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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로 성장하는 마법사-150화 (150/250)

150화

푸리엘과 또 다른 마법 계약서를 작성한 어스는 그녀를 내보낸 뒤 경건한 표정을 하고서 자신의 상태창을 열었다.

지난 일주일간 하루도 쉬지 않고 던전에 드나들며 축적한 업적 포인트와 코인을 이참에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이름(성별) : 어스(남).

직업(레벨) : 마법사(64).

칭호 : 위그드라실의 계승자(34/100). 승리의 노래(12/12).

생명력 : 570/570.

마나 : 690/690.

인벤토리 : 1(+5).

스탯 : 힘(2.6). 체력(55). 민첩(2.6). 지력(50). 정신(89).

직업 스킬(9/9) : 매직 애로우(+5/12). 파이어 애로우(+3/12). 파이어 볼(+3/12). 파이어 버스트(+3/12). 아이스 스피어(+3/12). 일루젼(+3/12).

콜 라이트닝(+5/12). 블링크(+3/12). 체인 라이트닝(+4/12).

업적 포인트 : 20.

코인 : 308,784.

상태창에서도 알 수 있듯 이틀 전 레벨을 하나 더 올릴 수 있었다.

64레벨!

레벨을 바라보는 어스의 표정은 복잡 미묘했다.

저 끝의 숫자 4를 5로 만들기 위해 또 얼마나 많은 몬스터를 잡아야 하나 그런 생각이 절로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막연한 깨달음보단 이편이 낫긴 하지.’

마법사든 기사든 경지를 높이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공부와 수련이 필요하다.

설사 그렇게 노력하여 경지를 쌓더라도 어느 순간이 되면 벽을 만나게 된다.

그때부턴 깨달음에 기대어야 한다.

그것은 참 막연한 일이었다.

그에 반해 어스는 몬스터만 주구장창 잡으면 된다.

이 얼마나 쉽고 편한 일인가.

남들은 손에 잡히지 않는 걸 잡으려 애쓰는 동안 몬스터만 잡으면 되니까.

흐흐.

각성 만세!

‘먼저 포인트부터 분배해야겠지.’

정신, 지력, 체력 스탯을 향한 어스의 눈빛에 고민이 깊다.

마음의 결정을 이미 내렸음에도 말이다.

또 한 번 신중하게 생각한 어스는 결국 작심한 대로 포인트를 분배하기 시작했다.

체력 5.

지력 10.

정신 5.

고민은 길었지만 분배는 찰나였다.

허탈감이 쓰나미일 듯 일었다.

이래서 어지간하면 업적 포인트를 모으지 않으려던 어스였다.

생명력 : 595/595.

마나 : 715/715.

체력과 정신 스탯과 달리 지력의 경우 눈으로 확인할 수 없다.

그 점이 아쉬웠지만 그럼에도 이번에 지력에 대거 투자한 이유는 다음에 들어가야 할 곳이 6띠 던전이기 때문이었다.

참고로 어스가 6띠 던전에 들어가기로 마음먹자 에스터 추기경과 레이몬드 주교는 격렬하게 반대했다.

하나 어스는 자신의 결정을 번복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두 사람의 반대도 무시할 수 없었기에 약정을 걸었다.

그건 바로 만 하루 동안 어스가 나오지 않을 경우 원정대를 보낸다는 내용이었다.

그것도 소드 마스터와 대마법사가 포함 된 원정대다.

에스터 추기경의 힘이 상당한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소드 마스터와 대마법사까지 동원가능한 수준인 건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그래서 솔직히 많이 놀랐다.

한편으론 든든하기도 했다.

그런 사람이 자신의 후견인을 자청하고 있었으니까.

어스는 잡념을 털어내기 위해 마른세수를 거푸했다.

실패가 없는 포인트 분배와 달리 지금부터 그가 하려는 일은 성공 확률보다 실패 확률이 높은, 그래서 도박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강화의 시간이기 때문이었다.

마른세수로 시작하여 심호흡으로 마음의 안정을 꽤한 어스의 손끝이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아래층으로 내려오자마자 어스는 부모님을 볼 수 있었다.

동이 막 트기 시작한 이른 시간임에도 항상 이맘때에 일어나는 부지런한 분들이다.

먹고사는 모든 걸 제 손으로 해결해야만 하던 시절과 사정이 확연히 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부부는 몸에 밴 습관으로 인해 항상 일찍 일어나곤 했다.

“아들, 일어났어?”

“좀 더 자지 않고 왜 일어났어?”

이 집에서 부지런한 사람은 비단 어스 부모님만이 아니다.

집안의 허드렛일을 위해 고용한 노른 일가의 여자들 역시 이 시간이면 깼다.

“큰 나리, 큰 마님, 작은 나리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행크와 엘이나는 로젠과 그녀의 딸들이 자신들을 부르는 호칭을 여전히 어색하게 여겼다.

반면 어스에게선 그러한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저들보다 더 높은 신분의 사람들에게서도 존중받는 일이 잦은 덕분이었다.

엘이나는 아침을 준비하기 위해 주방으로 향했다.

어스와 행크는 자연스럽게 응접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들, 고민 있어?”

강화 실패로 인한 심적인 타격은 있을망정 고민은 없다.

그래도 예전에 비하면 실패의 타격이 줄어든 편이었다.

“아뇨.”

“이 나이에 아들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건 나밖에 없을 거야. 하하.”

“세상은 넓어요.”

“그래도 너만 한 아들은 흔치 않을 거야. 행동도 말투도 나날이 의젓해지고 말이야. 진짜 장가가도 되겠어. 하하.”

전엔 장가 생각이 있었지만 최근 들어 그 마음이 다소 시들해졌다.

물론 루리아에 대한 마음까지 시든 건 아니다.

던전 원정을 우선하다 보니 전보다 생각이 덜 났을 뿐이다.

“장가는 천천히 가도 되죠. 지금은 할 일이 많아요. 그보다 아빤 어때요? 도시에서 쭉 사는 거 괜찮아요?”

“호강에 겨운 소린지는 모르겠지만 태생이 시골 출신이라 그런지 갑갑해. 아직 젊어서 그런가? 그래도 지낼 만해.”

“솔론에 농장이 있다고 제가 말한 적 있죠?”

“어? 그래, 맞다. 그랬지. 그런데 왜?”

“답답하면 농장에서 생활하셔도 괜찮을 것 같아서요. 텔레포트 마법진으로 이동하면 농장까지 하루도 안 걸리니까 원하면 말씀하세요.”

“그래도 돼?”

“아들 농장인데 당연히 되죠.”

“그러다 내가 거기에 눌러 살면?”

“아빠가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던전 브레이크의 위험성을 감안하면 도시에 있는 편이 좋다.

하지만 농장 인근의 던전은 모조리 없애 버렸기에 새로 생기지 않는 이상 그곳에서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날 일은 없다.

그래도 모르니 부모님 중 한 분이든, 두 분이든 내려간다면 수시로 순찰을 하면 된다.

“농장이 크다고 했지?”

“보면 깜짝 놀랄걸요.”

두 사람이 한참 대화하고 있을 때 엘이나가 차와 간식거리를 내왔다.

“엄마도 앉아 봐.”

“아침 준비해야지.”

“그건 로젠 씨에게 맡기고.”

“엄마에게 할 말 있어?”

“도시 생활이 답답하면 농장에서 지내는 건 어떤가에 대해 아빠랑 이야기 하고 있었거든.”

“그렇구나! 솔론에 네 농장이 있었지. 아빠랑 가도 돼?”

“당연히 되지. 텔레포트 마법진으로 가면 하루도 안 걸리니깐 이사 끝난 뒤에 생각 있으면 말해 줘.”

행크와 엘이나는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최근 발생한 던전 브레이크로 인해 치안이 나빠지면서 외출을 거의 자제하고 있던 터라 더더욱 답답했던 부부에게 있어 이는 단비였다.

“참, 대신 엘프들을 데리고 가야 해. 그러라고 그들을 구입한 거니까.”

“이종족에 대한 말은 많이 들었지만 막상 보니 마음이 안 좋더라.”

어머니의 반응에 어스는 어머니가 이종족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건가 싶었다.

“불쾌해?”

“아니, 사정이 딱하잖아.”

어스는 자신이 생각한 것과 다른 어머니의 반응에 안심했다.

“아빤 어때?”

“나도 엄마랑 비슷해. 종족이 다를 뿐 그들과 우리가 다를 건 없다고 생각해.”

“그렇게 생각한다면 잘 대해줘.”

에리엘이나 초이는 몰라도 알엘의 사정을 듣게 된다면 모르긴 몰라도 두 분 모두 눈물을 쏟지 않을까 싶다.

이와 그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기에 어스는 세 사람을 보기로 했다.

밤새 잘 잤는지, 불편한 건 없는지 알아보려고.

그런 마음으로 세 사람을 찾았지만 셋 모두 자리에 없었다.

‘다들 어디 간 거지?’

고개를 갸웃하며 밖으로 나온 어스는 옥상에서 알엘을, 앞마당과 뒷마당에서 에리엘과 초이를 볼 수 있었다.

“너희들 밤새 경비를 서고 있었던 거야?”

“예, 주인님.”

“예.”

“예.”

어스는 그들에게 경비를 서라고 말한 적이 없다.

설마, 다른 사람들이 시킨 걸까?

“누가 시킨 거야? 밤새 경비 서라고?”

“저희가 잘못했습니까? 그렇다면 지시를 내려주십시오.”

“내 말은 그게…….”

어스는 말을 흐렸다.

생각해 보니 가족의 안전을 위해서 구입한 자들이니까.

그렇다고 몸을 혹사하면서까지 일을 시킬 생각은 없었다.

“잠은?”

“순번을 정해서 잠깐씩 잤습니다.”

“밖에서?”

“예.”

“방 내줬잖아? 거기서 편하게 자면 될 걸 왜 사서 고생하는 거야?”

“그래도 되는 겁니까?”

“그래도 돼. 앞으로 쉴 땐 방에서 편하게 쉬어.”

“주인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감사드립니다.”

“감사드립니다.”

성실하고 예의 바른 건 좋다.

거기다 능력까지 출중하니 더 좋다.

비싼 게 흠이지만 그래도 시키지 않아도 행동하는 걸 보니 비싼 값을 치른 게 오히려 신의 한 수가 아닐까 싶은 마음도 살짝 들었다.

‘이야기로만 들었던 노예들하곤 조금 다르네.’

주어진 임무에 한해서는 자의적인 판단을 내린다.

이를 확인한 어스는 큰 만족감을 얻었다.

“어제는 미처 말하지 못했는데. 앞으로 너희가 지켜야 할 사람들은 내 부모님과 여동생이야. 그리고 너희의 감독관으로 푸리엘을 임명했어. 은발 머리 여자 기억해?”

“예.”

“하지만 무작정 그녀의 말을 따를 필요는 없어. 첫째도, 둘째도 너희에게 주어진 임무는 내 가족의 경호야 그 외 부당한 지시는 거부해도 돼.”

아침 식사까진 시간이 한참 남았기에 어스는 세 사람이 그간 어떻게 살았는지 질문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하지만 그 마음은 오래갈 수 없었다.

그들의 지난 삶이 너무 끔찍했기 때문이었다.

‘괘, 괜히 물었어. 괜한 걸 알아버렸어.’

어스는 몸서리치며 앞으로 저들을 더 잘 돌봐주기로 마음먹었다.

* * *

어스는 이틀을 더 쉬고 다시 임무에 복귀했다.

예정한 6띠 던전 원정에 나섰다.

6띠 던전 단독 원정은 이번이 처음이라 어스도 긴장하고 있었다.

“굳이 따라오지 않아도 되는데.”

사무실을 나설 때 에스터 추기경이 직접 찾아왔고, 레이몬드 주교는 현장까지 따라왔다.

“몸조심하게. 그리고 절대 무리하지 마. 알았지?”

“걱정 마요. 그보다 정말 안 가고 여기서 기다릴 거예요?”

현장에 나와 있는 사람은 비단 레이몬드 주교뿐만이 아니다.

대도시 칼림의 유력 인사는 죄다 이 자리에 나와 있었다.

참고로 칼림은 레아 왕국에서 일곱 번째로 큰 도시로 주변에 크고 아름다운 호수가 있어 세간엔 호수의 도시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6띠 던전은 이곳 호수 서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내 걱정은 말고 자네나 조심해.”

듣기 좋은 잔소리였다.

레이몬드는 도시의 유력자를 어스에게 소개시켰다.

귀찮았지만 레이몬드가 꼭 필요한 일이라며 신신당부를 하였기에 어쩔 수 없이 그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그렇게 모든 절차(?)를 마무리한 어스는 드디어 6띠 던전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아니, 발을 디디려는 순간.

-사막 촉수 두더지의 알이 부화합니다.

-부화까지 1시간 남았습니다.

아이템을 먹은 그 녀석이 드디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려고 한다.

‘하피처럼 비행 몬스터면 딱인데, 하필 두더지라니.’

선택의 여지가 있었다면 백번이고 사양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건 임의로 할 수 없었기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던전에 들어가자마자 곧장 보스부터 찾을 생각이었던 어스는 이 때문에 한 시간을 쉬게 되었다.

그렇게 한 시간이 지나자.

-사막 촉수 두더지가 태어났습니다.

-사막 촉수 두더지가 펫으로 등록 됩니다.

-등록된 펫은 상시 소환할 수 있습니다.

-펫을 소환하시겠습니까?

당연히 소환이지.

‘소환.’

살짝 떨리는 마음으로 녀석을 불렀다.

인벤토리에서 물건을 빼낼 때처럼 펫은 텅 빈 공간에서 툭 튀어나왔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생김새가 영 이상했다.

얼굴은 분명 사막 촉수 두더지인데, 놈을 분명 닮았는데 어째서 사막 촉수 두더지가 거북의 등껍질을 껴입고 있단 말인가.

‘돌연변이?’

전체적으로 동글동글한 어른 팔뚝만 한 녀석이 고개를 삐딱하게 쳐들더니 툭 튀어나온 길쭉한 주둥이 끝에 달린 코를 연방 벌름거렸다.

보통 외모가 동글동글하면 귀엽기 마련이다.

하나 녀석은 그러한 구석이 눈을 씻고 봐도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얼굴 면적에 비해 극단적이기까지 한 작은 눈까지.

‘못생김이 9서클이네, 그것도 궁극에 이른 9서클이야.’

인간이 저런 외모면 한평생 열등감에 절어 살지 않을까 싶다.

어스는 자신의 얼굴에 또 한 번 감사함을 느끼며 측은지심 서린 눈으로 펫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주인님이지?”

어스는 말문이 막혔다.

녀석이 사람 말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그보다 갓 태어난 녀석이 어떻게 말을 할 수 있는 거지?

멍.

그렇게 둘은 만났다.

시스템이 맺어준 평생의 동반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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