법사이자, 성기사이며, 영지를 가진 백, 백……!”

“왜? 방에 촛불 켜놓고 내려왔어? 갑자기 왜 그러는 거야?”

“아니, 그게 아니라. 오빠가 영주가 됐잖아.”

“그런데? 그게 뭐? 계속 그 이야기로 떠들어놓고.”

“나 단승 귀족이 아니라 세습 귀족이 된 거야. 내 자식에게 작위를 물려줄 수 있다고! 그게 무슨 의민지 모르겠어?”

어스의 말에 그의 가족들의 입이 떡 벌어져 닫힐 기미가 없었다.

세습 귀족!

이것의 의미가 그만큼 큰 까닭이었다.

평민이 단승 귀족이 되는 건 재능과 노력, 거기에 운이 살짝 보태지면 가능하다.

반면 세습 귀족은 아니다.

단승 귀족이 되기 위한 세 가지 요건 이외에도 무지막지한 뒷배가 있어야 한다.

왕과 귀족원을 움직일 수 있을 정도의 뒷배가.

‘에스터 추기경이 정말 작정하고 로비를 해줬구나. 그렇지 않고서야.’

이러면 에스터 추기경을 위해 뭐라도 해줘야 한다.

짐승 새끼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런데 과연 자신이 추기경을 도와줄 힘이 있느냐다.

* * *

성전 선포 하루 전, 어스는 솔론 왕도에 모습을 드러냈다.

텔레포트 마법진을 관리하는 마법사들의 인사를 뒤로한 어스는 곧장 사무실로 향했다.

할 일이 없어 시간만 죽치고 있던 레이몬드 주교는 어스의 등장에 깜짝 놀랐다.

헤어진 지 고작 하루 만에 그를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추기경님은 집무실에 계세요?”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오늘 온다는 이야기는 없었잖아?”

“아뇨, 그보다 추기경님은 집무실에 계세요?”

“계실 걸세. 그런데 왜?”

“그럼 나랑 같이 추기경님 뵈러 가요.”

“추기경님은 왜? 지금 그분 기분이 말이 아닐세. 보더라도 시간이 좀 흐른 후에 보는 게 좋을 거야.”

“일단 같이 가요.”

레이몬드 주교를 강제로 일으킨 어스는 그 등을 떠밀었다.

* * *

“어스 경이군. 몸은 괜찮은가?”

“아시면서.”

“꾀병?”

“아시네요.”

“이렇게 올라온 걸 보니 업무에 복귀하려나 보군.”

“아뇨.”

레이몬드 주교는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앉아 두 사람의 입이 열릴 때마다 고개를 움직였다.

에스터 추기경은 어스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라고? 그럼 왜?”

“추기경님이 본래의 권한을 유지할 방법은 없나요? 만약, 그러한 방법이 있다면 제가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자, 자네…….”

에스터 추기경은 물론 영문도 모르고 어스의 손에 끌려온 레이몬드 주교까지 어스의 결심에 크게 놀랐다.

“없을까요?”

“어째서 이런 제안을 하는 건가? 내가 권한을 놓게 되더라도 자네에게 불이익이 갈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네. 나와 저 사람은 몰라도 적어도 자네는 해당되지 않을 걸세.”

성전 선포의 이유는 던전 때문이다.

그러니 던전 파괴자라 불리는 그를 홀대할 사람은 애초에 없었다.

“저에게 추기경님과 주교님은 식굽니다. 어려울 때 식구끼리 돕고 사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어스의 말에 감동한 레이몬드는 눈물까지 글썽였다.

에스터 추기경 역시 감동하긴 마찬가지다.

휘하 세력의 이탈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면서 그녀는 실망을 거듭했다.

자신의 사람이라고 믿었던 이들이 클락 추기경 편으로 돌아서 버렸기 때문이었다.

말은 그럴듯하게 포장하였지만 포장지에 속아 그 말을 믿을 만큼 에스터는 어리숙한 사람도 아니고, 순수한 사람도 아니었다.

그래서 그녀는 심한 모멸감을 맛보았다.

그런데 어스가 제 발로 찾아와서 도와주겠다고 말하고 있었으니 에스터 추기경 입장에선 만감이 교차할 수밖에 없었다.

“자네가 날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줄은 몰랐군.”

“저, 저도요. 어스 경, 자넨 생긴 것도 감동이지만 의리는 더 감동일세. 역시, 내 의동생. 하하, 추기경님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우리 어스 경은 진정한 사나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사이 자신을 두고 두 사람 사이에 모종의 말이 오갔다는 걸 이 대목에서 알 수 있었다.

마음을 추스른 에스터 추기경이 입을 열었다.

“괜찮겠나?”

“방법이 있으시군요? 그렇죠?”

“있긴 한데…… 음.”

“말씀하세요.”

“자네의 사직이네.”

어스가 반응하기 전 레이몬드 주교가 먼저 반응하였다.

“추, 추기경님 사직이라니요. 성기사를 자의로 그만둔다면 두 번 다시 성기사로 복귀할 수 없지 않습니까?”

이런 규칙이 있는 건 이번에 처음 알았지만 딱히 거부감은 들지 않았다.

성기사로서 누린 특권이 아쉽긴 하지만 성전단과 엮이는 것보단 나았다.

더구나 추기경이 언급했으니 그 말에 따라 준다면 개인적인 마음의 빚도 청산할 수 있다.

아니, 거기서 끝이 아니다.

추기경에게 마음의 큰 빚을 지울 수 있으니 득보다 실이 많지 싶었다.

‘문제는 보물 창고에서 얻은 보물을 반납하라는 건데.’

레이몬드 주교의 말에 연방 신음을 흘리는 에스터 추기경을 향해 어스가 입을 열었다.

“사직서 제출하겠습니다. 그런데 교황께서 준 보물을 다시 달라고 하면 저 그거 못 줍니다. 그게 소모품이라 이미 써버리고 없거든요.”

“그런 걱정이라면 하지 않아도 되네.”

“그렇다면 추기경님을 위해 사직서 제출하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그래도 괜찮겠나? 사직하게 되면 레이몬드 주교의 말처럼 성기사로는 다시 복직할 수 없다네.”

배고픈 자에게 한 덩이 빵도 인생의 전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부유한 자에게 그 빵은 있어도 없어도 그만이다.

어스가 자잘한 것에도 욕심내는 유형의 인간이면 모를까 그런 단계는 이미 벗어난 지 오래다.

“그건 제가 감수하겠습니다. 그럼 사직서 하나면 추기경님께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입니까?”

“도움이 되네. 하지만 이후 자네의 행보도 중요하다네.”

“이후라면 어떤 걸 말씀하는 건지?”

“던전일세. 지금처럼 요양을 핑계로 하지 않는다면 내게 충분히 도움이 될 걸세.”

다른 건 몰라도 던전 원정에 있어 자신은 탑이다.

그 누구도 자신을 따라올 수 없다.

에스터 추기경이 이를 언급하는 이유를 알만했다.

성기사를 관두면 교단은 더 이상 자신에게 지시를 내릴 수 없다.

솔론 왕실을 압박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아프다고 빼면 그만이다.

‘던전 원정이야 지금처럼 은밀히 하면 되는 거고, 문제는 앞으로 더 멀리까지 가야 하는…… 어라, 그건 아니네. 연합의 텔레포트 마법진을 이용하면 대륙 어디든 갈 수 있잖아.’

칭송은 받을 만큼 받았고, 명성 역시 지금까지 쌓아 올린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돈? 눈 앞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누군가.

억 단위의 돈도 애들 용돈쯤으로 여기는 어마어마한 재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런 자들이 자신의 궁핍(?)함을 외면할까? 절대 아니라고 본다.

어스는 활짝 웃었다.

속으로.

“추기경님의 말씀이 있으실 때까지 전 쭉 환자일 겁니다.”

에스터 추기경은 물론 레이몬드 주교까지 크게 감동시켰다.

선물보따리를 기대해도 좋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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