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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로 성장하는 마법사-137화 (137/250)

137화

헥터 왕국 왕도 전역을 뒤덮은 몬스터는 일반인이 상대하기엔 무척이나 까다로운 언데드 몬스터 구울이었다.

좀비보다 상위 언데드인 놈들은 강력한 시독으로 무장하고 있어 작은 생채기도 목숨과 직결된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죽은 자들의 구울화였다.

가족이, 연인이, 친구가 언데드가 되어 벌떡 일어나서 달려드는 경험은 제 아무리 견고한 정신력을 소유한 자도 버티기 힘든 경험이다.

그런데 그런 경험을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겪고 있었다.

“에, 에이미…… 아빠, 아빠야!”

구울로 변한 딸을 차마 공격할 수 없었던 평범한 가장이 울며 손을 내밀었다.

신이여 제 딸을 돌려주소서!

그러나 간절한 아비의 바람은 모두에게 외면 받았다.

시퍼런 손톱에 붙잡히고, 그 이빨에 물리며 딸과 같은 처지가 되었다.

완전 다른 종에서 다시 같은 종이 되었지만 두 사람의 모습에선 이전의 부녀의 정은 찾을 수 없었다.

산자를 향한 증오로 가득 찬 둘은 서로를 등지며 움직였다.

가족의 소중한 보금자리에서.

와장창.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곧장 유리창을 부수며 거리로 뛰어내린 남자, 아니 제 딸로 인해 구울이 된 가엾은 가장은 뛰어내린 그 충격이 가볍지 않아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벌떡 일어나선 비명을 찾아, 살고자 하는 사람들의 다급한 마음이 담긴 발소리를 좇아 내달렸다.

등짝을 후비고, 머리를 깨물고, 다리를 물며 자신이 지나간 자리에 새로운 구울을 탄생시킨 구울은 골목길에서 막 뛰쳐나온 10대 초중반의 어린아이들과 마주쳤다.

“위험해!”

구울과 정면으로 마주한 남자 아이의 몸이 순간 얼어붙었다.

포식자 앞에 던져진 피식자처럼.

다가오는 검은 마수에 남자 아이는 눈조차 질끈 감지 못했다.

눈꺼풀조차 제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소년의 위기를 목격한 소녀가 예의 그 소년을 스쳐가며 검을 휘둘렀다.

맞은 편 가옥을 조금씩 살라먹기 시작한 화광에 드러난 소녀의 옷깃에 채워진 배지.

그 배지는 강철 아카데미 재학생이면 의무적으로 붙이고 있어야 하는 배지였다.

배지를 달고 있는 건 비단 이 소녀만이 아니었다.

구울과 정면으로 마주친 남자 아이 역시 강철 아카데미 재학생이었다.

그들의 뒤에 있는 네 명의 남녀 아이들 역시.

그러함에도 다들 얼어버려 배운 바를 실천하지 못했다.

오직, 저 소녀…… 루시를 제외하고 말이다.

루시의 검이 소년에게 닿으려는 구울의 손목을 쳐냈다.

손목은 단숨에 잘려 버렸다.

저 검이 아카데미가 재학생에게 일괄적으로 지급하는 질이 떨어지는 양산품이었다면 결코 구울화되면서 단단해진 놈의 손목을 잘라내지 못했을 것이다.

툭.

구울의 흉측한 손이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루시는 재빨리 몸을 비틀어 놈의 목을 사선으로 그었다.

완전히 잘라내진 목하고 깊은 자상만 남겼다.

상대가 살아 있는 존재였다면 치명상이 되었을 테지만 그녀가 벤 자는 구울이었다.

구울의 머리가 뒤로 꺾였다.

머리를 지지해야 할 목이 3분의 1이 갈라진 영향으로 순간 뒤로 젖혀진 것이다.

놈의 목을 베는 데까지 성공한 루시는 얼어버린 동기를 발로 차서 밀어버린 뒤 그 발로 구울에게 뒤차기를 날렸다.

방금 사용한 저 방식은 대검을 사용하는 린다가 자주 애용하던 방식이었다.

대검의 특성상 상대와의 거리는 필수였고, 이를 위해 린다가 개발한 수법이었다.

원래는 바위나 벽을 이용했지만 루시의 경우엔 그런 게 없다보니 바짝 언 동기의 몸을 그 대신 사용했다.

때문에 위력은 크게 줄어들었지만 앞서의 공격이 먹힌 상태라 구울은 서너 발자국 뒤로 물러서게 만들었다.

흐트러진 몸의 균형을 냉큼 잡은 루시는 곧장 달려들어 잘라내지 못했던 목을 끝내 잘라 버렸다.

퍽!

구울의 머리통이 지면에 떨어지며 구르더니 루시의 발에 밀려 주저앉은 남자 아이의 벌어진 다리 사이에 닿았다.

“헉!”

홱 돌아선 루시는 동기들과 사색이 되어 벌벌 떨고 있는 남학생을 한심하게 쳐다보았다.

“제대로 하지 않으면 버리고 간다. 세 번째 경고야. 네 번은 없어.”

던전 브레이크의 영향은 강철 아카데미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더 심각했다.

그럼에도 많은 아이들이 아카데미 밖으로 도주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교수와 교관, 그리고 아카데미의 경비들과 고학년들이 나서 저학년들이 도주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준 덕분이었다.

당장 아카데미만 벗어나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저학년들은 아카데미 내부보단 덜 했지만 여전히 위험에 노출된 상황이었다.

지금 저들처럼.

“우, 우린 네가 아니잖아!”

“아카데미 재학생으로서 할 소리야? 그게 할 말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반발하는 한 여학생을 매섭게 노려본 루시는 돌아서서 제 입술을 힘주어 깨물었다.

사실 루시 역시 이 상황이 두려웠다.

저들처럼 기댈 사람이 있었으면 진작 기댔을 것이다.

고블린의 공격을 피해 도망치던 그때, 바로 그때처럼.

‘오빠.’

하지만 지금 이 곳엔 기댈 수 있는 오빠가 없었다.

온전히 자기 자신의 힘으로 극복해야 한다.

루시는 앞만 보고 움직였다.

여기저기서 울려 퍼지는 비명과 소름끼치는 괴성 그리고 화마에 휩싸인 가옥이 주저앉는 육중한 소리를 뒤로한 채 루시는 전진했다.

가족들이 있는 곳을 향해.

* * *

글리시아 남작 영지에서 왕도까지의 거리는 날랜 말을 24시간 쉬지 않고 내달려도 열흘 이상 달려야 한다.

그러한 거리를 이동하려니 몸이 남아나질 않았다.

마음은 벌써 집에 도착했지만 실상 육신이 한계에 부딪친 어스는 어느 이름 모를 강변에서 잠시 이동을 멈춰야만 했다.

백사장에 발을 딛자마자 어스는 속의 내용물을 게워내기 시작했다.

건더기는 없고 액체만 웩웩 거리며 쏟아냈다.

그의 주변은 진한 딸기향으로 채워졌다.

그 좋아하던 향이 지금은 부패가 진행된 고기 냄새처럼 역겨웠다.

속이 어느 정도 진정된 어스는 포션을 꺼내들었다.

포션 병을 잡은 그의 손이 흔들렸다.

중독자의 손처럼, 몹시.

다른 한 손으로 떨리는 손을 움켜잡은 어스는 이를 악물고 포션을 입으로 가져갔다.

꿀꺽.

마나는 회복되었지만, 진정된 속이 다시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블링크.’

이를 악물며 속으로 시동어를 외친 어스의 신형은 다시 사라지고 나타나길 상공에서 반복했다.

마을을 지나고, 산을 지나고, 크고 작은 강을 지나 그렇게 메스꺼움과 어지러움을 참으면서 그렇게 인고의 시간을 거친 그의 눈앞에 왕도의 전경이 들어왔다.

활기차고 평화롭던 왕도는 이전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시가전이 한창 진행 중인 도시를 연상시켰다.

지상에서 꽤나 떨어진 상공임에도 사람들의 비명이 생생했다.

산 자의 비명을 삼킨 언데드의 괴성 역시.

이 소리만으로도 알 수 있다.

저 도시는 지금 지옥이란 걸.

그리고 그 지옥 한가운데에 자신의 가족이 있다.

지인들이 있다.

‘블링크.’

* * *

던전 출현 초창기 던전과 가까이 있는 가옥들의 경우 가격이 폭락했다.

그때 어스의 눈에 들어온 곳이 지금 그의 부모님과 여동생 그리고 지인들이 모여 살게 된 집이다.

그 집을 둘러싼 담장은 웬만한 마을을 둘러싼 목책보다 높고 단단했다.

그 높고 단단한 담장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있었다.

준요새급의 가옥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

어스의 부모님을 비롯해 거너, 아그네스, 린다, 니코, 조쉬 내외와 아들 톰, 집안의 잡일을 위해 고용한 노른 일가족 네 명이 그 안에 숨죽이고 있었다.

백일도 안 된 아기까지 포함해 총 13명이다.

한때 용병으로 생활한 거너, 아그네스, 린다, 니코, 노른은 혹시 모를 외부의 공격을 대비하여 중무장했다.

행크 역시 사냥꾼 출신답게 활을 들었다.

인세의 지옥을 연상시키는 번화가와 달리 주택가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간간이 들리는 비명과 이를 집어 삼킨 괴성만 간간이 들릴 뿐이다.

“형님, 구울 입니다.”

정문과 후문 위쪽 공간엔 두 명씩 짝을 지어 바깥 동정을 살피고 있었다.

그중 정문에 자리 잡은 거너와 행크.

거너의 말에 행크는 곧장 시위를 당겼다.

모퉁이에서 막 튀어나온 피범벅이 구울이 좌우로 고개를 돌렸다.

그 고개가 두 사람이 위치한 곳으로 움직였다.

놈과 눈이 마주친 행크는 즉시 시위를 놓았다.

시위를 떠난 화살은 구울의 머리뼈를 뚫고 들어갔다.

감전된 듯 한차례 사지를 떨며 구울은 뒤로 자빠졌다.

저놈처럼 머리에 화살을 박고 쓰러진 구울이 벌써 일곱 구다.

정문에 다섯, 후문에 둘.

단 한 마리의 몬스터도 집안에 들이지 않았음에도 행크의 표정은 금방이라도 비를 쏟을 것 같은 흐린 하늘처럼 우중충했다.

딸아이에 대한 걱정 때문에.

그런 행크의 마음을 이해하는지 거너는 애써 활기찬 목소리로 그를 위로했다.

“형님, 루시는 괜찮을 겁니다. 그 아이가 있는 곳이 기사 양성 아카데미잖습니까. 더구나 근처엔 동부 치안대 본부도 있고요.”

“그래, 그렇지.”

말은 그리 했으나 여전히 행크의 가슴엔 무거운 바윗돌이 앉은 듯 답답하기만 했다.

당장이라도 딸아이를 찾아 달려 나가고 싶지만 그리했다간 남은 사람들마저 쫓아올 게 뻔하다 보니 차마 그럴 수 없었다.

그런 두 사람의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루시가 없다고요?”

화들짝 놀라 몸을 돌린 두 사람은 창을 지팡이 삼아 버티고 서 있는 어스를 발견했다.

자세마저 불안한 게 아니다.

얼굴은 핏기를 어디에 버렸는지 백짓장처럼 창백했다.

“어, 어스야!”

“너 몰골이 왜 그래?”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미끄럼 타듯 사다리를 타고 내려왔다.

* * *

행크에게 업혀 들어온 어스의 등장으로 집안에 있던 사람들은 크게 놀랐다.

어스는 행크에 의해 소파에 엉덩이를 붙일 수 있었다.

그런 그를 바라보는 모두의 시선엔 걱정과 불안이 가득했다.

“아, 아들 괜찮아? 괜찮은 거니?”

엘이나는 어스의 손을 잡았다.

잘 먹고 잘 살게 되었지만 아들의 손은 전이나 지금이나 어찌 이리 비쩍 말라 힘주어 잡는 것조차 부담스러운지.

속상한 마음에 자꾸 눈물부터 차올랐다.

어머니의 눈시울이 붉어지자 어스는 없는 기운까지 쫙쫙 짜내보려 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체, 체해서 그래. 체해서.”

“체, 체했다고?”

“대체 뭘 먹고?”

“포……션. 그보다 아버지.”

“어? 응. 말해. 필요한 거라도 있어?”

“루시요, 루시와 연락은 해봤어요?”

어스는 웬만한 글은 읽고 쓸 수 있게 된 여동생에게 마법 통신구를 선물했다.

통신구 하나 가격이 서민 가정 10년 치 생활비를 웃돌았지만 돈이라면 평생 써도 못 쓸 만큼 번 그에겐 애들 사탕 값에 지나지 않았다.

행크는 고개를 내저었다.

무거운 표정을 하고서.

행크가 루시에 대한 걱정을 떨치지 못한 것도 연락이 되지 않아서였다.

연락만 닿았어도 한결 마음을 놓았을 텐데.

부정적인 아버지의 반응에 어스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아무래도 찾으러 가야 할 듯했다.

그래서 몸을 일으켰는데.

빙글.

어지럼증을 버티지 못하고 다시 주저앉았다.

아들의 상태가 예사롭지 않았기에 행크와 엘이나는 한목소리로 그를 다독였다.

그런다고 마음이 놓일 어스가 당연히 아니다.

“하, 한…… 아니, 삼십 분만 쉴게요.”

그 말을 끝으로 어스는 마나 연공법에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마나 연공법을 운용하면 그나마 몸이 빨리 회복된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삼십 분이란 말이 무색하게 어스가 다시 깨어났을 땐 해가 떨어지고 한참이 흐른 후였다.

이에 깜짝 놀라 튕기듯 몸을 일으켰다.

하나 그 자리에서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다.

“몸은 괜찮아?”

눈앞에 여동생이 멀쩡한 모습으로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너, 너 왜 여기 있냐?”

“내 집에 내가 있는 데 왜 있냐니? 오빠 말 되게 섭섭하게 한다.”

목소리도 표정도 너무 생생하다 꿈이라고 하기엔.

어스는 벌떡 일어나 루시의 손목을 잡아 당겼다.

이러면 보통 당긴 쪽으로 끌려오는 게 정상이지 않나? 어째서 자신이 도리어 루시의 품에 안겨 있는 걸까?

어스는 고개를 들었다.

루시는 고개를 내렸다.

남매의 시선이 그렇게 마주친 순간.

“꺄아아아아-!”

천둥을 삶아 먹은 건지 여동생의 괴성이 어스의 고막을 무자비하게 때렸다.

그래서 확신할 수 있었다.

꿈이 아니라는 걸.

“루시, 무슨 일이야!”

“……어스 너 지금 뭐하냐? 동생 품에서.”

방문을 벌컥 열고 뛰어든 아버지와 어머니, 그 뒤를 이어 줄줄이 들어오는 사람들을 본 어스는 민망함에 급히 루시를 밀었다, 밀었는데.

‘어째서, 어째서 이번에도 내가 밀리냐고?’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이 모든 현상을.

그래도 마음은 참 편했다.

가족 모두 무사해서.

그래, 그거면 된 거다.

무너진 자존심이야 차차 회복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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