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로 성장하는 마법사-161화 (161/250)

161화

교황 아딜레스의 명령으로 추기경들이 교황청에 집결했다.

영광의 자리라는 이름을 가진 대회의실이었다.

교황을 기다리는 추기경들 사이에선 파벌이 다른 자들을 향한 견제의 기류가 흘렀다.

말씨는 부드럽고 입은 웃고 있으나 눈빛은 그와는 정반대였다.

이러한 분위기를 깨고 크고 우렁찬 목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졌다.

“아딜레스 성하께서 입장하십니다!”

그와 동시에 커다란 문이 양쪽으로 열리며 아딜레스 교황이 입장했다.

교황의 뒤에는 교단 제일검이라 불리는 근위대 단장 베로니카가 엄숙한 표정으로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저벅저벅.

자리에 착석한 교황이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추기경들을 긴급하게 소집한 이유는 던전 브레이크 사태를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던전은 등급을 떠나 룬께서 사랑하는 인류 전체에 큰 위험요소입니다. 그래서 나는 결정했습니다. 던전을 상대로 성전을 선포하려 합니다.”

“서, 성하.”

“말하세요. 에스터 추기경.”

“던전 원정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낮은 등급의 던전이면 몰라도 중위 등급 이상의 던전은 기사단 전체의 힘을 투사해야 합니다. 더욱이 던전은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러한 던전을 상대로 성전을 선포하는 건 교단의 힘을 크게 약화시키는 악수가 될 것입니다. 성전 선포를 재고해 주십시오.”

사실 교단에 적이 없는 건 아니다.

암중에서 활동하는 이단이 있고, 교단의 권위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왕들과 고위 귀족들이 있으며, 쓴 패배를 맛보고 쫓겨난 이종족 무리가 대양 너머에 버티고 있으니까.

그렇다고 에스터 추기경이 꼭 이 때문에 재고를 건의하는 건 아니었다.

성전이 정식으로 발동되면 기존 체계는 무너지고 새로운 체계로 재편된다.

그 말인즉, 추기경의 권한이 대폭 축소될 소지가 다분하다.

에스터 추기경 입장에서 이는 몰락이나 다름없었다.

자신이 애써 키운 병력, 재산, 영향력 모두 내려놓아야 하니까.

그래서 열변을 토했다.

그런데 회의장의 분위기가 영 이상했다.

‘저치들도 이를 모르지 않을 텐데 지나치게 얌전해. 뭐지? 교황과 밀약이라도 맺은 것인가?’

생각이 여기까지 미친 에스터 추기경은 속으로 화들짝 놀라며 자신의 정적들의 표정을 보다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중 자신의 최대 정적인 클락 추기경을.

클락 추기경은 에스터 추기경의 눈을 피하지 않고 마주 보며 한쪽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이에 에스터 추기경은 확신할 수 있었다.

교황과 저들 사이에 모종의 밀약이 오갔음을.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내 교황께 실수한 적이 없거늘, 교황이 왜 내가 아니라 저 쥐새끼의 손을 잡았단 말인가!’

에스터 추기경은 교황에게 배신감마저 느꼈다.

배신감이 그녀의 머릿속을 데웠다.

활활.

그러나 지금은 감정에 휘둘릴 때가 아니다.

성전 선포는 막아야 한다.

과연 무엇으로 막을 수 있을까? 에스터 추기경은 자신이 가진 패들을 머릿속에서 나열했다.

곧 그녀는 낙심했다.

교황의 의지를 꺾을 정도의 패가 없어서였다.

추기경들이 한목소리로 반대한다면 교황의 뜻을 물릴 수 있을 테지만, 자신의 파벌을 제외한 추기경 전체가 찬성하였기에 그마저도 어려웠다.

그렇다고 여기서 물러설 순 없었다.

“던전 브레이크가 없었다면 나 또한 성전 선포까지 고려하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던전 브레이크로 인한 피해와 그 규모는 계산조차 할 수 없습니다. 룬께서 아끼시는 인류의 터전과 삶이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최악의 상황에 이르기 전인 지금 교단이 나서야 할 때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물 잔에 물이 담겨 있는 지금 말입니다. 에스터 추기경.”

자신을 콕 집은 교황의 말에 에스터 추기경은 더는 반대할 수 없었다.

그 말을 하는 순간 교황과는 돌이킬 수 없는 사이가 될 것이 뻔하였다.

“서, 성하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그래서 숙였다.

거부할 명분도 없었기에.

‘빌어먹을.’

성전 선포는 교황이 하였지만 에스터 추기경의 미움을 산 건 그에 찬성한 추기경들이었다.

특히, 클락 추기경이 그녀에게 미운 털이 단단히 박혔다.

그러나 그녀는 알지 못했다.

이 판(?)의 진정한 흑막은 클락 추기경이 아닌 최근 그가 영입한 모든 수도자의 아버지로 불리던 헤롯 추기경이란 것과 교단 제일검인 베로니카의 진정한 상관이란 걸.

* * *

똑똑. 똑똑똑. 똑똑똑똑.

“크흑, 누구야?”

“흠흠. 접니다.”

“으으으. 들어와.”

방주인의 허락이 떨어지자 문고리가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신비한 은발의 미녀가 방 안으로 들어섰다.

방에는 두꺼운 커튼이 쳐져 있어 사물의 윤곽만 보일 정도로 어두웠다.

하지만 화살 모양의 불꽃이 등장하자 어둠은 힘을 잃었다.

은발의 미녀는 푸리엘이었다.

아무런 전조도 없이 불쑥 나타난 파이어 애로우의 주인은 졸린 눈을 하고서 침대에 앉아 있는 어스였다.

“커튼을 열어도 될까요?”

“열지 마. 그보다 무슨 일이야? 내가 한참 잠자고 있을 시간인 걸 알고 왔을 테니 긴급한 용건이겠지?”

수면을 방해 받았으니 짜증을 내도 충분한 명분이다.

“내일이 바로 그날입니다.”

“뭐?”

“수송선이요.”

“날짜가 벌써 그렇게 됐어? 밤낮이 바뀌다 보니 날짜 개념도 흐릿해졌네. 알려줘서 고마워. 참 이동은 어떻게 해?”

“숲속에 텔레포트 마법진을 만들어 두었습니다. 원하시면 지금 당장 움직일 수 있습니다. 지금 움직이시겠습니까?”

“아냐, 오늘 밤에 갈게. 그런데 텔레포트 마법진이 그렇게 뚝딱 만들어지는 거였어?”

“당연히 그럴 리가 없죠.”

“하긴. 편의를 봐줘서 고마워. 참, 열매는 어떻게 됐어?”

세상에 공짜는 없다, 공짜처럼 보일 뿐이다.

그리고 공짜처럼 보이는 게 진짜 무서운 법이다.

그럼에도 어스가 저들의 손을 잡을 수밖에 없는 건 이 땅이 자신에게 제공할 수 없는 걸 저들이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땅을.

내일 배를 타고 아도니스로 지인들이 출발할 테니 두 대륙을 오가는 시간을 포함하면 짧으면 반년, 길게 잡아 1년 이면 아도니스의 사정을 자세히 알 수 있으리라.

‘아도니스가 든든한 보험이면 좋겠는데.’

“알아볼까요?”

“됐어, 어차피 밤에 갈 건데.”

“그보다 앞으로 쭉 이렇게 생활하실 건가요?”

“에스터 추기경에게서 연락이 오면 그때 결정해야지.”

“어스 님은 에스터 추기경을 믿나요?”

“나도 날 못 믿는데, 그런 내가 누굴 믿어.”

“피곤하게 사시네요. 그런데 밤마다 나가시는 이유가 뭔가요? 딱히 활동적인 성격도 아니잖아요.”

푸리엘 말처럼 어스는 몸 쓰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그가 하루도 빼놓지 않고 밤마다 나가고 있었으니 푸리엘 입장에선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사생활이니까 참견하지 마. 그보다 농장을 감시하는 자들의 정체는 알아냈어?”

“한두 조직이 아니에요.”

“그들이 농장에 들어오진 않았지?”

농장에 온 이후 어스는 이종족 노예를 대거 구입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구입 경로는 이종족 노예 연합을 통해서다.

그들의 실력은 중개인 한스를 통해 구입했던 알엘, 에리엘, 초이보단 수준이 떨어졌지만 그들에 비해 약할 뿐 저택의 경비를 위해 구입한 이종족 노예들보단 한 수 위의 실력자들이었다.

참고로 그들의 지휘는 푸리엘이 맡고 있었다.

농장 경비 역시.

“그들도 이곳이 호굴인 걸 알고 있습니다. 저들의 임무가 암살로 변경되지 않는 이상 농장으로 들어오는 일은 없을 거예요.”

“암살이라니, 말이 씨가 돼. 아무튼 앞으로도 수고해 줘. 할 말 끝났으면 그만 나가 줄래. 졸려.”

“그럼 주무세요.”

푸리엘을 내보낸 어스는 파이어 애로우를 회수한 뒤 곧장 누웠다.

하지만 방금까지 쏟아지던 잠기운이 그새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잠이 오지 않았다.

눈을 감고 몇 번을 뒤척이다 잠이 오지 않자 어스는 신경질적으로 이불을 걷어차며 한동안 씨근덕거렸다.

푸리엘을 향한 불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확실한 용건을 갖고 방문했으니까.

어스는 자신이 기분을 달래기 위해 상태창을 열었다.

요즘 기분이 꿀꿀하면 상태창을 열곤 했다.

그러면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아졌다.

그 이유는 지난 20일간의 노력이 차곡차곡 쌓인 걸 한눈에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난 20일간 하루도 빼 먹지 않고 원정에 나선 어스의 레벨은 1이 올라 지금은 67이 되어 있었다.

이것만 보면 쓴웃음이 절로 나온다.

평균 2곳, 많을 때는 밤새 3곳의 던전을 돌았음에도 고작 레벨 하나가 올렸으니까.

그럼에도 그가 좌절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한 건 보너스 업적 포인트 때문이었다.

현재 어스의 업적 포인트는 레벨과 같은 수치인 67이었다.

상태창을 보가 확실히 짜증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내친김에 확 분배해 버려?’

67이 아니라 100포인트 채우고 싶었다.

그러려고 지금까지 분배하지 않았다.

던전 원정 중에 힘든 상황이 있었다면 진작 분배해 버렸을 테지만 아직 그런 일은 없었기에 모을 수 있었다.

‘지금껏 가장 높은 등급이 5띠였으니 그게 힘들면 나가 뒈져야지.’

교단에선 6띠 던전을 잘만 물어다 주던데.

어째 자신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는 건지.

‘밤눈이 어두워서 그런가?’

긁적긁적.

업적 포인트를 바라보던 어스는 이내 시선을 위로 올렸다.

스탯을 눈에 담았다.

잠시 고민하던 어스는 업적 포인트를 분배하기로 결정했다.

체력 스탯 35.

정신 스탯 5.

지력 스탯 27.

그 결과.

이름(성별) : 어스(남).

직업(레벨) : 마법사(67).

칭호 : 위그드라실의 계승자(34/100). 승리의 노래(12/12).

생명력 : 795/795.

마나 : 770/770.

인벤토리 : 1(+5).

스탯 : 힘(2.6). 체력(100). 민첩(2.6). 지력(87). 정신(100).

직업 스킬(9/9) : 매직 애로우(+5/12). 파이어 애로우(+3/12). 파이어 볼(+3/12). 파이어 버스트(+3/12). 아이스 스피어(+3/12). 일루젼(+3/12).

콜 라이트닝(+5/12). 블링크(+3/12). 체인 라이트닝(+4/12).

업적 포인트 : 0.

코인 : 852,004.

‘명색이 마법산데 마나보다 생명력이 더 높네.’

그래도 딱히 문제 될 건 없다.

철옹성도 있고, 마나 회복 포션이란 사기적인 수단이 있었으니까.

당장의 문제는.

여전히 달아난 잠이 찾아올 기미가 안 보인다는 것 정도.

* * *

농장 저택 뒤로 쭉 펼쳐진 숲속에 로엘이 어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농장 경비를 책임지고 있는 푸리엘은 농장에 남겨두고 어스는 로엘과 함께 비밀 거점으로 이동했다.

바다 냄새를 맡으며 마을로 걸음 했다.

전보다 더 많은 이종족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어서 와.”

“왔어.”

“요즘 팔자 늘어졌다며?”

카멜, 페어몬트, 프라이스가 환하게 웃으며 그를 반겼다.

이종족 틈에 섞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 사람은 제집에 있는 것처럼 긴장감이 없었다.

‘대단한 멘탈이네.’

더구나 내일이면 큰 바다를 지나 이종족의 대륙으로 가야 한다.

이건 배울 점이 아닐까 싶다.

어스는 그들의 장도를 빌어준 뒤 로엘과 함께 마을에서 가장 큰 오두막으로 들어갔다.

로엘이 불러서였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전에 말씀하신 물건을 드리겠습니다.”

로엘은 부족한 66개의 조각을 약속했다.

기뻤다.

하지만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때로부터 제법 시간이 흘렀으니 전부를 기대해도 되지 않을까 싶어 가슴이 콩닥거렸다.

공간 주머니에서 가죽 주머니가 나왔다.

“몇 개죠?”

“스물일곱 갭니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다.

하지만 지금껏 모은 조각의 숫자를 생각하면 이건 적은 수가 아니었다.

“그런데 열매를 모으는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전에도 말했지만 사생활입니다.”

가죽 주머니를 냉큼 챙긴 어스는 남은 물량은 언제 줄 것인지 물었다.

“시간이 필요합니다.”

또 그놈의 시간.

그래도 단시간에 이처럼 많은 조각을 가져다준 걸 생각하면 나머지도 조만간 주지 않을까 싶었다.

“부탁하죠.”

“참, 교단에서 비밀회의가 열렸다는 첩보를 입수했습니다. 혹시, 어떤 회의인지 알아봐 주실 수 있을까요?”

드디어 자신을 부려먹으려고 하나보다 그리 생각했다.

내키진 않았지만 거부할 순 없었다.

자신은 채무자고 저들은 채권자니까.

“그러죠. 대신 지인들의 안전을 부탁합니다.”

“그들의 신변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로엘의 약속을 뒤로한 어스는 지인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향했다.

웃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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