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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로 성장하는 마법사-140화 (140/250)

140화

헥터 왕국 왕도에서 발생한 던전 브레이크 사태는 교단과 마탑을 통해 대륙 전역에 퍼졌다.

이 일로 인해 사람들은 또 한 번 던전 브레이크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당장은 남의 일이지만 그 일이 언제 자신의 일이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팽배했다.

자연 던전을 최단시간에 정리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인 어스의 존재 가치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왕도에 발생한 던전 브레이크 사태를 맞아 큰 활약을 보인 어스는 노쇠한 국왕을 대신하여 대리청정을 맡고 있는 1왕자의 초청으로 작위를 수여 받았다.

작위는 남작이었다.

어스 입장에선 솔론 왕국과 비교할 수밖에 없었다.

‘이름은 하난데 성이 두 개가 되어버렸네.’

작위에 이어 상당한 액수의 포상금까지 받았다.

왕도 전역을 휩쓴 던전 브레이크는 이튿날을 기점으로 마무리되고 있었다.

간간이 구울이 발견되었지만 합을 맞춘 병사 서넛이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라 처리엔 문제가 없었다.

다만 구울에 당하면 피해자 역시 구울이 되다 보니 그 때문에 애를 먹고 있었다.

다 정리했다 싶은 구역에서도 뜬금없이 구울이 툭툭 튀어나왔기 때문이었다.

“오빠, 교단에서 사람이 나왔어!”

자신의 방에서 상태창을 점검하고 있던 어스는 여동생 루시가 난입(?)하여 소리치는 바람에 깜짝 놀랐다.

루시가 다니는 아카데미는 이번 던전 브레이크 사태로 인명피해가 극심하여 휴교 상태였다.

“교단에서?”

“빨리, 빨리 나가봐.”

왕궁에 불려가 내키지 않는 작위 수여식에, 역시나 내키지 않는 파티에 참석하느라 진이 빠진 상태였다.

남들은 왕족이나 고위 귀족과 연줄을 만들 수 있는 그 파티를 못가 안달이지만 어스쯤 되는 명성과 힘을 가진 자에겐 오히려 귀찮은 일이었다.

귀족 영애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는 건 나쁘지 않았지만 대놓고 꼬리치는 바람에 마음이 영 불편했다.

여자 친구가 없다면 모를까 여자 친구가 있는 입장에선 혹시나 엉뚱한 소문이 나서 루리아의 귀에 들어갈 수 있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을 그었다.

확실하게.

그러자 이상한 소문이 났다.

그가 남자를 좋아한다는... 그래서일까? 어느 순간부터 귀족 영애들 틈에 남자들이 간혹 보였다.

묘하게 웃으며 쳐다보는 놈들의 시선에 저도 모르게 주먹을 날릴 뻔했다.

어스는 루시를 따라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그곳엔 전날 안면을 익힌 왕도 신전의 주교가 이마의 땀을 훔치고 있었다.

“오! 어스 경!”

주교는 무척이나 호들갑스러운 인물이었다.

성직자가 아니라 상인과 닮았다.

“하프너 주교님이 제 집엔 무슨 일이십니까?”

성기사인 어스에게 있어 주교는 직책상 그의 상급자다.

하지만 파벌이 다르다.

어스가 에스터 추기경 파벌이라면, 하프너는 클락 추기경 파벌에 소속된 성직자였다.

참고로 에스터 추기경과 클락 추기경의 사이는 좋지 않다.

그러니 파벌이 다른 자신을 하프너 주교가 집까지 찾아 온 건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한 식구인데 꼭 일이 있어야 찾겠습니까?”

“그렇죠.”

“내 경을 찾아온 건 교황님의 명령을 전달하기 위함입니다.”

하프너 주교의 입에서 교황의 이름이 나올 것이라곤 예상하지 못한 어스는 이에 깜짝 놀랐다.

‘이런 말은 못 들었는데?’

한편으론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레이몬드 사제에게서 이런 이야기는 듣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에스터 추기경도 교황이 자신에게 사람을 보냈다는 건 모른다는 뜻이리라.

어스는 격식에 맞게 자리에서 일어나 한쪽 무릎을 꿇었다.

사람 좋은 얼굴이던 하프너 주교는 언제 그랬냐는 듯 표정을 근엄하게 고치며 명령서를 읽어 내려갔다.

사설은 길었지만 내용은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교황청으로 당장 오라는 말이었다.

‘왜?’

어스가 신실한 신도이거나, 혹은 성직자였다면 이는 일생의 영광으로 삼았을 것이다.

이 세상엔 수많은 성직자가 있지만 그중 교황청에 발을 디딘 자는 얼마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스는 이를 영광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헥터 왕국에서 교황청이 있는 테아노 왕국까지 가려면 대륙을 횡단해야하기 때문이다.

육상으로 이동하면 못해도 두 달은 족히 걸린다.

왕국 남부의 항구 도시에서 배를 타고 이동하면 그보다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그래 봐야 보름이다.

블링크로 이동한다면 그보단 훨씬 일찍 도착하겠지만 그에 따른 비용을 생각하면 전적으로 자신의 손해다.

‘교황청까지 가려면 포션을 얼마나 마셔야 하는 거야?’

하지만 자신의 블링크는 이미 소문이 날대로 난 이상 시간이 걸리는 일반적인 방식으로 이동할 경우 교황에게 미운 털이 박히지 않을까.

에스터 추기경이 이끄는 파벌의 힘이 상당하다곤 하지만 상대는 교황이다.

어스의 이러한 속내를 읽은 것일까?

“여정이 걱정입니까? 어스 경?”

“솔직히 말하면 가까운 거리는 아니죠.”

“하하, 그런 거라면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무슨?”

“교황님의 명령이 내려진 이상 텔레포트 마법진을 사용할 수 있으니까요.”

“테, 텔레포트? 설마, 제가 아는 그 텔레포트 말입니까?”

“당연하죠. 설마, 마차나 배를 타고 가려고 했습니까? 아! 경의 경우엔 블링크겠군요.”

이럼 이야기는 또 달라진다.

블링크나 텔레포트 마법진이나 맥락은 같아도 근본은 다르다.

단거리와 장거리의 의미가 완전 별개인 것처럼.

“교황님이 부르시면 가야죠. 그런데 올 땐?”

“텔레포트 마법진 가동에 비용이 상당하지만 그쯤 감당 못할 교단이 아닙니다. 당연히 귀국할 때도 텔레포트 마법진을 이용할 실 수 있을 겁니다.”

그건 다행이다, 정말.

“주교님은 텔레포트 마법진을 이용한 적이 있습니까?”

“딱 한 번 이용한 적이 있지요. 정말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헥터에서 셀레네까지 눈 깜빡할 사이에 갔으니까요.”

하프너 주교가 셀레네 왕국을 거론하자 불현듯 한 인물이 떠오른다.

솔론 왕국 내 자신의 농장을 욕심내던 헤럴드 주교였다.

에스터 추기경의 힘을 빌려 동토의 왕국이라 불리는 셀레네로 유배 보냈었는데.

‘잘 살고 있으려나?’

어스는 하프너 주교와 일정을 정한 뒤 주교를 배웅했다.

주교가 돌아가자 다들 어스에게 모였다.

“아들,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인데 주교님이 직접 오신 거야?”

일반인들에게 주교는 영주만큼이나 보기 힘든 신분이다.

그런 사람이 제 집에 방문했으니 누가 놀라지 않겠는가.

불신자면 모를까 여기 이는 사람들 모두 신앙심의 깊이에 차이는 있겠지만 전원 룬의 신자다.

뭐, 아닌 자를 찾기 힘든 세상이니.

아무튼 그러하다보니 다들 호들갑스러웠다.

“교황님께서 날 보자고 부르셨대. 그 말 전하려고 온 거야.”

그의 말에 장내는 쥐죽은 듯 조용했다.

더 호들갑을 떨 줄 어째 너무 조용하다.

충격이 컸나? 쳐다보니 충격이 커 다들 할 말을 잃은 듯했다.

그런 이들을 픽 웃으며 바라본 어스는 계단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의 발은 계단을 밟지 못했다.

뒤에서 합창(?)이 터졌기 때문이었다.

“교, 교황님!”

“응, 삼 일 뒤 출발할 거야.”

* * *

레벨을 통해 성장하는 그에게 있어 던전은 신이 내린 축복이 아닐 수 없었다.

하나 다른 사람들에게 있어 던전은 호불호가 갈렸다.

하지만 던전 브레이크 사태로 피해가 발생하면서 던전에 대한 경각심이 보다 높아졌다.

칼에 눈이 없듯 몬스터 역시 그러하니까.

“날 찾았다고?”

노크와 함께 거너가 어스이 방으로 들어왔다.

던전 브레이크로 인한 여파가 남아 있었기에 거너는 물론 다들 가게에 출근하지 않고 집에서 보내고 있었다.

어스는 저들이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거너, 아그네스, 린다, 니코가 없었다면……. 평소 그들이 루시를 가르치지 않았다면 어쩜 루시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구울에게 당했을 것이다.

거너 일행의 도움을 받은 건 비단 루시뿐만이 아니다.

부모님 또한 그들이 의지가 되어 주었다.

“불러서 미안해.”

“우리 사이에 무슨 소리야. 왜 불렀어?”

“다른 게 아니라 경호원을 뽑으려고 하는데 내가 그쪽으로 아는 게 없어서 말이야.”

“음, 내가 아는 녀석들은 다 거친 용병이라서 괜찮을지 모르겠다. 걔들 몸값도 예전 같지 않고.”

“돈은 얼마가 들어도 상관없어. 책임감과 실력만 갖추고 있으면 돼.”

“그런데 꼭 용병으로 국한할 필요 있어?”

“그게 무슨 말이야?”

“연줄이 없는 탓에 실력이 있어도 임관하지 못한 아카데미 졸업생이 상당하다고 들었어. 그런 사람들 중에서 뽑는 건 어때? 실전 경험이 부족할진 몰라도 기본기는 그쪽이 더 좋더라고. 일전에 형수님 부탁으로 루시 아카데미에 가 봤었는데 그때 고학년들이 수련하는 모습을 봤거든. 제법이었어.”

“엄마 부탁으로?”

“별일 아니고 루시가 중요한 짐을 놓고 갔다고 전해달라고 하셔서 그거 가져다주러 갔었어. 어차피 출근하던 길이기도 했고.”

“가게 일로 바쁠 텐데 엄마 부탁도 들어주고 고마워.”

“네 가족이면 내게도 가족이야. 난 그렇게 생각해. 다른 애들도 마찬가지고. 그리고 네 덕분에 우리 모두 자리 잡고 사는데 그게 대수겠어.”

호의를 베풀어도 그게 호의인 줄 모르는 잡것들이 세상에 넘쳐난다.

그런 면에서 거너, 아그네스, 린다, 니코는 제대로 된 사람들이었다.

“아카데미라……. 당장은 알아보고 싶지만 지금 상황에선 힘들지 않을까 싶네.”

“하긴 지금 시국에 아카데미를 통해 알아보는 건 좀 그렇겠다. 그럼, 한스 씨에게 말하는 건 어때? 그 양반 생각 외로 발이 꽤 넓더라고.”

“한스 씨는 피해가 없으려나 모르겠네.”

“그쪽도 2구역에 사니까 문단속만 잘했다면 피해는 없을 거야. 이참에 한스 씨 보러 가는 건 어때? 나도 부탁할게 있거든.”

어스와 거너는 곧장 일어났다.

하지만 대문을 나서진 못했다.

글리시아에서 만나기로 하고 헤어진 푸리엘이 몹시 못마땅한 얼굴을 하고서 앞에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법 통신구를 잃어버렸나요? 아님, 내 번호를 잊어버렸나요?”

푸리엘의 말에 어스는 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녀를 잊고 있었기에.

“미, 미안. 상황이 급박한 바람에 정신이 없었어. 그보다 어떻게 된 거야?”

“어떻게 되긴요. 엄청 달렸죠. 그보다 어디 가세요?”

“한스 씨를 만나려고 해.”

“그는 왜?”

“쓸 만한 경호원을 구하려고 이번 일을 겪어보니 가족들 안전이 걸리더라고.”

어스의 말에 푸리엘의 눈가에 기광이 스쳤다.

“그거 제가 알아봐드릴까요?”

“푸리엘이?”

“물론, 절 믿는다는 전제가 붙지만 허락한다면 괜찮은 실력자들을 소개할 수 있어요.”

‘그러고 보니 곧 한 달이네.’

푸리엘이 약속했던 매달 위그드라실 조각 1개 지불 날짜가 다가왔다.

그 생각이 나서일까? 푸리엘의 정체가 또 궁금해진다.

슬슬 말해 줄 때도 되었는데 표정을 보아하니 그럴 의향은 여전히 없는 것 같았다.

“거너 형.”

“어?”

“한스 씨는 나랑 푸리엘 둘이서 만날게요. 형은 일보세요.”

“그래, 그렇게 해.”

거너는 쿨 하게 돌아섰다.

어스는 푸리엘과 함께 대문을 나섰다.

“푸리엘, 아직도 내게 접근한 목적에 대해 말하지 않을 생각이야?”

푸리엘은 걸음을 멈추고 어스를 빤히 응시했다.

어스는 조용히 기다렸다.

곧 그녀의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열매가 필요한 이유를 밝힌다면, 그럼 당신에게 접근한 내 이유도 밝히죠.”

어스는 입을 다물었다.

일반인이어도 문제인데 하물며 자신은 성기사다, 그런 처지에 이종족이 신으로 받드는 존재의 힘을 품으려고 그런다고 어찌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이건 죽을 때까지 함구해야 할 일이다.

만약 이 일이 교단에 알려진다면 몹시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될 테니까.

“됐어. 곧 한 달이니까 조…… 흠. 열매나 준비해.”

그간 푸리엘이 보여준 행동이 조금만 미덥지 못했다면 어스는 그녀를 진작 해고해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녀가 보여 준 행동은, 그녀의 의도와 정체를 제외하면…… 아니지, 이게 더 중요한 건가?

머릿속이 갑자기 복잡해졌지만 서로 물고 물린 게 있어 강압적으로도 나갈 수 없었다.

성기사에게 쫓긴 건 그녀지만, 결국 그들을 죽인 건 바로 자신이니까.

‘한동안 이러고 살아야 하나?’

찝찝했지만 그로서도 당장은 어찌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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