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화
‘텔레포트 마법진이잖아!’
이름 없는 야산에는 텔레포트 마법진이 설치되어 있었다.
교단과 거대 마탑 그리고 왕국에서 핵심 장소 몇 곳에 설치하여 운용하고 있는 것이 바로 눈앞에 있는 저 텔레포트 마법진이다.
참고로 텔레포트 마법진이 가장 많이 보유한 곳은 거대 마탑도 왕국도 아닌 교단이다.
더욱 놀라운 건 왕국이나 거대 마탑과 달리 교단에선 텔레포트 마법진을 아끼지 않고 활용하고 있었다.
마법진을 활성화할 때마다 매번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들어감에도 불구하고 교단은 이에 조금의 거리낌도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집단이 교단이란 말이 허투루 나온 말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그건 대륙의 모든 부을 거머쥔 교단이기에 가능한 일이지, 그 외 세력들의 경우에는 마법진 이용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레이몬드 주교와 술 한잔 마셨을 때 들은 내용이었다.
‘텔레포트 마법진을 구축하는 비용도 상당한 것으로 아는데 이런 야산에까지 마법진을 설치할 정도면 저들의 재력도 상당하다는 건가?’
텔레포트 마법진이 어디 재력만 있다고 되는가.
재력에 더해 마법진에 뛰어난 소양을 갖춘 6서클 이상의 고위 마법사 두셋은 매달려야만 비로소 온전한 하나의 텔레포트 마법진이 완성된다.
그런데 그러한 텔레포트 마법진이 야산에 떡하니 자리하고 있었으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강력한 아군은 든든하지만 반대로 강력한 적은 그만큼 두려울 수밖에 없다.
“마법진이 있어 놀랐습니까?”
로엘의 말에 어스는 침묵으로 답을 대신했다.
“반영구적으로 설치하는 마법진과 달리 이것은 횟수에 제한이 있습니다.”
그래도 마법진이다.
아니, 오히려 그래서 더 놀랄 수밖에 없다.
특정 장소가 아닌 임의의 장소에 텔레포트 마법진을 구축하기 위해선 7서클 대마법사가 필요하다.
푸른 뇌전 마탑의 부탑주 플린트 테리어와 동급의 마법사 말이다.
‘세상엔 알려진 강자보다 알려지지 않은 강자들이 더 많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어쩜 그 말을 믿어야 할지도.’
대마법사와 싸운다면 자신이 이길 수 있을지 궁금해한 적이 있었다.
플린트 테리어를 봤을 때 부쩍 들었던 생각이었다.
던전 원정이란 상황을 놓고 보면 자신이 대마법사보다 윗줄이다.
자신은 할 수 있지만 대마법사는 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으니까.
하지만 막상 싸워야 한다면 어스도 대마법사를 이길 자신이 없었다.
그들은 자신만의 전투 영역을 구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게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전해들은 말에 의하면 살심을 일으키는 것만으로도 상대를 격살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었다.
‘던전이 존재하는 이상 대마법사보다 내가 더 쓸모 있잖아. 그러니 저들도 날 함부로 해치려 하진 않을 거야.’
솔직히 말하면 쫄았다, 쫄았지만 던전에 특화된 마법사는 자신이 유일하기에 그나마 마음 놓을 수 있었다.
조금 움츠려든 어깨를 편 어스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고개를 들었다.
“그래서 지금 가는 곳이 어디죠? 아시겠지만 내가 오래 자리를 비울 수 없습니다.”
“어스 님이 던전을 일찍 정리하면 그만큼 빨리 복귀할 수 있을 겁니다.”
칼림 시의 6띠 던전을 정리하기까지 어스가 사용한 시간은 7시간 남짓이다.
쉬엄쉬엄 했음에도 말이다.
그러니 이를 배제하고 속도에 집중한다면 그 절반의 시간만 주어져도 충분하다.
아니, 넘친다.
“그래서 가는 곳이 어딥니까?”
“그게 중요한 가요?”
그래 그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저놈들이 생각보다 더 대단한 조직이란 점이,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점이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중요한 것이다.
하아.
“갑시다.”
* * *
텔레포트 마법진을 통해 이동한 어스는 비릿한 짠내를 맡았다.
익숙하진 않지만 낯선 냄새는 아니었다.
‘바다?’
긴가민가했다.
낯선 냄새는 아니지만 익숙하지 않은 냄새였기에.
그러나 곧 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곳은 해변이었다.
우측으로 높은 절벽이 보였다.
뒤로는 숲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외부에서 이 해변으로 오기 위해서는 숲을 통하지 않을까 싶었다.
파도가 때린 갯바위에선 하얀 포말을 일어나고 있었다.
갯바위 저 너머 녹음이 무성한 섬이 보였다.
섬 옆으로 대형 선박 한 척이 보였다.
‘저만한 크기의 배면 큰 바다도 문제없이 향해할 수 있겠네.’
“이쪽으로.”
로엘의 말에 어스는 상념에서 깨어났다.
일행은 숲으로 들어갔다.
10여 분가량 걷자 공터가 나왔다.
공터엔 오두막집이 자리하고 있었다.
오십 채는 넘어 보였다.
그러나 그보다 더 어스의 눈길을 사로잡은 건 사람들이었다.
‘이종족?’
이종족은 더 이상 어스에겐 신기할게 없는 종족이었다.
휘하에 거느린 이종족만 해도 무려 쉰셋이나 되니까.
‘푸리엘과 로엘이 몸담은 곳이 이종족 노예해방 조직인가?’
그렇다면 좀 전 보았던 대형 함선은 저들을 아도니스로 수송하기 위한 배가 아니었을까? 인간 노예의 경우는 노예제도를 불법으로 간주한 왕국까지 데려가면 거기서부터는 그들이 알아서 살아갈 수 있다.
반면 이종족 노예들은 아니다.
이종족 노예들이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땅은 이종족의 대륙이라 불리는 아도니스가 유일하다.
그러니 그 배는 필시 수송선이 분명하다.
‘이자들의 힘이 아도니스에도 미치는 건가?’
그렇다면 교단과는 척을 져도 저들과는 절대 척을 져선 안 된다.
교단과 척을 지면 아도니스라는 선택지가 존재하지만, 저들과 척을 지게 되면 그러한 선택지마저 없기 때문이다.
‘골치 아프네.’
로엘은 그를 마을 뒤쪽으로 안내했다.
그곳에 던전이 있었다.
등급은 6띠.
이미 예상하고 있었기에 던전은 그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로엘 씨.”
“예.”
“아까 내가 본 그 선박 말입니다. 혹시 이종족을 아도니스로 보내기 위한 수송선입니까?”
“섬에 가려져 있었는데 보았군요.”
“눈이 좋은 편이라.”
“맞습니다.”
“텔레포트 마법진을 만들 수 있는데 굳이 선박을 이용하는 건 무슨 이유죠? 혹시 비용 때문에 그런 겁니까?”
어스의 태도는 처음보다 많이 누그러져 있었다.
이종족을 본 순간부터였다.
로엘은 달라진 그의 분위기를 눈치 챘다.
그래서 그와 대화할 마음이 생겼다.
인간들 중에서도 이종족 노예를 반대하는 뜻있는 사람들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실제로 조직에 도움을 주는 인간들도 있다.
때문에 로엘 입장에선 어스도 그러한 부류의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그랬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그게 왜 궁금하십니까?”
“비밀입니까?”
“대답 못 할 건 없습니다. 딱히 비밀도 아니니까요. 텔레포트 마법은 대륙과 대륙을 연결할 수 없습니다. 오랜 시간 그 방법을 연구했지만 끝내 실패하고 말았죠. 이건 비단 저희만이 아닙니다. 마탑이나 교단도 마찬가집니다. 명확한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혹시 거리 때문입니까? 아니면 중간에 바다가 가로막혀서?”
“의외로 이런 쪽으로 관심이 많으시군요. 역시 어스 님도 마법사시군요. 하지만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닙니다. 다만 텔레포트 마법진이 두 대륙을 잇지 못하는 이유에 대한 가설은 있습니다. 혹시 차원 이동이란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위그드라실의 계승자 칭호를 활성활하면 얻을 수 있는 효과 중에 차원 이동이 있다.
이 때문에 어스는 차원에 관해 나름 조사한 게 있었다.
전문적으로 이를 파고드는 사람보다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일반인보단 그쪽 방면으로 아는 게 많았다.
어스의 귀가 솔깃했다.
“혹시 대륙 간 이동이…… 텔레포트 마법진이 아닌 차원 이동 마법진으로 가능하다는 겁니까?”
“역시, 마법사시군요. 맞습니다.”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는 대륙인데 그게 전혀 다른 세계로 인식된다고? 왜?’
어이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뤼빅스와 아도니스를 잇는 뱃길이 차원 이동 통로라도 된다는…… 그런 말입니까?”
“그런 설도 있지요.”
‘뭐야? 그럼 차원 이동이란 옵션이 실은 대륙 간 이동을 뜻하는 거였어?’
이건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직 칭호의 차원 이동이 대륙 간 이동이라고 단정 지을 순 없다.
적어도 지금은.
‘젠장 이럼 더 궁금해지잖아.’
남은 위그드라실의 조각은 66개. 이를 확보한 다음에야 이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으리라.
로엘이 다시 말을 이었다.
“텔레포트 마법진으로 두 대륙이 이어진다면 과거 이 땅에서 자행된 교단의 피의 박해가 아도니스에서도 일어났을 겁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이종족들에게 이는 다행이죠.”
“이종족의 능력은 약하지 않은데 어째서 교단을 겁내는 거죠?”
이번에 이종족 노예를 구입하면서 그들이 가진 능력을 알게 됐다.
때문에 어스로선 당연한 의문이다.
그러고 보니 과거 그들은 어째서 인간에게 패했을까? 당시 이종족은 지금 같지 않았던 걸까? 그도 아니면 내부적으로 분열했던 걸까?
“신은 이종족에겐 허락하지 않은 규격 외의 힘을 오직 인간에겐 허락하시더군요. 과거의 패배 그리고 현재의 상황은 모두 거기서 출발한 것이라 보면 될 겁니다. 그리고 제 생각에 어스 님도 규격 외의 존재이지 않을까 싶군요.”
로엘의 말에 어스는 한동안 입을 다물었다.
‘데, 데릭 가이어스와 동급의 인물이 될 수 있다고? 내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미친 듯이 두근거렸다.
그런데 정말 자신은 이를 모르고 있었을까?
아니다, 이미 알고 있었다.
다만 다른 사람에게서 그 말을 듣게 되자 전과 느낌이 사뭇 달라 새롭게 느껴지는 것이다.
‘계승자만 활성화하면 그런 소릴 들어도 될 것 같긴 한데.’
아직은 가야 할 길이 멀다.
하지만 깨달음이란 막연한 장벽을 찾아 헤매는 수많은 수련자에 비하면 자신은 훨씬 낫다.
몬스터만 때려잡으면 되니까.
“로엘 씨.”
“예.”
“로엘 씨나 로엘 씨가 속한 조직과 다투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니 나를 적으로 만드는 일은 하지 마세요. 만약 그리한다면 맹세하건데 내 모든 걸 걸고서 반드시 이종족과 끝까지 싸울 겁니다. 당신이 날 규격 외의 힘을 가진 존재로 생각하고 있다면요. 이건 협박이 아니라, 부탁입니다. 이종족의 피를 정말 제 손에 묻히고 싶지 않거든요.”
이번엔 로엘이 한동안 입을 못 다물었다.
그 옆의 푸리엘 역시 어스와 이종족이 죽기 살기로 싸우는 모습을 상상하며 입을 다물었다.
그런 남녀를 일별한 어스는 곧장 던전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이제부터 당신들이 고민할 차례야. 부디, 고민의 결과가 긍정정인 방향이길 바랄 뿐이야.’
* * *
“푸리엘.”
“예, 로엘님.”
“그의 말을 어떻게 생각하나?”
“우리가 그의 가족과 지인을 건드린다면 그는 방금 자신의 말을 끝까지 지킬 겁니다. 혹시, 그럴 의향이 있으셨나요?”
“내가?”
“예.”
“난 그에게 친밀감을 느끼고 있네. 사실 나도 그에게 왜 이런 느낌을 갖는지 모르겠어. 인간에게 말이야. 하지만 이유 모를 그 친밀감이 전보다 한층 더 깊어졌네. 물론, 필요하다면 그의 목을 베고 심장을 가르겠지만 적어도 자발적으로 그러고 싶진 않아. 한순간이지만 그와 적이 되어 싸운다는 가정을 했을 때…… 여기가 몹시 쑤시더군. 가족을 잃었을 때처럼 말이야.”
로엘은 자신의 가슴을 지그시 누르며 말하였다.
“로엘 님의 반응은 혹시 혈통에서 기인한 것이 아닐까요?”
“가문의 혈통?”
“예.”
“하지만 그는 인간인데?”
“평범한 인간은 아니죠. 더구나 그는 그분의 파편에 집착을 보이고 있잖아요.”
“그러고 보니 왜 그가 그분의 파편을 모으는 건지 알아냈나?”
“그가 가진 블링크가 워낙 사기라 도저히 그 곁에 머물 수 없었습니다. 자존심까지 굽혀가며 계약까지 맺었는데도 말이죠.”
“그렇다면 본인에게 직접 들어야겠군.”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아닐세. 그의 능력이 출중해서이지 자네의 역량이 부족해서는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그 덕분에 가련한 동족들이 무사히 돌아올 확률이 높아졌으니 지금은 그의 가진 능력에 오히려 감사하는 게 마땅하지.”
푸리엘은 로엘의 말에 수긍하며 입을 굳게 다물었다.
두 사람은 던전 입구를 바라보며 석상이라도 된 듯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