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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로 성장하는 마법사-148화 (148/250)

148화

사람들을 구해준 어스는 굶주림과 갈증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공간 주머니 2개에 들어 있던 식량과 식수를 건넸다.

어스의 인벤토리에는 50개의 공간 주머니가 자리하고 있었다.

공간 주머니의 개당 가격은 100만 테스, 용량은 20킬로그램이다.

이는 현존하는 공간 주머니 중에서 최고 품질의 것이다.

그런 것을 무려 50개나 소유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거듭되는 감사를 들으며 어스는 곧 이동했다.

어스가 던전 보스를 발견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은 걸리지 않았다.

지금껏 보아온 블러드 하피보다 월등한 덩치와 그 덩치를 더 부각시켜주는 커다란 머리를 세 개나 가진 녀석이었다.

‘하늘의 케르베로슨가?’

무시무시한 위용을 자랑하는 블러드 하피 보스의 머리 중 하나가 반응했다.

그 순간 남은 두 개의 머리도 즉시 반응했다.

놈의 입에서 포효가 터졌다.

그 순간 깎아지른 수백 개의 암석으로 된 절벽에서 블러드 하피가 일제히 날아올랐다.

바깥세상에선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숫자였다.

만약 저 숫자가 바깥세상에 쏟아진다면 하밀과 같은 큰 도시도 한순간에 주춧돌 하나 남지 않고 지상에서 말끔히 사라지고 말 것이다.

부르르.

절로 몸서리가 쳐졌다.

하늘을 단숨에 집어삼키려는 핏빛 파도를 향해 어스는 번개를 살포했다.

몸을 수평으로 눕히고서.

체인 라이트닝, 체인 라이트닝…….

번쩍, 번쩍.

번갯불이 하늘을 물들였다.

촘촘한 번개의 그물망은 이중삼중으로 두께를 더하였다.

붉은 파도는 번개의 그물망에 걸려 단 한 마리도 빠져나오지 못하였다.

살아 블러드 하피라 불리던 놈들은 죽어 블랙 하피가 되었다.

까맣게 탄 놈들의 동체는 투석기가 되어 제 동족을 잡아먹었다.

칼을 거꾸로 박아 놓은 형상의 수백 절벽이 적의 침입을 알리는 요란한 경종처럼 소리 내어 울었다.

머릿수만 믿고 까불던 놈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꼬리를 말았다.

둥지의 새끼들은 동족의 몰락에 슬피 울어댔다.

보다 못한 블러드 하피 보스가 날개를 펼쳤다.

어스를 향한 커다란 입에선 불덩이가 쏘아졌다.

이 또한 놈의 부하들이 그러했듯 어스의 근처에도 도달하지 못했다.

번개의 그물망에 걸려 모조리 폭발하며 애꿎은 제 수하만 작살냈다.

그럼에도 흉성이 폭발한 놈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놈은 힘으로 번개의 그물망을 찢었다.

그 용기와 박력은 가상하나 그 대가로 놈의 몸뚱이는 엉망이 되고 말았다.

윤기가 흐르던 핏빛 날개의 깃은 죄다 자글거리며 타들어가고 있었고, 농염한 여섯 개의 젖가슴은 본래의 색을 잃고 검은 화장자국으로 가득했다.

그 자국에서 익은 고기냄새가 진동했다.

육신의 고통인지, 적에 대한 분노인지 모를 괴성을 내지른 놈은 곧장 어스를 향해 쇄도했다.

날개의 깃이 그리 타들어갔음에도 놈의 비행은 문제가 없었다.

‘빠르네.’

분명 빠르다, 하지만 제아무리 빠른 날짐승도 어찌 공간을 뛰어다니는 자와 견주랴.

어스는 놈에게 교훈을 선사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면 그 위에 공간 이동하는 분이 있다는 걸, 그래서 자신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존재란 걸 똑똑히 알려주었다.

“꾸오오오오오오-!”

그리 친절히 알려줬음에도 블러드 하피 보스는 이를 인정하지 못하였다.

“귀 아프다.”

전투는 처음 일대 다수에서 지금은 일대일의 상황으로 변하였다.

놈의 수하들은 전장에 접근조차 하지 않고 목을 길게 빼며 눈알만 뒤룩뒤룩 굴리고 있었다.

시큰둥한 목소리를 날렸다.

그 목소리 이면에 마음으로 시동어를 읊었다.

파이어 버스터가 날아가 폭발했다.

놈의 날개 끝에 스치자마자.

쾅-!

그 충격에 놈의 몸뚱이가 한쪽으로 크게 기울었다.

놈이 겨우 중심을 잡았을 무렵 이번엔 등짝에 파이어 버스터가 떨어졌다.

하나도 아닌 세 발이 동시에 떨어졌다.

쾅쾅쾅-!

놈의 거대한 몸뚱이는 이내 화염에 휩싸였다.

볼품없어진 놈의 날개깃은 더 이상 깃으로 볼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놈의 육신은 그 비명과 함께 추락했다.

‘파이어 버스터로 5띠 보스를 잡는 기록을 세워 볼까?’

추락 중인 놈을 향해 콜 라이트닝을 선사하려던 어스는 생각을 고쳐먹었다.

어스는 단숨에 놈을 따라 잡았다.

이후 파이어 버스터로 전신을 두들겼다.

쾅쾅쾅쾅-!

블러드 하피 보스는 추락 중에 사망하고 말았다.

날짐승이 하늘에서 죽었으니 호상(?)이라 해야 하지 않을까?

-블러드 하피 보스 신시아를 처치했습니다.

-8,000코인을 습득합니다.

-보너스 업적 포인트 3을 습득합니다.

-레벨업!

여기까진 예상했기에 담담히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어진 알림에는 결코 담담할 수 없었다.

-아이템을 발견했습니다.

아이템은 진리다.

당연히.

‘습득!’

-이 아이템은 철옹성에 적용할 수 없습니다.

손에 쥐고도 먹을 수 없는 영약이란 뼈를 때리는 아픔보다 컸다.

그런 그의 마음을 이해한 것일까?

냉정하게 돌아설 것 같던 시스템이 다시 돌아섰다.

-부화를 기다리고 있는 펫이 있습니다.

-아이템을 펫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아이템을 펫에 적용하시겠습니까?

‘뭐?’

부화를 기다리는 펫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던전이 무너지려하고 있다.

철옹성에게 먹이지 못한 건 아쉽지만 일단 내 것으로 추측되는 무언가가 아이템을 먹을 수 있다고 하니 일단 승낙했다.

“습득!”

-아이템은 부화를 기다리는 펫에게 적용됩니다.

-펫의 부화까지…….

뒷말은 듣지 못했다.

보스의 죽음으로 던전에서 배출되었기 때문이다.

슈아아아아-!

* * *

파리스 왕국 남부 대도시 하밀의 그늘이었던 5띠 던전을 단 3시간 만에 정리한 어스는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다.

1, 2차 원정대의 일부 역시 돌아왔다.

살아 돌아온 자들은 가족과 눈물의 상봉을 하였고, 돌아오지 못한 자들의 가족은 희망마저 사라졌기에 그 자리에 주저앉아 대성통곡했다.

안도와 기쁨이 유가족들의 슬픔에 퇴색되었다.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딱히 해줄 말도, 해줄 것도 없었다.

유가족을 돌보는 일은 시민들과 유력자들의 몫이다.

어스는 축하 파티를 제안하는 이들을 뒤로하고 곧장 사무실로 이동했다.

“자, 자네가 이 시간에 웬일인가?”

당연히 던전에 있어야 할 어스가 사무실 문을 열고 불쑥 들어오자 크세폰 왕국 서부산 레드 와인을 음미하려던 레이몬드는 병과 잔을 모두 넘어뜨리고 말았다.

병과 잔은 시간차를 두고 책상 아래로 떨어졌다.

이를 황급히 잡으려 했지만 레이몬드의 느려터진 손은 허공만 휘젓고 말았다.

그런데 병과 잔은 깨지지 않았다.

블링크로 이동한 어스가 병과 잔을 낚아챈 덕분이다.

“술 드시고 계셨어요?”

“이, 입가심...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가? 설마, 브레이크라도 발생한 건가?”

“정리하고 돌아오는 길이에요.”

어스는 자신이 구한 와인병과 잔을 들고 소파로 가서 앉았다.

마개는 레이몬드가 따 놓았기에 곧장 잔에 와인을 부었다.

꿀꺽꿀꺽.

“어라? 이거 왜 이렇게 맛있어요?”

“그야 크세폰 왕국 서부산이니... 아니, 방금 뭐라고 했나?”

“닫고 왔다고요.”

“5띠 던전을 몇 시간 만에 닫았다고? 마, 말도 안 돼!”

“의심스러우면 직접 연락해 보던가요.”

“이건 내가 자넬 의심해서 하는 게 아니라 던전 처리부의 수장으로서 꼭 해야 하는 일이라서. 잠시만 기다리게.”

어스가 마음 상할까 싶어 그런 것인지 레이몬드는 구석으로 가서 마법 문자를 보냈다.

어스의 말이 사실임이 밝혀지자 레이몬드는 민망할 정도로 호들갑을 떨었다.

한참 동안.

어느 정도 진정한 레이몬드는 어스의 표정을 보곤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스의 표정이 찜찜함으로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하밀 놈들이 자네를 섭섭하게 대했나? 그런 거야?”

“아뇨.”

“그런데 표정이 왜 그런가? 집안 깊숙이 숨겨둔 금고라도 털린 사람 같아.”

레이몬드의 비유가 어스의 마음을 울렸다.

그렇다고 어찌 속내를 내보일 수 있단 말인가.

자신도 알지 못하는 펫 때문에 기분이 저조하단 걸.

“하밀의 일은 마무리 지었고요. 다음 원정은 내일 갈게요.”

“안 쉬고? 무리하지 말게. 그리 큰일을 해냈는데 말이야. 내 추기경님께 보고하고 올 테니 여기서 기다리게.”

“따로 하실 말씀이 있어요? 그럼 하고 가요. 지금은 쉬고 싶으니까.”

“많이 피곤한가?”

“그 정도는 아니고. 그런데 왜요?”

“좋은 곳에 데리고 가려고 그러지.”

“좋은 데?”

“기다릴 텐가?”

“기다리죠.”

“기대하고 있게.”

육중한 레이몬드는 그 몸이 무색하게 한 마리 나비처럼 팔랑거리며 사무실을 나섰다.

콧노래까지 부르며.

어스는 소파 등받이에 등을 파묻었다.

‘그래서 그 펫이란 놈은 대체 언제 부화하냐고?’

3초, 아니 2초의 시간만 더 있었어도 알림을 마저 들을 수 있었을 텐데 아쉽게도 펫의 부화까지만 듣고 뒷말을 듣지 못하였기에, 큰일을 무사히 완수했음에도 어스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 * *

파리스 왕국 남부 대도시 하밀에 떡 하니 자리 잡고 있던 5띠 던전의 소멸에 관한 소식이 전 대륙으로 퍼져나갔다.

던전이 언제 터질지 몰라 조마조마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있어 이는 희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국가의 지원을 받고 원정에 나선 소드 마스터와 대마법사조차 해내지 못한 일을 어스가 해냈기 때문이다.

이번 일로 어스에 대한 가치는 교단 내에서 자연 더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어스의 후견인 에스터 추기경의 입지 역시 한층 견고해졌다.

이에 위기를 느낀 에스터 추기경과 대척점에 서 있는 추기경들이 힘을 결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의 손은 지금껏 철저한 중립을 표방하던 헤롯 추기경에게까지 이르렀다.

“오랜만입니다, 헤롯 추기경.”

“오랜만이군요, 클락 추기경. 한데 무슨 일로 이 먼 곳까지 날 찾아온 것입니까?”

“헤롯 추기경의 곧고 굳은 신심과 고고한 인품을 알고 있어 그간 찾아오는 것도 누가 될 것 같아 망설였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은 미룰 수 없어 이렇게 실례를 무릅쓰고 왔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우리의 손을 잡아 주세요.”

세상은 헤롯 추기경이 오직 신심으로 살아가는 올곧은 성직자라고 알고 있다.

그를 찾아온 클락 추기경 역시 그러한 이들 중 하나였다.

하나 실상 헤롯 추기경이야말로 교단에서 가장 꺼려하는 과격파의 수장이었으니, 클락은 에스터 추기경을 잡자고 끌어들여선 안 될 무서운 범을 끌어들이려 함을 전혀 알지 못했다.

“교단의 정치문제에 개입할 생각은 없습니다.”

“제가 헤롯 추기경의 성품을 몰라서 이렇게 온 게 아닙니다. 알고 있지만 사정이 급박하게 돌아가서 이렇듯 찾아온 겁니다.”

“급박하다니 그게 무슨 뜻입니까?”

클락이 몸담은 파벌이 어떤 처지에 놓였는지 헤롯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모른 척 시침을 뗐다.

그리고 그가 자신을 찾아올 것이란 것도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그리했다.

피할 수 있으나 피하지 않고 클락 추기경을 만난 건 헤롯 역시 교단 정치에 개입할 의지를 갖고 있어서였다.

성전단의 이념만 추구하기에는 던전이란 현실적인 요인을 더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릇이 바뀐다고 그 내용물이 달라지는 건 아니니까.

“정녕……. 하아, 세상과 담쌓고 지낸 분이니 당연히 모르겠지요. 지금부터 하는 말은…….”

잠시 말을 끊은 클락 추기경은 에스터 추기경의 치부를 낱낱이 밝히며 그녀를 성토했다.

사실 이는 누워 침 뱉기였다.

헤롯 추기경의 눈엔 그러했다.

클락 추기경은 헤롯 추기경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서 목에 핏대만 높였다.

“……바로 그러한 인물이 에스터 추기경입니다. 그러한 속된 인물이 교황이 된다면 교단이 어찌 되겠습니까? 그녀의 치맛자락에 놀아날 게 자명합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그녀의 약진을 막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부디, 룬님을 위해, 그분의 성역을 위해 추기경이 힘을 보태주셨으면 합니다.”

내내 반응이 없던 헤롯은 클락 추기경이 룬의 이름을 거론하는 순간 미세하지만 반응했다.

그건 불쾌감, 아니 분노였다.

룬의 이름으로 사욕을 챙기는 오물덩어리들.

모든 걸 쏟아냈음에도 불구하고 헤롯 추기경이 입을 굳게 다물자 클락 추기경은 일이 텄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방향을 전환하려고 마음먹었다.

바로 그때였다.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역시, 헤롯도 에스터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었구나!’

클락 추기경은 내심 싱글벙글했다.

자신이 누굴 끌어들였는지 상상조차 못하고서.

“물론입니다. 물론이고말고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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