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로 성장하는 마법사-159화 (159/250)

159화

신전을 나선 일행은 시 중앙광장까지 도보로 이동했다.

신전에서 던전이 위치한 곳까진 기껏해야 10분 남짓 거리였다.

한마디로 신전 코앞에 있는 던전이다.

이는 교단 입장에선 못마땅한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신의 전당 앞에 부정한 것이 있었으니까.

그 때문에 리스트에도 없던 저 던전이 리스트 1순위를 차지했다.

“최대한 빨리 정리해서 여러분들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자신을 환영해 준 시민들을 향해 당당히 소리친 어스는 주저 없이 던전으로 들어갔다.

그 뒤를 성기사 거스티를 필두로 여든 명의 성기사들이 입장했다.

던전 입구는 측면에서 보면 매우 얇다.

그러나 저 얇은 소용돌이에 발을 내딛는 순간 천지가 달라진다.

‘헉!’

눈을 뜬 어스는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숨이 턱 막혔다.

더워서? 추워서? 아니다 그의 숨을 턱 막게 만든 건 던전 지형이 그가 제일 꺼려하는 지형이었기 때문이다.

동굴 지형이었다.

동굴 지형 특성상 어둡고 공간에 제한이 있다.

어스가 가진 스킬 중 사용 빈도가 가장 높으며, 유용하게 써 먹었던 블링크를 써먹을 수 없는 곳이 바로 이런 지형이었다.

이곳이 저 등급의 던전이면 모르겠지만 하필 6띠 등급이다.

현존하는 던전 중에서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그런 곳에서 블링크에 족쇄가 채워진 것이나 다름없었으니 목숨이 열 개라도 감당될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동굴이군요, 어스 경.”

우거지상을 하고 있는 그의 뒤로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그에 어스는 마법 손전등을 꺼내 이를 활성화하며 천천히 돌아섰다.

다른 이들도 각자의 공간 주머니에서 급히 이를 꺼내어 활성화시켰다.

마법 손전등의 개당 가격 200테스로 최대 5시간까지 유지된다.

칠흑 같은 어둠은 갈가리 찢겨 사이사이 파편으로 존재했다.

덩어리에서.

“그러게요. 동굴이네요.”

동굴의 규모는 제법 컸다.

당장 이곳만 해도 폭 40미터, 높이 70미터다.

하지만 블링크의 효과를 발휘하기엔 협소하다.

혹여라도 규모가 더 커지지 않고 줄어든다면 이번 원정에선 블링크는 배제해야 한다.

“정찰과 선봉은 저희가 맡도록 하겠습니다.”

눈빛이 눈에 익은 성기사 거스티의 말에 어스는 입을 굳게 다물며 고개만 끄덕였다.

“막스 경.”

“예, 거스티 경.”

“선봉을 맡으세요.”

“명을 받듭니다.”

“메이언 경.”

“예, 거스티 경.”

“정찰을 부탁합니다.”

거스티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성기사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나머진 나와 함께 어스 경을 호위하며 정찰대가 돌아올 때까지 대기한다.”

동굴이었기에 단 한 명만 말해도 울림이 크다.

하물며 수십 명이 복창하자 몹시 쩌렁쩌렁했다.

움직이지 않아도 몬스터가 알아서 몰려오지 않을까 싶다.

‘이 양반들이 미쳤나. 지금 어디서 소리 높이는 거야?’

어스는 성기사들에게 주의를 주려다 그만두었다.

성기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자신이 맡은 일을 찾아서 움직였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한 명은 곁에 남아 있었다.

성기사들의 수장인 거스티였다.

사람들이 움직이면서 생긴 음영이 거스티의 하관을 가렸다.

그 순간 어스의 머리에서 벼락이 쳤다.

‘그, 그때 그 암살자다!’

거스티의 하관을 덮은 음영은 몇몇 성기사들이 주변에 마법 횃불을 세우자 자취를 감추었다.

하지만 상대의 정체를 이미 알아버린 어스의 마음은 오히려 칠흑보다 더 어두운 그림자로 뒤덮여 있었다.

위그드라실 서커스단이 공연하던 공연장을 급습했던 암살자 무리를 지휘하던 바로 그 자였다.

위그드라실 서커스단의 정체를 알지 못했을 땐 의뢰를 받고 움직이는 암살단이라고 생각했다.

하나 지금은 아니다.

이종족 해방 연합을 제거하기 위한 교단의 검이다.

그것도 은밀히 움직이는 위험한 집단이다.

망할, 그런데 그런 놈들이 자신에게 붙었다.

도저히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없다.

꿀꺽.

‘그들과 연관 된 게 발각당한 건가?’

불안감에 심장은 발작하듯 세차게 뛰었다.

가슴이 뻐근할 지경이다.

‘아냐, 날 암살할 생각이었다면 굳이 이렇게…… 아닌가? 오히려 사고사로 위장할 수 있으니 안성맞춤인가?’

몬스터가 아니라 당장 주변에 있는 성기사들부터 걱정해야 할 판이다.

동굴만 아니면 단독으로 움직일 텐데 하필이면 동굴 지형이라 그 또한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없었다.

“몸이 불편하십니까? 어스 경?”

거스티가 갑자기 말을 거는 바람에 어스는 화들짝 놀랐다.

불길한 생각을 잔뜩 하고 있을 때 올게 뭐람.

“아뇨, 동굴 지형인 게 마음에 걸려서요.”

“어스 경의 특기가 블링크라고 알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여긴 블링크를 사용하는 데 제한이 크겠군요.”

거스티의 태도와 말투는 정중했지만 그의 정체를 알아버린 어스는 그 말이 비웃음으로 들렸다.

철옹성을 쥔 어스의 손에 힘이 더 부쩍 들어갔다.

“정찰대가 돌아올 동안 전 저쪽에서 잠시 명상 좀 하겠습니다.”

“그러세요.”

뒤돌아서서 걷는 어스는 뒤통수에 눈이 없는 걸 몹시 안타까워했다.

벽을 등지고 앉은 어스는 명상을 하는 척 연기하며 성기사들의 위치를 살폈다.

‘에스터 추기경이나 레이몬드 주교는 저들의 정체를 알고 있을까?’

그리 생각하기엔 던전으로 떠나기 전 보았던 레이몬드 주교의 표정은 태평했다.

여느 날과 같았다.

그런데 그게 연기였다면?

‘차라리 선제공격을 해 버릴까?’

무형 방벽을 펼치고 싸운다면 6분 안에 저들을 끝장내는 건 일도 아니다.

그럼에도 선뜻 행동하지 않는 건 저들의 저의를 확인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어스는 미 분배 포인트를 체력 스탯에 분배했다.

고작 4에 불과했지만 생명력 1의 여부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 이에 망설이지 않았다.

이러려고 남겨둔 건 아닌데.

‘저들과 함께 움직이는 건 뒤가 너무 신경 쓰여서 안 되겠어. 일단 저들을 떼 놓자.’

그렇게 결심했지만 앞서 함께 움직이기로 해놓고 갑자기 말을 바꾸려니 마땅한 이유가 생각나지 않았다.

바로 그때 시쿠가 생각났다.

녀석의 힘이라면 저들에게 들키지 않고 모습을 감출 수 있을 것이다.

어스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시쿠를 소환했다.

말이 많은 녀석이라 소환되자마자 떠들까 싶어 긴장했다.

다행히 제 주인이 어떤 상황인지 이미 알고 있는 듯 텔레파시로 말했다.

기특한 녀석.

‘시쿠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

‘시쿠는 주인님 말에 무조건 복종한다.’

‘지금부터 구덩이 만들어야 해. 어떤 식으로 하냐면…….’

시쿠가 자신의 명령을 이해하지 못할까 봐 어스는 거듭 설명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시쿠는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앞서 한 말을 그대로 외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생긴 거랑 다르게 엄청 똑똑하잖아!’

어스의 명령을 받은 시쿠는 유령이 벽을 통과하듯 지면 아래로 사라졌다.

시쿠가 땅속으로 모습을 감추고 얼마 안 있어 어스가 명상을 핑계로 앉아 있는 곳과 성기사들이 쉬고 있는 곳의 땅이 심한 흔들림과 함께 풀썩 주저앉았다.

“헉!”

“이, 이게 뭐야!”

난데없는 상황에 모두가 당황했다.

다들 제 앞가림 하기에도 정신이 없었다.

그사이 어스는 시쿠가 판 땅굴을 이용해 땅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 * *

한편 갑작스러운 대규모 땅 꺼짐 현상에 휩쓸린 성기사들은 겨우 구덩이에서 빠져나왔다.

어스의 펫인 시쿠가 자행한 일이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그들은 던전 몬스터의 소행이라고 생각했다.

“어스 경은?”

“보, 보이지 않습니다. 거스티 경.”

어스가 빠진 구덩이로 내려간 성기사의 대답에 거스티의 얼굴은 와락 구겨졌다.

“분명 그 구덩이에 빠졌다. 다시 한 번 찾아봐.”

“꼼꼼히 살폈지만 흔적도 없습니다.”

아래서 난감한 감정이 가득 실린 목소리가 올라왔다.

그러나 그보다 더 난감한 사람은 거스티였다.

“대…… 흠흠, 거스티 경 어찌하면 좋습니까?”

두 사람은 물론 다른 이들 역시 던전 몬스터의 소행으로 생각했다.

어스에게 시쿠와 같은 펫이 있다는 건 전혀 몰랐으니까.

“이 또한 룬의 뜻일 터. 지금은 원정에 힘을 기울인다.”

거스티는 당면한 문제에 집중하기로 했다.

일단은 살아서 나가야 하니까.

* * *

시쿠의 도움으로 어스는 무사히 무리와 멀어질 수 있었다.

앞서 정찰에 나선 성기사들과 전혀 다른 통로를 통해 이동했다.

그 통로는 기존에 없던 통로였다.

‘땅을 이런 식으로 팔수도 있나?’

시쿠가 땅굴을 파는 모습은 흡사 공간을 먹어치우는 것 같았다.

녀석의 입 크기와 덩치를 생각하면 지금껏 시쿠가 먹어치운 흙의 양이면 녀석의 작은 몸뚱이를 골백번 터트려도 남을 양이었다.

‘시스템과 연관되면 모든 게 사기가 되네.’

시쿠의 새로운 진가를 알게 된 어스는 녀석과의 만남을 주선한 시스템에 진정에서 우러나오는 감사를 표했다.

“주인님, 저 앞에 땅 아니다. 그냥 가? 아니면 여기서 방향을 틀어?”

“너 안 피곤해? 1시간 넘게 땅만 팠잖아?”

“피곤?”

“안 힘드냐는 말이다.”

“아! 그 말이구나. 걱정하지 마라. 시쿠는 조금도 힘들지 않다.”

진담인지 아님 그냥 해본 말인지는 몰라도 생긴 것 답지 않게 말은 기똥차게 예쁘게 한다.

이런 녀석을 못생겼다고 실망했던 예전의 자신이 심히 부끄러웠다.

저렇게 착하고, 능력 있는 녀석인데 그깟 외모가 뭐라고.

감동한 어스는 시쿠를 안아주었다.

“시쿠는 기운이 펄펄 난다. 주인님이 원할 때까지 얼마든지 땅 판다.”

“무리할 필요는 없어 이제 쉬엄쉬엄해도 돼.”

사실 녀석보다 어스가 더 힘들었다.

어스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아니, 앉으려는 순간 시쿠는 좁쌀만 한 두 눈을 반짝이며 도도도 달려와선 그가 앉기 쉽게 자리를 만들어주었다.

“짜식, 안 그래도 되는데.”

“주인님은 소중하다. 소중한 사람은 자리도 골라서 앉아야 한다. 시쿠는 이런 바닥에 주인님을 앉게 한 것이 슬프다.”

“자식, 여자들에게 인기 많겠다. 말이 청산유수네, 유수야. 하하.”

거스티로 인해 무거웠던 마음이 시쿠의 마음씀씀이에 한결 가벼워졌다.

이 말을 듣기 전까지.

“주인님, 시쿠는 암컷이다.”

끔뻑끔뻑.

생각지도 못했다.

저 녀석이 암컷일 줄이야.

생김새만 보면 영락없는 수컷인데, 아니 수컷이어야 하는데.

그래도 크면 조금은 예뻐지지 않을까?

“시쿠.”

“응, 주인님.”

“언젠가는 괜찮아질 거야. 힘내. 넌 아직 애기잖아. 하하.”

그의 말에 시쿠는 동그란 머리를 연방 갸웃거린다.

눈이 사라지고 나타나는 신기한 재주를 한참 선보이더니.

“주인님, 시쿠는 성체다. 다 자란 암컷이다. 어째서 애기라고 하는 건가? 시쿠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아무래도 시쿠와 주인님 사이에 진지한 대화가 필요해 보인다.”

녀석이 암컷임에 한 번 놀라고, 이번에 또다시 놀라고 말았다.

‘놀리는 건가? 에이, 설마. 그럼…… 자신에 대해 착각하고 있는 건가?’

알에서 깬지 얼마 안 된 녀석이 어찌 성체일 수 있단 말인가? 이는 상식적으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녀석의 탄생 배경에 시스템이 있는 걸 감안하면 오히려 상식이란 잣대가 무의미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그렇지 알에서 나온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성체라니.

“그런데 우리 시쿠는 그런 거 누가 가르쳐 줬어?”

“시쿠는 그냥 안다.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나는 펫이고, 주인님이 주인님이란 것도 난 이미 알고 있었다.”

“누가 알려준 게 아니라?”

끄덕끄덕.

눈에 보이지도 않은 목을 갖고 있음에도 녀석의 머리는 아래위로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눈도 작고, 목도 짧고.

그런 점에서 볼 때 녀석이 암컷인 게 다행이 아닐까 싶다.

눈과 목처럼 거기도…… 그러면 그보다 더 슬픈 인생이 없을 테니.

“다른 건 아는 게 없어? 예를 들어 시스템이 어디서 온 건지 말이야.”

“무슨 말인지 시쿠는 모르겠다. 시스템도 주인님 펫인가?”

“아니다, 됐어. 그보다 시쿠는 뭐가 좋아? 좋아하는 음식 있어?”

“시쿠는 먹지 않아도 튼튼하다. 주인님만 곁에 있으면 시쿠는 언제나 배부르다.”

먹는 즐거움을 모르다니.

시쿠의 인생이 왠지 슬프게 보이는 어스였다.

그렇게 시쿠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묵직한 진동이 통로 전체를 뒤흔들기 시작했다.

드드드드드.

통로가 붕괴할 조짐을 보이자 시쿠는 급히 땅을 팠다.

다행히 외부로 나가는 곳이 가까웠기에 둘은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생매장을 피했다.

하지만 안심하기엔 일렀다.

바로 코앞에 머리 셋 달린 거대한 뱀이 있었다.

놈을 보자마자 어스는 바로 직감했다.

저놈이 보스라는 걸.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