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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로 성장하는 마법사-160화 (160/250)

160화

보스는 맹독의 입김을 쏘아낼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제한된 공간이다 보니 이를 피하는 건 매우 어려웠다.

더구나 어둠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눈이 없다 보니 당연히 블링크는 사용할 수 없었다.

더해 맹독의 입김 역시 어둠에 스며들어 다가온다.

마법 손전등에 의지해서 놈을 살펴야하는 어스 입장에선 놈은 여간 까다로운 상대가 아니었다.

‘무형 방벽!’

그러나 굳이 피하지 않더라도 모든 공격을 막아내는 무형 방벽이 있었다.

마음먹은 대로 몸이 따라주지 않는 어스에게 있어 무형 방벽은 그래서 히든 카드라 불리어도 전혀 손색이 없었다.

맹독의 입김이 무형 방벽을 뒤덮었다.

맹독의 입김은 두 번 더 중첩됐다.

무형 방벽은 이를 잘 막아냈다.

걱정이 무색하게.

보스는 자신의 공격이 가로막히자 그 큰 몸을 움직였다.

성인 팔뚝만 한 독니가 무형 방벽을 물었다.

뱀의 치악력은 형편없다.

맹수에 비하면.

하나 놈은 일반적인 뱀이 아닌 무려 6띠 등급의 보스다.

그리고 몬스터다.

이 단어에 포함된 의미는 동식물에 대한 일반적인 상식을 적용해선 안 된다는 말과 상통한다.

던전 원정이 이번 한 번도 아니고, 몬스터 사냥 또한 이 한 번이 아닌, 그래서 몬스터 사냥에 있어서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내공을 갖고 있는 어스는 몬스터와 조우할 경우 경각심을 잃지 않았다.

특히 초면(?)인 경우.

무형 방벽은 이번 공격도 어렵지 않게 막아냈다.

하지만 무형 방벽을 뚫기 위해 애쓰는 새하얀 독니와 그 끝에 묻어나는 녹색의 액체에 소름이 오싹 돋았다.

놈의 남은 두 대가리도 무형 방벽을 물었다.

‘대가리가 많아 좋겠다.’

물기도 통하지 않자 삼두사는 성질이 돋았는지 이번엔 아름드리만한 굵기의 긴 몸통으로 무형 방벽을 휘감았다.

그그그그그.

무형 방벽에서 용골 휘는 듯한 아찔한 소리가 들렸다.

어스라고 마냥 당하고 있진 않았다.

“콜 라이트닝!”

단일 대상에게 주는 피해가 가장 큰 스킬이다.

하나 놈은 번개에 대한 저항력이 높은지 그리 큰 충격을 받지 않은 듯했다.

‘안 통하네.’

가끔 저런 놈들이 있다.

마법사 입장에선 여간 곤란한 일이 아니다.

‘번개가 아니면 불로 태워 주마. 파이어 버스터!’

거대한 불덩이는 어떠한 영향도 받지 않고 무형 방벽을 통과하여 어스와 시쿠를 내려다보는 세 개의 머리 중 하나에 명중했다.

콰앙-!

무형 방벽 밖에서 폭발하였기에 화염의 파도는 내부로 침입하지 않았다.

놈의 머리통이 크게 휘청거렸다.

달라붙은 불길에 고통스러워했다.

“시쿠, 주인님을 돕겠다.”

“됐어, 넌 대기하고 있다가 무형 방벽이 해제될 때까지 내가 저놈을 처치하지 못하면 그땐 비상탈출용 땅굴을 파. 이기는 건 나중에 할 수 있어도, 죽으면 그런 기회조차 없으니까.”

처음엔 시쿠의 도움을 받을까도 생각했지만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여 곁에 붙여두었다.

‘지속 시간 전에 잡을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시쿠와 대화하는 중에도 파이어 버스터는 쉴 새 없이 쏘아져 나가고 있었다.

무형 방벽을 바스러뜨리기 위해 휘감았던 놈의 몸뚱이도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삼두사는 자신이 가진 모든 공격을 퍼부어도 무형 방벽을 부수지 못하자 끝내 도주를 선택하였다.

이를 알아차린 어스는 시쿠에게 지시했다.

“시쿠 놈이 달아나지 못하도록 저 입구를 무너뜨려! 아이스 스피어, 아이스 스피어!”

자신에게도 할 일이 생긴 것에 시쿠는 기뻐하며 마른땅에 물이 스며들 듯 땅속으로 들어갔다.

시쿠가 명령을 수행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주었다.

얼음 속성에 대한 저항력이 약한 것인지 아님 소낙비 내리듯 쏟아진 파이어 버스터에 피해를 입어서인지 놈의 움직임이 원활하지 못했다.

그 사이 도착한 시쿠는 자신의 장기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거대한 땅울림과 함께 삼두사의 유일한 희망이던 통로가 무너졌다.

자욱한 흙먼지가 맹독과 불로 가득한 공동에 유입됐다.

마법 손전등이 유명무실해지는 순간이다.

이는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문제 될 건 없지.’

보진 못하지만 소리가 들린다.

파이어 버스터, 파이어 버스터.

놀라운 시전 속도, 마나의 부족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어스에게 있어 그 자신의 안전이 담보된 상태에서의 전투는 결과가 도출 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무형 방벽의 유지까지 20초를 남기고 삼두사는 죽음을 맞이했다.

-던전 보스 아울나락을 처치했습니다.

-보너스 업적 포인트 4를 습득합니다.

-1만 코인을 습득합니다.

-레벨업.

-업적 포인트 3을 습득합니다.

레벨업까진 생각하지 못했기에 희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다른 건 없나보네.’

취할 수 있는 아이템이나 혹은 아이템을 강화할 수 있는 아이템이 나오길 은근 기대했던 그는 이에 실망했다.

그래도 7개의 포인트를 벌어들인 건 만족할 만한 성과였다.

시쿠를 귀환시킨 후 어스 역시 자신의 세계로 귀환했다.

무거운 마음을 안고서.

* * *

순삭이라 표현을 써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속도로 트리온 왕국의 중부도시 하뮬의 6띠 던전이 소멸했다.

단 한 명의 인명 피해 역시 없었다.

던전 소멸과 동시에 모습을 드러낸 어스와 성기사들을 본 사람들은 크게 놀랐다.

그러나 그들보다 더 놀란 인물은 거스티였다.

“어스 경! 이게 어찌 된 영문입니까? 설마, 보스를 단신으로 처치한 겁니까?”

“갑작스러운 이상 현상에 휩쓸려서 떨어진 곳이 보스가 있던 곳이더군요. 던전은 확실히 요지경인 것 같아요. 이런 유의 던전은 저도 처음이라 당혹스럽네요.”

“까다롭군요. 던전이란 곳은.”

“그러니 조금도 방심할 수 없죠. 저도 무사하고 다른 분들도 무사하니 참 다행입니다.”

“도움을 드려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군요. 하지만 다음엔 도움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어스 경께 진심으로 경의를 표합니다.”

“다음이요?”

“예.”

“미안하지만 다음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레이몬드 주교님께 듣지 못하셨습니까? 추기경 회의에서 결정 난 사안인데.”

“전 이번 한 번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잘못 알고 있을 수도 있으니 일단 전 돌아가서 레이몬드 주교님과 대화를 나눠야 할 것 같습니다.”

어스는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며 거스티의 반응 하나하나를 유심히 살폈다.

지금까진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

“음, 저희가 못마땅하신가 보군요.”

“초면인데 그런 게 어디 있겠어요. 그냥 혼자가 편해서 그런 겁니다.”

“저도 어스 경도 지시를 받는 입장이니 상부의 뜻을 좇아야겠지요. 전 이왕이면 어스 경과 원정을 쭉 하고 싶군요.”

던전 원정이 성공했다는 소식을 들은 하뮬의 시장이 시 유지들과 함께 한달음에 달려왔다.

덕분에 껄끄러운 거스티에게서 벗어났다.

“명불허전입니다, 명불허전이에요. 어스 경 덕분에 우리 시의 근심이 싹 사라졌습니다. 이러지 마시고 관사로 가시지요. 제가 어스 경을 위해 축하 파티를 열겠습니다.”

그럴 기분이 아니었기에 어스는 시장의 기분을 상하지 않도록 적당한 핑계를 대고 신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거스티의 시선이 신경 쓰였지만 모른 척했다.

* * *

교단 내부에서 자신을 의심하는 정황을 찾을 수 없었다.

에스터 추기경을 면담한 결과 확신을 얻었다.

이에 어스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똑똑.

“들어와.”

“표정이 안 좋군요. 무슨 일이라도?”

“앉아.”

푸리엘이 자리에 앉자 용건을 밝혔다.

“몇 달 전, 솔론 왕국 국경도시 헥시움에서 발생한 대규모 습격사건 알고 있어? 로엘 씨가 위장신분으로 활동하던 서커스단에서 일어난 사건이야.”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때 이야기는 왜?”

“실은 오늘 공연장을 습격한 암살자들을 지휘하던 자를 만났어.”

“놈들이 어스 님을 노린 겁니까?”

“그건 아냐. 아니, 그전에 몸을 뺐거든 혹시나 싶어서. 그래서 말인데 너흰 그자가 어떤 자인지 알고 있어?”

“교단에 자생하는 비밀조직의 일원입니다. 그 조직의 이름은 성전단이죠. 성전단이 어스 님 가까이 있는 건 그리 좋은 소식이 아닙니다. 지금 그자는 어디 있습니까?”

“하뮬에서 헤어졌어. 문제는 그자와 다음에도 원정에 나서야 할지도 몰라. 에스터 추기경에게 내 뜻을 전달했지만 에스터 추기경도 난색을 짓더라고. 에스터 추기경의 그런 모습은 처음 봤어. 그런데 성전단이란 조직이 추기경 회의까지 움직일 정도로 힘을 가진 조직이야?”

“성전단의 역사는 교단의 역사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그런데 그런 조직이 암살은 왜 하는 거지 추기경 회의까지 영향을 미칠 정도면 말 한마디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을 텐데? 이단으로 지목 하면 그걸로 끝이잖아.”

“그거야 평범한 사람을 대상으로 할 때의 이야기죠. 재력과 힘을 가진 자들이 대상일 땐 정치적인 방식으로 해결되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사람이라고 다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네.”

“교단도 종국엔 인간이 모여 만들어진 조직이니까요. 성전단은 그 부작용이 낳은 결과물이라고 봐야 할 겁니다.”

“그들에 대해 생각보다 많이 아네.”

“그들과는 오랫동안 싸워 왔으니까요.”

“잠깐, 혹시 내가 죽인 그 자들도 성전단 소속이야?”

“예. 그래서 걱정했던 겁니다. 그 일이 성전단의 귀에 들어갔나 싶어서.”

“만약 그런 것이라면?”

“어스 님이 현재 가진 위상과 위치는 교단에서도 작지 않습니다. 더구나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에스터 추기경이 어스 님의 후견인을 자청하고 있는 이상 설사 그 문제가 교단의 귀에 들어가더라도 정치적인 방식으로 해결될 공산이 크죠.”

“역시, 내 목숨을 노리는 건가?”

“배제할 수 없습니다.”

“놈들…… 많이 과격하지?”

“헥시움에서 보시지 않으셨습니까? 공공장소에서도 서슴지 않고 칼부림하는 자들입니다.”

“그런 놈들이 어째서 추기경 회의까지 동원해서 던전에 따라온 걸까? 던전 밖에서도 암살은 충분히 실행할 수 있잖아.”

“저도 그 점이 의아하네요. 성전단의 성향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방식이라서.”

“우연일까?”

“배제할 수 없지만 그래도 성전단 인물이라면 가까이 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더구나 어스 님은 지켜야 할 비밀이 있으니까요.”

“알아, 안다고. 하지만 앞서도 말했지만 에스터 추기경도 마음 대로할 수 없어. 차라리 던전에서 내가 놈을 처리해 버릴까?”

“오히려 역효과만 불러일으킬 겁니다. 제가 그자를 제거하겠습니다.”

푸리엘이 자신을 위해 암살자를 마다하지 않자 어스는 기분이 묘해졌다.

‘굳이 왜 이렇게까지 내게 해주는 거지? 저 녀석도 그렇고 로엘도 그렇고.’

모를 일이다, 진정.

그래도 다행이다.

이종족 노예 해방 연합이 자신에게 우호적이라서.

“역으로 당하면 어쩌려고 그래. 됐어. 나서지 마.”

“어쩌시려고요?”

“당시엔 너무 놀라서 깊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날 암살하기 위해 접근한 건가 싶은 구석이 몇 있더라고.”

“그래서요?”

“에스터 추기경을 부추겨서 내게서 떨어뜨리게 해야지. 나나 네가 나서서 그자를 죽이는 건 오히려 일만 커질 것 같아.”

“에스터 추기경도 곤란하다고 하지 않았나요?”

“당장은 그렇겠지만 에스터 추기경이라면 분명 방법을 찾아낼 거야. 이번 일로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으니 그걸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수단을 강구할게 틀림없어. 내가 아는 추기경이라면 분명히 그럴 거야.”

“그럼 그전까진? 곁에 두실 생각인가요?”

“내가? 미쳤어? 그런 자에게 내 등을 맡기게.”

“그럼 어떻게?”

“파업하면 돼. 물론 대외적으론 몸이 안 좋아서 요양하는 걸로 해야겠지. 마침 쉬기 좋은 농장도 있으니 이참에 부모님께 구경도 시켜 드리고, 밖으로 나돌아 다니지 못해 안달인 녀석도 있으니 모두 데려가면 일석삼조지 않을까싶어.”

* * *

다음 날 어스가 병이 들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이에 깜짝 놀란 이들이 그의 저택을 방문했다.

방문자들의 면면은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고위 성직자 추기경부터 일국의 왕자까지 찾아왔으니까.

어스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솔론 왕궁에선 어의까지 파견했다.

꾀병이니 어의가 알 방법이 없다.

그렇다고 그에게 병이 없다고 하기엔 그가 꾀병을 부릴 이유도 없거니와 실제 몸을 검진해 본 결과 또래보다 쇠약하였기에 어의는 어스에게 요양을 권유했다.

‘스탯 낮은 게 이럴 땐 도움이 되네.’

몸이 쇠약한 것은 신성 치료로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라 어스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파업(?)을 성사시킬 수 있었다.

물론 그 이면엔 어스의 요양이 자신에게 도움이 될지 모른다고 판단한 에스터 추기경의 지원도 한몫했다.

그렇게 어스는 요양을 위해 자신의 농장으로 내려갔다.

가족과 함께.

‘요양은 개뿔, 쉴 시간이 어디 있어. 레벨업해야지.’

요양을 핑계로 농장에 내려온 어스는 밤마다 농장을 나섰다.

세상은 넓고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던전 또한 널리고 널렸기에 애로사항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홀가분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낮밤이 바뀐 생활을 하다 보니 세상엔 어스의 병세가 점점 더 심해진다는 말이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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