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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로 성장하는 마법사-156화 (156/250)

156화

노예 해방 연합의 비밀 거점에 출현한 6띠 던전을 신속하게 처리한 어스는 텔레포트 마법진을 통해 예의 그 야산으로 돌아왔다.

많은 사람들을 구한 장한 일을 해냈지만 어스의 마음은 오히려 무겁기만 했다.

성기사 문제에 이어 이번 일까지, 저들에게 물린 게 하나 더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하나가 터져서 문제가 되나, 이번 일까지 더해 터져서 문제가 되나 어차피 버린 몸인가?’

7월의 태양은 몹시 뜨거웠으나, 어스의 마음 한구석은 동장군이 활보하고 있었다.

“큰 잔치를 열어 대접해 드려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됐어요. 그보다 약속이나 지켜주세요.”

“물론입니다.”

“저쪽에 앉을래요?”

어스는 로엘을 그냥 보낼 생각이 없었다.

푸리엘과 달리 로엘은 저들 조직에서도 꽤 높은 위치였다.

그러니 상부의 허락 없이 대답도 함부로 할 수 없는 푸리엘과 달리 그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대답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나무 그늘이 드리워진 적당한 크기의 바위에 어스와 로엘은 마주보고 앉았다.

푸리엘은 그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주변을 경계했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잦지 않는 야산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모를 일이기에.

어스는 그런 푸리엘을 힐끗 쳐다본 뒤 입을 열었다.

“로엘 씨도 아시다시피 그쪽이 몸담은 조직에 내가 제대로 물린 상황이잖아요.”

“그 일로 어스 님을 협박할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빼도 박도 못할 제 약점을 손에 쥔 그쪽이 할 말은 아니지 싶지만 어쩌겠어요. 이미 엎지른 물인데.”

푸념조의 말과 달리 로엘을 응시하는 어스의 눈빛은 낙담과는 거리가 멀었다.

“원하시는 게 있습니까?”

“묻고 싶은 게 몇 있어요. 저기 저쪽은 그쪽 조직에 관한 이야기는 입에 자물쇠를 달았는지 절대 하지 않더라고요. 좋은 수하를 두셨습니다.”

어스가 자신을 언급하자 푸리엘은 잠시 몸을 움찔거렸지만 시선은 다른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궁금하신 점에 최대한 성의껏 대답 하겠습니다.”

이런 반응은 의외였다.

하나 그도 잠시 저들이 가진 패가 자신을 언제든 파국의 수렁에 던질 수 있는 것들임을 상기했다.

‘속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건방지지 않아서 좋네.’

작은 것에서 위로를 찾았다.

곧 그는 본론으로 들어갔다.

“아도니스에 인간들이 있습니까?”

“…….”

“비밀입니까?”

“아닙니다. 질문 내용이 의외라서 조금 놀랐을 뿐입니다. 예, 아도니스에도 인간들은 있습니다.”

“그곳의 인간들은 어떻게 삽니까? 여기의 이종족이나 혼혈들처럼 자유에 제한이 있습니까?”

어스는 뤼빅스 대륙에서 더 이상 살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을 이미 고려하고 있었다.

때문에 아도니스의 분위기는 그에게도 몹시 중요한 문제였다.

“아도니스로 이주하실 생각이십니까?”

“당신들이 입을 다물고 있더라도 다른 곳에서 내 비밀이 알려지지 말란 법은 없잖아요. 그래서 보험을 들어놓으려고요. 나 혼자만의 문제도 아니라서.”

“하긴 미래는 누구도 알 수 없는 법이죠. 그럼 대답하겠습니다. 이 땅의 이종족이나 혼혈들이 겪는 어려움은 아도니스엔 없습니다. 물론 인간을 배척하는 자들이 없지 않지만 상대가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이 가진 존엄성과 자유의지를 제한하진 않습니다.”

“성숙한 의식이네. 비꼬려는 의도로 하는 말은 아니니까 오해하지 말아요. 또한 당신이나 푸리엘과 날을 세울 의향은 없으니까. 아무튼 그건 다행이네요. 최악의 경우 가족들을 챙겨 아도니스로 튀려고 한 내 입장에선. 참, 아도니스 쪽에 출현하는 던전은 어떤 식으로 처리하고 있죠?”

“아도니스엔 뤼빅스와 같은 던전이 없습니다.”

로엘의 말에 어스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인간만 미움 받고 있는 건가?’

인간과 달리 이종족은 다신교다.

이 때문에 유일신 사상을 가진 극단적인 이들, 대표적으로 교단의 눈에 그들은 이단일 수밖에 없었다.

과거 인간과 이종족의 뤼빅스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종족 전쟁의 발발 이유는 승리한 인간에 의해 기록되었으니 그 기록만 놓고 보면 악은 이종족이다.

하지만 실제 이종족에 대해 알게 되면 과연 그 기록물을 믿을 수 있을까 의심스러웠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란 말이 왜 나왔겠는가.

‘진짜 아도니스를 방문하고 싶어지네.’

문제는 오고가는 데 걸리는 시간이 만만치 않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

탁월한 능력과 유명세가 그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그런데 꼭 내가 갈 필요가 있을까?’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아도니스로 보내 사실여부를 확인하는 방법도 있다.

다행히 그에겐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 몇 있었다.

거너, 아그네스, 린다, 니코, 조쉬가 바로 그들이다.

그 외 페어몬트에게 이를 부탁해도 흔쾌히 수락할 것이다.

예전부터 아도니스를 방문하고 싶어 했으니까.

“로엘 씨.”

“예.”

“거점에서 봤던 그 배는 언제 출항하죠?”

“다음 달 중순입니다.”

로엘은 순순히 대답해 주었다.

하긴 그 큰 배에 거기 있는 사람들만 태워 보내면 그건 공간 낭비긴 하다.

생각보다 여유가 있자 어스는 자신의 생각을 추진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러자면 일단 저들의 입장을 알아야 한다.

“혹시, 그 배에 내가 아는 사람을 태워 보낼 수 있습니까?”

“누군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페어몬트라고 종교에 연연하지 않는 학자이자 모험가 한 분이 계십니다. 그분이 예전부터 아도니스에 관심이 대단했거든요.”

“다른 분도 아니니 어스 님의 부탁이니 들어드리겠습니다.”

협상의 과정을 예상했던 어스는 로엘이 너무나 쉽게 허락해 버리자 순간 저들도 페어몬트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페어몬트뿐만이 아니라 내 주변 지인 전부를 알고 있겠군.’

순간 잊고 있었다.

저들 역시 자신에게 관심이 아주 많다는 걸.

용건을 끝낸 어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참, 열매는 언제 받을 수 있습니까?”

“갖고 있는 건 조만간 푸리엘을 통해 전달하겠습니다. 나머진 시간을 주십시오.”

한 개든 열 개든, 혹은 오십 개든 의미가 없다.

100개 중 단 하나만 부족해도 칭호를 활성화할 수 없으니까.

“알겠습니다. 그리고 좀 전에 한 말은 당사자를 만나서 이야기를 해본 뒤 푸리엘을 통해 연락하겠습니다. 물론, 배편이 이종족 해방 연합의 배라는 건 알리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의 도움은 잊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저희의 도움이 필요한 일이 생기면 푸리엘을 통해 언제든 연락 주십시오.”

“그러죠.”

그길로 어스는 신전을 향해 블링크를 시전했다.

그가 떠나자 내내 지켜보기만 하던 푸리엘이 우려를 드러냈다.

“로엘 님, 정말 인간을 그 배에 태우실 생각이십니까?”

“난 이 일이 그와 우리 사이에 신뢰를 쌓을 수 있는 중요한 시작이라고 생각하네. 더구나 그가 사람을 보내려는 의도가 눈에 뻔히 보이잖나? 우리 입장에선 오히려 환영 할 일이라고 보네.”

“어째서죠?”

“당장은 던전이 뤼빅스에 국한된 문제지만 과연 언제까지 여기만의 문제일지 누구도 단언할 수 없는 상황을 감안해야지.”

로엘의 말에 푸리엘은 반박할 수 없었다.

* * *

글리시아 영지는 다른 영지와 달리 던전 브레이크를 걱정할 필요가 없는 영지로 소문이 자자했다.

덕분에 던전 브레이크의 위험을 걱정하던 많은 이들이 글리시아를 찾아왔다.

부유층, 기술자, 상인, 용병 등등.

다양한 사람들이 몰려오면서 글리시아 영지의 재정과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더는 변방의 일개 남작 영지로 볼 수 없을 만큼 급격하게 성장했다.

이처럼 글리시아 영지가 급속도로 성장하자 주변 영지들은 위기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들은 이전처럼 글리시아에 어떤 압력도 행사할 수 없었다.

글리시아 영지의 뒤엔 어스가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루리아.”

“어스.”

어스의 명성에 가려져 그렇지 루리아도 대단한 인재였다.

열여덟이란 어린 나이에 익스퍼트라는 경지를 이룩한 건 사실 보통 일이 아니다.

준 천재로 불리어도 손색이 없는 업적이다.

그러나 그녀의 남자 친구가 워낙 유명하다 보니 그녀에게 집중 되어야 할 조명마저 어스에게로 집중 되다보니 그것이 가려졌다.

그녀가 공명심에 집착하는 인물이었다면 이 일로 크게 속이 상했을 테지만, 기사로서의 성장 그 자체를 즐기는 터라 그녀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어떻게 지냈어요?”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두 사람은 마법 통신구를 통해 하루에 한번 연락을 주고받았다.

어스는 그녀와 원활한 소통을 위해 시중에 출시되지 않은 마법 통신구를 구해 그녀에게 선물했다.

덕분에 두 사람은 문자수 제한과 재사용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고 실시간으로 문자를 주고받을 수 있었다.

완전 신세계였다.

하지만 이처럼 서로를 보고 만질 수 있는 것에 비할 수 있으랴.

그러나 이들의 행복한 시간은 오래갈 수 없었다.

중앙 정부에서 파견 나온, 아니 왕좌를 놓고 치열한 각축을 벌이고 있는 왕자들이 글리시아에 파견한 자들이 어스의 방문 소식을 듣고 몰려왔기 때문이다.

“반갑습니다. 어스 경, 저는 크로포드 1왕자님의 수석 비서관입니다.”

“전 케이건 2왕자…….”

“전…….”

최근 던전 브레이크가 심심치 않게 발생하면서 헥터 왕국은 어스를 놓친 걸 땅을 치며 후회하고 있었다.

그가 교단 소속의 성기사라 교단의 뜻이 무엇보다 중요하다지만. 그래도 당사자가 헥터 왕국에 남는 걸 고수하면 교단도 이를 감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세 왕자는 앞서 왕좌에 대한 욕심에 눈이 멀어 교단과의 로비는 물론 어스 개인의 마음을 돌리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왕도에 던전 브레이크가 터져 쓴맛을 제대로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런데 그랬던 왕자들의 입장이 최근 급격하게 선회했다.

어스를 끌어들이는 자가 왕좌에 더 바짝 접근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 왕자는 교단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로비에 돌입했다.

어스를 자국으로 불러들이기 위해서.

뒷북도 이런 뒷북이 없었다.

아무튼 세 왕자의 로비는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자 세 왕자는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어스의 연인으로 알려진 루리아를 공략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루리아나 그녀의 아버지 오스완드 남작 입장에선 곤란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지만 자국의 왕자들이였기에 싫은 내색조차 할 수 없었다.

“그래서요?”

“예?”

“그래서 왜 여기 있는 것인지 묻고 있는 겁니다.”

일분일초도 아까운 연인과의 소중한 시간을 방해 받은 어스는 기분이 몹시 언짢았다.

어스는 자신의 기분을 과감 없이 발산했다.

이에 왕자들이 보낸 측근들은 너나할 것 없이 당황했다.

그가 이렇게 반응할 줄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괘씸한 놈. 그래도 한땐 이 땅의 백성이었음에도 이리 나오다니. 허허. 이래서 미천한 출신 성분은 어쩔 수 없다니까.’

‘곤란하군, 곤란해. 저자의 노여움을 사면 필시 왕자님이 곤란해질 수 있는데.’

‘이래서 우르르 몰려오는 게 아니었는데. 그나저나 저자의 기분을 어떻게 풀어주지?’

세 왕자의 수하들은 냉랭한 그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노력했다.

속마음과 달리.

어스는 그에 적당히 호응하며 그들을 돌려보냈다.

루리아의 입장을 고려한 행동이었다.

“루리아, 저들은 언제부터 여기 내려왔죠?”

“한 달쯤.”

“나 때문에 피곤했겠어요.”

“사소한 일이야 그러니 신경 쓸 필요 없어.”

말은 괜찮다고 하였지만 루리아의 성격을 알고 있는 어스 입장에선 말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어스는 왕자들에게 경고를 날려주기로 마음먹었다.

‘레이몬드 주교에게 한마디 해두는 게 좋겠어.’

그라면 이 문제를 깔끔하게 처리해줄 것이다.

그렇게 왕자들의 문제를 레이몬드 주교를 통해 해결하기로 마음먹자 고민 하나는 사라졌다.

그러나 이건 그가 가진 근심에 비하면 약소한 편이었다.

무려 교단과 척을 질 수 있는 근심거리를 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일이 터지더라도 자신만 피해를 입으면 상관없지만 이단에 대한 교단의 행보는 특정 인물 하나에 국한되지 않았다.

교단은 이단으로 지목한 당사자는 물론 그 주변까지 죄를 묻는 연좌제를 거리낌 없이 적용했다.

그나마 지인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의 경우 그들이 강력하게 발뺌하면 조사를 받는 동안은 스트레스를 받게 될지 모르지만 거기서 끝날 수 있다.

허튼 소리만 하지 않는다면.

반면 연인은 그런 식으로 끝날 것인지 아닌지 도통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그래서 한날은 레이몬드 주교에게 이에 대해 은근슬쩍 물어보았다.

그 결과 사안에 따라 경중이 달라진다는 불확실한 말을 들었다.

‘나 같은 경우는 그중에서 중에 해당할 텐데.’

이러니 어찌 걱정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좋아하는 사람이 자신으로 인해 크게 다칠 수 있음인데.

그러한 그의 마음이 조금씩 그 표정에 묻어나오고 있었다.

“어스.”

“예.”

“표정이 안 좋은데 왜? 혹시 그들 때문에 아직도 기분이 상해 있는 거야?”

“아뇨. 그보다 루리아.”

“응.”

“루리아는 사랑이 우선인가요? 아님, 가족이 우선인가요?”

“곤란한 질문이네. 그럼 역으로 질문할게 어스 넌?”

상상만 해도 둘 다 가슴 찢어지는 일이지 싶다.

“그러게요. 정말 곤란한 질문이네요. 저기 루리아. 루리아는 날…… 사랑하나요?”

“응, 사랑해.”

그 말이 참 달콤했다.

그 말이 참 행복했다.

그러나 언제 터질지 모를 폭탄을 끌어안고 있는 입장이라 한편으론 슬펐다.

‘차라리 교단을 박살 내 버릴까?’

불가능한 영역이다.

인류의 태반을 죽여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무슨 일인지 말해주지 않을래?”

“나중에, 나중에 이야기할게요.”

다행히 루리아는 그를 채근하지 않았다.

대신 손만 힘주어 잡아 주었다.

아프지만…… 설렌다.

몸뚱이가 아닌 마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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