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화
던전 보스를 찾기 위해 바삐 움직이던 어스의 눈에 소규모 무리의 서리 구울 무리가 들어왔다.
숫자는 열일곱.
그냥 지나치면 섭섭한 노릇이기에 냉큼 지상으로 공간 이동하여 체인 라이트닝 두 방으로 가뿐하게 정리했다.
검방과 창병에 정예 하나가 있어 잠시 짬을 낸 것에 비해 수익은 나쁘지 않았다.
‘이렇게 몰려다니면 얼마나 좋아.’
한숨 돌린 어스는 곧장 움직였다.
이후 어스는 총 네 번의 소규모 무리를 만났다.
보이는 족족 처리했다.
일이 이렇게 되자 보스보단 레벨업에 더 구미가 당겼다.
안타깝게도 더 이상 소규모 무리로 이동하는 서리 구울은 발견하지 못했다.
대신 엄청난 규모의 서리 구울 무리를 발견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행렬이었다.
그리고 그 행렬 중심부엔 유독 크고 강해 보이는 서리 구울이 뼈로 만들어진 거대한 교자에 앉아있었다.
놈을 보자마자 어스는 곧장 알아차렸다.
녀석이 바로 던전 보스라는 걸.
허공에서 자신을 노려보는 시선을 알아차린 던전 보스의 고개가 움직였다.
산양을 닮은 두 개의 뿔, 심연보다 깊은 까만 눈빛은 거리가 상당함에도 불구하고 어스에게 무형의 압박감을 선사했다.
흠칫.
이에 어스는 자신의 지상을 향해 빠르게 추락하는 것도 잊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어스는 서둘러 블링크를 시전하여 고도를 높였다.
놀란 마음을 달랠 겨를도 없이 어스는 곧장 콜 라이트닝을 날렸다.
46의 지력 스탯과 다섯 번의 강화로 재탄생한 콜 라이트닝의 위력은 기존 콜 라이트닝 위력을 대폭 끌어 올렸다.
외형적으론 전보다 훨씬 굵어졌으며, 그 덩치만큼이나 속도 역시 한층 빨라졌다.
그러한 번개가 대기를 단숨에 갈라버리며 던전 보스를 향해 직하했다.
콰르르릉, 번쩍!
자신이 시전한 스킬임에도 어스는 순간이나마 이에 압도당했다.
5강에 불과한 콜 라이트닝이 이러한데 이보다 더 강화한다면 그 위력이 어떨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어쨌든 콜 라이트닝은 그를 충분히 만족시켰다.
문제는 결과다.
어스는 두 눈을 크게 부릅뜨고서 지켜보았다.
교자에 앉아 있던 던전 보스가 손을 들었다.
떨어지는 번개를 향해.
빈손이었던 그 손에 느닷없이 방패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놈의 눈동자만큼이나 까만 빛깔의 방패였다.
콜 라이트닝은 방패를 직격했다.
쿠아아아아앙-!
굉렬한 굉음과 함께 사나운 스파크를 동반한 충격파가 원형으로 퍼져나갔다.
그 아래 있던 서리 구울이 이에 휩쓸렸다.
애초 단일 공격 스킬이라 충격파가 발생해도 살상으론 이어지지 않았다.
저들이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살상까진 가능했을지 모르겠지만 아쉽게도 저들 모두 언데드이다 보니 거기까진 도달할 수 없었다.
대신 큰 혼란을 일으켰다.
다른 놈들은 처음부터 신경 쓰지 않고 있었기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눈을 아리는 섬광이 사라진 자리, 던전 보스는 우뚝 서 있었다.
멀쩡한 모습으로.
‘골치 아프게 됐네.’
어스는 속으로 한숨 쉬었다.
패배를 직감한 패자의 한숨 따윈 아니다.
저 한숨의 의미는 장기전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다.
‘블링크!’
* * *
콜 라이트닝을 퍼붓고 또 퍼부었다.
한 놈만, 오직 던전 보스 한 놈만 패고 또 팼다.
그럼에도 단 한 발의 콜 라이트닝도 놈의 몸을 맞추지 못했다.
이게 다 놈이 들고 있는 검은 방패 때문이었다.
방패라도 부수면 좋을 텐데 언뜻 본 방패는 처음 그 상태 그대로였다.
대체 무엇으로 만들어졌기에 일반 콜 라이트닝도 아닌, 다섯 번이나 강화된 콜 라이트닝을 버티는지 진심 궁금했다.
‘달걀로 바위를 때리면 이런 기분인가?’
줄기차게 공격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어스는 작전을 변경했다.
던전 보스 주변에 잔뜩 모여 있는 서리 구울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중 그의 주 타깃은.
-서리 구울 저격병을 처치했습니다. 80코인을 습득합니다.
.
.
.
.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이놈들이었다.
한곳에 밀집하고 있었기에 공격하긴 용의했다.
간혹 아슬아슬하게 자신의 몸을 스쳐가는 화살도 있었지만 아직 단 한 발의 화살도 몸에 허용하지 않았다.
-레벨업.
-업적 포인트 3을 획득합니다.
역시, 느낌이 맞았다.
보스를 배제하고 그 주변을 공격하자 곧 레벨이 올랐다.
한순간에 회복된 마나, 덕분에 포션을 덜 마실 수 있었다.
업적 포인트는 곧장 지력 스탯에 분배해버렸다.
46에서 고작 3이 올랐으니 사실 기대하지 않았다.
‘콜 라이트닝!’
역시, 기대하지 않은 보람…… 이건 아니지.
이번에도 예의 그 검은 방패에 콜 라이트닝은 맥을 추지 못했다.
‘저걸 제거해야 하는데.’
지금까지 두들겨 팬 횟수만 따지면 능히 바위산도 가루로 만들어버리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그런 공격을 받고도 방패는 거뜬했다.
맥 빠지게.
만반의 태세를 갖춘 자에게 직하 공격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이를 체감한 어스는 던전 보스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직하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면 공격 방향을 변경하면 된다.
콜 라이트닝의 위력엔 못 미치지만 체인 라이트닝도 있고, 파이어 볼이나 버스터, 아이스 스피어도 있다.
그러자면 보스 주변에 잔뜩 모여 있는, 서리 구울의 바다를 말려버려야 한다.
‘오늘 중으로 보스 처리는 어렵겠네.’
타깃을 변경한 어스는 연속 블링크를 시전했다.
그렇게 이동한 어스는 서리 구울 대군 외곽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체인 라이트닝, 체인 라이트닝!’
* * *
서리 구울 외곽을 공략하기 시작하자 코인이 밀물 같은 기세로 쌓였다.
외곽에 자리를 잡고 있는 서리 구울 모두 일반 등급에 불과했기에 체인 라이트닝을 버티지 못하고 족족 쓰러졌다.
지력 스탯을 올린 보람을 여기서 겨우 찾을 수 있었다.
던전 보스는 자신의 부하들이 죽어 나가자 이에 격분한 듯 괴성을 터트렸다.
그러자 정예 서리 구울이 움직였다.
의미 없는 짓이다.
사방팔방에서 치고 빠지길 반복하고 있었으니까.
‘으으, 도저히 안 되겠어.’
초 단위로 포션을 마시다 보니 오줌보가 한계에 도달한 어스는 재빨리 몸을 뺐다.
아주 멀찍이 이동한 어스는 바지춤을 내린 그는 터지기 직전의 방광을 비울 수 있었다.
고진감래라던가?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짜릿한 것이…… 중독성이 있다.
부르르.
바지춤을 추스른 어스는 곧장 전장으로 복귀했다.
보스를 둘러싼 서리 구울은 여전히 많았으나 처음 봤을 때보단 숫자가 확실히 줄어 있었다.
초당 십수 마리나 처리했으니 안 줄어들면 그게 이상한 노릇이다.
삽질만으로 태산을 옮기는 심정으로 어스의 공략 노가다는 재가동됐다.
‘체인 라이트닝! 체인…….’
어스가 작정하고 경험치 노가다에 들어가자 던전 보스는 미치고 팔짝 뛰고 있었다.
정예에 이어 군단장까지 닥치는 대로 파견했음에도 미미한 성과조차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열이 받친 던전 보스는 직접 움직였다.
교자에서 내렸다.
부하들을 멀찍이 버려두고 홀로 광활한 동토의 땅에 섰다.
“끄아아아아아-!”
오라, 인간이여!
정정당당하게 너와 자웅을 겨루겠다!
이 포효에 담긴 의미였다.
하나 인간은 오지 않았다.
오긴 커녕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자신의 수하들만 빼먹었다.
명예도, 긍지도 모르는 비열한 작태가 아닐 수 없었다.
이에 눈이 돌아간 던전 보스는 체통도 잊고 열심히 발로 뛰기 시작했다.
정예나 군단장보다 훨씬 빠른 움직임이었지만 쾌속한 그 움직임이 무색하게 어스의 그림자조차 밟지 못했다.
매번 죽어 나자빠진 수하들만 그의 발길에 채였다.
아니, 멀쩡한 수하들도 그 발길에 채여 비스킷 부서지듯 부서졌다.
“끄아아아아아-!”
* * *
던전 보스가 제대로 열이 받아 자신을 뒤쫓고 있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놈이 고래고래 소리치는 데 어찌 모를까.
‘천둥을 삶아 먹었나? 소리 한번 되게 우렁차네.’
그럼에도 어스는 놈을 상대하지 않고 그 수하들만 공략했다.
당하는 입장에선 뒷목 잡을 일이 아닐 수 없었지만 그건 놈의 사정이지 자신의 감안할 일이 아니었기에 어스는 보란 듯 더 활개치고 다녔다.
-서리 구울 검방병을…….
-서리 구울 저격병을…….
-정에 서리 구울 검사…….
-서리 구울 군단장을…….
막 죽이고 다녔다.
그러다 가끔 던전 보스에게 콜 라이트닝을 날려 주었다.
역시 방패에 막혔다.
“방패 버려, 방패. 그럼 상대해 주마.”
그때마다 어스는 그리 소리쳤다.
당연히 보스가 이를 알아들을 리 만무하다.
그러나 이와 같은 어스의 도발이 계속되자 차츰 놈도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눈치챘다.
체인 라이트닝이 일으키는 섬광, 부하들의 괴성만 쫓아다니던 보스가 처음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장승처럼 우뚝 선 보스는 손에 쥐고 있는 방패와 사방에서 번쩍거리는 섬광을 번갈아보았다.
그렇게 한참 동안 이와 같은 모습을 보이던 보스는 방패를 힘껏 던졌다.
보스의 손에서 떠난 방패는 거대한 얼음 덩어리에 깊게 박혔다.
콰직.
“끄아아아아아아-!”
전과 사뭇 다른 보스의 괴성에 어스가 관심을 보였다.
무슨 일인가 알아보기 위해 상공으로 블링크를 시전한 어스는 빈손인 던전 보스를 발견할 수 있었다.
놈이 자신을 끌어들이기 위해 머리를 썼나 싶어 살펴보았다.
던전 보스는 그게 아니라는 듯 한쪽을 가리켰다.
이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시선을 돌린 어스의 두 눈이 커졌다.
‘이제야 사람 말귀를 알아들었구나.’
어스가 내심 쾌재를 불렀다면, 던전 보스는 그의 영혼까지 잘근잘근 씹어 먹을 듯 노려보았다.
어스는 보스의 결투에 응했다.
그전에.
‘블링크, 블링크.’
연속 블링크를 사용하여 보스가 던진 방패에 접근했다.
대체 어떤 놈이기에 그리 튼튼한지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다가갔더니.
-아이템이 발견되었습니다.
-아이템을 습득할 수 있습니다.
-아이템을 습득하시겠습니까?
요런 달콤한 멘트가 떴다.
어스가 자신의 방패 곁에 머물자 이에 불안을 느낀 보스가 재빨리 움직였다.
덩치와 어울리지 않는 속도였다.
‘습득한다.’
-하나 이상의 아이템은 습득할 수 없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알림은 어스의 들뜬 기분을 단숨에 망쳐놓고 말았다.
혹시 이런 날이 올까 싶어 인벤토리에 구비한 장비가 아무짝에도 쓸모없게 되어버리고 말았다.
-아이템 교체 혹은 강화가 가능합니다.
고민에 빠진 그에게 있어 이 알림은 희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던전 보스가 도착하기까지 5초도 남지 않았다.
덩치는 산만 한 놈이 어찌 저리 빠른 것인지.
‘강화하면 철옹성이 어떻게 돼?’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물어봤지만, 알림은 입을 꾹 다물었다.
더는 지체할 수 없었기에 어스는 강화를 선택했다.
얼음에 박혀 있던 검은 방패는 고운 입자가 되어 철옹성에 흡수됐다.
강화에 의한 변화를 알아볼 시간이 없었다.
놈이 벌써 지척에 도착했다.
‘블링크.’
어스가 그 자리를 벗어나자마자 던전 보스의 공격으로 거대한 얼음 덩어리가 산산조각 났다.
1초만 늦었어도 박살 나는 건 얼음 덩어리가 아닌 어스의 육신이 되었을 것이다.
던전 보스와 거리를 벌린 어스는 철옹성을 살폈다.
전에 그랬던 것처럼 72시간을 기다리는 게 아닐까싶어 걱정했지만 다행히 강화는 바로 적용됐다.
〔철옹성(창/귀속) : 1일 1회 무형 장벽(반경 1미터/지속 1분). 회수, 파괴 불가.〕
이것이 기존 철옹성의 기능이다.
그런데 그 기능이 던전 보스의 검은 방패를 강화 재료로 사용하자.
〔철옹성(창/귀속) : 12시간마다 1회 무형 장벽(반경 2미터/지속 5분). 회수, 파괴 불가.〕
입이 떡 벌어질 만큼 대단히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모했다.
* * *
어스가 캠프를 떠난 지 이틀이 흘렀다.
그간 총 3차례 공격을 받았다.
앞서와 달리 세 번 모두 소규모였기에 도리아, 푸리엘, 선임 기사 매튜를 비롯한 네 명의 기사와 한 명의 마법사만으로 충분히 막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이에 기뻐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전투에서 승리한다고 전쟁에서 승리하는 게 아니듯, 던전 역시 보스를 처치하지 못하면 의미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단 하루라도 목숨을 연명하는 데 이의가 있다면 모를까.
“지금이라도 그를 찾아 나서는 게 어떨까요?”
내심 한숨을 내불며 도리아가 말하였다.
그에 맞은편에 앉아 있던 푸리엘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가 어디 있는지, 얼마만큼 떨어져 있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캠프를 나서는 건 위험합니다.”
도리아라고 어찌 이를 모르랴.
하지만 하루도 아니고 무려 이틀이다.
어스의 이동 능력을 생각하면 이틀이란 시간은 불안한 생각을 갖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다.
사실 도리아를 만류한 푸리엘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자신의 안전 때문이 아닌, 어스의 안전 때문이었다.
시간에 비례하여 근심걱정이 쌓인 건 비단 두 사람만이 아니었다.
모두가 그러했다.
“그럼 내일, 딱 내일까지만 더 기다…….”
도리아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멀쩡하던 공간이 돌연 일그러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이 현상은!’
‘그가, 드디어 그가 보스를 처치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