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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로 성장하는 마법사-143화 (143/250)

143화

보물 창고는 복도식으로 되어 있었다.

복도의 폭은 15미터이고 천장까지 높이는 무려 20미터에 이른다.

지하에 위치한 창고였지만 마법등이 5미터 간격으로 하나씩 설치되어 있어 대낮처럼 밝았다.

마법등의 경우 등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주기적으로 마나석을 교체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등이 셀 수 없이 많았다.

‘교단의 재물로 대륙을 뒤덮을 수 있다는 말이 진짜 농담이 아닌가보네.’

자세히 살펴본 마법등은 양산형도 아닌 자그마치 고급형이다.

대당 5천 테스나 나가는 놈이다.

4인 기준 서민 가구의 2년 치 생활비가 바로 저 등 한 대 가격이다.

더구나 한 번 설치하면 영구적인 것도 아니고 주기적으로 마나석을 교체해야 한다.

참고로 마나석은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자연 마나석과 인공 마나석이다.

자연 마나석은 자연에서 얻는 것이다.

광산 같은 곳이다.

반면 인공 마나석은 몬스터 부산물을 정제하여 결정을 만들고 그 결정을 통해 모종의 방식으로 재가공하여 탄생한다.

마나석의 효율을 따지면 당연히 자연 마나석이 인공 마나석보단 우위에 있다.

하지만 마나석 광산은 쉽게 찾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보니 시중에서 사용하는 대부분의 마나석은 자연 마나석보단 효율이 떨어지는 인공 마나석을 주로 사용한다.

그런 인공 마나석도 품질에 따라 다르지만 가장 낮은 품질의 것도 개당 100테스에 거래된다.

대충 세어 본 마법등이 백 개, 이 복도 하나에만 설치된 게 그렇다는 이야기다.

‘정신, 정신 차려. 교단의 돈지랄을 보러 온 거 아니잖아.’

하루의 시간이 있다고는 하지만 창고의 끝이 어딘지도 모를 상황에서 그 초입부터 한눈팔고 있을 시간이 없다.

어스는 인벤토리에서 마법 통신구를 꺼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레이몬드 사제, 아니 주교에게 문자를 보내보았다.

전송은 실패했다.

창고 전체에 차단 마법이 설치된 탓이다.

제3자의 조언을 포기한 어스는 복도 벽면을 파서 만든 공간에 세워진 거치대에 놓인 보물을 살피기 시작했다.

‘설명서도 없네. 젠장.’

이래서야 헤르먼 수석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 수 있을까 싶어진다.

제일 먼저 어스가 살핀 보물은 색색의 보석의 박힌 방패였다.

‘백금일까? 아니지, 백금으로 누가 방패를 만들어. 그럼…… 꿀꺽. 미, 미스릴?’

보석 테두리에 박힌 보석을 제외하더라도 방패는 그 자체로 천문학적인 가격에 거래될 것이다.

어스는 방패를 들어 보았다.

그러자 거치대 색이 녹색에서 회색으로 변하였다.

이에 놀라 어스는 다시 방패를 거치대에 내려놓았다.

그러자 회색은 다시 녹색이 되었다.

도난 방지용일까?

하지만 도난 방지 마법이 걸려있는 거치대로 보기엔 자신의 숨소리와 심장 소리를 제외하고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이에 어스는 방패를 들었다 놓기를 계속하여 반복했다.

또 다른 변화가 있나 싶어서.

-어스 경, 장난은 그만하십시오.

“누, 누구?”

-창고 관리인입니다. 해당 보물을 선택하신 거면 말씀하십시오. 입구를 열어드리겠습니다.

거치대의 색상이 변한 이유를 이제야 알 수 있었다.

“흠흠, 미안합니다. 색상이 변하는 게 신기해서.”

-그럴 수 있죠. 아무튼 앞으론 이런 장난은 그만해주셨으면 합니다.

과연 목소리가 전부일까? 아님, 자신의 행동까지 관찰까지 하는 걸까?

후자를 부정할 수 없다보니 어스의 행동은 조심스럽게 변했다.

나이가 어린 건 그도 어쩔 수 없지만, 행동이 경박하고 가볍다는 말은 듣고 싶지 않았다.

“창고 관리인님.”

-예.

“실례지만, 보물에 설명이 없던데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목소리는 단호했다.

어스는 속으로 투덜거리며 보물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보물의 종류는 다양했다.

무구에서부터 장신구, 의복, 서적, 영약 등등.

‘세상의 보물이란 보물은 다 여기 있는 건가?’

창고지기의 목소리에 깜짝 놀란 뒤 3시간을 내리 움직였다.

그럼에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헤르먼 수석이 만 하루의 시간을 준 것이 이제야 납득할 수 있었다.

‘창고 끝까지 가 보자.’

초입이 아닌 끝에서부터 역으로 보물을 살피기로 작심한 어스는 블링크를 시전 했다.

자신의 블링크야 더는 비밀이 아니기에 사용에 거리낌은 없었다.

그런데 블링크가 발동하지 않았다.

몇 번을 거듭해도.

이에 놀란 어스는 매직 애로우를 시전했다.

이 역시 시전되지 않았다.

몸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마나가 없는 것도 아니다.

둘 모두 완벽했다.

부족함 없이.

‘마법을 사용할 수 없도록 조치가 되어 있는 건가?’

그렇다면 이곳이야말로 마법사들에겐 최악의 장소일 것이다.

마법사가 마법을 사용하지 못한다면 일반인이나 다름없으니까.

이러면 걸어가야 한다.

허락된 시간은 많이 남아 있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어스는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얼마쯤 달리자 숨이 차서 더는 뛰지 못했다.

그럼에도 끝은 보이지 않았다.

‘이거 혹시 끝이 있긴 있는 거야? 설마, 없을 리가.’

오기가 발동한 어스는 다시 뛰어…… 아니 속보로 걷기 시작했다.

* * *

“그는 뭐하고 있나?”

“마법등이 신기한지 한참 구경하다 거치대에서 보물을 들었다 놓기를 한참 반복했습니다. 계속 그럴까 싶어 경고했습니다.”

어스를 보물 창고에 들여보낸 헤르먼 수석은 교황에게 이를 보고한 뒤 보물 창고를 관리하는 방에 들러 어스의 동태를 창고지기에게 묻고 있었다.

“역시, 경박하군. 쯧. 그래, 지금은?”

“갑자기 뛰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잰걸음으로 이동 중에 있습니다. 아, 지금은 주저앉아서 쉬고 있습니다.”

“왜?”

“제가 어스 경 본인이 아니라서 그 속을 어찌 알겠습니까? 다만, 한 가지 이건 제 짐작이지만 창고 끝에서 역으로 보물을 살펴보려는 의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멍청하기까지.”

“예?”

“아, 아닐세. 보물을 살펴보는 기색은 없고?”

“처음 몇 점을 제외하곤 없었습니다.”

“요란하게 뛰어다녔다면 지금쯤 심한 갈증을 느끼겠군. 보물 창고 안에선 마법 물품의 기능도 제한되니 지금쯤 죽을 맛이겠군. 후후.”

“아무…… 헛!”

“왜?”

“그, 그게 물을 꺼내 마시고…… 닭구이도 꺼냈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네요. 대체 저걸 어디서?”

“뭐? 그게 말이 돼? 혹시 창고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닌가?”

“아닙니다. 그랬다면 관리실에 경고등이 켜졌을 겁니다.”

창고 관리인은 지금의 상황이 몹시 당황스러웠다.

대마법사는 물론이고 소드 마스터라도 창고 안에선 한 줌의 마나도 사용할 수 없다.

하물며 마법 물품은 당연히 먹통이 되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그것이 깨진 듯한 모습이 보여지니 보고하는 창고 관리인이나 듣는 헤르먼 수석이나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 창고에 있는 그에게 물과 닭구이가 어디서 났는지 물어야 하는데 그러자니 자존심이 헤르먼 수석의 발목을 잡았다.

“수석님, 물과 음식이 어디서 났는지 물어볼까요?”

헤르먼 수석의 눈치를 살피며 창고 관리인이 조심스레 물었다.

그 말에 순간 혹했지만 헤르먼 수석은 고개를 내저었다.

“어차피 보물은 한 점밖에 갖고 나오지 못해. 그건 틀림…… 없겠지?”

“확실합니다.”

“됐어, 일단 잘 지켜보게.”

헤르먼 수석은 못마땅한 기색을 하고서 관리인의 방을 나섰다.

* * *

꺼억.

‘잘 먹었다.’

갈증과 허기를 해소한 어스는 다시 움직였다.

근래 들어 이처럼 장시간 움직이긴 처음이었다.

그래서일까?

-힘 스탯 0.1 상승합니다.

-민첩 스탯 0.1 상승합니다.

스탯이 올랐다.

‘헐, 앞으론 창술 수련이 아니라 조깅을 해야 하나?’

좋은 팁(?)을 얻었다고 생각한 어스는 이마에 맺힌 땀을 손등으로 닦고 다시 움직였다.

그러한 노력 끝에 드디어 끝이 있을까 싶었던 창고 끝에 도착했다.

중간에 출출한 배를 다시 채우고 나서였다.

이제 역으로 움직이면 된다.

하지만 너무 지쳤다.

수면 욕구가 머리를 쳐들었다.

그 욕구에 굴복하는 순간 기회를 제 발로 뻥 차는 일이라 욕구에 굴복할 수 없었다.

여기까지 오느라 거의 10시간을 소비했는데, 만약 여기서 4시간 이상 자 버리면? 그야말로 인생에 두 번 다시없을 기회를 제 발로 걷어차는 꼴이다.

이에 어스는 제 뺨을 후려치며 벌떡 일어났다.

이럴 땐 아파도 되는데.

각오를 다진 어스는 두 눈을 부릅뜨고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발걸음은 열 발을 다 떼기 전에 멈추었다.

힘들어서? 천만에 바로 이 때문이다.

-아이템을 발견했습니다.

아이템을 발견했다는 알림이 그의 발걸음을 멈춰 세운 것이다.

시스템이 아이템으로 간주한 건 표면이 울퉁불퉁한 성인 머리통만 한 크기의 암석이었다.

색상은 칠흑을 닮아 있었다.

표면은 울퉁불퉁하였지만 자세히 살피자 그러한 모습에 어울리지 않게 의외로 부드러웠다.

손을 떼지 않고 만지자 온기까지 느껴졌다.

하긴, 자그마치 교황청 보물 창고에 평범한 바윗돌을 가져다 놓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긴 하다.

-아이템을 습득할 수 있습니다.

아이템은 단 하나밖에 가질 수 없다.

그러니 기존의 아이템, 철옹성에 흡수해야 한다.

전에 그랬듯.

어스는 바윗돌(?)을 집어 들었다.

-아이템을 습득하시겠습니까?

대답하지 않았다.

생각보다 바윗돌은 무겁지 않았다.

거치대의 색상이 바뀌어 있었다.

이에 어스는 예의 그 자리에 바윗돌을 내려놓았다.

과연 저것을 선택하는 게 옳은지 판단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이템은 던전 보스를 잡으면 희박하지만 나오는데 굳이 저걸 선택할 필요가 있을까?’

이러한 이유로 내려놓은 것이다.

포기할 생각으로 내려놓았는데 이상하게 시선을 거둘 수 없었다.

‘알림 씨, 저게 뭔지 알 수 없어요?’

알림은 답하지 않았다.

* * *

“어스 경이 마법사니 당연히 완드나 스태프 아님, 마나의 그릇을 키워줄 영약에 관심을 가지겠지?”

교황 아딜레스는 아침 식사를 마친 뒤 소화를 시킬 겸 정원을 거닐었다.

그런 그의 뒤에는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검은 머리에 갈색 눈의 여인이 뒤따르고 있었다.

교황의 수발을 드는 시녀는 아니었다.

그녀는 교단 제일의 검사이자, 교황청 근위대를 맡고 있는 베로니카 단장이었다.

외모만 보면 서른 초반으로 보이나 실제 그녀의 나이는 쉰이 넘었다.

그럼에도 저와 같은 외모를 유지할 수 있는 건 그녀가 마나 샤워를 통해 검사라면 누구나 꿈꾸는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이른 고수이기에 가능했다.

참고로 그녀는 마나 샤워를 두 번 경험했고, 만약 한 번 더 마나 샤워를 경험한다면 그녀는 인류 역사상 다섯 번째 그랜드 소드 마스터가 될 것이다.

“성하께선 그 아이가 마음에 드십니까?”

“난 그 아이가 룬께서 안배한 아이라고 생각하네.”

“송구하오나 그 아이는 에스터 추기경 사람입니다.”

“자넨 여전히 에스터 추기경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군.”

“에스터 추기경은 성직자로서 당연히 지켜야 할 율법의 맹점을 파고들어 이득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찌…….”

“됐네. 그만하게.”

“송구합니다.”

역대 교황 중 가장 유연한 가치관을 가졌다는 평판을 듣고 있는 인물이 바로 아딜레스 교황이었다.

그 덕분에 테아노 왕국은 이종족의 대륙 아도니스와 교역을 할 수 있었다.

물론 아도니스의 배가 대륙에 정박하는 경우는 없다.

그랬다간 당장 그 목이 떨어지거나, 화형대에 세워질 테니까.

그래서 테아노 왕국과 이종족의 교역은 대륙에서 멀리 떨어진 섬에서 이뤄지고 있었다.

그곳은 율법에서 언급되지 않은 장소였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참고로 에스터 추기경은 대리인을 내세워 그곳에서 막대한 이득을 취하고 있었고, 거기서 취한 부로 파벌을 만들었다.

이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베로니카 단장은 에스터 추기경을 싫어하다 못해 경멸했다.

헤르먼 수석이 처음부터 어스를 못마땅하게 여긴 이유도 바로 여기서 기인한 것이다.

“그만 들어가세.”

한편 그 시간, 교황청 보물 창고의 어스는 예의 그 못생긴 바윗돌을 선택했다.

거듭 고심한 끝에 결국 마음이 이끄는 대로 행동한 것이다.

이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결정이었으며, 이 일로 그는 사람들의 비웃음을 사게 됐다.

넝쿨째 굴러들어온 호박을 제 발로 걷어찬 어리석은 녀석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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