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용병 막스가 도리아를 독살하려던 일이 밝혀지면서 캠프의 분위기는 뒤숭숭했다.
동일한 목적을 가진 집단이 서로를 배척하는 건 지리멸렬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러한 분위기는 이른 새벽 삭풍과 함께 캠프에 들이닥친 서리 구울의 공격으로 인해 언제 그랬냐는 듯, 생존을 위해 일치단결했다.
“마, 막아!”
“컥!”
하우든 백작 가문 소속의 두 마법사가 캠프 주변에 설치한 알람 마법이 울렸다.
그 울림이 모두를 깨우기 전 어스가 배치한 매직 미사일이 적의 공격을 잠시나마 붙잡았다.
그 덕에 원정대는 잠자다 당하는 일은 피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상황이 녹록한 건 아니다.
“홀드, 홀드!”
서리 구울은 언데드답게 평시의 움직임은 답답할 정도로 느린 편이다.
그러나 적을 눈앞에 둔 상황에선 움직임이 180도 달라진다.
어스를 제외한 두 마법사 중 하나가 빠르게 달려오는 서리 구울을 향해 연방 2서클 마법을 날렸다.
엇비슷한 속도로 달리던 선두가 돌연 움직이지 않자 뒤따라 달리던 놈들이 이에 부딪쳐 함께 쓰러졌다.
언데드의 진군 속도를 늦췄지만 전체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파이어 볼!”
산 자를 향한 맹렬한 증오심을 뿜고서 달려오던 서리 구울 네 구가 폭발에 휩쓸려 나뒹굴었다.
파이어 볼에 직격당한 놈은 좀처럼 일어나지 못한 채 몸에 붙은 불에 타들어 갔고, 폭발력에 쓰러진 놈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벌떡 일어나 손에 쥔 무기를 치켜들고 부지런히 발을 놀렸다.
“쏴!”
선임 기사 매튜의 신호에 따라 원거리 무기를 지닌 용병과 병사들이 당긴 시위를 놓고, 방아쇠를 당겼다.
쉭쉭쉭-!
날카로운 강철 이빨이 서리 구울의 몸에 박혔다.
얇게.
저리 박혀선 사람이 맞아도 죽지 않을 것이다.
하물며 놈들은 불사의 병사들이다.
“미, 미친.”
“머, 머리를 노려!”
바락바락 소리치며 머리를 노려보지만 몸뚱이보다 더 단단한 게 머리다보니 아예 박히지도 않았다.
그나마 눈에 박힌 건 꽤 깊이 파고들어 피해를 주었지만 이런 경우는 열에 한 번에 그쳤다.
이에 다들 속이 바싹 타들어 갔다.
하지만 그들의 조바심이나 불안감은 곧 닥칠 근접전을 준비하는 자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사, 살긴 글렀어.’
‘제길, 도망갈 곳도 없는데.’
아군의 숫자보다 족히 5배나 많은 적이 몰려오고 있다.
더구나 적의 정체는 언데드다.
칼로 베고, 창을 찔러 죽일 수 없다.
바위를 깨트리듯 둔기로 머리통을 부숴야 한다.
최악의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근접전을 준비하는 병사들과 용병들 입장에선.
‘룬이시여! 자비를.’
‘잡부만 하면 된다며……. 이건 아니잖아.’
‘처음부터 이딴 던전에 들어오는 게 아니었어.’
‘어스 마법사는 대체 뭐 하는 거야?’
자신들의 힘으론 도저히 언데드 군단을 막을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다들 기도하는 심정으로 어스의 등판을 고대했다.
그런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듯 어스의 손에서 드디어 체인 라이트닝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쫘자자자작.
차가운 대기를 갈가리 찢어발기며 앞으로 쏘아진 번개는 흡사 잔뜩 굶주린 뱀처럼 놈들을 덥석덥석 집어 삼켰다.
번개의 뱀에게 한번 물린 서리 구울은 짚단 쓰러지듯 픽픽 쓰러져 두 번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우와아아아아-!”
“어스, 어스, 어스.”
사람들의 입에서 함성이 터졌다.
그의 이름을 미친 듯 연호했다.
식물인간 상태이던 사기는 걷잡을 수 없이 올랐으나, 그와 같은 사기가 힘을 발휘하기엔 상대가 좋지 않아 병사들과 용병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곤 고작 응원이 전부였다.
‘시끄러워 죽겠네. 체인 라이트닝.’
꿀꺽.
마나 회복 포션의 딸기 맛도 이 순간은 소태처럼 느껴졌다.
먹기 싫은 걸 억지로 먹으려니 어제의 그 끔찍한 멀미가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한편, 하우든 가의 두 마법사는 상황도 잊고 어스의 손에서 쉴 새 없이 쏘아지는 체인 라이트닝에서 눈을 떼지 못하였다.
‘마, 마나 회복 포션으로 마나를 채우는 건가? 대체 어떻게?’
‘일반적인 마나 포션이 아닌 건가?’
어스가 쉴 새 없이 마셔대는 마나 회복 포션에 대한 의구심 역시 점점 커져만 갔다.
매튜를 비롯한 기사들 역시 놀라긴 매한가지였다.
‘우리가 싸울 일도 없겠어!’
‘소문이 진짜였다니.’
‘풍차도 아니고 어떻게 저런 식으로 마법을 쓸 수 있는 거지?’
어스를 향한 사람들의 시선은 경탄을 넘어 경외감마저 서려 있었다.
안타깝지만 모든 놈들을 어스 혼자 다 저지할 수 없었다.
번개의 그물망을 피해 캠프로 진입하는 놈들도 나왔다.
얼마 되지 않는 숫자였지만 하나하나가 불사의 전사들이다 보니 일반 병사나 용병들이 맞서기엔 다수의 인명 피해가 불가피하다.
그러니.
“기사들은 놈들을 처리하라!”
선임 기사 매튜가 호령하자 어스에게 눈길을 빼앗겼던 네 명의 기사들이 마나 소드를 생성한 뒤 통토의 땅을 박차고 앞으로 움직였다.
마나를 활성화한 그들의 움직임은 고양잇과 동물과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었다.
도리아와 푸리엘도 마나 소드를 뽑고 전투에 가담했다.
두 사람의 실력은 다섯 기사들보다 윗줄이었다.
어스는 몸 쓰는 건 못해도 보는 건 준 고수급이었기에 이를 알아보는 건 어렵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 의문인 건.
‘강력한 정령사라며? 왜 정령을 사용하지 않는 걸까? 숨기고 있는 건가?’
딱히 급박한 상황이 아니다 보니 굳이 정령까지 동원해서 싸울 필요는 없긴 했다.
싸워도 너무 잘 싸우는 자신이 있었으니까.
-서리 구울 검방병을 처치했습니다. 60코인을 습득합니다.
-서리 구울 창병을 처치했습니다. 50코인을 습득합니다.
.
.
.
.
.
-서리 구울 정예를 처치했습니다. 80코인을 습득했다.
포션을 마셔야 한다는 부담감은 컸지만 대신 그에 상응하는 보상이 쏟아지고 있었기에 상황만 놓고 보면 나쁘진 않다.
다만 한 가지 우려되는 건 이 정도 규모면 서리 구울 저격병 하나쯤은 섞여 있어야 하는데 너무 조용하다는 정도?
생각이 씨가 된 것인지 서리 구울 저격병이 날린 얼음 화살은 어스의 머리를 노리고 무서운 속도로 접근 중에 있었다.
절체정명의 위기에 봉착했다.
그러나 앞서 서리 구울 군당장과 저격병에게서 호된 맛을 본 이후 먹을 때도 잠잘 때도 손에서 놓지 않던 철옹성이 주인의 위험을 감지하고 스스로 무형 방벽을 생성하여 위기는 넘길 수 있었다.
탕-!
자신의 뒤가 잡힌 것을 뒤늦게 알아차린 어스는 깜짝 놀랐다.
줄기차게 쏟아지던 체인 라이트닝이 순간 뚝 끊기자 캠프로 유입되는 서리 구울의 숫자가 빠르게 증가했다.
“어스 경!”
“저격병이 날 노려요.”
서리 구울에 관한 정보는 이미 공유한 상태였기에 의문을 표시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푸리엘이 즉시 달려왔다.
그사이 또 한 발의 화살이 어스를 노리고 날아왔다.
화살은 푸리엘의 마나 소드에 잘려 힘을 잃고 바닥에 떨어졌다.
“괜찮아요?”
어스의 지원이 끊겨 상대해야 할 서리 구울의 숫자가 대거 늘어난 상황에서 푸리엘이 빠져버리자 놈들을 상대하는 이들이 곤란에 빠졌다.
일반적인 화살보다 훨씬 빠르고 강력한 서리 구울 저격병의 화살을 검으로 쉽게 막아낸 푸리엘의 실력을 확인한 어스는 다시 스킬을 날렸다.
서리 구울의 유입이 눈에 띄게 줄었지만 이미 유입된 놈들이 상당했기에 도리아를 비롯한 다섯 기사는 잠시도 한눈을 팔 수 없었다.
하우든 가의 두 마법사가 보조 마법을 통해 그들을 돕지 않았다면 병사와 용병들까지 전투에 가세했을 것이다.
“저격병은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푸리엘은 한 줄기 바람이라도 된 듯 눈앞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 모습에 어스는 반사적으로 한 인물이 떠올랐다.
솔론 왕국의 소드 마스터 슈리에 율리아스 후작이었다.
‘푸리엘이 소드 마스터? 에이, 설마.’
어스는 곧 이를 부정했다.
그녀가 소드 마스터였다면 성기사들에 의해 그처럼 낭패를 당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저 나이에 저런 움직임을 보일 정도면 어쩜 장차 소드 마스터에 오르지 않을까 싶었다.
“어스 경!”
“어, 어스 님!”
마법사들의 입에서 비명에 가까운 소리가 터졌다.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돌린 어스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또 다른 서리 구울 무리가 캠프로 접근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젠장, 후유증을 겨우 떨쳤는데 또 시달리게 생겼네.’
마나 회복 포션을 마시는 어스의 손이 더더욱 바빠졌다.
이 순간은 입이 두 개였으면 싶었다.
상황이 안 좋게 흘러가자 매튜는 기사 셋을 파견했다.
제아무리 어스라곤 하지만 양방향에서 몰려오는 서리 구울 무리를 저지하는 건 무리였다.
도움이 절실한 순간이다.
‘당신들 말고!’
상황이 여의치 않자 병사들과 용병들이 움직였다.
겁을 집어먹었지만 용케 무기를 쥐고 전장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전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의미 없는 희생만 늘어날 뿐이다.
그때, 마나의 파동이 크게 일어나더니 허공에 반투명한 몸체의 맹금류를 닮아 있었다.
녀석에게서 뿜어지는 존재감이 혼란의 장내엔 순간 정적과 평화가 찾아왔다.
시간이 멈춘 듯했다.
어스는 녀석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였다.
그의 심장에서 동경심이 분수 솟구치듯 솟구쳤다.
그런데 이건 그의 감정이 아니었다.
정령이 발산하는 웅장함과 멋짐에 한순간 매혹되긴 했지만 자신의 감정은 딱 거기까지였다.
그런데 어째서 심장은 제멋대로 동경심을 표출하는 걸까?
설마, 이 역시 포션 과다 복용으로 인한 여파일까?
의구심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존재감 하나로 전장을 씹어 먹은 정령, 그 정령의 주인이 소리치고 있었다.
“실라이론, 놈들을 공격해!”
당당한 그 목소리에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던 장내는 또 한 번 전투의 불꽃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 * *
어스를 저격한 저격병을 찾기 위해 푸리엘 역시 자신의 정령을 소환했다.
어스에게 있어 그녀는 베일에 가려진 존재였다.
그녀의 정령 역시.
‘뮬, 놈을 찾아.’
안개의 정령은 제 몸을 확장하여 일대를 뒤덮었다.
뿌연 안개는 끔찍한 강추위로 인해 미세한 얼음 입자가 되어 사각거리며 퍼져 나갔다.
이래서야 안개의 정령이 아닌 서리의 정령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그 느린 속도에 푸리엘은 낮게 한숨 쉬며 독자적인 수색에 나섰다.
어스로 하여금 솔론 왕국의 소드 마스터 슈리에 율리아스를 떠올리게 만든 그 속도로 움직였다.
그랬던 그녀가 일시 움직임을 멈추었다.
‘드디어 자신의 힘을 드러냈구나.’
전장을 향한 시선을 이내 거둔 푸리엘은 수색에 더 박차를 가하였다.
곧 그녀는 놈을.
‘찾았다!’
* * *
으드드, 퍽퍽, 콰직.
단 하나의 아군이 가세하였을 뿐이다.
그럼에도 전황은 단 1의 오점도 용납하지 않고 오롯이 아군의 일방적인 승리를 그리는 그림으로 변하였다.
바람의 상급 정령 실라이론을 통해 한결 여유로워진 어스는 입에도 대기 싫었던 포션의 복용량을 줄일 수 있었다.
‘체인 라이트닝! 체인 라이트닝!’
번쩍, 파츠츠츠.
번개와 바람의 힘에 의해 강제로 영면에 들어가는 서리 구울의 모습은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번개에 맞은 한쪽은 바싹 익어 돌덩이처럼 딱딱해진 숯검댕이가 되었다. 다른 한쪽은 살점 하나 멀쩡한 뼈조차 용납하지 않겠노라 작심한 정령에 의해 단단한 살은 물방울 터지듯 뻥뻥 터지고, 강철검도 우습게 막아내는 그 단단한 뼈는 썩은 나뭇가지 부러지듯 어이없을 만큼 뚝뚝 부러져 제멋대로 삐져 나왔다.
저들이 인간이었다면 영혼마저 고통스러워 비명을 질렀으리라.
그런 정령의 잔혹한 손속에 비해 체인 라이트닝에 죽는 놈들은 깔끔하기 그지없었다.
양방향에서 쳐들어왔던 서리 구울 군단은 모조리 무너지고 소수의 인원만 남았다.
하나, 둘…… 다섯!
그 다섯 놈들에게서 뿜어지는 기운이 어스로 하여금 누군가를 연상시켰다.
3띠 던전 보스와 동급의 힘을 보여주었던 서리 구울 군단장이었다.
“끄아아아아아-!”
“쿠오오오오오-!”
놈들이 일제히 포효를 터트리며 영면을 찾아 떠난 제 부하의 복수를 위해 움직였다.
그 순간 대기와 대지가 또 한 번 얼어붙었다.
‘젠장, 약 무지하게 빨아야겠네. 블링크.’
놈들의 움직임을 막아서기 위해 나선 어스의 표정 역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