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화
데린 마을에서 남쪽으로 수 킬로미터 떨어진 어느 산속 동굴에 있던 던전이 폭발하며 몬스터를 쏟아냈다.
이 여파로 산과 숲에 있던 기존의 몬스터들은 놈들을 피해 달아났다.
처음 데린 마을 자경대와 글리시아 영지의 순찰대는 소규모 몬스터 웨이브로 생각했다.
아니, 웨이브라고 이름 붙이기에도 민망한 수준의 사건정도로 치부했다.
그래서 그들의 대응은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마을 자경대, 영지 순찰대 그리고 기동부대의 지원을 받아 몬스터 소탕에 나섰다.
소탕은 성공적이었다.
이에 마음을 놓은 마을 주민들은 병사들을 위해 조촐하게나마 잔치를 열었다.
모두가 마을의 무사를 기뻐하며 먹고 마시며 밤이 깊었다.
마치 그때를 기다렸다는 듯 던전 브레이크로 인해 세상에 나온 몬스터들이 마을을 공격했다.
마을을 둘러싼 목책이 결코 낮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목책은 제 역할을 하지 못하였다.
그 이유는 놈들이 비행 능력을 보유한 임프이기에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작은 덩치가 무색하게 놈들은 무척이나 호전적인데 영악하여 예전부터 악명이 자자했다.
그러한 놈들이 수십 단위도 아니고 무려 수천 마리나 들이닥쳤으니 몰살의 결과를 피할 수 없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접한 오스완드 남작과 그의 딸 루리아는 즉시 출병하여 놈들의 동진을 막았다.
만약 영지군이 조금만 늦게 도착했다면 글리시아 동쪽은 놈들에 의해 초토화를 면치 못했을 것이다.
“임프다!”
“놈들이 몰려온다!”
글리시아 군과 임프 무리의 격전이 벌어진지도 어느 덧 3일 차에 접어들었다.
임프와의 전투에 서툴렀던 초반과 달리 2일 차를 넘어가면서 병사들은 이에 적응할 수 있었다.
적응까지 그들이 흘린 피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피해가 워낙 크다 보니 방어선을 뒤로 물려야 할 상황까지 처했다.
다행히 방어선은 뒤로 물리지 않고 유지할 수 있었다.
교단과 용병 길드, 그리고 지원병들이 합류하여 전력을 보충했기 때문이다.
초병들의 다급한 목소리에 글리시아 군은 지난 밤 전투의 피로를 씻어내기도 전에 급히 무기를 들었다.
오스완드 남작과 그의 딸 루리아 역시 그들과 별다를 바 없었다.
스르릉.
검을 빼들고.
척.
방패를 치켜든다.
임프의 까다로운 점은 날쌘 비행 능력과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점이다.
때문에 놈들을 상대하기 위해 모든 병사들이 급조한 방패를 쥐고 있었다.
보병이 아닌 궁병들 역시 활을 버리고 방패와 한손 검을 들어야만 했으며, 영지의 몇 없는 마법사들은 경지에 상관없이 매직 미사일로 공격을 통일했다.
교단에서 파견한 디콘.
용병, 지원병들이 전면에 나선 영지군 뒤에 서서 또 한 번의 격전 각오하고 있었다.
“루리아.”
“예.”
“몸조심해라.”
“아버지도 몸조심하세요.”
부녀는 서로를 짧게 응시한 뒤 임프의 선제 독침공격을 방패로 막은 다음 공격이 뜸해지자 곧장 땅을 박차고 앞으로 튀어나갔다.
그런 부녀의 곁에는 글리시아의 기사들과 그들의 종자들이 뒤따랐다.
“영지를 지키자!”
“몬스터를 박멸하자!”
“우오오오오오-!”
실제 전투 기간은 3일 차에 불과했지만 그 시간이 무색하게 잦은 전투로 인해 병사들이 느끼는 피로감은 그에 열 배에 달한 상태였다.
다들 몸이 무겁고, 머리는 안개가 낀 듯 흐릿했지만 삶과 죽음의 갈림길 앞에 던져진 그들은 오늘도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양측이 충돌하기 직전, 까마득한 상공에서 하나의 점이 등장했다.
영주관에서 달려온 어스였다.
* * *
곧 펼쳐질 아비규환이 될 전장에 모습을 드러낸 어스는 지체하지 안하고 임프 선봉 부대를 향해 매직 미사일을 선사했다.
일반적인 매직 미사일도 놈들에게 상당한 피해를 입힌다.
덩치에 걸맞게 놈들의 내구력이 약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몬스터였기에 매직 미사일로 놈들을 단숨에 죽일 순 없었다.
기본 공격 마법이 가지는 태생적인 한계였다.
그러나 어스의 매직 애로우는 그와 같은 태생적인 한계를 벗어났기에 그가 상공에서 지상으로 쏘아 보낸 53발의 매직 애로우는 목표를 명중한 피격 부위에 따라 달라지긴 했지만 열에 일곱의 목숨은 빼앗았고, 남은 3은 기동이 불가능한 상태로 만들었다.
아군의 선봉에 있던 오스완드 남작과 루리아는 충격에 의해 곤두박질치는 임프를 목격하곤 깜짝 놀랐다.
이해할 수 없는 이 현상에 놀란 마음을 진정할 사이도 없이 부녀의 시선을 사로잡는 인형이 있었다.
진한 연두색 로브를 휘날리며 등장한 인형의 손에서 5서클 체인 라이트닝이 쏘아졌다.
번쩍!
번쩍!
그렇게 두 번 쏘아졌다.
번개는 체인이 이어지듯 허공에서 이어지며 성인 팔뚝만한 임프의 몸뚱이를 폭발시켰다.
체인 라이트닝의 압력을 내구력이 약한 몸이 버티지 못하고 저처럼 터져버린 것이다.
마법사 한 명의 난입(?)이, 그 활약은 병사 수십 명의 목숨을 담보하지 않고서는 얻을 수 없는 성과를 단숨에 거두고 있었다.
-임프를 처치했습니다. 10코인을 습득합니다.
.
.
.
.
-정예 임프를 처치했습니다. 15코인을 습득합니다.
-임프를 처치했습니다. 10코인을…….
2번 연속 쏘아진 체인 라이트닝에 뒤를 이어 다시 십수 발의 매직 미사일도 놈들의 목숨을 앗아 갔다.
단 한 명의 등장에 임프 무리의 예봉이 순식간에 갈려 나가자 모두가 입을 떡 벌렸다.
“어, 어스?”
“이런 일이 있으면 진작 연락할 것이지 너무해요. 루리아. 앗, 오랜만입니다. 남작님.”
“어스 경이 여긴 어떻게?”
“먼저 놈들부터 정리하겠습니다. 대화는 나중에 나누죠.”
적의 예봉을 꺾었으나 전체에 비하면 호수에서 물 한 바가지 퍼낸 수준이다.
강력한 마법사의 등장에 동족 수십 마리가 한 번에 잿더미가 된 걸 목격한 임프들은 최우선 제거 대상으로 어스를 지목했다.
어스 입장에선 환영할 노릇이다.
무형 방벽!
업그레이드 된 철옹성이 발동됐다.
무형 방벽의 지속 시간은 5배 늘어났고, 반경은 전과 달리 2배 증가했다.
5분이란 시간이 어떤 이들에겐 짧을지 모르지만 초 단위로 강력한 스킬을 난사할 수 있는 어스에게 있어 그 시간은 수백, 수천의 적을 몰살시킬 수 있는 넉넉한 시간이었다.
장인의 경지에 이른 포션 마시기, 열 번째 스킬이라 불리어도 손색이 없는 그 스킬이 물량으로 밀어붙이는 적의 가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체인 라이트닝!
번쩍, 번쩍.
후두두.
매직 미사일!
퍽퍽퍽-!
임프가 영악하다곤 하지만 근본은 몬스터다.
흉성이 터지면 분별력에 장애가 발생하는 족속이다.
더구나 적은 고작 하나였기에 놈들은 더더욱 분별력을 상실한 채 그를 제거하기 위해 달려들었다.
스킬 연사 속도가 장인의 경지에 이른 어스라곤 하지만 사방에서 몰려드는 작은 날파리(?) 모두를 처리할 수 없다.
하나 지속 시간 5분의 무형 방벽이 그의 유일한 약점을 완벽하게 보완하고 있었기에 어스는 단 1의 생명력 하락도 없이 일방적인 학살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그렇게 수분이 흘렀다.
무형 방벽의 유지까지 고작 30초가 남았을 때 놈들의 분별력이 돌아왔다.
아니, 공포심을 느꼈다.
삐이이이익-!
적진 후방에서 울려 퍼진 길고 날카로운 소리에 임프들이 황급히 퇴각하기 시작했다.
작고 볼품없는 몸뚱이에 달린 날개가 벌새처럼 바삐 움직였다.
그걸 멍하니 쳐다볼 어스가 아니다.
후방에서 그리고 상공에서 그는 스킬을 난사했다.
일국의 마법군단과 맞먹는 아니, 그들조차 할 수 없는 일이 모두의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괴, 괴물 마법사!”
“어, 어스 경이다! 어스 경이 왔다!”
“성기사님이다!”
앞서 글리시아 영지에 드리운 암운, 무려 18개의 던전을 단신으로 제거한 이력이 있었기에 다들 약속이라도 한 듯, 하나 된 목소리로 그 이름을 연호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목소리가 승리를 축하하는 함성까진 다다르지 못했다.
허겁지겁 물러서던 임프 무리에서 평균 이상의 덩치를 자랑하는 임프가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놈의 생김새는 성서에 나오는 악마와 영락없이 닮아 있었다.
집채만 한 덩치로 묘사하는 성서의 악마와 달리 덩치는 훨씬 작았지만.
반들거리는 검은 피부, 붉은 눈의 뾰족한 귀 앞쪽으로 돋아난 두 개의 뿔을 가진 임프가 힘차게 날아올랐다.
그 속도는 놀랍도록 재빨랐다.
‘보스?’
바늘 모양의 창을 쥐고 자신을 향해 접근 중인 임프를 본 어스는 놈의 후방으로 이동했다.
제 아무리 강력한 날개를 갖고 있다 한들 어찌 공간을 뛰어넘는 자와 견줄 것인가.
순식간에 표적을 눈앞에서 놓친 임프 보스의 표정이 눈에 띄게 변하였다.
놈은 사라진 표적을 찾기 위해 사방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 놈의 커다란 귀에 위험한 인간의 음성이 파고들었다.
“콜 라이트닝!”
그것은 시동어였다.
어스를 일별한 임프 보스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강렬한 백광에 임프 보스는 눈이 부신 듯 살짝 감았다.
무심코 저지른 이 행동이 자신에게 어떤 화를 불러일으킬지 이 순간 임프 보스는 알지 못했다.
임프 보스가 자신의 실수를 깨닫기까지 걸린 시간은 극히 짧았다.
촤자자자자-!
5서클 콜 라이트닝을 정수리로 받자마자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달았다.
후회했지만 상황은 돌이킬 수 없었다.
보스 임프의 입에서 비명이 터졌다.
놈의 날개는 갈가리 찢기더니 순식간에 먼지 터지듯 터져나갔다.
더 이상 비행이 불가능한 상태가 된 놈의 몸뚱이는 지상을 향해 빠르게 추락했다.
‘덩치도 작은 게 그걸 버티네. 콜 라이트닝.’
거대한 번개가 단숨에 놈을 따라잡았다.
촤자자자자자-!
앞서는 정수리로, 이번엔 항문으로 번개를 받아들인 임프 보스는 사지를 활짝 펼쳐 보인 뒤 몸이 바스러지기 시작했다.
퍽퍽.
다리 하나와 팔 한 짝만이 지상에 떨어졌다.
체액 한 점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 흡사 바싹 마른 나뭇가지를 연상시켰다.
그마저도 먼지 날아가듯 날아가 버리며 놈의 흔적을 완전히 지워 버렸다.
-임프 보스 추라크를 처치했습니다.
-5,000포인트를 습득합니다.
-업적 포인트 1을 습득합니다.
우두머리가 출진 할 때만 해도 다시 기세를 올리던 놈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사방으로 도주했다.
이에 놀란 오스완드 남작이 급히 소리치며 내달렸다.
“추격하라! 놈들을 놓쳐선 안 된다!”
비행 능력이 있는 임프의 피해는 고블린이나 오크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한 피해를 야기하는 몬스터다.
때문에 영지의 장래를 위해서라도 단 한 마리도 살려둘 수 없었다.
영지군에 닥친 큰 화를 걷어낸 어스는 루리아 앞에 당당히 서려던 당초 계획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
‘매직 미사일! 매직 미사일!’
제아무리 재빠른 놈들이라곤 하지만 어찌 블링크를 사용하고 있는 어스를 따돌릴 수 있으랴.
그러나 그가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임프의 완전한 박멸은 이뤄지지 않았다.
숫자도 숫자였지만 놈들이 인근 숲으로 숨어들었기 때문이었다.
덩치라도 크면 모를까 작은 비행 생명체를 무작정 쫓아 숲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이런, 다 잡았어야 했는데.”
숲 입구에서 오스완드 남작은 통탄했고, 루리아를 향해 활짝 웃던 어스는 언제 그랬냐는 듯 표정을 바꾸어야만 했다.
* * *
글리시아 남작 영지에서 발생한 던전 브레이크의 경우에는 어스가 제때 도착하여 더 큰 희생을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어스와 같은 능력자의 조력을 받지 못한 지역의 경우 막대한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그리고 그중엔 헥터 왕국의 왕도도 포함되었다.
최초의 사례였다.
일국의 왕도에서 일어난 던전 브레이크는.
하필 던전이 지하 하수도에 발생했기에 아무도 그것을 발견하지 못한 탓이다.
어느 누구도 지하에 던전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하였고,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난 시점이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간이라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컸다.
-던전 브레이크가 터졌다.
거너에게서 날아온 문자 한 통에 어스는 루리아와 제대로 말 한 번 섞어보지 못하고 급히 왕도로 이동 할 수밖에 없었다.
눈덩이와 같은 기세로 불어나는 우려를 누르고 또 누르며, 그는 단 1초의 낭비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쉴 새 없이 블링크를 시전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