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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로 성장하는 마법사-128화 (128/250)

128화

던전 지형은 던전 정복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동급의 던전이라도 어떤 지형이냐에 따라 난이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어스의 경우에는 가장 힘든 지형은 역시 시야에 제한이 따르는 동굴을 들 수 있다.

이를 제외하면 딱히 힘들다고 할 만한 지형은 없었다.

반면 대부분의 원정대는 탁 트인 초원 지형을 선호했다.

시야 확보도 확보지만 그보단 보스를 찾는 게 용이했기 때문이다.

휘이이이잉.

어스가 이번에 접한 던전 지형은 얼어붙은 땅이었다.

살을 에는 차가운 바람이 채찍처럼 몸을 때렸다.

초여름 날씨에서 생활하다 갑자기 혹독한 추위를 그대로 맞은 원정대는 화들짝 놀라 옷을 껴입기 시작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두꺼운 옷을 준비한 사람들은 사정이 나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추위를 고스란히 겪어야만 했다.

“누, 누구 여분의 옷 있는 분?”

“부, 불이라도 피웁시다.”

“얼어 뒤지겠네.”

얼어붙은 이 땅에선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보이지 않았다.

해가 뜬 지금은 문제가 없지만 밤이 되면 지금보다 더 추워질 게 자명하다.

밤새 얼어 죽는 사람이 나오지 않을까 다들 걱정했다.

‘역시 마법 로브.’

일전 프라이스가 선물한 마법 로브와 부츠를 착용한 어스는 얇은 옷차림임에도 추위 걱정은 없었다.

외부로 노출된 얼굴이나 손은 시렸지만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양호한 편이었다.

“마, 마법사님 도움이 될 만한 마법 없겠습니까?”

원정대엔 어스를 제외한 마법사가 2명 있었다.

둘 모두 하우든 가의 마법사들이었다.

“보, 보온 마법이 있긴 하지만 모두에게 걸어주기엔 마나가 부족합니다. 유지 시간도 고작해야 30분 남짓이고.”

마법사들은 사람들의 요청에 난색을 표했다.

그러자 모두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어스를 향했다.

기대에 찬 표정을 하고서.

그들의 기대에 부응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당장이라도 얼어 죽을 것처럼 벌벌 떠는 사람들을 외면할 수도 없던 어스는 파이어 볼 10개를 생성했다.

이에 마법사들은 두 번 깜짝 놀랐다.

공격 마법인 파이어 볼을 시전한데서 한 번 놀랐고, 파이어 볼은 파이어 볼인데 크기와 발산하는 화기에 또 한 번 놀란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놀라움은 어스의 입에서 튀어나온 한마디에 놀람을 넘어 충격에 빠졌다.

“몸이나 녹이세요.”

어스는 생성한 파이어 볼을 적당한 간격을 두고 퍼트렸다.

그제야 사람들은 추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마법사들은 사색이 된 얼굴로 파이어 볼에서 멀찍이 떨어져서 그와 파이어 볼을 번갈아 보며 입을 달싹거렸다.

마법의 문외한은 추위를 피해서 다들 좋아라했지만 마법에 대해 잘 아는 두 사람은 절대 그럴 수 없었다.

보조 마법의 경우엔 안정적인 유지가 가능하지만 공격 마법은 파괴를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기에 오래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괜찮은가요?”

마법사들에 비할 순 없지만 마법에 대한 지식이 없지 않은 도리아가 우려를 드러냈다.

“아뇨.”

“그게 무슨 말이죠?”

도리아는 깜짝 놀라 파이어 볼 주변에 모여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러고 보니 위기감 없이 파이어 볼에 모여 있는 자들은 영지의 정예 병사와 용병들이었다.

반면, 기사 5명과 마법사 2명은 파이어 볼과 거리를 두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어스는 혀를 끌끌 찼다.

“파이어 볼이 터지는 일은 없을 테니 그 점은 안심하세요. 그보다 바람이라도 피할 수 있도록 건물을 짓든 막사를 세우든 일단 움직이는 게 좋겠어요. 당장 바람만 막을 수 있어도 한결 나을 테니까요.”

“그럼 다행이군요. 알겠습니다.”

도리아는 병사와 용병들에게 건물을 짓도록 명령했다.

혹시나 싶어 준비한 막사 두 동이 금방 세워졌다.

맨몸으로 찬바람을 맞는 것보단 낫지만 막사가 크지 않다 보니 70명이나 되는 인원을 한 번에 수용할 수 없었다.

이에 마법사 중 한 명이 동토의 땅에 사는 원주민들의 예를 들며 이글루를 제안했다.

도리아는 이를 받아들였다.

변변한 연장도 없이 얼음을 깨고 이를 벽돌처럼 잘라내는 건 무척 고된 일이었다.

하지만 그걸 하지 않으면 얼어 죽을 상황이었기에 병사들과 용병들은 힘을 모았다.

용병 중 한 명이 도리아와 어스의 눈치를 살피며 다가왔다.

“어스 님, 저 불덩이를 요리하는 데 써도 될까요? 뜨거운 물이라도 마시면 나을 것 같은데.”

용병의 말에 여전히 미심쩍은 눈으로 파이어 볼을 보고 있던 두 마법사가 기함했다.

“미, 미쳤소? 파이어 볼을 자극하는 순간 터져.”

“무식하면 용감하더니. 허허.”

두 마법사의 싸늘한 반응에 용병은 깜짝 놀랐다.

“터, 터진다고요? 저 불덩이가?”

이글루 작업에 참여한 사람들은 돌아가며 파이어 볼을 쬐며 일하고 있었고, 잠시 언 몸을 녹이기 위해 파이어 볼을 바짝 붙어선 사람들은 그 말에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그 모습에 어스는 씩 웃으며 말했다.

“내 건 안 터지니깐 그렇게 써도 돼요.”

“예?”

“안 터진다고요?”

마법사들은 어스의 말에 강한 불신을 드러냈다.

“백번 말하는 것보단 눈으로 보는 게 나을 테니 보여드리죠.”

파이어 볼 위에 바로 냄비를 올릴 수 없다보니 어스는 파이어 볼을 화덕으로 써도 되냐는 질문을 한 용병에게 일정 깊이의 땅을 파도록 부탁했다.

적당한 깊이의 땅이 파이자 어스는 그 안으로 파이어 볼을 이동한 뒤 냄비를 걸 수 있는 장치를 만든 뒤 솥을 걸었다.

주변이 온통 얼음이었기에 이를 냄비에 넣었다.

일반적인 파이어 볼보다 화력이 뛰어났기에 냄비의 얼음은 순식간에 녹더니 펄펄 끓어올랐다.

이를 본 마법사들은 입을 떡 벌렸다.

마법에 대한 지식을 가진 기사들 역시 별반 다를 바 없었다.

“봤죠?”

그 말에 파이어 볼에서 멀찍이 떨어졌던 이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근방에 모여 언 몸을 녹였다.

* * *

던전에 해가 떨어졌다.

해가 떨어지면 더 추워질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막상 밤이 되자 사람이 버틸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추위가 강풍과 함께 몰아쳤다.

애써 세운 막사는 강풍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졌다.

하지만 그들에겐 이글루가 있었다. 60명이나 되는 힘센 장정들이 달라붙고도 부족해 5명의 기사까지 마나 소드로 힘을 보태었기에 해가 저물 때쯤 10동의 이글루가 완성되어 한 동에 7명씩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좁네, 좁아.’

어찌어찌 이글루는 완성되었지만 급히 만든 데다 다들 얼음집은 처음이었기에 엉성하고 좁았다.

어스는 각각의 이글루에 파이어 애로우 하나씩 배치했다.

고작 그 하나를 설치했을 뿐인데도 이글루 내부는 금세 따뜻해졌다.

놀라운 일이었다.

앞서 파이어 볼에 제대로 충격을 받은 것인지 파이어 애로우를 난로로 사용하는 것엔 놀라지 않았다.

대신 호기심을 불태웠다.

귀찮게도.

“밤새 유지할 수 있다고요?”

“어찌 그게 가능합니까? 어떤 학파의 술식을 응용한 건지 알 수 있겠습니까?”

“그냥 하면 됩니다.”

변변찮은 어스의 대답에 마법사들은 허탈한 표정으로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들의 귀엔 어스의 말이 핀잔으로 들렸기 때문이었다.

사실 그런 마음도 없지 않아 있었다.

둘 모두 대답할 수 없는 곤란한 질문만 골라서 쏟아내고 있었으니까.

마법사들이 또 말을 붙일까봐 어스는 후드를 코끝까지 내렸다.

잠을 청해보지만 빈 수레처럼 요란한 코 고는 소리부터 시작해서 이빨 가는 소리, 그것도 부족한지 설명하기 힘든 괴악한 냄새까지 뒤섞여서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몬스터를 보기도 전에 먼저 죽을 것 같아.’

이래서 던전은 혼자 다니는 게 좋은데.

자신도 이럴진데 원정대 유일의 두 여자는 어떨까 싶어 쳐다보니 고요한 신색으로 두 눈을 감고 있었다.

자는 건가? 멘탈이 좋은 건지 무딘 건지.

어스는 양을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스물…… 백…….

* * *

도리아가 던전에서 고생하던 그 시각, 홀튼 하우든의 방으로 그의 남동생 할리가 찾아왔다.

도리아와 달리 둘은 한배에서 난 형제로 도리아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는 항상 의견 일치를 보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그 외의 상황에선 가문의 후계를 놓고 암중에서 다툼을 쉬지 않았다.

그랬던 다툼은 얼마 전 할리의 패배 선언으로 끝이 났다.

가문 내 평판과 세력 그리고 외가의 전폭적인 지지를 끌어낸 형을 상대로 싸움을 지속해 봐야 종국에 가선 빈털터리 신세로 쫓겨날지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낀 할리는 항복을 선언했다.

대신 넉넉한 독립자금을 홀튼에게서 약속 받았다.

그런데.

“네가 어쩐 일이냐?”

“어쩐 일이라뇨? 도리아 그년이 소문의 그 어스 마법사를 포섭했다는 게 진정 사실입니까?”

“오츠 시까지 소문이 났더냐?”

홀튼에게 항복을 선언한 할리는 현재 영지를 떠나 국왕 직할지인 오츠 시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그런 그가 소문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온 것이다.

홀튼이 가주가 되지 않으면 그에게 약속 받은 것 역시 받을 수 없으니까.

“형님!”

“여전히 처신이 가볍군.”

“형님!”

“스읍.”

“죄, 죄송합니다. 대책이 있는 것이죠? 형님이라면 분명 대책을 세워 놓았을 겁니다. 맞죠? 제 말이 맞는 것이죠?”

할리의 다급한 표정은 홀튼의 태연함에 서서히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다.

“그래.”

“여, 역시. 내 그럴 줄 알았습니다. 형님을 믿었습니다. 하하.”

“그런 녀석이 오츠 시에서 여기까지 달려와?”

“그, 그야 형님이 보고 싶어서죠. 그런데 형님이 세운 대책은 뭡니까? 제겐 말씀해 주셔도 되잖습니까? 도리아 년과 달리 우린 한배에서 나온 형제 아닙니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적어도 그 아이는 던전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이게 내 대책이다.”

“서, 설마…… 암살?”

“쉿.”

“그, 그래도 죽이는 건…….”

“네가 내게 왜 패하였는지 아느냐? 바로 그런 성격 때문이다. 쯧쯧. 당장 오츠 시로 돌아가. 내 허락 없이 다시 한 번 지금처럼 영지로 돌아오면 그땐 약속도 파기할 것이다.”

할리는 호통만 듣고 홀튼의 방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그런데 쫓겨난 할리의 표정은 수치심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사냥감을 앞둔 맹수처럼 두 눈이 빛나고 있었다.

‘형님의 계획이 성공한다면 반전의 기회가 될지도 모르겠군. 후후.’

* * *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어스는 날이 밝자마자 밖으로 나왔다.

도리아와 푸리엘도 사정은 그와 별반 다르지 않았는지 뒤따라 나왔다.

이글로 내부에 있을 땐 몰랐는데 막상 나오자 추위가 세 사람을 극진(?)하게 반겼다.

부르르.

이에 어스는 곧장 파이어 볼을 생성했다.

세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최대한 파이어 볼을 밀착했다.

파이어 볼을 사이에 두고 둘러앉은 세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보며 픽 웃었다.

“몬스터만 걱정했지 날씨는 감안하지 않았던 게 불찰이네요. 준비에 미흡했던 점 사과드립니다. 어스 경.”

“경험이 많은 제가 먼저 조언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제 잘 못도 있죠.”

“이런 환경은 어스 경도 처음이잖아요.”

“그렇긴 한데 조금만 생각하면 이런 환경도 있을 거란 걸 예상할 수 있었는데 아예 생각조차 못했으니 아예 잘 못이 없는 건 아니죠.”

“그래도 미안한 건 제가 더 미안하죠. 이 빚은 반드시 갚겠습니다.”

영지를 가진 고위 귀족이 될 사람에게 빚을 지운다는 건 나쁘지 않은 일이다.

물론 어젯밤과 같은 밤을 또 보내라고 한다면 빚을 안 지우고 편히 지내는 쪽을 선택할 것이다.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절로 나오네.’

“노하우도 쌓였으니 좀더 안락한 이글루를 만들 수 있을 거예요.”

그랬으면 좋겠다.

“그전에 보스 잡아서 나가야죠.”

던전에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일반 몬스터부터 사냥할 생각이었지만 지금은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어제와 같은 밤을 보낼 자신이 도저히 없었기에.

“가능하…… 아니군요. 어스 경이면 충분히 가능하겠네요.”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당장 출발할까 합니다.”

“식사도 하지 않고요?”

“이런 날씨에 먹으면 체할 것 같아요. 제가 움직이면 불이 사라질 테니까 안에 들어가서 기다리세요. 푸리엘 너도.”

푸리엘은 어스를 따라 가고 싶었지만 자신이 가진 재주로는 도저히 그를 쫓아갈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그의 말을 순순히 따랐다.

두 사람을 이글루 안으로 들여보낸 어스는 곧장 블링크를 시전했다.

‘도리아 영애의 정령이 궁금하지만 지금은 나부터 살자.’

새우잠조차 잘 수 없던 어젯밤을 떠올린 어스는 한차례 몸을 크게 떨었다.

블링크를 쉴 새 없이 시전 하던 어스가 순간 시전을 멈추고 지상에서 눈을 떼지 못하였다.

던전 몬스터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몬스터의 모습이 참으로 이상했다.

‘뭐지? 저건?’

눈처럼 새하얀 갑옷과 무기를 들고 움직이는 모습은 영락없는 군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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