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화
4띠 던전을 정복하고 돌아온 어스는 하루 종일 침대에서 먹고 자고를 반복했다.
그렇게 침대에서 나온 어스는 제프니 촌장에게 부탁하여 자유 마을 가장 솜씨가 좋은 요리사를 추천받았다.
“이걸 요리해 달라는 말씀이십니까요? 나리.”
“그래. 가능하지?”
“가능하기야 하나데, 이건 무슨 알이죠? 지금까지 각종 알을 다 봤지만 이렇게 크고 신비한 느낌의 알은 처음이네요. 혹시, 말로만 듣던 영물의 알인가요?”
세상엔 세 가지의 이형이 존재한다.
몬스터, 마수 그리고 방금 요리사가 언급한 영물이다.
영물의 경우에는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
자신의 영역을 침범 당했을 때를 제외하고, 그리고 이런 영물은 모험가나 탐험가가 아니고선 좀처럼 보기 힘들다.
그러하다 보니 알을 대하는 요리사의 자세는 긴장과 설렘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영물의 알을 요리하는 기회는 정말 흔치 않으니까.
“두더지.”
요리사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아니,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요리사가 알기로 두더지는 조류처럼 알을 낳지 않으니까.
“두더지가 알을 낳는다고요?”
“그게 중요해?”
“그, 그렇진 않…… 죠.”
“최선을 다해서 요리해 줘. 먹어 보고 맛있으면 상금으로 300테스 낼 테니까.”
“도, 돈은 됐습니다. 마을을 구해주신 마을의 은인이신데 어찌 감히 돈을 받겠습니까. 아무튼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요리사는 내키지 않은 표정으로 노란빛 광채를 발하는 알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손에 잡히지 않았다.
휙, 휙휙.
아니, 손이 알을 그냥 통과하고 말았다.
이에 어스도 요리사도 화들짝 놀라 동시에 알에서 떨어졌다.
꿀꺽.
“어, 어스 님? 이, 이게 대체 어찌 된 영문입니까?”
“알면 내가 이러고 있겠어?”
“그런데 그 창은 어디서?”
요리사의 말에 어스는 그제야 손을 꽉 채우는 그립감의 이유를 알아차렸다.
이건 또 언제 빼든 거지? 짧은 시간 포션을 꺼내고 마시는 일을 반복하다보니 인벤토리에서 물건 꺼내는 속도는 가히 전광석화를 방불케 했다.
눈보다 빠른 손이란 바로 어스의 손을 가리키는 게 아닐까 싶다.
“흠흠. 내가 누군지 잊었어?”
“괴, 괴물 마법사님이시죠. 몬스터 웨이브를 단신으로 막아내신 분을 어떻게 모르겠습니까요? 정말, 죄송한 말씀이지만 전 저 알을 요리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애초 만질 수도 없는데다 그리고 저 알을 해치면 저주를 받을 것 같습니다. 정말, 정말 죄송합니다.”
요리사는 사과만 거듭하곤 부리나케 도망쳤고, 홀로 남은 어스는 한참 알을 노려보다가 손을 뻗었다.
‘나만 만질 수 있는 건가?’
어스는 확인을 위해 저택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불러 만져보도록 지시했다.
앞서 요리사처럼 만질 수 없었다.
‘진짜 나만 만질 수 있네. 그럼 요리는 직접 해야 하나?’
사막 촉수 두더지의 흉측한 외양을 생각하면 사실 알을 먹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다.
그럼에도 요리사까지 초빙해서 알을 요리하려던 이유는 이 알이 영약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아니,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시스템이 나서 쥐어준 물건(?)이 어찌 평범하랴.
“오늘 중으로 내가 너 먹는다.”
어스는 저택 주방으로 향했다.
알에 대한 소문이 그 사이에 퍼졌는지 다들 어스가 안고 있는 알을 신기한 듯 쳐다보았다.
주방에 도착한 어스는 주방에서 가장 큰 프라이팬을 확보한 뒤 여기에 넣고 알을 깨기 위해 망치를 들었다.
망치를 치켜들고 곧장 내려치려는 순간 알에서 발산되던 은은한 빛이 점멸하기 시작했다.
깜빡깜빡깜빡-!
그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이었다.
살려달라는.
“달걀로 삶을 마감하나, 닭으로 삶을 마감하나 어차피 죽는 건 똑 같아 그러니까 애쓰지 말고 그냥 가자. 너도 편하고 나도 편하고 다 편한 길이잖아? 그렇지?”
힘차게 내리쳤다.
한데 어찌된 영문인지 깨져야 할 없고 죄 없는 프라이팬만 때렸다.
쾅!
움찔.
알이…… 사라졌다.
촉감이 이리 생생한데.
“무, 뭐야?”
황당해서 말문이 턱 하고 막힌다.
정신을 수습하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방을 샅샅이 뒤졌지만 끝내 알은 발견되지 않았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저택까지 모두 뒤졌음에도 발견할 수 없었다.
눈앞에서 영약(?)을 잃어버린 어스의 상실감은 대단히 컸다.
손에 쥐고 있을 땐 찝찝해서 과연 먹어도 되나 이런 마음이 없지 않았는데, 막상 알을 잃어버리고 보니 인생에 다시없을 중요한 기연을 놓친 것 같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큰 상실감에 허덕여야만 했다.
바로 그때 도리아와 푸리엘이 도착했다.
예상보다 이틀이나 더 빨리.
* * *
“제프니.”
“예, 아가씨.”
“어스 경에게 무슨 일이 있었어? 며칠 만에 사람이 완전 달라졌던데?”
“시, 실은 알이 사라져서 그렇습니다.”
제프니 촌장의 말에 도리아는 크게 당황했다.
도리아는 급히 자신의 머릿속에 침입한 음란마귀를 내쳤다.
“흠흠, 어쩌다가?”
“망치를 냅다 휘둘렀다는 데 아마 그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참으로 기이한 일이죠.”
여기서 더 생각을 이어가면 지저분한 이야기까지 나올 것 같아 도리아는 대화의 주제를 돌렸다.
“본가의 동태는 어때?”
“특이한 사항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근래 못 보던 자들이 홀튼 공자 주변에서 자주 목격 되었습니다. 그들에 대한 조사를 하려다 혹시 눈치 챌까 싶어 일단 감시만 붙여두었습니다.”
“잘 했어. 그보다 아버님은?”
“백작님은 여전히 침실과 서재만 오가실 뿐 별다른 동향이 없으셨습니다. 그보다 정말 어스 마법사 한명으로 괜찮겠습니까? 그가 에스터 추기경을 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곤 하지만 실상 보스를 처리한 건 소드 마스터인 슈리에 후작이지 않습니까?”
“던전은 여기와 달라 거기선 나 역시 주변 눈치 보지 않고 힘을 개방할 수 있어. 물론, 소드 마스터에 비할 순 없지만 나와 그가 힘을 합치면 아버님이 내준 시험을 통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문제는…… 큰오빠가 어스 경의 존재를 눈치챘을 공산이 농후하단 거야.”
“홀튼 공자와 접촉한 자들이 혹시 암살자 아닐까요?”
제프니 촌장의 말에 도리아는 언급하진 않았지만 내심 동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어스가 떠나고 나서 잡은 미행자는 고도로 훈련된 암살자였기 때문이었다.
“참, 함께 온 그 은발의 여인은 누굽니까? 눈빛이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던데.”
도리아는 푸리엘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이번에도 제프니 촌장의 말에 동감했다.
‘확실히 예사로운 인물은 아니지.’
* * *
“미행자?”
“예.”
“날 노리고 붙은 잔가?”
“그건 아닙니다.”
“아냐? 그럼…… 도리아 영애?”
“그렇습니다.”
“이복이긴 해도 남매인데 적당히 나눠 가지면 될 것을 왜들 그리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지. 쯧쯧. 이래서 남자나 여자나 반려는 한 명이어야 한다니까.”
“어스 님은 한 명의 반려만 있으면 됩니까?”
“내 몸뚱이도 하나요, 내 마음도 하난 데 사랑이 어떻게 둘이 되고, 셋이 돼?”
푸리엘은 어스의 말을 믿지 않았다.
아니, 지금은 진심일지 모르나 장차 그가 나이를 먹으면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간 지켜본 인간들이 모두 그러했기에.
‘당신만은 부디 변하지 않길 바랍니다.’
로엘이 제대로 본 것이라면 눈앞의 저 소년은 장차 종족의 수호자이자, 동시에 모든 엘프의 왕이 될 인간이기에 특히 더 간절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아직은 미지수다.
확률이 매우 높을 뿐.
“그러시군요.”
“뭐야? 못 믿겠다는 거야? 됐어. 믿건 안 믿건 이 상황에서 그게 뭐 그리 중요하겠어. 하아.”
“사라진 알 때문에 그러십니까?”
“생각해 봐야 내 배만 아프니깐 그 이야긴 더 이상 하지 마. 그보다 궁금한 게 있는데 말이야.”
“대답해 드릴 수 있는 이야기면 대답하겠습니다.”
“도리아 영애 말이야. 어째서 그녀에게 관심이 많은 거지? 혹시…… 여장 남자야?”
차갑고 고고한 표정이 특징인 푸리엘의 포커페이스가 의구심 가득한 그 한마디에 순간 와르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어스의 의심이 너무 신선(?)했기 때문이었다.
“벗을까요?”
“내,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냐. 절대! 미안해.”
입장을 바꿔서 생각하면 자신도 열이 받을 것 같았기에 어스는 서둘러 사과했다.
“괜찮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녀에게 관심을 보인 건 이성의 관점에서의…… 후우. 이런 말을 하는 저 자신이 한심하고 초라하군요. 아무튼 어스 님이 생각하는 그런 건 아닙니다.”
“알았어, 알았다고. 그럼 대체 뭐야?”
푸리엘은 도리아에 대해 굳이 숨길 이유가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어차피 다 함께 던전에 들어가면 밝혀질 일이기에.
“그녀는 정령삽니다. 그것도 아주 강력한 정령삽니다.”
“저, 정령사라고, 도리아 영애가?”
“예.”
“기사가 아니고?”
“정정합니다. 그녀는 강력한 정령사이자, 마나 소드를 다루는 검사이기도 합니다.”
도리아가 새롭게 보였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론 그런 도리아 영애의 실력을 단숨에 파악한 푸리엘 역시.
‘그럼 나에 대해서도 파악하고 있는 건가?’
확인할 문제였다.
“그런 재주가 있었군. 그럼 나에 대해서도 파악한 건가?”
“정령사 한정입니다. 그녀가 마나 소드를 다루는 건 그녀의 순간적인 움직임을 보았기에 말씀드린 겁니다.”
어스는 내심 안도했다.
‘도리아 영애의 실력이 그리 좋단 말이지. 그럼 그런 실력을 알아본 저 여자는 대체 얼마나 강하단 거지?’
궁금증은 던전 원정에서 확인하기로 마음먹은 어스는 푸리엘을 돌려보낸 뒤 밤하늘로 시선을 던졌다.
지금껏 숱하게 던전을 정복했지만 6띠 던전은 그 역시 부담이 되는 등급의 던전이었기에 던전 원정이 코앞에 닥치자 긴장 때문인지, 기대감 때문인지 아무튼 갈피를 잡을 수 없는 흥분을 느꼈다.
‘거기서 아이템이나 하나 더 먹었으면 좋겠는데.’
6띠 던전이니 기대해도 좋지 않을까 싶다.
조금은.
* * *
하우든 백작가의 차기 가주라는 큰 상품이 걸린 6띠 던전 원정은 하우든 영지의 영지민은 물론 주변 영지에서도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이 지역에서 하우든 백작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하우든 백작의 두 아들은 6띠 던전 원정을 포기한 상태였다.
오직 도리아만이 국가 차원에서 힘을 쏟아야만 정복이 가능하다고 알려진 이번 시험을 덜컥 승낙했다.
이로 인해 불순한 의도의 말들이 많이 나왔다.
반면 원정을 포기한 백작의 두 아들들은 오히려 현명하다는 말을 들었다.
그랬던 백작의 딸과 아들의 평판이 지금은 180도 바뀌었다.
던전이 출현하며 불세출의 기린아로 떠오른 신성을 그녀가 영입한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었다.
“저 사람이 바로 그 마법사라네요.”
“성기사기도 하지.”
“그뿐만이 아니지? 저 나이에 벌써 백작이라고. 솔론 왕국에서 받은 작위지만. 아무튼 그런 대단한 사람을 도리아 아가씨께서 데려왔다고. 이것만 해도 영주님이 되기에 부족하지 않다고 봐.”
“나도 인정.”
백성들의 반은 언제 도리아의 선택을 비웃었냐는 듯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비단 백성만이 아니었다.
영지의 관료들 역시 도리아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
하우든 백작은 불편한 몸을 이끌고 직접 현장에 나와 축사와 함께 자신이 한 약속을 거듭 천명했다.
“백작님 만세!”
“도리아 아가씨 만세!”
“와아아아-!”
그러나 이 자리의 모두가 도리아의 능력에 찬사를 보내는 건 아니다.
그녀의 배다른 오빠이자 차기 가주로 가장 유력했던 홀튼의 가슴속에서 살심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도리아에게로 향한 민심?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홀튼을 자극한 건 도리아를 향한 기사들과 관료들의 달라진 시선 때문이었다.
더해 이웃 영지에서 보낸 사절들의 태도 역시.
‘천한 년 따위가 대 하우든 가를 넘보는 것도 불쾌한데 감히 나도 못한 일을 해내? 그래, 당장은 즐겨라. 하지만 가문을 잇는 건 네가 아니라 내가 될 것이다. 그곳에서 넌 살아 돌아오지 못할 것이기에. 흐흐.’
주변의 시선을 의식한 홀튼은 급히 표정 관리에 들어갔다.
“하우든의 영광을 위해 반드시 원정에 성공하겠습니다. 아버님.”
“그리하라. 그리하면 가문의 모든 것은 네 것이 될 것이다. 출정하라!”
하우든 백작의 허락을 받은 도리아는 원정대를 이끌고 6띠 던전으로 걸음 했다.
도리아, 어스, 푸리엘을 선두로 총 인원 70명의 모습은 그렇게 사람들의 시선에서 자취를 감추었다.